싱가포르 주롱항 케펠 터미널에 정박한 ‘노던 패스파인더’는 일반 선박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선박 내부에는 영하 30도의 극저온으로 탄소를 액체화하여 저장하는 3750톤급 저장 탱크가 두 개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선박은 노르웨이 국영 에너지 기업 에퀴노르와 다국적 에너지 기업 셸, 토탈에너지가 합작하여 설립한 탄소포집저장(CCS) 전문 기업 노던라이츠의 소유로, 유럽의 탄소 배출국에서 포집된 탄소를 노르웨이 해저 2600m 깊이의 암석층에 저장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CCS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하면서 탄소운반선이 해상 운송의 필수적인 요소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50년까지 연간 최소 6기가톤의 탄소를 포집 및 저장해야 하며, 이 중 약 20%가 해상 운송을 통해 이동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따라 2050년까지 약 2500척의 탄소운반선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탄소운반선의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탄소 배출국과 탄소 저장국 간의 불균형 때문입니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은 탄소 저장소가 충분치 않은 반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호주 등은 유전·가스전이 많아 탄소 저장소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의 조선·해운사들은 극저온 화물선 분야에서 이미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CCS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실제로 한국 조선사들은 적극적으로 탄소운반선 시장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HD현대미포는 세계 최대 규모의 2만5000톤급 탄소운반선을 건조 중이며, 삼성중공업은 선박용 탄소포집 설비(OCCS)를 선상에 설치한 탄소운반선을 공개했습니다. 한화오션은 미국선급협회(ABS)로부터 4만㎥급 대형 탄소운반선에 대한 기본승인을 획득했습니다.
탄소운반선뿐만 아니라 CCS 밸류체인 전반을 선점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합니다. 유럽연합(EU)은 30억 유로 규모의 이노베이션 펀드 중 3분의 1을 CCS 프로젝트에 배정했으며, 미국은 탄소 1톤당 85달러의 세액 공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CCS 시장 규모는 2023년 125억7000만 달러에서 2030년 542억7000만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화석연료 생산량 확대 정책으로 인해 CCS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될 전망입니다. 탄소를 유전에 주입하여 생산량을 늘리는 석유회수증진(EOR) 기술이 필수적인 만큼, CCS의 성장성이 부각될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CCS 설비 설치 및 운영에 대한 세액 공제를 강화하며, 친환경 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한편,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 배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친환경 선박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선박에너지효율설계지수(EEDI) 3단계 적용으로 에너지 효율성이 30% 향상되었으며, 탄소집약도지수(CII) 기준도 강화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글로벌 해운사들은 친환경 선박 발주를 늘리고 있으며, 한국 조선사들은 LNG 추진선 시장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국 조선 3사는 LNG 추진선 시장의 약 70%를 차지하며, LNG 선박 수주 및 수출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소 운반선과 같은 미래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CCS 사업의 확장은 탄소운반선 시장 개화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2025년까지 179만㎥ 규모의 LCO2(액화이산화탄소) 운반선 발주가 예상되며,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국내 조선사들은 LCO2 운반선 건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탄소를 포집하여 해저에 저장하는 서비스 사업이 세계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이 분야에서 한국 조선업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은 발전소 및 공장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여 육상 또는 해저에 영구 저장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대표적인 기술로 자리 잡고 있으며, 각국의 환경 규제 강화와 맞물려 더욱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국들은 CCUS(탄소포집·활용·저장) 기술을 미래 산업 전략으로 삼고 연구개발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탄소 감축을 위한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은 기후중립산업법을 통해 CCUS 지원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일본과 중국도 장기 로드맵을 발표하며 관련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습니다.
셸,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들은 탄소배출 상쇄를 위해 탄소 크레딧을 적극 매입하고 있으며, 탄소 시장의 확대에 따라 기업들의 탄소 감축 노력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탄소 크레딧을 가장 많이 매수한 기업은 셸이며, 마이크로소프트는 바이오에너지 탄소포집저장(BECCS) 사업을 통해 탄소 크레딧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노력은 향후 CCS 및 CCUS 기술 발전과 맞물려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향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CCS 및 CCUS 기술은 필수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되며, 특히 조선업과 해운업이 이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한국 조선업계는 친환경 선박 기술력을 바탕으로 CCS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며, 탄소운반선 및 관련 기술 개발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