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은 대부분이 예정 조화적으로 보이는 일상의 연속이지만 역사는 비일상의 연속이다. 물론 역사에도 일상적인 모습이 있지만 거의 기록되지 않는다. 가끔 일어나는 비일상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역
사의 뼈대를 만든다.
그런 역사 속에서 난세를 평정하고 대제국을 세운 인물은 영웅이라 불리며, 탁월한 능력을 지녔고 '떡잎' 시절부터 남달랐다고 칭송받는다. 한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역사에 기록되지도 못한 채 비참
한 말로를 걷는 사람도 있다. 대영웅과 무명의 패자는 종류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진 제국 말기에 교양 없고 행실 나쁘고 이렇다 할 재능도 없고 해놓은 것이 전혀 없는 사내가 있었다. 그렇게 하릴없이 나이만 먹어가던 그는 결국 법을 어기고 인적 없는 산중에서 살아가게 되었고, 그러다가 길에서 죽을 팔자라고 생각했다. 보통 그런 인물은 잊히기 마련인데 오직 그만이 역사에 남았다. 그의 이름은 유방이고 불과 몇 년 후에 한 고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무명의 유랑민에서 느닷없이 대영웅이 된 것은 그 자신이 굳게 참고 견디며 노력을 거듭했기 때문이 아니다. 우연히 진승,오광의 난이 일어나 세상을 뒤흔든 것이 계기가 되었다.
유방이 변신하는 계기가 된 진승의 삶은 더욱 극적이다. 진승은 본디 가난한 데다가 게으른 농민이었다. 어느 날 장차 훌륭해져 부자가 될 일을 몽상하며 시시덕거리고 있자, 주인이 "진승아, 너처럼 궁핍하고 일도 제대로 못하는 인간이 어찌 출세할 수 있겠느냐. 쓸데없는 꿈을 꾸는 게 아니다." 하며 비웃었다.
그런 진승이 어느 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친구인 오광과 함께 조그만 반란을 일으켰다.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상황이 그렇게 돌아갔을 뿐이다. 그런데 진의 압정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세력이 커졌고, 진승은 하루아침에 대지를 뒤흔드는 대반란군의 수령이 되었다. 혜성처럼 나타나 백성이 구세주로 따르고 대영웅으로 숭배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윽고 장초라는 나라를 세워 왕이 되었고, 예전에 그의 주인이 비웃던 꿈과는 비교가 안 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뒤 진의 명장 장한에게 패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게으름뱅이 농민, 일대의 영웅, 비참한 패배자, 이 생판 다른 세 가지 인생이 짧은 시간 동안에 진승이라는 남자에게 구현되었다. 이 모든 것이 우연에서 비롯되었다. 시대가 영웅으로 만들었다가 나락으로 떨어뜨렸다고 할 수도 있는데, 진승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라는 함축적인 말을 남겼다.
월드컵은 최강팀이 우승을 놓친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확률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결과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현재의 결승 토너먼트 방식을 전제로 하면, 월드컵에서는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한 뒤 4회 연속 이겨야만 우승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상대라도 70%확률로 이길 수 있는 우승후보 팀이 있다고 하자.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한 팀은 죄다 강호이기 때문에 70% 확률은 꽤 높은 수치다. 리그전으로 우승을 다투는 프로야구에서는 승률 70%라면 희희낙락하며 우승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강력한 팀이 월드컵에서 우승할 확률은 70%의 4제곱인 24%밖에 안 된다.
스포츠 세계에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 그 결과와 실력이 전혀 관계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실력이 반드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토너먼트 모형에서 실력은 확률로 나타나게 된다. 실력이 훌륭한 팀이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기에 당연한 일이다. 요컨대 실력은 확률이라는 필터를 통해서만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과를 안 뒤 승자의 승인 또는 패자의 패인을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 그런 결과론에서는 우연히 담당한 역할이 무시되고, 승자는 이길 만해서 이겼고, 패자는 질 만해서 진 것이 된다.
경제학자 프랭크 나이트는 불확실성을 좀 더 엄격하게 정의한다. 무엇이 일어날지 불확실하지만 확률을 추정할 수 없는 것을 '리스크'라고 부르고, 확률조차 추정할 수 없는 것을 '협의의 불확실성'이라고 한다.
사람은 우연을 필연으로 착각한다. 우연으로 이루어진 일상이 운명에 의해 정해졌다고 느끼고, 주가 예측을 믿고, 영웅과 평범한 사람이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승자가 최강이라고 생각한다.
현생인류의 두뇌 구조를 갖추게 된 기나긴 원시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연을 필연으로 간주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모든 것을 원인과 결과로 생각하는 사고법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우연을 필연으로 생각하고 세상을 원인과 결과로 파악하는 것은 원시 시대에 살아가기 위해 필요했고, 그것은 충분히 합리적이며 진화를 위한 능력이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사람의 생활 중 대부분은 확률을 계산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그편이 세상을 순조롭게 살아갈 수 있다. 단, 원시 시대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주식시장, 기업 경영, 전쟁, 국가 운영과 같이 매우 복잡하고 우연히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들이 확대된 것이다. 이런 복잡한 일은 확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우리는 15만 년 전의 두뇌로 대처해야 한다.
어떤 요인으로 우연을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 요컨대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 마음가짐이 우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강력하게 뿌리박혀 있다.
인간이 심리적으로 파악하는 확률은 왜 어긋나는가? 이는 심리학과 경제학을 융합해 행동경제학이라는 새 분야를 개척한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분명하게 밝혔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얼마 안되는 확률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기 쉽다. 이것이 100%에 가까운 확률로 빗나가게 마련인, 당첨될 리가 희소한 복권을 사는 까닭이다. 물론 이 연구 결과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금융위기가 좋은 사례인데, 사람은 주가 폭락이나 대기업 파산 등 이상 사태가 일어나는 확률을 과소평가한다. '100년에 한 번'이라고 주워섬기지만 주가 대폭락이나 대기업 파산 등은 실은 자주 일어난다.
사람은 확률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확률의 개념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우연은 사실 우연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결과를 모를 뿐이라는 생각, 마음가짐으로 확률이 변한다는 믿음도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고방식의 연장선에 결과론이 있다.
결과론은 강력한 사고법이며 확률적 사고를 저해하는 최대의 장벽이다. 결과가 전부라는 생각은 어떤 반론도 허락하지 않는 힘을 가진다. 결과를 내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결과를 내지 못하면 어떤 반론도 허용되지 않는다.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그의 저서 <설득의 심리학>에서 극단적인 이원론에 의한 과잉 반응에 관한 사례를 보여준다. 악천후가 이어진다고 비난받고 때로는 협박까지 받는 일기 예보관과 승리 소식을 전할 대는 성대하게 환영받고 패전을 보고할 때는 죽임을 당하는 고대 페르시아의 사자 이야기다. 날씨가 좋고 나쁨과 일기 예보관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고, 싸움의 승패와 그것을 전하는 사자의 관계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를 연결해 생각한다.
인간은 15만 년 전부터 진화하고 있지 않다. 지식의 양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사고 회로, 특히 심리적 구조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역사가 되풀이된다. 실제로는 불확실성의 효과가 작용하기에 완전히 같은 일을 반복하지는 않는다. 그때그때 우연이 더해지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하지만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는 경우가 놀라울 정도로 많다. 역사는 장대한 실험장일고 말할 수 있다. 간혹 극히 예외적으로 특수한 사례도 있지만 수많은 사례를 살펴보면 공통점이 나오고 어슴푸레하게 법칙을 찾아낼 수가 있다.
오케하자마의 승리가 우연에 의한 것임을 안 사람이 당시 단 한사람 존재했다. 노부나가 자신이다. 이 싸움 이후 노부나가는 위험을 무릅쓰고 기습하는 오케하자마 방식을 두 번 다시 시도하지 않았다.
모름지기 성공한 사람은 성공 경험에 도취되게 마련이다. 한 번 성공했으니 그것을 재현하는 일도 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노부나가는 성공의 덫에 빠지지 않고 조금이라도 위험한 싸움은 적극적으로 피했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남다른 면이며 그가 진정 강한 이유였다.
명장은 승률이 높은 싸움만 한다.
아무리 거침없이 연전연승을 하더라도 단 한 번의 패전으로 죽어버리면 말짱 도루묵이다. 노부나가는 결코 무리하지 않았다.
노부나가는 천하통일의 경쟁자였던 강대한 세력가나 난다 긴다 하는 명장과는 직접 대결한 적이 거의 없다.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같은 명장은 철저하게, 때로는 체면이고 뭐고 다 팽개친 채 줄기차게 피했다.
되도록 결전은 피한다. 하지만 맞붙을 때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임한다. 이것이 노부나가나 사우는 방식이다.
만전에 만전을 기한 후 드디어 결전에 임했다.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한다. 강한 상대와의 싸움은 피한다. 이 방식은 실은 수많은 명장에게 공통된 점이다. 다케다 신겐도 불세출의 명장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 전에는 대부분 아주 약한 상대와 싸웠을 뿐이다.
간토를 제패한 호조 우지야스도 우에스기 겐신이나 다케다 신겐과 패권을 다투면서도 맞대결은 철저하게 피했다.
불확실한 일을 회피하고 확실한 일을 하나하나 해나가면서 거대한 실적을 쌓았다는 점에서 우지야스는 그야말로 확률적 명장의 대표 격이다.
이런 사례를 살펴보면 아무래도 명장은 강한 상대를 피하고 약한 상대와 대결해 승리를 쌓아가는 것 같다. 우연이 초래하는 부정적 영향을 피하는 방식이 따로 없는 것이다.
물론 천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어느 세계에도 진정한 천재는 있다. 천하의 이치로라도 세 번에 한 번밖에 안타를 치지 못하듯 어떤 천재도 확률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그래도 네 번에 한 번꼴로 안타를 치는 선수와는 확실성이 전혀 다르다. 천재성 또한 불확실성을 줄이는 커다란 요수 중 하나인 듯 보인다.
노부나가의 방식은 병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천재적인 재능이 필요 없다. 물론 그런 방식을 만들어낸 노부나가는 천재라는 말을 들을 가치가 충분하다. 단, 미래를 정확하게 맞히거나 천 리 밖의 일을 꿰뚫어 본다는 의미에서 천재가 아니라, 보통 사람도 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방법이나 구조를 창출했다는 의미에서 천재다.
히데요시도 노부나가와 겐신과는 다른 의미에서 천재적인 인물인데, 유독 전쟁터에서는 그다지 천재성을 발휘하지 않았고 오히려 천재성에 의존하지 않는 싸움 방식을 즐겼다. 그것이 히데요시가 패권을 유지한 비결이다.
우리는 역사를 안다. 그래서 노부나가의 기습이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점을 알고 무엇보다도 싸움의 결과를 안다. 불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듯한 착각조차 든다.
하지만 당시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다.
자욱이 낀 전장의 안개 속에서 전력을 다한 뒤 마지막 우연의 힘을 빌려 승리를 거머쥔 결과 한층 확실하고 불확실성이 적은 승리 방식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명장의 사고법이다. 반대로 범용한 장수는 안개 속에서 저돌적으로 싸운 끝에 우연히 손에 넣은 승리를 자신의 힘으로 쟁취한 것으로 착각하며, 그 뒤로 짙은 안개 속에서 싸우고 또 싸우다가 언젠가는 패망하는 날을 맞는다.
하지만 전장의 안개를 희미하게 만들었던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패권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이유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권력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는 남다른 정신력을 지녔고 한두번의 성공 경험에 우쭐해지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천하를 손에 넣자 돌변했다. 자신을 절대시하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존재를 허락하지 않았다.
천하를 두고 다툰 세키가하라 전투 자체도 결과적으로 이에야스가 승리했지만 꽤 위험한 전투 방식이었다. 이에야스는 성격이 견실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공성전을 싫어하고 결전 방식을 즐겼다. 물론 그에 따르는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모략과 외교를 구사했다. 그래도 치고 들어갈 빈틈이 생겨났다. 다만 서군이 그것을 능숙하게 활용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평범한 이에야스가 노부나가도 히데요시도 달성하지 못한 위업을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이에야스에게는 노부나가나 히데요시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화가 남아있다. 강대한 다케다 신겐에게 무모하게 도전했다가 패배라는 쓴잔을 마신 미카타가하라 전투 후 그는 초췌하고 망연자실한 자신의 모습을 화가에게 그리게 했다.
이에야스는 틈나는 대로 그 그림을 바라보면서 교만함을 경계하지 않았을까
이에야스는 자신을 절대시 하는 일이 없었다. 자신을 천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터이며, 독선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경우도 없었다.
속이 검은 너구리라는 인상은 있지만, 그것은 재기가 부족해 모략이나 외교 방식이 매그럽지 못했기 때문이며, 단순한 음모가가 아니라 오히려 성실한 실무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에야스의 성격은 천하를 얻은 뒤에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천재도 카리스마적인 존재도 아니었고 자신의 한계를 숙지했기에 그는 권력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마침내 항구적인 패권을 안았다.
유방은 관대하고 덕이 높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실제로는 품위 없고 교만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상대가 누구든 의견을 내는 사람 앞에서는 몸가짐을 바로 하고 귀를 기울였으며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하면 주저없이 채택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적에 대한 칭찬은 물론 자신에 대한 비판도 모두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유방은 단 한 번도 스스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적이 없고 초인적인 활약을 펼친 적도 없다. 항우와의 싸움에서 이긴 적조차 없다. 개인으로서는 항우에게 훨씬 못 미친다. 하지만 유방이 쌓아올린 장대한 시행착오의 구조는 항우가 구축한 구조, 즉 한 사람의 천재에 의존하는 조직을 모든 면에서 능가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번영한 국가는 고대 로마일 것이다.
고대 로마는 민주주의의 산물이다.
집정관은 막대한 권한을 가졌지만 늘 2명이 선출되었고 게다가 임기가 1년이었다.
전쟁이 일어나서 집정관 두 명이 군대를 지휘하는 경우에도 하루씩 교대로 지휘권을 행사할 정도였다. 지휘관 한 명이 일관되게 지휘하는 것, 천재 한 명이 마음껏 재능을 발휘할 기회까지 포기할 정도로 교대제에 집착했다. 이런 임기제와 교대제는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즉각 수정하기 위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해 궁리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의 역사는 일정한 패턴이 되풀이된다. 우선 로마보다도 선진적이며 강한 상대가 나타난다. 로마는 처음에는 강대한 적에 맞섰다가 패하고 존망의 위기를 맞는다. 절망적인 위기 속에서 로마는 새로운 지도자에게 재건을 맡기고, 자국을 위기에 빠뜨린 적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드디어 힘을 갖춘 로마는 적을 타도하고 적을 로마의 일부로 삼는다. 이 과정은 시행착오의 반복이며 비약적인 진보가 없다. 미리 국가 계획을 세워두는 것도 아니다. 예상외의 사태에 직면했을 때마다 실패를 겪고 교훈을 하나씩 배우며 조금씩 강대해졌다.
->민주주의가 좀 더 많은 작은 실패를 겪게 하고 그것이 장기적인 생존과 변화 그리고 번영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면 중국같은 국가는 체제가 흔들리는 강한 충격을 받으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로마의 민주제와 시행착오로 이루어진 무계획적인 진보는 불확실한 세계에서 장기적인 성공을 거두기 위한 이상형이자 모델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미국의 강함은 로마처럼 실책을 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책을 수정하는 능력에 있다. 로마가 비로마적 요소를 하나하나 받아들였듯이 미국도 이민 국가로서 다양한 민족을 수용해왔다.
미국 또한 카리스마 경영자가 칭송받지만 실제 미국 기업사를 써온 수많은 명경영자는 카리스마형이나 독재자형관느 거리가 멀다. 한 명의 스타 CEO가 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인수 합병 등 화려한 전략을 구사하고, 때로는 과감하게 정리해고를 감행하는 방식을 미국식이라고 부르며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함부로 남의 이마에 딱지를 붙이는 격과 같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의 원동력은 어디까지나 민주적인 리더십과 시민이나 직원 한 명 한명의 힘이 결집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다양한 생각이 받아들여지기에 때로는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스스로 교정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미국의 강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