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보면서 무서웠던 점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무서웠던 건 1700년부터 장기적 평균으로 성장률은 1.6% 이고 이 중 절반은 인구 증가 효과에 따른 것이었다.(물론 인플레이션을 뺀 실질성장률이다.)

그나마도 세계대전으로 인한 강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높아진 것이고 1700년까지는 거의 성장률 제로의 시대였다. 4~5%의 성장을 해냈고 그래서 부의 양극화가 급격히 줄어든 20세기가 특이한 시대였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의 인구 성장은 멈췄고 우리나라는 특히 인구가 앞으로 감소할 것이 정해졌다면 성장률은 더 낮아질 것인데, 그렇게 되면 성장이 멈춘 사회에서 자본수익률과 부의 세습은 앞으로 더 심화되고 중요해질 것이다.


그게 뭐가 무섭냐고? 다시 말해 본인의 노력으로 일어서는 일은 불가능해진다는 거다. 세습자본과 자산에서 오는 배당이 중요해진다는 얘기다.


1834년 프랑스 소설 [고리오 영감]을 보면 유혹의 뱀같은 보트랭이 주인공 라스타냐크를 유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핵심은 바로 가난한 귀족출신 법학생인 라스타냐크에게 공부,재능,노력을 통해 성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본질적으로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러고는 라스티냐크가 유산보다 직업적 전문성이 더 중요한 법률이나 의학 분야의 공부를 계속할 겨우 어떤 직업들이 기다리고 있는 상세히 일러주고, 특히 그 각각의 직업에서 기대할 수 잇는 연봉에 대해 정확하게 말해준다 .


결론은 분명했다. 라스티냐크가 인생의 많은 것을 포기해가며 학과 수석을 차지하고 승승장구한 끝에 성공한 법률가가 된다 하더라도 그는 보통 수준밖에 안되는 소득으로 그렇저럭 살아가면서 진짜 부자가 되겠다는 희망은 아예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에 비해 보트랭이 라스티냐크에게 사회적 성공을 위해 제안한 전략은 훨씬 더 효과적이다. 만약 라스티냐크가 같은 하숙집에 살고 있으며 수줍음 많고 오로지 그만 바라보는 빅토린 양과 결혼한다면 당장 100만 프랑의 재산을 손에 쥘 것이다. 그러면 그는 고작 스무 살에 매년 5만 프랑의 이자소득을 얻게 된다.


섬칫하지 않은가? 어찌보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그나마 소득을 자본으로 치환해낼 수 있는 마지막 시대이고 내 아들과 손자가 살게 될 시대는 그것이 더 어려워지는 시대이지 않을까?


내가 더 빡세게 해내어야 내 아들과 손자도 좌절감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