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에 ESG 투자가 투자의 주류로 부상하는 이유


ESG 투자가 2024년 투자의 핵심 아이디어 3개 중 하나라고 하면, 상당수 국내 투자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ESG 투자는 기업의 비재무적 가치를 계량적으로 평가해 투자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투자다. 전통적으로 자산 가치, 수익 가치, 수익의 성장성 등 재무적 수치로 기업의 가치를 평가했다.

예를 들어 무능한 경영진 때문에 기업 가치가 크게 하락한 남양유업은 국내 동종 유제품 회사보다 밸류에이션이 낮다. 기업만이 아니라 한국 증시도 오랜 기간 규모가 비슷한 다른 국가들의 증시 대비 낮은 밸류에이션을 유지하고 있다. 원인은 경영진에 관한 평판, 기업 문화, 사회적 평가, 기업이 영위 중인 사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지정학적 위험 등 다양하다. 지금까지 이런 요소들이 일부 반영은 되었지만 체계적이지 못했다. 그 결과 비재무적 가치가 반영된 기업 가치의 변화는 무시하고, 재무적 가치에만 집중하면서 잘못된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재무적 가치를 체계적으로 수치화해 기업 가치에 반영한다면 어떨까? 당연히 리스크는 낮추고 수익률은 높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ESG는 재무 중심 회계학의 확장판이고, ESG 투자는 퀀트 투자(계량 투자)의 미래다.


오늘날 ESG 투자가 필요한 첫 번째 이유는 기업의 사업과 자산이 무형 위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S&P500 기업들의 합산 유형과 무형 자산의 가치 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75년에 유형 자산과 무형 자산은 각각 0.59조 달러와 0.12조 달러로 유형 자산이 전체 자산의 83%를 차지했다. 반면에 2018년 유형 자산과 무형 자산은 각각 21.03조 달러와 4조 달러로 유형 자산은 전체 자산의 16%에 불과했다. 2018년 무형 자산의 비중은 84%로, 1975년 유형 자산의 비중과 비슷하다. 무형 자산과 무형 가치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기업의 비재무적 가치가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다. 만약 애플의 문화가 권위적이고 직원들의 말을 무시하고 환경보호를 등한시 한다면 애플의 기업 가치는 급락할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는 기업이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전통이 있고,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 이익에 반하는 기업을 공격해 수익을 내는 것을 적극 옹호해 왔다. 

2020년에 미국의 주식형 펀드 시장에서 ETF가 중심인 패시브 펀드Passive Fund 규모가 액티브 펀드를 추월할 정도로 급속히 성장하면서 우려가 커졌다. 그러자 미국 ETF 자산운용사들은 행동주의 펀드처럼 기업들의 비재무적 요인을 계량화하고 이 수치가 일정 등급 이상인 기업에만 투자하는 ESG 투자를 발전시켰다.


세 번째 이유는 주요 경제 선진국들에서 고령화가 진행 중이고 주요 경제 주체로 MZ세대가 부상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가장 큰 인구층을 차지하던 베이비부머가 은퇴하고 인간다운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MZ세대가 주요 경제 주체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 세대와 달리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돈을 버는 것 이상으로 삶의 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 인권이나 환경에도 관심이 높다. 권위적인 조직 활동을 지양하고 개인의 자유를 높게 여기며,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소통하는 데 익숙하다. 소비 지향적인 모습도 보여 주는데, 기능적 만족도를 넘어 가치를 공감하고 소비하는 경향이 강하다. 환경오염, 기업 문화, 사회적 불공정성 같은 분야에서 부정적인 평판을 가진 기업들이 만드는 상품에 대한 소비를 줄이고, 반대 여론을 형성하며 조직적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4) 테슬라가 필립 모리스보다 ESG 등급이 낮은 이유

테슬라의 ESG 등급은 낮은 편이다. 일론 머스크는 2023년 6월 14일에 자신이 인수한 X에 글을 남기며 테슬라의 S&P 글로벌 ESG 등급이 담배 회사인 필립 모리스보다 낮은 것을 지적했다.

당시 테슬라의 ESG 등급은 37점인 반면에 필립 모리스는 84점이었다. 2024년 1월 말 기준, S&P 글로벌이 공개한 테슬라의 ESG 등급은 40점으로 6개월 전과 큰 변화가 없다. 

S&P 글로벌 자료에 따르면 테슬라는 업무 환경에서는 업계 평균을 상회했으나 사회적 가치와 지배 구조가 업계 평균을 하회했다. 심지어 환경 점수도 업계 최고 점수와 큰 차이를 보였다. MSCI는 테슬라의 제품 안전성, 품질, 노동 관리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ESG 등급은 윤리적 투자가 아니라 기업의 비재무적 위험을 측정하는 수단이고, 환경과 윤리 요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의 낮은 ESG 등급을 가지고 윤리적 투자 운운한 것은 ESG를 잘 모르거나 일부러 모른 척하면서 테슬라의 비재무적 위험을 숨기려 한 선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논란들을 극복하고 ESG 투자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의 비재무적 가치를 계량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ESG 투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기업의 비재무적 가치를 계량화하기란 불가능하다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기술적 영역이라 시간과 투자만 충분하면 충분히 개선이 가능하다. 오늘날 재무적 기업 가치 평가의 기본인 수익 가치도 불과 100년 전에는 장부상 자산 가치 평가에 비해 불확실해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으나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은 청산 가치에 미달하는 기업에 투자해 위대한 투자자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 회계 제도를 포함한 투자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당시의 불확실한 수익 가치와 현금 흐름을 넘어 수익의 성장성에 근거한 투자가 일반화되었다. 실제로 비재무적 가치도 비슷한 방식으로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클라우드에 기반한 빅데이터 분석으로 비재무적 가치를 계량화하는 많은 시도가 있다. 가령 링크드인이나 블라인드 같은 사이트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만족도를 나타내는 수치를 만들 수 있다. 한편 회계 기준이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것처럼 비재무적 가치를 국제적으로 표준화하는 작업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2023년에 인공지능의 기술적 진보를 통해 수많은 기업의 비재무적 데이터를 집계, 분석하는 일이 보다 쉬워졌다. 

2023년 세계적인 노동 인력 부족과 지정학적 갈등으로 기업에 대한 ESG 평가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지난 10년 이상 추진한 ESG 개선 노력이 2023년 이후 일본 증시 강세의 한 원인으로 언급되고 있다.


ESG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국제 기준이 만들어지고, 이를 기반으로 각 국가별 적용 기준이 수립된 다음에 마지막으로 적정한 규제와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2023년 6월에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처음으로 발표한 국제 지속가능성 공개 표준안은 ESG 데이터의 국제 표준화에 중요한 이정표로 여겨진다.


2025년부터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은 기후나 ESG 공시를 의무화하는 방안들을 추진하거나 적용할 예정이다. ESG 정보가 회계학의 발전 경로를 따라가는 셈이다.

모든 투자자가 당장 글로벌 ESG 규정과 개념을 자세히 알 필요는 없다. 또 이런 제도들이 곧바로 적용될 것처럼 호들갑 떨 필요도 없다. 하지만 2023-2034년에 전 세계적으로 ESG 데이터를 표준화하는 작업들이 동시다발로 적용된다는 사실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금리와 지정학 갈등으로 힘든 시기에도 이런 움직임들이 나타난 것은 ESG 표준화와 규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데 전 세계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표준화와 규제가 자리 잡기 시작하면 ESG를 적용하는 글로벌 금융 기관들의 행보도 가속화될 것이다.


ESG 데이터가 기업의 비재무적 정보들을 신뢰할 수 있는 계량화된 형태로 제공되면, 금융 산업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자산운용사들은 데이터를 활용해 녹색채권 같은 새로운 ESG 관련 상품을 출시하거나 운영 중인 자산의 투자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 기업의 비재무적 정보를 통해 거래 기업의 위험도를 낮출 수 있는 보험사와 은행도 ESG를 적극 도입하려 할 것이다. 특히 은행은 ESG 데이터가 BIS 비율처럼 대출 규제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재무적 데이터에 보다 주목할 것이다.


정리하면 금융 기관은 ESG의 계량화된 데이터 확산을 통해 ① ESG 관련 신규 상품 출시, ② 금융 상품 전반의 수익성 상승, ③ 금융에 대한 새로운 규제와 위험에 대한 대응력 강화 등의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금융 기관들의 ESG 데이터 수요는 증가하고, 이는 데이터를 제공 및 활용하는 산업의 빠른 성장을 이끌 것이다.

GSIA가 2023년 11월에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ESG와 관련된 전 세계 투자 자산 규모는 2022년 기준 30조 달러, 한화 약 4경 원이다. 미국은 2022년에 방법론을 변경하여 이전과의 비교가 어렵지만 2022년 전후 성장세가 멈춘 건 분명하다. 유럽도 2022년 수치는 2018년과 비하면 소폭 하락했다. 이른바 ESG 세는 둔화되었으나 ESG 투자가 축소되었다기보다는 과도한 버블이 정리되고 ESG가 더 엄격한 기준으로 재정의되는 과정이라고 봐야겠다. 


일본의 사례는 ESG 수준이 낮은 지역에서의 ESG 개선이 재무 성과 측면에서 실제로 효과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럽은 ESG에 확고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은 단기적인 역풍에 직면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등할 가능성이 크다. 강력한 인공지능 역량과 금융 산업 전반에 걸친 강점을 지녀 ESG 데이터 계량화에 누구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ESG 데이터 계량화가 용이해진 것은 인공지능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덕분이다. 기업의 비재무적 데이터를 집계하기란 쉽지 않은데, 발전한 IT 기술의 도움으로 이를 구현하는 여러 기업이 나오고 있다. 가령 2023년 1월에 설립된 미국의 신생 스타트업 에코레이팅EcoRating은 2023년 12월 두바이에서 개최된 제29차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 초대받아 인공지능 ESG 플랫폼을 소개했다. 이 회사는 웹 스크래핑, 위성 이미지, 라이선스가 된 2차 검증 데이터 등을 모아 200개 이상의 ESG 하위 지표들을 제공 및 평가한다.

COP29에서 기후 변화 대처에 기여한 기술 솔루션으로 수상한 에버컴Evercomm 은 2013년 설립된 싱가포르 에너지 스타트업으로, 탄소 배출량을 추적, 측정, 분석하고 관련 데이터를 다양한 곳에서 수집해 통합하거나 비교하는 탄소 회계 플랫폼을 개발했다. 2017년 설립된 퍼뮤터블 AIPermutable AI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다양한 정보를 수집 및 집계해 ESG 위험 분석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최근 뉴스에 언급된 정보들을 한데 모아 노동 분야에서의 기업 점수를 매기고 순위를 제시할 수 있다.


아마존 클라우드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PwC와 함께 ESG 데이터를 분석하는 클라우드 기반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 인력 구성, 물과 폐기물 관리, 사이버 보안을 포함한 다양한 ESG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해 전략을 세울 수 있다.

글로벌 금융 기관과 금융 데이터 관련 기업들은 ESG 투자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ESG 투자를 늘리고 있다. 디지털 관련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블랙록, JP모건, 씨티그룹 같은 미국 대형 금융 기관들은 AI를 활용해 ESG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 적극적이다.


이를테면 블랙록의 AI 기반 플랫폼인 알라딘이 전통적 재무지표만이 아니라 ESG 위험과 기회도 평가하며,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데이터 처리와 분석을 자동화하고 있다. BNP파리바는 20년 이상 금융 사업 전반에 걸쳐 ESG를 적용했고, 2023년에도 40개 이상의 ESG 이니셔티브를 진행했다. 세계 최고의 재보험사 중 하나인 스위스리는 2023년 12월에 홍수 모델과 물 위험 관리 정보 처리 분야에서 역량을 갖춘 패덤Fathom을 인수해 재보험 솔루션 강화 계획을 밝혔다. 스위스리는 일찍부터 기후 변화로 인한 보험 손실을 연구해 왔는데 2023년에 과거 10년 평균에 비해 30%나 증가한 120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하면서 홍수 재난 분야 강화의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금융 기관들의 ESG 투자 확대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확산에 따라 ESG 데이터 제공 분야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2023년 11월에는 미국과 영국의 증권거래소가 ESG 데이터를 탐색,활용하는 플랫폼을 출시했다. 나스닥은 ESG 데이터를 인공지능 기반 SaaS로 제공하는 플랫폼인 나스닥 지속가능한 렌즈를 출시했다. 이 플랫폼은 회사가 제공하는 9000개 이상의 지속가능성 문서를 요약하고 질문에 답하며, 동종 업종이나 특정 분야의 ESG 추세를 모니터링하고, 동종 업종 내 벤치마크를 제공한다.

한편 런던증권거래소는 캐나다 ESG 데이터 기업인 ESG.AI와 차세대 ESG 분석 플랫폼 출시를 위한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과거 일본 기업에는 비서구권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후진적 지배 구조와 기업 문화가 존재했다. 주요 기업들이 정부와 은행에 좌우되는 기업 집단 안에서 무분별한 다각화와 상호 출자로 세워졌다. 기업 이사회는 대표이사를 견제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사외이사는 사실상 거수기 역할에 그쳤다. 그렇다 보니 일본 기업은 외부 주주보다는 정부와 경영진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했고, 그 과정에서 기업의 이익보다는 매출과 사업 확장에 집중했다. 기업들에는 '정책보유주'라는 관행이 있었는데, 거래처와 관계 유지나 적대적 인수,합병 방어를 위해 다른 회사 주식을 보유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 그룹이 핵심 사업과 무관한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는 것과 비슷한 비효율적인 자산 운영 방식이다. 또한 전반적으로 수직적 위계 구조로 구성되어 50~60대 남성 임직원이 중심이 되고 외국인과 여성은 배제되었다.


일본의 후진적인 지배 구조와 기업문화는 핵심 지분을 소유한 법적 주체가 특정 사주 일가 대신 일본 특정 은행이라는 점을 빼면 오늘날의 한국과 거의 비슷하다. 한국 기업들이 일본 기업들을 모방하며 발전했기 때문이다.

히타치는 2008년 금융 위기 직후 구조적 변화를 택함으로써 일본 기업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히타치는 광산업에서 시작했지만 세계 최대의 D램 반도체, 가전, 디스플레이, 정보통신, 중전기를 포함한 전자 사업과 발전, 화학, 건설 기기, 조선, 철도, 방위 산업 등의 중화학 사업을 영위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히타치는 2010년까지 일본 민간 부문에서 가장 많은 인력을 고용한 회사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8 회계연도에는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경제 위기 하에서 7870억 엔의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 당시까지 일본 제조업 역사상 최대의 손실이었다. 이때 회사를 되살린 인물은 2009년 4월 CEO와 이사회 의장에 취임한 가와무라 다카시다. 그리고 그가 내세운 경영 핵심이 ESG 경영이다.


히타치는 가와무라 다카시 취임 첫 해에는 적자를 기록했지만 2012 회계연도에 역대 최대 순이익을 경신하는 등 이전보다 높은 흑자 기록을 지속했다. 그는 히타치가 흑자로 전환된 후 1년 만에 사장직에서 물러나 2013 회계연도까지 이사회 의장으로 히타치의 지배 구조를 비롯한 기업 문화 개선에 매진했다. 이후 2016년 6월까지 고문으로 일하다가 2017년에 정부의 요청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던 도쿄전력홀딩스에 취임했다. 가와무라 다카시는 오래전에 히타치를 떠났지만 히타치는 2023년에도 그의 유산에 따라 움직였다. 그의 유산이 무엇이기에 일본 ESG 경영의 롤모델로 불릴까.


히타치의 ESG 경영은 1.회사 사업을 장기 목표에 따른 핵심 사업으로 집중시켜 이익 중심의 효율적 사업 구조로 개편하고, 2.중복 상장과 순환출자 같은 내부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계열사 간 지분 구조를 제거하고, 3.실질적으로 외부 이사가 중심이 되는 이사회 중심 지배 구조를 확립하고, 4.여성과 외국인을 포함한 다양성을 추구하며, 5.자사주 매입 소각과 배당 확대 등 주주 중심의 자본 정책을 지속하는 것이다.


히타치가 핵심 분야로 설정한 분야는 친환경 에너지(철도,전력망 포함)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었다.

적자 사업뿐만이 아니라 흑자 사업도 과감하게 정리했다. 대표적인 부문이 2020년 9600억 엔에 쇼와덴코에 매각한 화학 사업이다.

울리케 새에드 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는 2020년 [일본 비즈니스 재창조]에서 "히타치의 화학 사업 매각은 일본 비즈니스 재창조의 분수령 같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히타치는 핵심 산업 강화를 위해 스웨덴과 스위스 ABB의 송,배전 사업부,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 글로벌 로직, 프랑스 탈라스의 철도 신호 사업을 인수했다. 또한 12개 계열사를 매각하고 나머지를 합병한 다음 완전 자회사화해서 히타치 하나만 상장사로 남겼다. 2010년 이후 대주주의 지분율 강화를 위해 지주 회사를 설립한 후 지주 회사와 주력 회사들의 중복 상장을 남발하면서 외부 주주의 권한을 광범위하게 침해한 한국 기업과는 대조되는 행보다.


가와무라 다카시는 당시 일본에서는 드문 사외이사를 추가하고 2012년 이후 이사회 대부분을 사외이사로 채웠다. 2023년 기준 12명의 이사 중 9명이 사외이사다. 또한 12명의 이사 중 5명이 외국인이고, 2명은 여성이다. 미국이나 유럽보다 낮을 수 있지만 일본 상장 기업의 여성 이사 비중이 평균 9.1%임을 고려하면 선방한 셈이다.

히타치는 특히 히타치 그룹과 비슷한 시기에 사업을 시작해 유사한 사업 모델을 가졌던 숙명의 라이벌인 도시바와 대조되면서 더욱 부각되었다. 도시바는 히타치와 비슷한 사업 모델을 가진 일본의 대표 기업이다. 하지만 히타치와 달리 방만한 사업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미국 원자력 발전의 핵심 기업인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하는 등 사업 확장에만 집중했고, 일본 내에서도 권위적인 기업 문화로 유명했다. 이후 일본 대지진으로 원자력 사업이 축소되고 웨스팅하우스에서 엄청난 적자가 발생하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 대규모 회계 부정을 실시하다가 발각되어 몰락의 길을 걸었다.


2012년에 시작된 2차 아베 정부는 ESG가 일본 기업에 뿌리내리도록 적극 독려했다. 아베 정부의 ESG 정책은 아베노믹스의 세 개 화살 중 세 번째 화살의 핵심이었다. 아베노믹스의 세 화살은 금융 정책을 통한 양적 완화,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 민간 투자를 활성화시키는 성장 전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난 10년간 전 세계 주요 경제 선진국들 모두 정부가 막대한 돈을 풀었음에도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민간 부문의 성장을 충분히 이끌지 못했다.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은 민간 투자를 이끌 수 있는 체질 개선이 핵심이었다.


일본 정부가 기업의 체질 개선을 위해 내세운 ESG 정책을 요약하면

1.글로벌 표준에 맞는 지배 구조 개혁

2.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 확대

3.지속가능한 개발 목표 강조


2014년 8월 경제산업성이 공표한 지속적 성장에 대한 보고서, 일명 '이토 보고서'는 앞선 투자 코드들을 뒷받침했는데,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투자자의 참여를 통해 ROE향상을 목표로 했다.

또한 2023년 3월 PBR 1배 이하 기업을 대상으로 자본 효율성 개선 방안을 요청한 데 이어서 같은 해 7월 PBR과 ROE 조건을 충족하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JPX 프라임 150인덱스를 출시했다.


2022년 7월 MSCI의 분석에 따르면 기업 지배 구조 코드 도입 전인 2014년 MSCI Japan 지수에 편입된 54개 기업에는 독립된 사외이사가 없었지만 분석 당시에는 모든 회사에 완전히 독립된 사외이사가 1명 이상 있었다. 이사회의 성별, 경험, 연령 다양성도 크게 개선되었다.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 확대도 ESG 확산의 성과다. 일본에서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이 낮은 것은 기업의 권위적이고 여성 차별적인 문화와 보육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다.

아베 정부는 2013년 일본재층전략에서 여성 노동을 성장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노동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직업을 가진 여성을 위한 보육 지원책을 확대했는데, 소비세 인상으로 얻은 재원으로 보육원 72만 명 분을 증설했다.


일본 기업이 사업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기업에 대한 적대적 M&A에 적극 나서고 정부와 사회가 이를 방조 내지 독려하는 것도 ESG 경영이 확산된 결과다. 일본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특히 유수의 존경받는 대기업이 이러한 시도를 하는 것은 더욱 드물다. 그런 측면에서 2023년 9월에 타키사와공작기계가 일본전산의 공개 매수 제안을 공식 승인한 사건은 놀라운 변화다. 일본전산은 소형 모터를 중심으로 성장한 세계적인 기업으로,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일본전산 이야기]로 널리 알려졌다.

당시 시장의 치열한 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간신히 흑자만 유지하면서 2023년 6월 말 기준 PBR이 0.45배에 그친 상황이었다. 이에 일본전산은 타키사와에게 적대적 공개 인수 합병을 수용할지 여부를 통보했다. 예전 같으면 부정적 여론의 역풍을 맞고, 정부도 어떤 식으로든 관여했을 가능성이 컸겠지만 과거와 달리 큰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2023년 크게 늘어난 일본 기업들의 주식 분할도 주주 친화적인 변화의 일환이다. 일본에 상장된 많은 기업이 100주 단위로 거래되는데 주당 1만 엔만 되어도 최소 거래 단위가 우리나라 돈 900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일본 주식의 강세는 기업의 지배 구조를 ESG 중심으로 10년 이상 꾸준히 실행한 결과다. 정부만이 아니라 기업들도 변화에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어 더욱 인상적이다.

인적 자본은 기업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지급하는 대가를 비용이 아닌 자산 관점으로 본다는 뜻이다. 회계적으로 보면 기업이 대가를 지급했다는 점에서 자산과 비용은 동일하고 해당 자산이 무형 자산일 경우 비용과 차이를 구분하기 쉽지않다. 하지만 인적 자본이라는 말에는 직원에 대한 지출을 줄이기보다 늘리는 것이 기업 가치를 증대시킬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중요한 무형의 가치 대부분이 직원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2023년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 MZ세대가 부상했다. 또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인력이 부족해졌다. 우선 베이비부머 보다 MZ세대의 수가 적기 때문에 세대 교체만으로도 노동자의 절대 숫자가 줄어든다. 또한 MZ세대는 베이비부모에 비해 노동 참여도와 노동 시간이 현저히 낮고, 베이비부머에 맞춰진 기업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아예 노동을 포기하기도 한다.

MZ세대의 사고와 마인드는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시간이 지날수록 인력 부족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기술 발전으로 인력 감축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최근 노동력 부족 현상으로 기술 발전이 더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변화가 자리 잡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업에게는 중요한 이슈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이 분리되면서 해외의 값싼 노동자가 만들던 제품을 국내에서 만들 수 있어 효과도 줄고 있다. 동시에 이민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배타적 시선이 늘어나면서 선진국 내 값싼 노동력 공급이 축소되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