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골드만삭스는 엣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를 내렸습니다. "다른 전자상거래업체보다 탄력성 높아 매출 성장 예상된다" 2022년에 대다수 전자 상거래 및 오프라인 소매 업체는 과잉 재고 처리를 위해 가격 인하 및 프로모션에 따른 마진 압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공급망 문제가 해결됨과 동시에 인플레이션 압력속에서 소비자들이 지출을 상품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바꾸면서 늘어난 생산이 바로 재고 과잉으로 전환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엣시는 상품 구매자와 판매자가 직접 연결되는 플랫폼으로 광대한 상품 리스팅과 고유한 공급 및 재고 구조로 이 같은 흐름과는 달리 돌아가는 보호막이 있다고 골드만삭스의 한 분석가가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죠? 아래 그래프를 보면 바로 아시겠지만 2022년 이후 엣시는 쭉 하락하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가 2024년 초에 내놓은 리포트 또한 2년전과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엣시에 대해 중립도 아닌 하향으로 평가를 내렸기 때문이죠. 아니 잠깐만요. "엣시가 도대체 뭐죠?" 라고 묻는 구독자분들이 계실 것 같네요. 엣시는 독특하고 창의적인 핸드메이드 제품을 중개하는 글로벌 마켓플레이스 입니다. 수제품 중심으로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한다는 점에서 기존 이커머스들과의 큰 차이점이 존재하죠. 2022년 잘나가던 엣시는 750만 명 넘는 활성 판매자와 1억 명 이상의 활성 구매자를 보유 했습니다. 이 플랫폼에서 사고 팔리는 제품은 1억2000만 가지가 넘으며, 거의 모든 국가에서 엣시를 통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었죠.
낯선 곳을 여행하다보면 그곳 동네 주민들이 만든 에코백이나 팔찌, 쿠키 같은 물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죠. 그 동네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제품이기에 추억삼아 하나씩 구매하기도 하구요. 엣시는 바로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특색있는 제품을 온라인으로 거래하는 장터를 만들어볼까?' 고객은 편리하게 지구촌 구석구석의 특색 있는 제품을 구입할 수 있고, 판매자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판매처를 확장할 수 있는 이커머스 말입니다.
엣시는 뉴욕 브루클린 태생의 기업입니다. 뉴욕의 대표 관광명소인 브루클린브리지를 걷다 보면 브루클린 초입에 큼지막한 오렌지색 엣시 사이니지(Signage: 공공장소나 상업공간에 설치되는 디스플레이)가 걸린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이 동네 오래된 아파트에서 친구들과 수제품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동하던 로버트 칼린이 2005년 25세 나이에 엣시를 설립했습니다. 회사이름인 엣시(etsy)가 조금 독특하게 느껴지죠? ‘엣시’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8과 ½’에서 배우들이 이탈리아어로 “에 시(et si)”라고 말하는 데서 따왔다고 합니다. “아, 그래(Oh, yes)”라는 뜻이죠.
칼린은 뉴욕에서 인디 공예 운동(Indie Craft Movement)이 활성화되는 움직임을 포착하고 공예가들을 위한 디지털 장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인디 공예 운동은 사실 영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라파엘 전파의 영향을 받은 영국인 윌리엄 모리스가 당시 산업사회에서 대량생산되던 조잡한 제품과 차별화되는 수공예의 정수가 되는 작품들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s)는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일어난,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인 라파엘로 이전 양식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복고주의와 과학적 눈으로 현실을 재현하려는 사실주의를 동시에 지향한 그룹이자 사조입니다. 윌리엄 모리스가 시작한 이 운동은 훗날 독일로 건너가 바우하우스(Bauhaus) 운동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죠.
엣시는 서비스 개시 1년 만에 판매자 1만 명과 구매자 4만 명을 확보하며 유의미한 성장을 이뤘습니다. 엣시에 대해 미국 ‘뉴욕타임스’는 “핸드메이드 의류와 도자기, 가구 등 아름답고 유용한 것들을 위한 아고라”, 정보기술 잡지 ‘와이어드’는 “대형 유통업체의 비개인화된 환경에 맞서 개인의 힘과 목소리를 되살리고자 하는 문화 운동”이라고 호평했구요. 그리고 서비스 개시 2년 만인 2007년 여름 100만 번째 판매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엣시가 어떻게 돈을 벌까요? 눈치빠른 구독자분들은 벌써 아시겠지만 판매자에게 판매 대금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를 받습니다. 그리고 판매자가 제품을 등록할 때마다 개당 0.2달러 비용을 받습니다. 두번째 내용이 조금 특이하죠? 판매된 것도 아닌데 일단 엣시에 제품을 올리려면 돈을 내야하는 구조인겁니다.
투트랙의 매출 구조로 엣시는 창업 5년만인 2009년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누적 투자금 9700만 달러(약 1176억 원)를 달성한 뒤 2015년에는 나스닥에 상장됐구요. 문제는 그 다음부터 였습니다. 이후로 내리막길을 걷더니 2016년에는 매각 위기에까지 몰리게 되었죠. 매각 위기에 몰린 엣시 이사회는 매각 대신 CEO 교체라는 다른 카드를 뽑아 들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지만 창립자인 칼린은 사실 CEO적인 기질보다는 다분히 예술가적 기질이 더 많았기 때문이죠. 수익 창출보다는 공예가 커뮤니티 구축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엣시의 구원투수가 누구였나구요? 바로 스탠퍼드대 MBA 및 이베이 출신인 조슈아 실버먼 입니다.
Dear, 무엇이든 손으로 만들어내는 데 재능이 뛰어난 엣시 판매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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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CEO 다운 일을 잘 했죠? 하루 만에 판매자 1만 명이 핸드메이드 마스크를 엣시 플랫폼에 업로드했습니다. 엣시의 마스크 판매자는 2주 만에 10만 명으로 늘어났고 2020년 말까지 엣시에서는 약 900억 원어치의 마스크가 거래됐습니다. 2020년 10월에 발표한 엣시의 3분기 실적을 보면 더욱 놀랍습니다. 마스크 수요로 인해 엣시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4억5150만달러를 기록했거든요. 특정 기간 동안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판매된 품목 가치의 총합을 뜻하는 거래액(Gross merchandise sales: GMS)은 전년 대비 119% 증가한 26억3000만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엣시는 당시 3분기에 2400만개의 마스크를 판매했고, 마스크가 3분기 전체 총 상품 매출의 11%를 차지했죠. 마스크를 제외한 매출도 전년보다 93% 증가했습니다.
엣시의 3분기 활성 구매자는 6960만명으로 2분기(6030만명), 전년 동기(4480만명)보다 늘어났고, 활성 판매자도 2분기 310만명에서 370만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조슈아 실버먼은 "엣시의 판매업체와 사업체들은 대부분 집에서 일한다. 공급망 측면에서 공장에 의존하거나 중간 센터를 통해서만 배송해야 하는 제약이 거의 없다”고 말하며 당시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팬데믹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자 엣시 판매자들은 수제 가구나 아트 제품, 장난감 등을 예전보다 더 많이 만들었습니다. 오프라인 가게를 접고 아예 엣시로 판매 창구를 옮기는 이들도 생겨날 정도 였으니까요. 집 안에 콕 쳐박혀 있어야 하는건 구매자, 엣시 고객들 또한 마찬가지이죠. 이러한 상황은 핸드메이드 제품 구매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2020년 엣시 매출은 17억2600만 달러(약 2조1000억 원)로 전년 대비 2배 이상 성장했고, 2021년 매출도 23억2900만 달러(약 2조8250억 원)로 전년 대비 35% 증가했습니다.
코로나로 대박을 친 엣시의 행보는 과감해졌습니다. 2021년 한참 잘 나가던 그 시절, 영국 런던의 빈티지 및 스트리트웨어 컬렉션으로 유명한 온라인 리세일러 ‘디팝(Depop)’을 16억3,000만 달러에 인수했거든요. 한화로 약 1조 8,150억 원에 해당하는 액수입니다. 엣시는 2021년 미국 내 최고 신장률을 기록한 이커머스가 되었습니다.신장률이 가장 높은 기업은 26.9% 증가한 엣시(Etsy), 월마트가 26.4%의 근소한 차이로 2위, 애완 동물 사료 등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츄이(Chewy)가 25.0%로 3위에 올랐습니다. 미국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 40%를 넘어선 아마존은 신장률 24.9%를 기록해 4위에 그쳤었죠. 2021년 엣시는 그야말로 승승장구하며 아마존을 넘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엣시의 기쁨은 잠시였습니다. 2022년 5월, 엣시는 시장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발표했지만 부진한 가이던스 제시에 투자자들의 실망감을 초래했거든요. 엣시의 1분기 주당순이익은 60센트로 전망치에 부합했고, 매출은 5억7900만달러로 전망치 5억7500만달러를 상회했습니다. 하지만 엣시는 2분기 매출 전망치를 5억4000만~5억9000만달러로 전문가 예상치 6억2800만달러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을 제시했습니다. 총 상품판매액 전망치는 29억~32억달러로 제시했는데 이 역시 전문가 예상치 34억달러를 하회했죠. 그야말로 코로나 특수를 누리던 지난 2년간 나타난 두 자릿수 고속 성장 흐름은 앞으로 지속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포스트 팬데믹 시대를 맞이하여 엣시는 두 가지 전략을 들고 나왔습니다. 우선 판매 대금의 5%인 거래 수수료를 6.5%로 인상하기로 했습니다. 이건 엣시에게는 당연한 수순이었겠죠? 수수료 수입이 그대로 매출로 이어지기 때문에 매출 신장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텐데요. 이것또한 당연하게 판매자들의 반발이 있었을 겁니다. 엣시는 수수료 인상으로 확보한 자금을 신규 고객 유치 및 고객 서비스 개선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엣시는 배송이 느리기로 악명이 높았는데, 이를 개선하고자 판매자들의 배송 진행 상황을 고객에게 공개하는 프로세스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었죠.
나머지 전략은 바로 남성 고객 확보입니다. 당시 판매자와 구매자의 80%가 여성일 정도로 엣시는 여성 이용자 비율이 두드러지게 높은 플랫폼이었거든요. 실버먼은 언론 인터뷰에서 “엣시는 남성 고객에게 어필할 만한 제품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며 “미국프로풋볼(NFL)을 포함해 남성이 선호하는 채널에서 광고를 하는 등 남성 고객 확보를 위한 마케팅 활동도 강화할 것”이라고 밝하기도 했죠.
엣시의 최근 성적은 어떨까요? 올해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0.8% 증가했지만 시장 기대치를 하회했습니다. 게다가 총 상품 판매액이 -3.7%로 감소하며 성장 둔화의 냉혹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수익성도 저하되었습니다. 마케팅 비용이 너무 컸기 때문이죠. 특히나 올해 초 슈퍼볼 광고를 집행하는 등 막대한 투자를 했음에도 매출 증대가 되지 않았으니 정말 뼈 아플겁니다. 실적 부진에 늪에 빠진 엣시가 반등하기까지는 많은 시일이 소요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엣시의 사업 모델과 플랫폼 경쟁력은 여전히 매력적인 편이죠. 어떻게 펀더멘탈을 개선해야 할지 엣시는 고민을 많이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투자자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어주세요 엣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