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투자자들에 비해 좀 둔한 편이다. 감정의 기복 같은 것도 그렇고 생활패턴이라든가 등등.. 꼭 투자에서만 그런게 아닌게 룸메형이 "너는 기복이 없는 것 같아. 되게 신기하네. " 라고 했을 정도니까. 시험 기간이든 아니든 패턴이 딱히 달라지지 않아서 그렇게 이야기한 것 같다.



음.. 생각해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이다. 난 사실 감정기복이 꽤나 심한 편이다. 좀 예민한 편이어서 사소한 일에도 스트레스를 잘 받는다. 어렸을 적엔 이걸 잘 컨트롤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기분이 좀 안 좋을 땐 부모님께 퉁명스럽게 대꾸하기도 하고 자꾸 화를 돋우는 동생을 많이 때리기도 했다(미안하다 동생아.. 근데 너가 맞을 짓을 많이 하기도 했어..).



나는 내로남불을 정말 싫어하는데, 그래서인지 커가면서 남들에게 꼴보기 싫은 모습들이 보이면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나한테서 그런 모습이 나오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그 중 하나가 자기 기분 나쁘면 주위 사람들에게 화풀이하고 신경질부리는 짓이다. 다행히도(?) 내 주위엔 온통 그런 사람들 뿐이었다. 자기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고 대체 왜 나한테 신경질이야...? 몹시 불쾌했기 때문에 나는 절대 그들과 똑같이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결과 하루에도 여러 번 오르내리는 감정을 남들한테 내비치지 않도록,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딱딱하고 감정변화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또 하나는 투자를 하며 감정이란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점점 모든 일을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감정이라는 요소를 배제하기 위해 삶을 최대한 단순화시켜왔다. 어쩌다보니 얘기가 너무 옆길로 새서 다시 돌아가보면...



그래서 나는 투자를 할 때도 질투심이나 부러움, FOMO 등등의 감정을 잘 느끼지 않는다. 작년 2차전지 급등랠리가 있었던 7월같은 경우에도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차피 내 영역이 아니니까... 내가 잘 모르는 주식들이 오르든, 거품이든...



그런데 이번 한, 두 달은 좀 달랐던 것 같다. 힘들고 배아프고 후회스러웠다. 밥을 다 차려놓고 정작 하나도 먹지 못한 것이다. 선진뷰티사이언스와 LS전선이 바로 내게 그 고통을 준 주식들이다.



<선진뷰티사이언스, LS전선 일봉차트>





선진뷰티사이언스는 3월에 발굴하여 공부를 했다.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같은 정통강호들이 무너지고 브이티, 아이패밀리SC같은 인디브랜드들이 치고나가는 모습과 AI 산업의 청바지업체인 엔비디아의 폭풍랠리를 보면서, 그리고 B2C 기업 투자에 영 소질이 없는 내 성향을 보면서 화장품 원료 기업에 투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브랜드가 잘 나갈지, 어디가 유행을 타는지와 관련없이 여러 브랜드에 원료를 납품할 수 있는 기업.. 중 하나가 바로 선진뷰티사이언스였던 것이다.



위의 사진에서 보이듯이 지지선까지 그려두었다. 3월에 그려둔 선이라 앞선 저점들을 보고 7,500원이 강한 지지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3월 중순에 정말로 한 차례 7,500원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이게 싼 가격은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시총이 900억 정도 되었고 PER이 14배쯤 됐으니까. 굳이 무리해서 지금 가격에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시 8천원을 넘어가는 주가를 보면서 한 번만 더 7,500원 가면 진짜 사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됐을까? 정말로 7,500원이 다시 찾아왔다. 그런데 4월 중순 당시는 시장 분위기도 꽤나 안 좋았을 때이다. 총선 앞뒤로 주가들이 꽤나 빠졌을 때니까. '아 뭔가 아까운데? 조금 더 빠져줘야 살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그 뒤로 더블에 가까운 상승랠리가 이어졌다. 화장품 테마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보통 공부하면서 매력적인 주식으로 보이면 소량은 사두는 편인데 이렇게 한 주도 사지 못한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LS전선의 경우는 4월 초중순에 발견했다. 변압기 관련 주식의 퍼포먼스가 정말 미친듯이 좋았는데 내가 사기에는 너무 늦어 그 다음 타자로 전선주식과 전력발전주식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비록 K-OTC 시장에 속해있긴 했지만 LS전선이 국내 전선주 중에는 가장 우량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가장 실적이 좋음에도 시가총액은 피어그룹 대비 낮았다. 아무래도 장외시장에 있어 그렇겠지만 나같은 소액투자자는 유동성 문제도 딱히 없기 때문에 거래량이 적고 따로 양도세를 내야한다는 점 정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밸류가 발목을 잡았다. '그래, 피어그룹보다는 제일 싸. 근데 절대적 가치로도 싼가?' 여기에 쉽게 YES 라는 대답을 하지 못했고 결국 한 주도 사지 못했다. 매일매일 급등하는 것을 그저 지켜만 봐야했다.



두 기업을 충분히 공부했음에도 놓친 것은 공통적으로 비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싼 주식을 잡고자 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밸류에 기존의 틀을 갖다 대었다는 점은 분명 잘못한 일이다. 고성장주를 저성장주의 멀티플 기준으로 바라보면 언제나 비싸보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느정도는 경험부족에 기인한 것 같고, 사고의 틀을 조금은 바꿀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절대적으로 멀티플이 낮은 것만이 싼 것은 아니니까... 훌륭한 기업을 적당한 가격에 사는 것과 그저 그런 기업을 훌륭한 가격에 사는 것. 반드시 무엇 하나만 정답인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둘의 케이스를 제대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