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산업이 탄생한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추가된 신산업 역시 기존 제조업이 쓰는 상품과 원자재, 핵심 광물을 소비합니다. 수요는 늘어났고 공급은 부족하니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데 지금까지 자금유입이 많았던 신산업이 광물을 선점하기 위해 베팅을 하면서 가격이 버블 영역으로 확대됩니다. 그리고 이들이 약속된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하면서 또다시 추가적인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에너지 전환이 지속될수록 공급과 운영에서 지속적으로 추가적인 자원을 소모하면서 에너지 비용과 자원 비용이 모두 올라가는 반면 화석연료 공급을 제한하면서 이들 기반 위에 있던 제조업과 신산업은 모두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원전도, 석유와 천연가스도, 석탄과 핵심광물도 모두 추가공급 여력이 쉽게 늘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한다 해도 10년이 걸립니다. 따라서 향후 10년은 화석연료와 핵심광물의 강세장이 펼쳐질 것이고 유럽은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시기는 디플레와 함께였지만 유럽은 인플레와 함께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30년 만에 처음 보는 '모든 것이 부족한 시대'로 진입하고 있었습니다.

유럽의 에너지 집약산업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BASF처럼 유럽 내 비즈니스를 영구적으로 축소할지 아니면 스웨덴 배터리 기업 노스볼트나 다국적 에너지 기업 이베르드 롤라 처럼 에너지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미국에 대한 생산과 투자를 늘리는 것이었죠. 후자는 명백히 유럽과 미국의 충돌이슈였는데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부장관은 미국이 투자를 독차지하고 잇다고 비난하기도 했죠. 에너지 비용이 10배 급등한 영국에선 찻잔에서 벽돌,항공우주부품,인공 고관절을 생산하는 영국 세라믹산업이 마비되고 있었습니다.

아직 세상에 덜 알려진 산업이 위험에 처해있었는데 팬데믹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제약산업에도 동일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급등한 에너지 비용이 유럽 내부 필수의약품을 만드는 기업들이 감산과 가동 중단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는데 이는 에너지 집약적인 원료의약품이 가격압박으로 유럽에서 인도와 중국으로 아웃소싱되었기 때문이며 항생제를 비롯한 당뇨병과 암치료제 등의 필수의약품을 향후 5~10년 이내 유럽에서 만들지 못하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에너지 위기가 닥치자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천연가스는 물론 석탄과 석유까지 동원해 전력을 생산했고 국민들에게 화석연료 보조금을 지불했으며 기후공약에 자신들이 필요한 LNG 프로젝트는 예외로 설정한 반면 아프리카가 필요한 파이프라인 가스 프로젝트와 발전소 자금지원은 온실가스 배출을 문제 삼으며 자금지원을 꺼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브레이크스루 인스티튜트의 에너지 및 개발 담방 이사인 비자야 라마찬드란은 부유한 국가가 가난한 국가의 자원을 착취하면서 기후 행동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접근을 근본적으로 거부하기 때문에 '녹색 식민주의'라고 말했습니다.

글로벌탄소프로젝트 GCP에 따르면 전 세계 배출량의 80%는 경제력 상위 20개 국가에서 나오고 있고 손실과 보상을 대표로 주장한 파키스탄은 0.4%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선진국들은 연간 1000억 달러 규모의 개도국에 대한 재정지원조차 이행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죠. 손실과 보상 주장은 탄소중립을 위한 선진국들의 지원이 없다면 더 이상 함께 정책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선언과 같은 것인데 실제 이들은 급등한 석탄과 천연가스 가격을 감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전기차 분야는 핵심광물의 공급이 더 큰 문제입니다. 캠브리지 공과대학 명예교수인 켈리에 따르면 영국의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교체할 경우 가장 자원이 적게 소모되는 차세대 배터리를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전 세계 코발트 생산량의 약 2배, 전 세계 탄산리튬 생산량의 4분의 3, 전 세계 네오디뮴 생산량의 거의 전부, 2018년 전 세계 구리 생산량의 절반 이상의 재료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비중이 늘어날수록 전기차를 만드는 핵심광물의 수요 급증으로 인한 가격 상승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공급을 늘리는 방안도 있지만 환경단체와 광산지역 주민들이 광산개발을 반대해 개발도 쉽지 않습니다.

친환경차의 반환경 딜레마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죠.

노르웨이의 경우 2020년 전기차 판매는 전체 판매량의 60%를 차지했습니다. 전력의 90% 이상이 수력발전에서 나와 다른 유럽 지역에 비해 전기요금이 40~70% 수준에 불과한 데다 부가세 면제와 유료도로, 주차요금 50% 할인 등 혜택도 많은 반면 내연기관차는 25% 부가세와 환경세가 부과되어 내연기관차 구매비용도 비싸고 운행비용은 75%가 높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노르웨이의 모든 자동차는 곧 전기차로 뒤덮일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노르웨이에서 보조금으로 새로운 전기차를 구매한 가정의 3분의 2는 전기차 교체 대신 내연기관차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는데 60%는 내연기관차를 포함한 차 2대를 이용했고 40%가 전기차를 이용했습니다. 이는 전기차의 친환경 목적과 반대되는 일이었고 전기차 보조금 역시 내연기관차를 소유한 사람들에 비해 대중교통과 자전거 이용을 급격히 감소시키면서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자원 수출국의 역설

과잉공급 시대엔 해외수출이 국내에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에너지 부족 시대엔 해외수출이 늘어날수록 국내공급에 문제가 생겨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국내공급을 우선시해 물량을 통제할 경우 수입국의 에너지 위기와 물가상승을 자극하게 됩니다. 그리고 수출국과 수입국의 가격 변동성은 더욱 심화되어 불확실성이 가중되어 안정적인 수급정책을 펼치기 어려운 상황이 되죠.

장기공급계약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 없었는데 한국이 인도네시아로부터 장기공급계약으로 수입하던 천연가스를 자국 내수물량 확보가 급하다는 명분으로 업체 측에서 일방적으로 90% 줄이겠다는 통보를 받고 대통령실은 물론이고 정책당국과 대사관까지 인도네시아 정부를 상대로 전방위 접촉 끝에 겨우 업체 입장을 바꾸는 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영국과 프랑스 사이 정치적인 이슈로 전력공급의 중단 위협이 있었던 것처럼 유럽은 충분히 에너지 부족에서 인내심을 잃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미 코로나 정국에서 유럽이 마스크 부족으로 민낯을 보여줬던 전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정국시 중국이 이탈리아에 마스크를 보내줬는데 중간기착지인 체코가 이 마스크를 압류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다시 보냈지만 바뀐 중간기착지 독일에서 마스크를 압류했습니다. 독일은 마스크 등 의료품 반출금지라 마스크를 싣고 가던 스위스 트럭도 압류했고 스웨덴이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마스크를 보급하려고 했을 때 이를 빼앗은 건 프랑스였습니다.

또한 프랑스로 가기로 했던 마스크 200만 장을 3배의 가격을 현찰로 더 주고 가로챈 국가는 미국이었습니다.

이런 자국 우선주의의 최대 피해자는 높은 에너지 비용과 물가상승으로 힘들어하는 유럽 시민들이 될 것이며 이를 견디지 못한 시민들은 정권교체로 화답할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교체된 유럽 정권이 지금까지 친러세력이면서 극우정권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번 위기는 에너지 믹스의 균형이 왜 필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친 에너지 믹스에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대체할 다른 에너지원의 부족으로 오히려 다른 국가보다 더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 산업에서 파생되는 일자리의 양과 질은 전자가 압도적입니다.

에너지전환은 이렇듯 단순히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한 에너지 수급으로 인한 에너지 안보 약화, 분자 위기로 인한 물가불안과 국민들의 생계비 위기, 산업경쟁력 상실로 인한 경제침체와 일자리 감소와 같은 우리 삶에 떼려야 뗄 수 없는 현실의 고통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선진국들은 기존 산업으로의 복귀로 답했습니다.

재생에너지를 늘리다 다시 화석연료로 후퇴하면서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보든 것의 탄소중립을 추구하는 것이 더 옳은 방법 아닐까요.

그린 보틀넥 -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비용이 증가해 에너지전환의 속도가 늦어지는 것

노르웨이 전기차 보조금 역시 화석연료에서 나오고 있는데 만약 그들이 보조금을 끊는다면 전기차 판매는 급락할 것이고 실제로 2017년 보조금 제도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덴마크의 경우 같은 해 1분기 전기차 판매량이 무려 60% 급감했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전기차 비중이 늘어갈수록 내연기관차의 세입이 줄어든다는 것인데 2013년에서 2018년은 무려 절반 이상 급감했습니다. 보조금의 원천이 줄어드는데 이를 줄이면 전기차 보급이 떨어지게 되니 남은 선택은 더 많은 석유를 캐내에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태양과 모듈 수요가 100GW를 넘어서도 당시 미국 내 기업이 만들 수 있는 태양과 모듈 제조능력은 연간 약 4.7GW에 불과합니다. 미국 기업을 우선하려면 에너지 전환 속도가 줄어들 것이고 이를 높인다면 대부분의 과실을 중국이 가져가며 중국의존도가 심화되는 모순에 부딪히게 됩니다. 미국의 IRA와 유럽의 탄소중릭산업법 역시 마찬가지 결과에 직면할 것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동맹국과 전략 국가의 안보화폐에 해가 되는 방법이 아니라 서로 이익을 볼 수 있는 세밀한 정책수립과 조율이 필요합니다.

많은 이해관계가 에너지 안보를 구축하는 곳에서 만날 수 있지만 이를 잘 풀어낸다면 중국의존도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공급망 구축의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 동맹국들 간의 팀플레이(원전,반도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