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1990년대 한국 아파트 기업의 대명사 우성이 등장한다. 그래서 우성이란 이름의 구축아파트가 서울에 군데군데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유명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70년대 후반부터 오르기 시작하였다. 남쪽 대치동과 도곡동에선 대한주택공사에서 도곡아파트, 개나리아파트, 진달래아파트들을 만들었다. 단순히 서울에 주택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77년도에는 100억 달러 수출을 이루고 중동에서 돈을 벌러간 사람들이 많아 경기가 과열되었다.
강남에 명문학교들이 모여들고 강남 8학군이란 이름의 신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오늘은 강남 8학군 고등학교 신화 강남 학군의 시작과 개척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강남으로 모여드는 명문학교
강남을 현재의 강남으로 만드는 것은 명문고 이전이 한몫했다. 1970년대 초 서울 명문 고등학교는 5대 공립, 5대 사립이다. 5대 공립은 경기고, 서울고, 경복고, 용산고, 경동고이고 5대 사립은 중앙고, 양정고, 배재고, 휘문고, 보성고이다. 여학교도 경기여고, 창덕여고가 명문 공립이고 이화여고, 숙명여고, 진명여고, 정신여고가 명문 사립이다. 이 중 용산고와 경동고를 제외하고 모두 사대문 안에 있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강남으로 이전했다.
과거 종로구와 중구에 몰려 있는 명문고에 다니는 학생들의 등하교로 인해 도심 교통 체증이 더욱 악화되었다. 한편으론 사대문 안의 밀집해있는 학교들의 장래를 위해 이전도 어쩔 수 없어 강남으로 이전했다. 1974년 서울 지역에서 고교 평준화와 함께 학군제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 서울 시내를 5개 학군으로 나누고 중학교 졸업생은 같은 학군의 고교로만 진학하도록 했다. 78년에는 학군 수가 인구 증가와 신개발지 확대 등으로 9개가 늘어나고 강남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섰다. 경기고, 서울고, 숙명여고 등 강북 명문고가 옮겨가고 강남구와 서초구는 "8학군"의 시초가 되었다. 현재의 강남을 만들었다는 그 학군의 위상은 전국까지 퍼지게 된다.
명문학교 개척, 신생학교 탄생
정부의 주요 인사들, 부자들, 권력자들이 강남으로 이동하면서 학교까지 다 가지고 갔다고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그 이유로 중계동, 목동 같은 새로운 학군지가 탄생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명문 학교들이 이전하여 강남 8학군이 탄생되엇지만 바로 강남의 사교육 특구화가 된 것은 아니다.
교육 1번가 대치동
사교육은 주로 전국의 재수생이 대상이었고 깨어있는 의식의 사람들은 "공부"만이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알고 있었다. 80년대 시기에 대치동 고학력 부모들은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싼 작은 면적의 상가를 임대하여 소규모 학습소를 만들고 명문대 학생들을 임시 강사로 삼아 소모임 형태로 과외 수업을 시작했다.
기존 학원에 비해 고가지만 이런 방식은 과외 비용을 분담할 수 있었고 각자 필요에 따라 취약한 과목을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강사들도 높은 보수를 받아 과거 공시생들이 모이는 노량진 학원보다 낫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이것이 "대치동 사교육"의 시작이고 불법으로 과외를 하던 곳도 학원으로 바뀌고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 대치동 신화가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재건축의 상징이자 상가쪼개기로 골치 아프고 2070년 완공될 거라고 비웃음을 받던 은마아파트 사거리를 중심으로 대치동 학원가가 생겼다. 대치동 학원들은 노량진과 도심에 위치한 대형 학원들과 달리 소규모지만 전문화되고 세분화되어 어디에도 없는 교육 중심지가 되었다.
대치동 학원가
대성학원, 메가스터디 같은 인터넷 강의 및 커다란 학원들이 생기면서 대치동 학원가의 위상은 상승했다. 대치동제 인터넷 강의는 전국구가 되었지만 이것이 진정한 트리거는 아니었다. 결정적인 트리거는 1997년 IMF이고 이때, 평생 직장 개념이 무너지고 이걸 보고 자란 세대들은 자신의 "능력"이 최우선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더 좋은 대학, 명문대를 가기 위해 대치동의 학원들은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우수한 학생들을 잘 관리하여 엄청난 성과를 냈다. 대치동 학원들이 강세를 보이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수능"이다. 과거 01년 수능이 어렵게 출제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서울대 정시모집 합격자 중 강남구 239명, 서초구 152명, 송파구 89명으로 강남 3구가 휩쓸었다.
그 결과 강남 아파트 값 상승과 강남 학원가 쏠림이 이어지고 분당, 안양 사람들은 물론 부산, 대구 사람들도 방학 때 대치동에서 미리 예습을 하기도 할 정도로 엄청난 교육열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대치동 원주민", "대치동 전세족" 등 다양한 용어도 등장하고 대치동은 대한민국 최고 사교육 1번지로 아직도 활약하고 이 곳의 아성은 대한민국 무너지지 않는 이상 계속 유지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