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번영한 국가는 고대 로마일 것이다.

고대 로마는 민주주의의 산물이다.

집정관은 막대한 권한을 가졌지만 늘 2명이 선출되었고 게다가 임기가 1년이었다.

전쟁이 일어나서 집정관 두 명이 군대를 지휘하는 경우에도 하루씩 교대로 지휘권을 행사할 정도였다. 지휘관 한 명이 일관되게 지휘하는 것, 천재 한 명이 마음껏 재능을 발휘할 기회까지 포기할 정도로 교대제에 집착했다. 이런 임기제와 교대제는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즉각 수정하기 위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해 궁리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의 역사는 일정한 패턴이 되풀이된다. 우선 로마보다도 선진적이며 강한 상대가 나타난다. 로마는 처음에는 강대한 적에 맞섰다가 패하고 존망의 위기를 맞는다. 절망적인 위기 속에서 로마는 새로운 지도자에게 재건을 맡기고, 자국을 위기에 빠뜨린 적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드디어 힘을 갖춘 로마는 적을 타도하고 적을 로마의 일부로 삼는다. 이 과정은 시행착오의 반복이며 비약적인 진보가 없다. 미리 국가 계획을 세워두는 것도 아니다. 예상외의 사태에 직면했을 때마다 실패를 겪고 교훈을 하나씩 배우며 조금씩 강대해졌다.

->민주주의가 좀 더 많은 작은 실패를 겪게 하고 그것이 장기적인 생존과 변화 그리고 번영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면 중국같은 국가는 체제가 흔들리는 강한 충격을 받으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로마의 민주제와 시행착오로 이루어진 무계획적인 진보는 불확실한 세계에서 장기적인 성공을 거두기 위한 이상형이자 모델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미국의 강함은 로마처럼 실책을 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책을 수정하는 능력에 있다. 로마가 비로마적 요소를 하나하나 받아들였듯이 미국도 이민 국가로서 다양한 민족을 수용해왔다.

미국 또한 카리스마 경영자가 칭송받지만 실제 미국 기업사를 써온 수많은 명경영자는 카리스마형이나 독재자형관느 거리가 멀다. 한 명의 스타 CEO가 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인수 합병 등 화려한 전략을 구사하고, 때로는 과감하게 정리해고를 감행하는 방식을 미국식이라고 부르며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함부로 남의 이마에 딱지를 붙이는 격과 같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의 원동력은 어디까지나 민주적인 리더십과 시민이나 직원 한 명 한명의 힘이 결집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다양한 생각이 받아들여지기에 때로는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스스로 교정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미국의 강점이다.

주가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전에 이론적인 가설을 하나 살펴보자. 바로 랜덤워크 이론이다. 즉 주가의 움직임은 우연이 축적되어 형성되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론적으로

1.시장이 정비되고

2.경제 지표나 기업 정보 등 정보가 잘 전달되고

3.시장 참가자가 합리적으로 행동하면

시장은 랜덤워크에 가까워진다.

랜덤워크는 브라운 운동과 같다. 꽃가루를 잘게 부수어 물속에 넣으면 물 분자가 끊임없이 충돌해 꽃가루 입자가 불규칙하게 운동한다. 이것이 브라운 운동이다. 주식도 지금 있는 모든 정보가 현재의 주가에 반영되어 있다면, 앞으로 주가를 움직이는 것은 이제부터 나오는 예측 불가능한 신규 정보뿐이다.

앞으로 주가가 오를 것인가 내릴 것인가, 또는 어느 정도 움직일 것인가는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주가가 오를 확률과 내릴 확률은 거의 비슷하다. 그 변동 폭을 기록하면 결국에는 정규분포의 형태에 가까워진다.

엄밀하게 말하면 주가는 기업의 가치를 나타내기 때문에, 경제가 성장하면 기업의 매출이나 이익이 향상되고 기업 가치가 증대해 주가가 상승하게 마련이다. 요컨대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주가가 올라야 정상이다. 성장 경제에서 주가는 오를 확률이 내릴 확률보다 다소 높다. 단, 주가 변동을 나타내는 정규분포의 평균이 제로보다 조금 플러스 쪽에 치우쳐 있다는 얘기일 뿐, 매일 또는 시시각각의 주가가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움직임에 따라 성립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랜덤워크 이론을 부정하는 투자자들은 주가의 움직임이 어떤 법칙을 따르며, 우연만으로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완전한 우연의 산물인 가공의 주식시장도 어떤 법칙을 따르는 듯 보이며, 도저히 우연만으로 성립한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대답은 비교적 간단하다. 사람은 우연 속에서 필연을 찾아내려고 하며,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려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가공의 주식시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주가 전망을 나타낸다고 보는 추세나 특정 패턴이 우연의 결과만으로 만들어진다. 이것은 어떤 추세나 패턴이 나타났다고 해서 그것이 꼭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이 가공의 주식시장에서는 어떤 추세나 패턴이 나타난 뒤에도 이후 주가가 상승할 확률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확률이 변하는 듯 보였다면 심리적인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의 주가 변동은 정규분포와 매우 흡사하다. 우연은 정규분포를 낳는다. 주가 변동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정규분포에 가깝다면, 전부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꽤 많은 부분이 우연에 영향받고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실 이미 답은 대부분 나와 있다. 주가 변동은 거의 우연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남은 문제는 두 가지다. 주가 변동이 대부분 우연에 의한 것이라면 그 '대부분'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가? 그리고 우연 외의 요소는 무엇인가?

첫 번째 문제에는 그다지 정확하게 답할 수 없다.분명한 것은 주식시장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우연의 영향을 훨씬 강하게 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우연을 우연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주식시장이 우연에 영향받는 비율은 시장의 성숙도와 투자자 등에 다라 변한다.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시장이 성숙할수록, 투자자가 현명하고 다양해질수록 주가는 우연의 영향을 받기 쉬워진다.

만약 어떤 요인으로 우연의 영향이 약해지면, 현명한 투자자가 이익을 얻을 기회가 높아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현명한 투자자가 더욱더 주식시장에 진입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우연의 영향이 증가하도록 작용한다. 시장은 우연의 영향이 자연스럽게 강해지는 매커니즘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우량하고 장래에 이익이 증가할 것 같은 기업이 있다고 하자. 주가는 당연히 상승을 계속할 것으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만약 인간의 판단력이 합리적이라면 주가에는 그 기업이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포함되어 있을 테니 주가는 그 이상 상승하지 않는다. 그 기업의 주가가 상승하는 것은 사람이 어떤 인지 편향에 의해 미래의 성장을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는 경우에 한정된다.

물론 이 시큘레이션 주식시장에서는 주가가 전적으로 우연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각 펀드매니저의 성과도 우연의 결과일 따름이다. 사실은 C가 A보다도 훨씬 세련된 기업 분석 능력을 지니고 있어도, B가 다트로 종목을 선택했어도, 좀더 비유적으로 말하면 사실 다트를 능숙하게 던지는 원숭이였다고 해도 앞에서 서술한 일은 일어난다.

우연만으로 성립된 세계는 방향감이 없는 평범한 세계라는 이미자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연만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사실 드라마틱하며 실로 운명적이다. 그리고 놀랄 정도로 현실 세계와 비슷하다.

노력이나 능력은 의미가 없는가?

학계에서는 랜덤워크가 단순한 탁상공론이 아니다. 수많은 실증 연구도 대체로 랜덤워크를 지지한다. 하지만 수많은 전문 투자자와 일반 투자자는 랜덤워크 이론에 뿌리 깊게 감정적으로 반발한다. 노력이나 재능이 결과에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사실 나도 주식시장에서 노력이나 능력으로 수익을 올리는 일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믿고 예측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랜덤워크 이론을 지지하는 재료에 비해 그런 생각을 지지하는 재료는 극히 미덥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주식시장은 랜덤워크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고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확률적 사고에서 멀리 떨어진 사고방식이다. 주식의 움직임에 우연 외의 요인도 작용하며 노력이나 능력으로도 이익을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어진간히 신중한 고찰이 필요하다. 물론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다만 우연이 미치는 영향의 크기를 고려하면 주식시장에서 이익을 올리는 그 어떤 방법도 모조리 확률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잇다. 100% 확실한 방법이란 없다. 이길 확률이 높은 방법이 있을 뿐이다.

주식시장에서 우연 외의 요인으로 이익을 올리기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런 경우에도 우연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올바른 방식으로 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있고, 잘못된 방식으로 해도 성공하는 경우가 있게 된다. 결국 무엇이 올바른 방식인가를 결과만으로 알기가 어렵다.

로버트 루빈의 자서전에는 그가 골드만삭스에서 일하던 모습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두 가지 거래가 소개된다. 흥미롭게도 무수한 성공담을 자랑하는 루빈이 자서전에 적은 두 가지 사례는 모두 실패한 얘기다.

하나는 8% 확률로 **달러의 이익, 15%의 확률로 XX달러의 손실이 예상되어 기댓값이 높다고 판단하고 거래를 실행한 사례다. 15% 확률로 보았던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결국 손실을 입었다. 그 뒤 루빈은 자신의 판단을 돌이켜 보며 "결과는 나빴지만 판단 자체는 잘못되지 않았다." 라고 결론을 내었다.

이것이 바로 확률적 사고의 핵심이다. 15% 확률이라고 생각한 일이 실제 일어난 것이 그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15% 일어날 수 있는 사태는 15% 확률로 현실이 된다. 이 일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가령 50% 확률로 일어난다고 보아야 할 것을 15% 확률이라고 판단했을 때다.

루빈이 소개하는 또 다른 사례는 친구인 주식 거래인에게 귀가 솔깃해지는 정보를 듣고 거기에 편승해서 거래했던 경우다. 친구는 '반드시 남는 장사' 라고 보고 거액을 투입했다. 루빈 또한 큰 확신이 있었지만 문득 '반드시 성공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을 고쳐먹고 거래량을 줄였다. 이 거래는 실패로 끝났고, 친구는 직장을 잃었고 루빈 또한 큰 손해를 입었지만 투자 금액을 줄였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설령 도중에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 노력하면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 성공할 수 있다. 사람은 우연을 통제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올바른 판단을 거듭하는 것 뿐이다.

한편 잘못된 판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단순한 우연에 의해 성공한 것에 만족해서 스스로 반성하지 않으면 언젠가 파멸적인 사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커진다. 확률적 사고는 막연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성공을 지속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는 분수령이 된다.

이 시점에서 주가를 움직이는 우연 외의 요인도 살펴보자. 그것은 바로 인간의 심리적인 구조에서 비롯되는 편향, 즉 '인지 편향' 이다.

가령 앞에서 살짝 언급했던 성장 기업의 주가는 장기적으로 상승한다는 단순한 명제를 좀더 생각해보자. 이것은 주식투자의 기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또한 대부분 결과론이다. 마이크로소프트,구글,월마트가 대성공을 거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사전에 그런 일을 예상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일부 성공 사례의 뒤에는 수많은 실패 사례가 존재할 터였다.

다만 지금은 인간의 인지 편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성장력이 높은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어느 정도 선별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생각해보자.

자, 그렇다면 성장력이 높은 기업의 주가는 정말 계속 상승할까? 이론적인 면에서 말하면,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조건이 필요하다. 사람들 대부분이 그 기업의 성장력을 과소평가한다는 조건이다.

랜덤워크 이론이 성립하는 전제 중 하나는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 경우로 말하면, 투자자가 성장 기업의 미래 성장력을 정확하게 인식했다면 이미 현재 주가에 반영되어 있고 이후의 주가 변동은 새롭게 나오는 우발적인 정보에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주가의 움직임은 랜덤워크가 된다.

물론 사람은 항상 합리적인 행동을 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랜덤워크 이론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반랜덤워크파가 주로 내세우는 논리지만 사실 너무 빈약하다. 주가의 움직임이 100%는 아니지만 꽤 많은 부분이 랜덤워크인 경우, 100%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랜덤워크를 부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성장 기업이기 때문에 주가가 오른다는 것은 인과관계이며 물론 랜덤워크가 아니다. 랜덤워크가 아닌 요인에 의해 실제로 주가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예측이 단순하게 잘못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모두 잘못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같은 방향으로 모두 잘못되는 것이 바로 인지 편향이며, 이 인지 편향이라는 존재가 최초로 랜덤워크 외의 요소를 시장에 부여한다. 인지 편향은 사람들이 확률을 잘못 보게 만들며 그것이 주가에 영향을 미친다.

도박의 오류와 자기 관여의 환상

사람들은 우연 속에서 필연을 찾아내고, 불규칙한 움직임 속에서 패턴을 찾아낸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는 확률을 무의식중에 자신의 입장에 맞게 수정해간다.

드문 현상

사람은 자신이 산 복권이 당첨될 확률을 높게 잡는다. 기업이 발행하는 채권이나 주식을 매수할 때, 보통 투자자는 그 기업이 도산할 확률을 무의식중에 높게 예상한다.

이 경우에는 그 드문 현상이 일어났을 때의 일에 초점을 맞추며, 그럴 때 사람은 확률을 꽤 과대하게 예상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주식시장이 크게 폭락하고 나서 어지간히 시간이 지나 이제 안정된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사람은 먼 과거의 기억보다 비교적 가까운 기어에 한층 강한 영향을 받는다. 요컨대 '익숙함'이 생겨나는 것이다.

주가가 안정된 추이를 보이는 상황이 길게 이어지면 그 상황에 익숙해져, 먼 과거에 있었던 폭락과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느끼게 된다. 이 경우, 드문 현상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 의식의 초점에 올라오지 않기 때문에 그 확률을 거의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드문 현상이 발생할 확률을 어떤 유형의 것은 항상 모두가 과대하게 평가하고, 다른 유형의 것은 항상 모두가 과소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문제의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어떤 틀로 파악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답이 나오는 것을 '프레이밍효과'라고 한다.

과잉 확신 편향

수많은 투자자가 스스로 그럭저럭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실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휴리스틱

사람의 인지 편향 중 대부분은 뭔가를 판단할 때 모든 수집 가능한 정보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나서 답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극이 일부를 토대로,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무의식중에 지극히 기계적, 고정적인 방법으로 간단하게 답을 끌어낸다. 약간의 정보를 토대로 일정하게 패턴화된 방법으로 답을 끌어내는 것을 '휴리스틱'이라고 한다.

하지만 휴리스틱은 어디까지나 간단하고 편리한 방법이며, 대체로 틀에 박힌 방법으로 획일적인 판단을 이끌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적절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상장기업은 밤하늘의 별처럼 많기에 기업이나 업종에 딱지를 붙이는 일도 종종 있다. '저 업종은 안 된다'라든지 '저 기업은 우수하다'와 같은 딱지가 일단 붙여지면 상황이 달라져도 수정하는 일 없이 휴리스틱에 따라 획일적인 판단을 계속 내리게 된다.

앵커링은 주식시장에서도 빈번하게 사용된다. 가령 F사가 수년간 고성장했다고 하자. 사람들은 성장 기업의 성공 확률을 낮게 예상한다고 했지만, 그 기업이 실제 고성장을 실현하면 이번에는 '성장 기업'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성장률이 높은 기업은 PER이 높다. F사는 성장력을 인정받아 PER 30배 전후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하자. 얼마 뒤 F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성장이 둔화되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하지만 일단 PER 30배 전후에 형성된 주가는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몇 년에 걸쳐 성장이 둔화되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될 무렵, 드디어 F사의 PER이 내려가기 시작해 새로운 수준으로 안정되어간다.

그래서 일단 확립된 주가 수준은 한동안 크게 변하지 않는다. 앵커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앵커링된 배수가 타당하지 않다는 점이 분명해지면 드디어 달라져 새로운 앵커링을 찾게 된다. 그때 주가가 크게 변동한다.

자기 정당화 따라하기

사람의 마음은 특정 정보만이 아니라 자신의 언동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의 언동에만 이끌리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언동에도 이끌린다. 자신이 잘 모르는 일은 타인의 행동을 흉내 낸다. 심리학에서는 '사회적 증명'이라고 한다. 요컨대 따라 하는 것이다.

거품경제 시절에는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기에 주식 투자로 성공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주식 투자라면 콧방귀를 뀌던 사람도 그런 성공담이 귀에 들어오면 샘이 나고 자신만 뒤처진 듯해서, 거품이 잔뜩 끼어 있는 주식시장에 어둥지둥 발을 담그게 된다.

따라 하기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또 하나 있다. 주가 하락 국면이다.

조직 편향

사람에게 인지 편향이 있는 이상, 사람의 집단인 조직도 인지 편향을 갖는다. 가령 호황이 이어질 대, 기업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며 공격적으로 사업 계획을 작성한다. 경기는 순환한다. 몇 년 지나면 경기가 나빠지고 다시 회복된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면 긑이 없는 호황은 없다. 그럼에도 기업은 호황이 지속되면 그것을 전제로 한 계획만 세운다. 호황이 영구히 이어질 듯이 말이다.

물론 주가가 본래의 가치보다 낮아지는 경향은 종목에 따라 달라진다. 널리 알려져 있고 인기 있는 종목은 사람들이 '이 기업을 잘 안다' 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가가 상승할 확률이 높다고 느끼며 투자 대상으로 선호한다. 이런 연유로 주가가 높아지는 효과가 생기며, 본래의 가치보다 주가가 낮아지는 경향이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지명도가 높지 않거나 투자 대상으로서 인기가 높지 않은 종목이 주가가 저평가 되어 있고 앞으로 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식시장에서는 각각의 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있으며 소위 딱지가 붙은 경우가 많다.

행동재무학에 관한 책에는 인지 편향으로 인해 주가에는 우연이 아닌 움직임이 작용하므로 이를 능숙하게 활용하면 주식 투자에서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글이 적혀 있다. 좀더 말하면 시장이 랜덤워크가 아니라는 증거로 행동재무학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견해에는 함정이 있다.

1.주가가 인지 편향에 의해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그것이 시정될 때 우연 외의 힘이 더해진다는 사실은 맞는 얘기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주가의 움직임 중 대부분은 여전히 불규칙하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행동재무학은 주가의 움직임이 정확한 정규분포가 아니라는 점은 설명할 수 있지만 정규분포에 가깝다는 점은 설명할 수 없다.

2.인지 편향으로 잘못 평가된 주가의 특성을 이용하는 것도 사실 매우 어렵다. 인지 편향은 누구나 같은 잘못을 범하는 것이어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잘못 평가되는 주가의 특성을 이용하는 쪽에 서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잘못 평가하게 만드는 원인 자체다. 따라서 인지 편향을 이용해서 돈을 벌기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요컨대 주가가 완전히 불규칙하든, 인지 편향으로 인해 정규분포가 뒤틀리든, 여하튼 주식 투자로 이익을 내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

행동재무학의 핵심 이론에 전망 이론이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사람은 이익을 얻었을 때의 만족감보다 손실의 고통을 더 크게 느낀다.

따라서 투자자는 다소 이익이 나면 바로 주식을 팔아 이익을 확정하고 손실이 났을 때는 조금이라도 더 보유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길 때는 작게 이기고 패할 때는 크게 패한다.

단, 완전하게 불규칙한 주식시장에서는 이런 심리적 경향이 있더라도 주식 투자의 기대수익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조금씩 몇 번 이기다가 가끔 크게 진다. 평균하면 손해도 이익도 없다. 하지만 다양한 인지 편향 때문에 현실의 주식시장에는 우연 외의 요소가 더해진다. 예를 들어 일단 주가가 상승하면 '따라 하기 행동'으로 주가가 더욱 상승한다. 주가가 하락할 때는 한층 더 하락한다. 요컨대 실제 주식시장에서는 완전히 불규칙한 주식시장보다 하나의 추세가 오래 지속된다.

그러면 그런 추세를 이용해서 돈을 벌면 될 성싶은데 그게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전망 이론에서 말하는 심리 구조를 지닌 인간이 주식 투자를 하는 경우, 순수하게 불규칙한 세계라면 기대수익에 변화가 없는데, 불규칙한 시장보다 추세가 길게 유지되는 주식시장에서는 기대수익이 마이너스가 되고 만다.

주식 투자에서 우연 외의 요소로 이익을 올리고자 한다면 우선 인간의 심리 편향을 깊이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자신이 그와 무관하지 않고 편향의 포로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물론 그 편향에 대항해야 한다. 인지 편향은 거의 본능이기에 그에 대항하는 일은 본능을 거스르는 것을 의미한다. 주식 투자에는 본능을 거스르는 강한 정신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인지 편향을 이용해서 주식 투자로 이익을 올릴 수 있게 되어도 여전히 우연의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주식시장에서 우연에 의하지 않고 이익을 내는 유일한 수단은 인지 편향으로 인한 확률의 오판을 피하고 가급적 올바른 확률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 결과 가령 60% 확률로 이익이 난다든지, 기대값으로 말하면 이익이 **원이라고 계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이익이 오를 확률이 높은 거래만 하게 된다.

결국 불확실성의 성질과 효과를 늘 인식하고, 일시적인 행운과 불운에 현혹되지 않아야 하며, 오랜 기간에 걸쳐 올바른 판단을 축적하는 노력을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시장은 단지 위험하며 불필요한 것일까? 시장의 실패를 이야기할 때, 시장이 담당하는 기능을 무엇을 대체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외면한다. 시장에 대비되는 것은 정부에 의한 계획과 통제다. 하지만 정부 또한 실패한다. 이것은 공산주의와 전체주의가 모조리 실패했고 그 대가로 큰 희생이 따랐다는 역사적 사실을 볼 때 분명하다. '정부의 실패'는 시장의 실패보다 훨씬 분명하게 나타나며 게다가 영향이 더 크다. '시장의 실패'를 논할 때 '정부의 실패'도 함께 생각하지 않으면 건설적인 논의로 이어지지 않는다. 결국 경제확동의 토대에는 시장이 있어야만 하고 정부의 역할은 '시장의 실패'를 가능한 한 억제하는 동시에 '정부의 실패'도 최소한으로 막는 것이다.

시장은 언제나 실패했을 때만 입방아에 오르기에 실패만 하는 듯한 이미지가 싶어져 있지만, 총체적으로 말하면 시장의 예측 기능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시장의 예측이 믿을 수 없다면 다른 예측 수단은 더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시장은 극히 열린 구조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예측 가능한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자, 그렇다면 예측할 수 있는 미래에 초점을 맞춰보자.

지금까지 있었던 일로 인해 미래에 분명히 일어난다고 추정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다름 아닌 '이미 일어난 미래'다. 우명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한 말이다.

그러면 이미 일어난 미래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우선 저출산 고령화를 들 수 있다. 출생자 수가 낮아지는 것은 경향적인 현상이다.

노동인구의 미래는 더 확실하다. 출생자 수 변화가 노동인구에 반영되기까지는 20년가량이 걸린다.

하지만 이렇게 명확한 이미 일어난 미래도 희미할망정 불확실성의 안개에 휩싸여 있다.

일본의 재정적자 문제도 사정이 비슷하다. 지구온난화도 이미 일어난 미래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이 발전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는 것도 이미 일어난 미래다.

이미 일어난 미래가 미래를 내다보는 데 중요한 요인이고, 그와 동시에 미래는 이미 일어난 미래만으로 성립되지 않으며 앞으로 일어날 미지의 일에도 크게 영향받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미래는 거의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막연히 예측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 적어도 100%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부분만으로 성립되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미 일어난 미래가 아닌 미래, 즉 '앞으로 일어날 미래'는 정말 예측할 수 없을까? 예측할 수 있다. 새로운 힘이 가해지면 예측은 물거품이 되지만 그 새로운 힘도 무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원인이 있고 결과가 생긴다. 이 모든 고려하면 미래를 완전하게 예측할 수 있다.

단, 유감스럽게도 뉴턴의 시대에는 온갖 요소를 고려해 계산할 능력이 없었다. 만약 모든 정보를 알고 무한한 계산 능력을 지닌 전지전능한 존재가 있다면 미래를 완전하게 예측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이 가상의 존재를 제탕자의 이름을 따서 '라플라스의 악마'라고 부른다. 덧붙여 말하면 현재도 어떤 슈퍼컴퓨터를 이용해도 라플라스의 악마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상상의 개념 자체가 사고법에 큰 영향을 준다.

*라플라스의 악마 - 프랑스 수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가 만든 가상의 존재.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안다면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 현재의 모든 것을 알고 이를 통해 미래를 유추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런 전능한 존재에게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리는 모두 라플라스의 악마의 주술에 걸려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연이든 뭐든 미래를 알아맞히는 사람을 숭배하고 칭송한다. 한편으로 실패한 사람은 지식,능력,노력,기력 중 하나가 결정적으로 결여된 인간으로 폄하된다.

학술적으로 말하면 이미 라플라스의 악마는 망령일 뿐이다. 20세기가 되면서 생명의 비밀고, 세계를 형성하는 근본원리도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히 밝혀졌다. 게다가 라플라스의 악마 주술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새로운 물리학도 탄생했다.


사실 입자이면서 파동으로서 운동하는 이 기묘한 성질은 전자에 한정되지 않는다. 양자도 중성자도 마찬가지다.

입자는 관측하면 반드시 입자로서 존재가 확인된다. 전자가 의심할 여지 없이 입자라고 믿는 것은 관착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의 실험 결과가 보여주듯이 직접적으로 궤도가 관측되지 않는다. 이동 중의 전자는 파동으로 존재한다.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떠올리기는 어렵다. 이 기묘한 성질을 정밀한 모델로 제시하려고 한 것이 양자역학의 시작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양자역학은 불확실성과 어떤 관계일까? 양자역학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으로 전자가 입자이며 동시에 파동이기도 하다는 점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전자는 아무도 관측하지 않을 때는 파동으로 존재하는데, 관측하면 파동이 수축해 한 점으로 모아지고 이것이 입자로 관측된다. 그러면 관측 전의 파동과 관측 후의 입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관측 전의 파동은 파동함수를 통해 수학적으로 나타낸다. 이 파동함수는 관측 후 입자가 어느 장소에서 발견될 확률을 의미한다. 졍확하게는 파동함수 절댓값의 제곱이 입자 발견 확률이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입자는 본래 확률적으로만 존재한다. 하나의 입자는 한 곳에만 존재한느 것이 아니다. 어떤 장소에 존재할 확률은 *%, 다른 장소에 존재할 확률은 +%라는 식으로 확률을 동반해서 존재한다. 하지만 관측하면 다양한 확률이 사라지고 그중 한 곳만이 정답으로 확정된다. 어느 곳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순간에 확률이 사용된다.

한 입자의 위치조차 아무것도 확정되어 있지 않다. 관측할 때 비로소 위치가 특정되지만 사전에 알 수 있는 것은 확률뿐이다. 정확한 예측은 본원적으로 불가능한다.

라플라스의 악마가 모든 입자의 현재 상태를 완전하게 알고 무한한 계산 능력으로 계산해도 파동으로 행동하는 입자가 관측에 따라 어디에서 발견될지는 알아맞힐 수 없다. 양자역학은 결국 라플라스의 악마의 마력을 봉인할 것이다.

양자역학의 계산 모델이 나타내는 답은 각종 실험에 의해 경이적인 정밀도로 확인되고 있는데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

전자가 파동으로 존재하고, 관측하면 그 파동이 한 곳에 모아져 입자가 된다는 설명은 양자역학의 본류인 코펜하겐 해석(또는 확률해석)에 따른 것이다. 다만 양자역학의 수학 모델이 아무리 옳더라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정답이 없다.

사실 코펜하겐 해석 중에서 관측하면 파동이 입자로 변한다는 부분은 매커니즘이 밝혀지지 않았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남은 것이다. 그래서 코펜하겐 해석이 옳은지 어떤지 알수 없다. 그리고 그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제거할 다른 해석도 존재한다. 파동이 입자로 변하는 구조를 알지 못하니 파동은 파동인 채로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새로운 해석으로 불린다. 다른 이름은 '다세계 해석'이다.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 관측 전의 어떤 전자가 A라는 장소에 50% 확률, B라는 장소에 50% 확률로 존재하고 있다고 하자. 파동으로 존재하는 상태를 단순화한 것이다. 그리고 과학자가 관측해 이 전자가 A에 있는지 B에 있는지를 확정했다고 하자. 관측 결과는 A다. 파동은 사라지고 동시에 확률도 사라지고 A에서 입자로서의 전자가 확인된다. 이것을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코펜하겐 해석이다.

한편 에버렛 해석에서는 파동은 파동인 채로 있다. 전자는 A에도 존재하고 B에도 존재하고 있고, 관측하기 전과 후에도 상태는 변함이 없다. 그러면 왜 과학자는 A에만 존재하는 전자를 관측한 것일까?

관측 후에도 파동이 이어진다고 하면 A에서 전자를 관측한 과학자 외에 B에서 전자를 관측한 과학자도 동시에 존재해야만 한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의 전자가 A와 B에 동시에 존재해야만 한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의 전자가 A와B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은 전자가 A에 있는 세계와 B에 있는 세계, 즉 두가지 유형의 세계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관측 후에도 과학자가 전자를 A에서 관측한 세계와 B에서 관측한 세계가 동시에 계속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은 전자를 A에서 관측한 세계와 B에서 관측한 세계를 동시에 인식할 수 없다. 요컨대 전자를 A에서 관측한 세계만을 인식하는 의식과, B에서 관측한 세계만을 인식하는 의식으로 나뉘는 것이다. 두 개의 세계로 나뉜 각각의 의식은 다른 세계를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에 단 하나의 유형만 있는 것처럼 느낀다. 이러면 코펜하겐 해석의 문제점은 해결할 수 있다. 이 생각을 더 밀고 나가면 세계에는 물리적으로 가능한 온갖 세계가 공존하며 사람의 의식은 그중 단 하나의 유형을 인식하는 것이 된다. 이래서 '다세계 해석;이라고 불린다.

SF공포물처럼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듯이 여겨진다. 하지만 에버렛 해석은 수학적으로 무리가 없다.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양자역학의 해석으로서 에버렛 해석이 가장 유력하다고 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우리는 세계를 전부는 아니라도 꽤 이해한다고 느끼고 때로는 미래 예측도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계의 진정한 모습은 아마 우리 상상과 크게 다르고 우리는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만약 정말 여러 세상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확률이 높은 성공을 목표로 하는 것 외에는 없다.

위험을 무릅스고 도박을 해서 우연히 성공한 경우에도 그외의 세계 대부분에서는 파멸에 직면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지지 않도록 높은 확률로 이기는 방식으로 해나가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

양자역학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직접 볼 수 없는 미시적인 세계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우리가 감지하는 현실은 그 미시적인 세계가 겹겹으로 포개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감각으로는 현실과 양자역학의 세계가 너무 동떨어져 있다.

이 간격을 메우는 것이 복잡계다. 복잡계란 다양한 요소가 얽히고설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그 결과로 뜻하지 않은 행동이 나타나는 구조를 가리킨다. 주식시장도, 정치 상황도, 날씨도, 생명 현상도 모두 복잡계다.

복잡계에서는 어떤 네트워크나 시스템이 법칙이나 질서를 지닌 듯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특징이 있다. 생명도 그렇고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어떤 기업의 행동은 다른 기업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고, 어떤 투자자의 행동은 다른 투자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시장 전체를 보면 하나의 생물이 꿈틀대듯이 주가가 움직인다.

나비효과의 특징은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반드시 폭풍우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비의 날개짓은 대부분 눈에 보이는 영향을 남기지 않는다. 그리고 나비의 날개짓만이 폭풍우의 원인인 것도 아니다. 날개짓을 아무리 관측해도 폭풍우가 일어나는지 어떤지 예측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카오스에 의한 이런 증폭 작용과 그 영향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 나비효과와 유사한 예는 세상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필요 이상으로 상승하고 그 반동으로 급격하게 폭락하는 것도, 우체국 민영화나 구조 개혁에 국민이 열광하다가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완전히 반대로 돌아서는 것도 일종의 카오스적 메커니즘이 배경에 있다. 2008년 이후의 금융위기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국소적 시장에서 일어난 문제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대되었고 뜻하지 않은 곳까지 예상치 못한 규모로 영향을 미쳤다. 나중에 원인을 찾는 일은 가능하더라도 사전에 이와 같은 사태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복잡계는 우연의 영향을 크게 증폭하는 기능을 지닌다. 그래서 복잡한 사회 현상에서 불확실성의 효과를 무시하면 예기치 못한 함정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은 소멸되지 않았다. 대멸종이라고 불리는 파멸적인 사태가 몇 번 일어났지만, 그 때마다 몇몇 종이 살아남았고 한층 세련된 고등 생물로 진화하며 발전해왔다.

생명 진화의 기본 메커니즘은 돌연번이와 자연도태다. 사실 단순한 돌연변이와 자연도태만으로 생명 진화를 설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화론은 다양하게 개선되어왔다. 다만 진화의 원동력으로 돌연변이와 자연도태가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돌연변이는 그 자체가 우연의 산물이다. 생명은 좋은 변이만을 선택해오지 않았다. 변이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으며 대부분은 어느 쪽도 아니다. 단순한 우연의 축적이다. 우연이 겹겹이 포개지면서 일어난 변화가 자연도태로 걸러진다. 자연도태는 궁극의 결과주의다.

방향성이 없는 돌연변이와 변덕스러운 자연도태에 의해 생명의 다양성이 유지되어왔다. 생명이 수많은 위기를 극복한 것은 이 다양성 때문이다.

강하고 뛰어난 생물만 존재했다면 생명은 현재까지 이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불확실성은 누구에게도 지배되지 않는다. 아무리 강하고 탁월한 생물이라도 지구 환경 변화로 인해 아주 간단하게 사멸할 수 있다. 하지만 다종다양한 생명을 모조리 소멸시키는 이변은 적어도 지금까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공각기동대. 쿠사나기와 인형사의 대화

고도의 지성을 갖춘 인간조차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우연과 시행착오가 만들어낸 것이다. 시행착오에 의한, 계획 없는 진보. 이것이야말로 진화의 본질이다. 그리고 불확실한 세계를 헤쳐나가는 확률적 사고의 본질이기도 하다.

불확실성이 초래하는 불가사의한 효과 때문에 우리는 확실한 세계라면 필요 없을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춰야 한다. 바로 확률적 사고다.

우선 첫째, 불확실성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사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상, 무엇이 올바른 방식인지 미리 알 수 없다. 뜻밖의 사태가 일어나면 예상치 못했던 방법으로 헤쳐나가야 한다. 미래에 일어날 일의 대처법을 미리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불확실성의 성질에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바로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다양한 관점, 다양한 기법, 다양한 재능과 같은 다양성이 예측할 수 없는 사태에 대응하는 힘이다.

둘째,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실패를 피할 수 없다. 불확실성은 인과관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올바른 방식이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뛰어난 실력이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인과관계는 확률적으로만 나타나며, 올바른 방식과 시력은 확률이라는 필터를 통해 결과에 영향을 준다. 요컨대 실패를 완전하게 피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는 우연을 방법에 따라 통제할 수 있다는 골치 아픈 환상이 있다. 우연에 의해 실패했어도 실패를 악으로 단정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우연을 통제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우연이 우연인 이상, 우연을 통제하려고 발버둥치기보다 우연의 결과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셋째, 불확실한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확률을 동반한다. 올바른 방식으로 올바른 결과가 나오는 것도, 실력이 있는 쪽이 이기는 것도 모두 확률적인 현상이다. 늘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단기간으로 보면 확률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일이 왕왕 있다. 확률은 횟수가 거듭되어야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확률은 단기적인 일보다 장기적인 일에서 안정되게 나타난다. 따라서 불확실한 세계에서는 장기적인 관점을 지녀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연은 통제할 수 없다.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확률뿐이다. 성공 확률이나 승리 확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다만 그 확률이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이상, 역시 장기적 관점에서 사물을 보아야 한다.

보통 기간이 길어질수록 불확실성이 증가한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확률은 기간이 길어야 의미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많은 우연이 생겨나 영향을 상쇄하기 때문에 불확실성의 안개가 차츰 걷힌다.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진실은 시간을 오래 두었을 때 비로소 모습을 나타낸다.

색다른 시각이 난관을 돌파하는 열쇠가 되고 위기 대응 능력을 높이는 것은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시각이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다른 시각이 꼭 올바른 것은 아니다. 설령 올바르지 않더라도 다른 시각에는 다르다는 이점이 있다. 다른 시각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가치가 있다.

다른 시각이 존재하는 다양성이 있는 집단에서 다른 의견을 신중하게 검토한 결과, 결국 그 의견을 채용하지 않았다고 하자. 다른 시각이 있든 없든 결론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같은 결론이더라도 다른 각도에서 검토한 결과 나온 결론과 그런 과정이 없이 나온 결론은 본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난다.

단 한 번이라도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한 결론은 그렇지 않은 결론에 비해 뜻밖의 사태를 배제하지 않고 유연한 대응력을 갖추게 된다.

조직에는 원래 다른 의견을 배제하는 기능이 구비되어 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소속되 사회나 조직의 다른 구성원에게 동조하고자 하는 법이다. 동시에 동조를 거부하는 이가 있으면 배제하거나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조직은 방치하면 반드시 균일해지고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사회심리학자인 어빙 재니스는 동질성이 높은 집단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놓이면 '집단사고'라고 불리는 상태가 나타나며, 때로는 위험을 돌보지 않고 무모하게 행동하거나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고 한다.

집단사고가 나타나면 누구나 다른 의견을 내놓기 어려워지고, 다른 의견을 배제하고 묵살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단결심이나 충성심을 내세우며, 외부 정보가 차단된다.

실제로는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올바르지 않은지를 미리 알 수 없다. 그래서 올바른 방식인데 우연히 실패한 것인지, 잘못된 방식으로 했기에 실패한 것인지 판별하기가 어렵다. 설사 그렇더라도 올바른 방식인데 실패했다면 언젠가 성공을 가져다줄테고, 잘못된 방식으로 실패했다면 잘못된 부분을 반성하면서 한층 위협적인 실패의 싹을 없앨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실패를 악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실수에서 배우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이는 실패를 용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실패의 원인이 불확실성이 아니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불확실성 세계에서는 아무리 올바르고 뛰어난 방식이라도 실패할 수 있다. 요컨대 올바르고 뛰어난 방식을 추구하는 행위는 나쁜 것으로 취습받는 실패를 막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실패를 막는 최선의 방법은 도전하지 않고 시도 자체를 그만두는 것이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실패를 책망하는 조직에서는 누구나 무의식중에 시행착오를 두려워하고 피하게 된다. 도전 정신이 점점 사라져보리는 것이다.

성공의 싹은 일반적으로 시행착오를 통해 자라난다. 처음부터 완벽한 아이디어나 기획은 없다. 시행착오가 없으면 미래에 성공의 싹이 될 만한 것도 시들게 되고 가능성이 사라진다. 그런 조직에서는 성공의 씨앗과 더불어 실패의 씨앗도 뿌리는 새로운 발상이나 변화가 기피되고, 변하지 않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성장해서 규모가 커지면 성장의 딜레마에 부딪힌다. 부서가 많아지고 직원이 늘어나면 아무래도 획일적인 관리를 도입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관리를 하기 위해 전문가를 두고 이윽고 관리 자체가 자기 목적화해서 한층 강화 된다.

어떤 실패도 욕납하지 않는 가치관은 성공을 무조건 강조하는 가치관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불확실한 세계에서는 실패와 마찬가지로 성공도 절대시해서는 안되며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오히려 진정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은 실패보다 성공이다.

일반적으로 살마이 무슨 일을 할 때 처음부터 대담한 경우는 적다. 처음에는 상황을 보면서 해나가고 잘 풀리면 점점 간이 커진다. 그래서 처음 실패는 비교적 규모가 작고 치명적이지 않다. 그런데 성공해서 대담해진 뒤에 실패하면 대담했던 것만큼 영향이 크고 때로는 치명적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치명적이고 큰 실패를 초래하는 것은 과거의 성공이다.

다케다 신겐은 60~70퍼센트의 승리가 바람직하고 그 이상 승리하면 교만해진다며 스스로를 단속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모자라는 것이 지나친 것보다 낫다" 라는 말을 남겼다.

파멸을 피하고 오래도록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발상이 필요할까?

작은 실패를 한다. - 작은 실패는 해두어야 한다.

작은 실패는 큰 실패가 도사리고 있다는 경고와 같다. 작은 실패를 했을 때 다양하게 분석하고 신중하게 대책을 세우면 큰 실패를 겪을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도박을 피하고 이길 싸움을 한다.

명장들은 이길 확률이 높은 싸움을 즐겼다. 그럼에도 절대적인 승리란 없다. 만전에 만전을 기해도 여전히 불안해서 어쩔 수가 없다. 이런 정신상태라면 항상 마음이 불안할 것 같은데, 인텔이 그로브는 그런 편집광적 불안증을 지닌 경영자만이 진정한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한다. 불확실한 세계에서는 그 정도가 되어야 치명적인 큰 실패를 막을 수 있다.

위기를 관리한다

현대의 기업 경영에서 위기 관리가 필수 기법으로 대두된 것도 파멸적인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다. 위기 관리는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치명적인 실패를 막기 위해서는 때로는 이익을 희생해야 한다. 눈앞의 이익보다 오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발상이 위기 관리의 본질이다.

위기 관리의 진정한 과제는 얼마나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하는 가가 아니다.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해도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눈앞의 이익도, 체면도, 재산의 일부도 잃을 각오를 해야만 한다.

큰 수의 법칙과 시간의 효과에 의해 진실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차 명료해지며, 올바른 방식과 그렇지 않은 방식의 차이가 서서히 커진다. 단기간의 결과는 실력보다 우연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장기적인 성공은 우연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어느 시대에도 시대의 영웅으로 불리는 인물이 나타난다. 여기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천재적이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도 있지만, 겉칠이 벗겨지면 어떻게 이런 사람이 포함되었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인물도 있다. 단, 공통적인 것은 위험을 돌보지 않고 도전해 마침내 기세를 타는 유형의 인물이 많다는 점이다.

단기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대부분 우연에 의해 생겨난다. 단, 성공이 우연의 산물이더라도 큰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대담해야 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대담하게 행동하고 일단 성공을 손에 쥐면 기세를 타고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는 것이다.

단기간의 대성공만큼 사람을 우쭐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이 만능이라고 굳게 믿게 되고, 점점 간이 커지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둔감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화려하게 성공한 사람의 주변에는 가지각색의 인간이 접근한다. 그들은 성공한 사람을 추어올리고 군침 도는 얘기나 매력적인 아이디어를 들고 온다. 단기적으로 돈을 크게 벌수 있는 거래, 주위의 주목을 모을 듯한 기획, 시류를 탄 제안...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큰일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 환경에서 냉철하게 장기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결국 성공한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길로 깊숙이 들어서고 만다.

하늘 높이 솟아오르다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운에 따른 성공보다 조금씩 착실하게 성공을 쌓아가는 편이 진정한 성공으로 이어진다. 단기적인 성공은 불확실성과 인간 심리가 만들어낸 환상과 같고, 진정한 성공은 불확실성의 안개가 걷히는 장기에 걸쳐 나타난다.

장기적인 성공은 단기적인 성공의 대척점에 잇다. 천재나 카리스마적 존재도 환경이 변하면 신통력이 떨어지고 언젠가 치명적인 잘못을 범하게 된다. 그래서 장기적인 성공은 천재성이나 카리스마에 의존하지 않는다. 시간과 품을 들이고 때로는 비효율적이어도 독선을 피하고 중지를 모으기 위해 부심한다.

또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에서 배우고, 자신을 절대시하지 않고, 약점을 인정하고, 경쟁자를 과소평가하지 않고, 성공을 뽐내지 않고 성찰한다. 대담성이 물론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파멸적인 사태를 초래하지 않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세심하다.

장기적인 성공은 단기적인 성공의 합이 아니다. 처음부터 장기적으로 성공할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객관적인 사실에는 편향이 없다. 물론 불확실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우연이 개입하기에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확실하지 않다. 객관적 사실에는 편향이 없더라도 그것을 해석할 때는 편향이 작용한다. 그래도 객관적인 자료는 사물을 객관적으로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 도움이 된다.

확률적 사고에는 통계적 자료가 중시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절대 확실한 것은 없다. 통계적 기법에도 함정이 있다. 편향을 피하기 위한 통계적 기법이지만 여기에조차 편향이 작용한다.

사람은 타인의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타인의 능력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도 없다. 타인의 능력을 한눈에 알아본다는 사람은 수두룩하지만 대부분은 휴리스틱이며 일종의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천재도 카리스마도 불확실성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미래를 예언하는 것도, 처음부터 올바른 답을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시행착오에 의한, 계획이 없는 진보야말로 불확실한 세계를 살아나가는 단 하나의 방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