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羅生門 도적들의 소굴이기도 하고 동물과 인간의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나생문' 하인은 어느 날 비내리는 밤 그 안에서 죽은 여성의 머리카락을 뽑고 있는 노파를 보고 분노한다. '악'을 봤을 때 느끼는 분노. 그러나 노파는 이 여성도 나쁜 사람이고 자기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죽을 거라며 시체도 자기를 이해할 것이라 한다. 하인은 자신도 악을 행할 수 있다는 논리를 얻고 노파의 옷을 빼앗아 도망간다. 악의 연쇄 고리일까? 아니면 빗속에서 굶어죽기를 기다리던 수동적인 삶에서 적극적인 삶으로 바뀐 생의 고리 일까? 나생문일까? 우리는 '먹고사니즘' 을 통해 얼마나 주변에 냉혹할 수 있는가 라쇼몽은 단편집으로 그 중 <덤불 속>은 영화를 봐도 좋다. 영화 제목은 단편집의 이름과 같은 라쇼몽. 위의 내용인 라쇼몽과 덤불숲을 엮어서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의 1950년대 작품이다. 다만 영화 라쇼몽은 감독의 해석이 들어가있기 때문에 좀 더 결말이 명확
하다. 심지어 소설<라쇼몽>과 다르게 마지막에 스님이 버려진 아이를 거두며 인간에 대한 마지막 신뢰를 보여주는 장면도 나온다. <덤불 속>은 한 살인사건을 통해 살해당한 신랑,도적,신부의 증언들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도적도 신부도 심지어 죽어 귀신이 되어서 증언하는 신랑도 모두 자기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각자의 관점에서 각자의 시각으로 사실을 재구성한다. 거기에 '진실'은 있어도 '사실'은 없다. 그래서 '사실'은 '덤불'에 둘러쌓인 것처럼 희미하다.
투자자에게 선명한 것이 있을까? 선명하게 보인다면, 확실해진다면 이미 가격의 상방은 닫힌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