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에너지 전환, 본격화되는 전기 중심 에너지로의 전환
전 세계가 디지털로 연결되며, 공장부터 주거까지 모든 것이 전기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안보와 에너지의 교차점에서 전기는 다양한 생산 방법을 갖고 있고 자급자족이 가능하여, 특히 안보에 큰 이점을 제공한다. 기후 위기 이슈도 크다. 변화의 중심에는 에어컨, 히트펌프, 철도 등의 산업이 있다.
전력망은 향후 전기 중심 에너지 전환에서 가장 큰 투자 기회를 제공할 전망이다.
전력망 병목이 심각해진 이유는 ① 지연된 투자, ② 긴 투자 기간과 대규모 투자 금액, ③ 기존 발전 대비 더 많은 전력망 투자가 필요한 신재생 에너지 확대 등이다.
투자자 관점에서는 HVDCHigh-Voltage Direct Current(초고압 직류 송전)의 성장과, 미국과 유럽 등의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전력망 시장의 확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3년 이후로 원자력 발전과 BESSBattery Energy Storage System(배터리 에너지 저장 시스템)이 전력망과 함께 전기 중심 에너지 전환 측면에서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특히 미국 원자력 정책은 안보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차세대 원자력 발전 개발을 표명하고 적극적으로 동유럽에 진출하는 것은 과거 유럽에서 사용되었던 러시아 천연가스를 미국 LNG로 대체했던 것과 비슷한 시도다. 이런 관점에서 2022년 러시아와 함께 이집트 원전에 참여했던 한국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 있다.
다만 투자 관점에서 원자력 발전은 오랜 기간이 소요되며 고금리 시기에는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BESS는 신재생 에너지의 성장과 맞물려 빠르게 성장하는데, 2020년 이후 BESS 기술 발달이 뒷받침되었다. 글로벌 BESS 시장에서는 상위 업체들의 과점화가 상당 부분 진행되었고, 배터리와는 차별화된 분야로 자리 잡았다.
가상 발전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앞세운 분산형 발전의 첨병
중요 개념은 ‘이기종의 다양한 분산 에너지 자원’과 ‘디지털’이다. 가상 발전소 운영 기업만이 아니라 관련 솔루션 분야도 유망하다. 다수의 전기 중심 에너지 전환 대기업 외에도 많은 스타트업이 경쟁 중이다.
분산형 발전이 주거용 건물에서 상업용 건물까지 확산되면서 분산형 전기 생태계 구축의 후반부에는 스마트 건축이 활성화될 것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고 명명한 4차 산업혁명이 2차와 3차와 달리 1차 산업혁명에 비견될 큰 변화인 이유는 기술과 산업의 변화만이 아니라 주력 에너지가 바뀌기 때문이다. 1차 산업혁명이 중요한 것은 사람과 가축의 힘에 의존하던 에너지가 화석연료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스마트카로 바뀐다. 육상 운송에서 전기 혹은 전기를 저장하고 운송할 수 있는 수소로 가동되는 철도와 전철, 그리고 화물차와 로봇으로의 전환이 일어난다. 항공기와 선박의 상당수도 전기로 가동되거나 수소 혹은 수소가 변형된 암모니아로 동력원이 변한다.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나 업무용 사무실도 전기를 주요 에너지로 사용하는 스마트 공장·빌딩으로 전환된다. 이는 온실가스 배출 규제 강화와 함께 친환경 전력 사용의 증가를 가져온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철강 등 금속 소재도 그린 수소를 활용한 제품이 대세로 자리 잡는다. 기업과 가정의 냉난방 시스템에서도 화석연료 대신 전기를 사용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에너지 절감 솔루션이 확산된다. 생활에서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제품 사용이 늘고, 이들을 구동하는 데 필요한 전기 사용도 는다. 전 세계는 인공위성과 통신망으로 연결되며, 네트워크와 인공지능이 전력 사용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어 준다. 당연히 전기 비중이 점점 더 커진다. 석유화학 산업도 나노 단위를 조작할 수 있는 신소재를 개발·가공하는 능력이 발달하고, 환경 이슈로 규제가 확대되면서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화석연료 사용 과정에서 발생한 온실가스를 파악하고 탄소를 포집하는 데도 전기에 기반한 인공지능과 네트워크가 사용된다. 주요 선진국들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고,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전기로 작동하는 로봇과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하여 필요한 시간과 장소에서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는 경제 모델을 촉진한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었으며, 장기적으로는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화석연료 비중이 크게 줄 것이다.
전기가 사용되는 많은 제품의 성능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의해 좌우된다. 이를테면 테슬라는 인공지능과 통신망을 이용한 OTA 서비스로 판매 이후에도 연비와 성능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전기차의 연비와 충전 성능은 전력 반도체의 성능에 크게 좌우된다.
2023년에는 Chat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가속화된 것과 함께 전기 중심 에너지로의 전환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2023년 하반기에 미국과 한국 증시에서 인공지능 관련 주가 강세를 보였던 한편 에너지 전환 관련 주들도 연일 강세를 기록했다. 에너지 전환에는 사회 시스템의 전반적인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기에 5-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결론적으로 2023년 주식 시장의 반응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간 이어질 새로운 변화의 시작으로, 2024년에 더 확산될 것이다.
전기 중심 에너지로의 변환은 국가마다 속도가 다르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구 경제권은 꽤 빠르게 진행 중이고, 일부 개발도상국은 에너지 인프라 구축 단계에서 전기 중심의 에너지 시스템으로 곧장 넘어가고 있다.
반면 전기 중심 에너지로의 변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마치지 못한 일부 선진국은 오히려 속도가 더디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기존 시스템에 의존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반발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신재생 에너지 비중이 많이 낮고, 클라우드 중심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뒤처져 있다. 반대로 전체 경제에서 화석연료 중심의 제조업 비중이 매우 크다.
전기 중심 에너지 전환에 중요한 신재생 에너지의 비중을 보자. 미국(16.5%)과 유럽(20.8%) 같은 서구 선진국들은 이미 전 세계 평균(14.6%)보다 높다. 유럽에서 영향력이 큰 독일과 영국은 40%에 가깝다.
반면 수출 위주의 경제 정책을 취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데, 그중에서도 한국과 대만이 유독 낮다.
중국의 신재생 에너지 비중이 15.5%로, 경쟁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평균보다도 높다는 건 인상적이다. 한편 온실가스 배출 억제에 집중해 원자력과 수력을 더한 비화석연료 비중으로 보면 원자력 비중이 유독 높은 프랑스는 무려 87.8%에 달한다. 원자력 비중이 높은 한국은 원자력을 더해도 전 세계 평균을 하회한다.
미국과 유럽이 이미 높은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달성했고 여러 나라가 이 흐름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신재생 에너지와 전기를 기반으로 한 표준 구축과 시스템 전환이 생각보다 빨라질 수도 있다.
탄소세 규제는 중국, 일본, 인도, 중동, 동남아시아 등에서도 지지받고 있다. 이들 국가들에서도 전기 생산에서의 비화석연료 비중이 꽤 올라왔기 때문에 그동안 비중이 낮았던 원자력만 높이면 미국과 유럽에 충분히 대응 가능한 정도다.
전기 중심 에너지 전환에 대한 대중의 인식 확산은 미국과 유럽의 친환경 단체들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도덕적·정치적 이슈로 신재생 에너지를 강조했는데 현실적인 어려움과 국제적 갈등으로 완전한 전기 중심 세상이라는 목표 도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친환경 전기 에너지라는 대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전기 중심 에너지 전환에 대한 대중의 인식 확산은 미국과 유럽의 친환경 단체들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도덕적·정치적 이슈로 신재생 에너지를 강조했는데 현실적인 어려움과 국제적 갈등으로 완전한 전기 중심 세상이라는 목표 도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친환경 전기 에너지라는 대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높아진 에너지 가격으로 타격이 컸기 때문에 전환에 더 속도를 내는 한편으로 그동안 간과했던 전력망과 원자력 분야를 보강했다. 그리고 높아진 에너지 가격으로 큰돈을 번 유틸리티 기업들이 2023년부터 전기 중심 인프라에 적극 투자하면서 전기 중심 전환에 앞장서고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오히려 유럽의 전기 중심 에너지로의 전환을 앞당겼다고 볼 수 있다.
바이든 정부는 전기 중심 에너지 전환을 적극 추진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외에도 2023년 하반기에 발표한 전력망과 수소 등에 대한 투자 프로젝트, 그리고 미국 청정 에너지 기술 상용화를 위한 장기적인 국가 계획(「상업적 이륙을 위한 경로Pathways To Commercial Liftoff」 보고서)이 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이런 정책들이 소멸되는 게 아닌지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장기적 전략은 정권에 상관없이 일관성이 있고, 그 수혜가 트럼프가 속한 공화당이 강세인 미국 남부를 포함한 지역에 집중되었다는 점에서 우려할 바가 아니다.
국제적 움직임에서도 전기 에너지 비중 확대가 이어질 전망이다. 2020년 10월 공개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자료에 따르면 최종 에너지 총 소비량에서 전기 비중은 2020년 20%에서 2040년에는 24-31%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 지속가능한 개발 시나리오를 가정한 전기 비중이 31%에 이를 경우, 2020년 석유 소비량의 절반도 안 되는 전기 소비량은 석유 사용량을 상회하게 된다. 또한 전력 비중이 가장 더디게 증가하는 시나리오에서도 2040년 전력 수요는 2020년 전력 수요보다 약 50% 증가한다.
전력 수요 확대를 뒷받침할 전력 인프라 분야는 향후 10년 이상 크게 성장할 것이다.
전기 중심 에너지 전환이 필요한 이유
(1) 전기 먹는 하마 클라우드
사회 전반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확산된다는 것은 전기 중심 에너지 전환이 빨라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LLM 기반의 인공지능은 전기라는 에너지 형태를 편식할 뿐만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 전기 소모량도 막대하다. 이것의 성능은 구조가 아닌 규모에 의존하고, 규모는 파라미터 수와 데이터 크기, 그리고 연산 횟수에 좌우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2년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암호 화폐 채굴 제외)은 약 240-340TWh인데, 이는 전체 전력 수요의 1-1.3%다. 1TWh는 1TW(테라와트) 전력을 1시간 동안 공급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1TW는 1,000GW인 동시에 100만MW다. 참고로 국내 원전 1호기가 보통 1,000-1,400MW, 즉 1-1.4GW이고, 1GW는 2021년 기준 국내 약 423만 가구의 한 달 전력 사용량과 맞먹는다.
GPT-3을 훈련하는 데는 1,287MWh, 즉 약 1.3GWh의 전력이 필요하다. 그보다 상위 버전인 ChatGPT를 훈련하는 데는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해 그보다 큰 인공지능을 개발 중에 있다. 그런데 훈련된 인공지능을 적용하는 추론 단계에서는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구글이 2021년에 사용한 총 전력 소비량(18.3TWh) 중 인공지능은 10-15%지만, 2027년이 되면 최대 29.3TWh로 전망된다. 29.3TWh는 아일랜드 연간 전력 사용량과 비슷하다. 메타와 구글의 데이터에 따르면, 머신러닝 전체 전력 사용량에서 훈련 단계에서는 20-40%가 사용되는 반면에 인공지능 모델 적용에는 60-70%가 사용된다.
클라우드의 전력 사용에 대한 우려가 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3년 11월에 발간한 자료에서 전 세계 데이터센터 작업 부하가 2010-2020년에 9배나 증가한 반면 전력 사용량은 10% 증가에 그쳤다고 했다. 구글은 2022년 7월에 과학 분야 미출판 연구를 공개하는 플랫폼인 테크알지브TechRxiv에서 모범 사례를 통해 머신러닝 훈련에 필요한 에너지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대 100배까지 줄일 수 있어 기계 학습의 에너지 소비가 곧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인공지능 개발에 많이 사용되는 GPU는 다른 유형의 반도체보다 에너지 효율적이고, 엔비디아 GPU을 대체하고자 개발 중인 반도체 상당수는 저전력에서 가동되는 반도체를 지향한다. 미스트랄 7BMistral 7B와 메타의 라마Llama 같은 인공지능 모델은 오픈AI의 GPT4보다 최대 100배 적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런 의견의 상당수가 클라우드와 인공지능을 주도하는 측에서 나오고 있으며, 주장의 출처들이 2023년 ChatGPT 출시 이후 치열해진 인공지능 개발 열기를 충분히 반영했는지에 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2) 전기차 확산은 피할 수 없는 미래
전기차가 빠르게 확산되면 그에 따른 인프라 구축도 빨라져 전기 중심 에너지 시스템이 확고하게 자리 잡을 것이다.
한편 충전 인프라는 일반 주거 지역의 전력망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기차는 집에서 충전하는 비중이 높다. 주거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어떤 전자제품보다도 많은 전기를 고압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전력망을 새로 깔아야 한다. 이때 테슬라처럼 태양광 같은 신재생 에너지로 발전한 전기로 충전하거나 남는 전기를 가정용 ESS와 차량용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친환경 전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팔 수도 있다. 전기차 판매 증가로 수많은 가정이 신재생 발전에 투자해 분산형 전원과 가상 발전소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셈이다
(3) 전 세계 공장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전 세계 공장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생산 분야에서 전기 중심 에너지 전환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된 공장은
① 공장 전체에 다양한 센서가 장착되어 실시간으로 정보를 취합하고,
② 그렇게 취합한 정보들을 보내거나 혹은 분석한 정보를 개별 기기로 전달하기 위한 전용 고속 통신망을 구축하고, ③ 기존 공작 기기만이 아니라 AGV와 AMR을 포함한 다양한 협동 로봇을 작동하고,
④ 집계된 여러 데이터를 분석하고 디지털 트윈을 구축하는 등 공장 전체를 제어 및 컨트롤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 및 적용하고,
⑤ 이렇게 구축된 각종 전자 기기들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냉난방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 필요한 센서, 전용 고속 통신망, 로봇, 공장 제어 및 컨트롤 솔루션, 냉난방 시스템 모두 전기로 작동된다. 과거 공장에서는 냉방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수많은 전자 기기가 작동하는 스마트 공장에서는 데이터센터나 사무실처럼 효과적인 냉방이 필수다.
이 과정에서 산업 자동화와 산업용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전력 관리 솔루션, B2B 냉난방이 하나로 통합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실제로 글로벌 선두 기업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전력 관리 솔루션에 강점을 가진 슈나이터 일렉트릭Schneider Electric이 산업 자동화에 강점을 가진 록크웰 오토모티브나 ABB와 경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공통적으로 디지털과 자동화를 내세우는 기업이다.
공장이 위치한 공단들도 이전보다 더 많은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전력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효과적인 전력망을 구비한 공단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일이 잦아질 수 있다. 미국과 유럽만이 아니라 자국 내 제조업 육성에 적극적인 베트남, 인도, 헝가리, 폴란드 등은 2023년 전력 투자에 적극적이었다. 한국도 2019년 2월 스마트 산단 선도단지 2곳(창원, 반월·시화)을 선정해 스마트 그린 산업단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4)스마트 빌딩
스마트 빌딩은 HVAC(Heating[난방], Ventilation[환기], Air Conditioning[공조]), 조명, 경보, 보안 등 건물 전체의 다양한 시스템을 IT에 기반한 하나의 네트워크 인프라로 통합하는 것을 뜻한다.
한국에서는 네옴시티 내 일부 프로젝트인 더 라인만 언급하면서 그 의미를 과소평가하지만, 네옴시티는 디지털과 친환경 전기 중심 미래형 도시의 전형으로 회자될 것이다.
(5)국방과 우주항공
디지털과 네트워크가 결합된 분야는 필연적으로 전기 사용이 늘어난다. 최신 전투기와 미사일에도 항공 전자 장비와 레이저, 그리고 인공지능 비중이 늘고 있는데, 여기에도 역시 막대한 전기가 필요하다.
우주 통신이 대중화되면 전 지구적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구현되면서 전기 중심 에너지 전환이 더 빨라질 것이다. 실시간 데이터 수집과 전송이 보다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더 많은 기기가 센서와 통신 장비를 갖추고, 전기 사용량이 크게 늘 것이다. 전기차는 자율주행이 보다 편리해질 것이며, 전 세계 공장과 이동 중인 원자재와 제품은 실시간으로 상황을 전하고, 변화되는 뉴스에 따라 의사 결정이 바뀔 것이다. 이전보다 더 많은 제품이나 장소에 센서와 통신 관련 기기가 추가된다는 의미다. 그 결과 센서와 통신 기기의 가동을 지원하는 전력 시스템이 보다 광범위하게 확산될 것이다.
(6)에너지 안보 면에서의 이점
과거 수십 년과 달리 최근 수년 사이 미국 주도의 세계화가 약화되고 지정학적 갈등이 깊어지면서 국가 생존에 필수인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전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할 수 있어 화석연료보다 에너지 안보에 유리하다.
신재생 에너지의 문제점은 그린 수소의 발전과 우방 지역과의 전력망 연결을 통해 일정 부분 극복할 수 있다. 원자력 발전은 적은 연료로 장기간 대량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어 화석연료 대비 안보적 불안 이슈 대응에 유리하다.
중국도 서방 국가들 이상으로 에너지 안보에 집중한다. 특히 시진핑 집권 이후 에너지 안보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의 일대일로 정책에는 유사시 미국의 석유 봉쇄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루트를 찾는다는 목적도 있다.
중국이 전체 에너지에서 태양광 발전을 포함한 신재생 에너지와 석탄 비중을 동시에 늘리는 것은 온실가스 배출 관점에서만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다. 하지만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바라보면 둘 다 자국 내 비중을 높이는, 비슷한 행보라 할 수 있다.
미국이 태양광과 전기차에 필요한 다양한 광물과 부품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추진하고, 자국 내 리튬 광산을 개발하고, 동맹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한 것도 중국을 배제하려는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의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원자력 발전과 신재생 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전기 중심 에너지 전환은 대통령 교체와 상관없이 큰 틀에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안보 이슈에 민감한 보수 성향으로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전기 중심 에너지로의 전환이 무산되거나 방향을 잃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에너지 안보 관점에서 투자가 늘어날 수 있다. 전기로의 에너지 전환은 장기간의 대규모 투자가 필수인데, 이를 위해서는 안보 측면에 투자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보수 정치권에서 더욱 적극적이다.
(7) 기후 위기 (히트펌프, 철도와 동행)
미국과 유럽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가 크게 늘면서 여기 대응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었다. 여전히 정치적 성향에 따른 관점 차이가 존재하나 공감대는 확실히 커졌다.
2023년에 미국 주택보험 시장은 기후 위기로 큰 타격을 입었다.
신용평가 기관 AB Best에 따르면 미국의 주택보험 산업은 3년 연속 보험 인수 부문에서 손실을 기록했다.
보험 회사들이 강경하게 나오는 것은 기후 위기로 인한 문제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어서다. 2020년에 루이지애나가 허리케인 ‘로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데 이어, 2022년에는 플로리다가 허리케인 ‘이안Ian’으로 주 GDP의 7.5-10%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은 2023년 10월 10일까지 미국에서 10억 달러 이상의 피해가 난 기상 및 기후 재난만 24건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1980년부터 2022년까지 연간 평균 8건과 2022년까지 최근 5년간 연평균 18건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미국 주택보험 시장이 붕괴되면 부동산 관련 대출을 포함한 금융 시장도 타격을 받는다. 2015년 1월 초부터 2023년 3월 말까지 미국 주택보험료는 평균 21% 상승한 데 반해 기후 위기가 집중된 텍사스와 콜로라도는 약 40%, 플로리다는 57% 상승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주택보험을 받지 못하면 기후 피해 발생 시 구제받지 못함은 물론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다. 해당 주정부가 기후 위기가 커지는 상황에서 주택보험료를 낮게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유럽도 만만치 않다. 2023년 봄에 가뭄으로 고생했는데, 스페인은 물 부족으로 올리브 작물이 피해를 보면서 공급량이 절반으로 줄어 올리브 가격이 급등했다. 독일은 라인강 수위가 낮아져 해상 운송이 타격을 봤고,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물이 부족해 원자력 발전을 축소했다.
이 기간에 폭염으로 인한 산불이 크게 늘었다. 특히 스페인과 그리스가 많은 피해를 봤다.
유럽 고급 부동산 시장이 기후 변화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유럽 고급 부동산을 중개하는 루카스 폭스Lucas Fox 관계자는 고객들이 스페인 대신 영국, 독일, 러시아 등 북유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2023년 말에 집계된 바이든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근거로 내세워 미국 내에서 기후 정책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평가하지만 미국의 기후 정책과 바이든 대통령의 기후 정책 지지에는 차이가 있다. 2023년 6월 28일에 공개된 퓨리서치의 설문 결과에도 잘 나타난다. 이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기후 정책에 대한 긍정 평가가 45%로, 부정 평가인 50%를 하회했지만 기후 변화 정책 자체에 대한 긍정은 높았다. 석유와 가스 회사 유정油井에서 메탄가스 누출을 봉쇄하는 데 85%, 탄소 배출량에 따라 기업에 과세하는 데 70%, 2040년 까지 발전소에서 일체의 탄소 배출을 제거하는 데 61%의 설문 참여자가 지지를 보냈다. 또한 미국이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에 참여하는 데는 74%가 지지했는데, 공화당원들도 지지 의견이 54%로, 반대(44%)보다 많았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산업의 중심에는 전기 중심 에너지 전환 관련 산업이 있다 예를 들어 전기를 사용하는 냉난방 기기인 에어컨과 히트펌프와 화석연료 중심의 육상 운송 체계를 바꿀 전기차와 철도를 꼽을 수 있다.
히트펌프는 에어컨과 비슷한 냉매의 발열과 응축열을 이용해 냉난방이 동시에 가능한 기기인데 최근 판매가 크게 늘었다.
2022년에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2023년에는 기대보다 덜 팔렸는데, 유럽의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부진과 2022년 일부 수요 잠식, 그리고 이탈리아 등에서 국가 정책이 축소된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히트펌프 보급이 더뎠던 영국이 2023년 10월 보조금을 5,000파운드에서 7,500 파운드로 인상하는 정책을 발표하는 등 정책 기조는 여전해 전망은 밝다.
히트펌프가 천연가스보일러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 50%까지 줄여 준다는 명분 때문이다.
전 세계 철도 투자를 주도한 것은 중국과 인도 같은 이머징 국가들이었다. 특히 중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고속 철도를 운영하는 나라로, 최고 속도의 고속 철도를 보유하고 있고 기술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다 미국과 유럽에서 몇 년 사이 철도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 투자를 늘리는 조짐이 있다.
철도는 현재 사용되는 이동 수단 중 가장 친환경적 수단임에도 미국과 유럽에서는 지난 30여 년간 상대적으로 투자가 부족했다. 유럽 운송에서 자동차(승용차, 밴, 트럭 포함)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72%를 차지하는 반면 철도는 고작 0.4%다. 승객이 1km 이동할 때 발생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비교해도 철로는 14g이고 도로는 100g이라는 EU 연구도 있다
1995년부터 2020년 사이 유럽 고속도로의 길이는 60% 증가한 반면 철도는 6.5% 감소했다. 또한 EU, 노르웨이, 스위스, 영국은 1995년부터 2018년까지 도로 확장에 1.5조 유로를 투자한 반면 철로 확장에는 0.93조 유로를 사용했다. 도로 확장에 철로 확장보다 66%의 비용을 더 지출한 것이다. 한편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발전된 철도 시스템을 갖췄지만 대부분 화물 철도에 초점을 맞춰 여객 철도 투자는 미미했다. 중국, 일본, 유럽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속 철도 발달도 더디다.
2020년 전후로 미국과 유럽은 도로 위주의 투자를 반성하면서 철도 투자를 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