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가 지난해 연결 기준 46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매출은 전년 대비 0.5% 증가한 29조4722억원이지만 당기순손실이 1875억원으로 2011년 법인 설립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냈습니다. 적자는 계열 회사들의 부진 때문인데요. 이마트가 최대주주로 42.7% 지분을 가진 신세계건설은 공사 원가 상승,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분양 실적 부진으로 전년 대비 1757억원 늘어난 187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이 밖에 SSG닷컴(1030억원 손실), G마켓(321억원 손실), 이마트24(230억원 손실)도 적자를 냈습니다. 다만 G마켓 영업손실은 전년 대비 적자폭을 절반 이상 줄였구요.
이마트는 지난 20일 기준 전 거래일 대비 1.45% 내린 7만50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지난해 2월 23일 11만9900원을 찍은 후 내리막을 타고 있는거죠. 이마트 주가는 지난 2011년 신세계에서 분할할 때 24만원에서 출발했는데 이후 2018년에는 32만3000원까지 올랐지만, 지난 1월 19일 6만7200원으로 저점을 찍었습니다. 소폭 상승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고점 대비 4분의 1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지난해 첫 영업적자를 낸 이마트에 대해 증권사들은 혹독한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줄줄이 매도 리포트를 내고 있거든요. NH투자증권, IBK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등은 이마트의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변경하는 리포트를 발표했습니다. 증권사가 ‘매도’ 리포트를 거의 내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립’은 사실상 ‘매도’ 의견이라는 것이 업계의 이야기입니다. 이마트는 자회사인 신세계건설의 적자가 전체 실적을 끌어내렸다고 설명했지만, 본업인 유통업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죠. 이마트의 별도 기준 지난해 매출은 16조5500억원으로 전년(16조9020억원) 대비 2.1% 줄어들었습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2589억원에서 1880억원으로 27.4% 줄었고, 순이익은 전년(1조507억원)보다 75.4% 감소한 2588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 2분기에도 이마트는 적자를 냈습니다. 지난해 2분기 별도 기준 영업손실 258억원, 순손실 790억원을 기록했거든요.
이마트는 실적 반등을 위해 부실 사업 정리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마트는 사업부문을 통폐합하거나 정리하고 점포 토지·건물 등 부동산을 매각하는 등 적극적인 자산유동화 전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신세계엘앤비(L&B) 위스키 사업을 잠정 중단했습니다. 신세계엘앤비는 2008년 설립된 이마트 자회사입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와인값 거품을 빼기 위한 목적으로 직접 설립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었죠. 신세계엘앤비는 이마트와 이마트24 등에 와인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신세계엘앤비에 따르면 작년 말 조직개편 때 위스키 신사업 전담조직 W비즈니스를 해체했다고 합니다. 당장 수익을 내기 힘든 사업은 지양하라는 조직의 방향성에 맞게 상품화하고 이익을 내는데 비교적 오래 걸리는 K-위스키 사업을 중단 한 것인데요.
작년 12월말에 정용진 부회장의 2024년 신년사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부분이 바로 "수익성" 입니다. 선제적이고 과감한 경영진단을 통해 핵심 사업의 수익 기반이 충분히 견고한지를 점검하고 미래 신사업 진출 역시 수익성을 중심에 두고 판단해달라고 언급하기도 했죠. 정 부회장이 신년사에서 수익성에 대해 언급한 것은 2020년 이후 3년만입니다.
기업 활동 본질은 사업성과를 통해 수익 구조를 안정화하고
이를 재투자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것,
2024년에는 경영 의사 결정에 수익성이 중심이 돼야 한다
정용진 부회장
그렇지만 신세계엘앤비가 위스키 사업 자체를 중단 한 것은 아닙니다. 수입 위스키 사업은 잘하고 있고 당사 유통채널인 와인앤모어에서 판매도 활발하죠. 정 부회장이 애정을 드러내는 미국 나파밸리 와이너리 인수 등으로 이슈가 됐던 와인 사업도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하지만 수치적으로는 매우 뼈아픕니다. 신세계엘앤비는 작년 3분기 말 기준 10억4200만원 순손실을 냈는데, 엔데믹 이후 와인 수요 감소와 고물가 여파 등으로 인해 시장 규모가 축소됐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2008년 설립된 신세계엘앤비는 독보적인 와인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전 세계 유명 와인을 국내에 다수 선보이며 주요 유통사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와인앤모어는 업계 최대 주류 전문 매장 역할을 하며 수도권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했구요.
와인이 지지부진한 사이에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게 바로 위스키입니다. 지난해 위스키 수입량은 3만586톤으로 전년 대비 13.1% 증가했는데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위스키 수입량이 3만톤 이상으로 집계된 건 이번이 처음이죠. 반면 같은 기간 위스키 수출량은 193톤에 불과합니다. K위스키가 고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국내 주세법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68년부터 위스키나 소주 같은 증류주에 출고가가 높을수록 많은 세금을 책정하는 '종가세'를 적용하고 있거든요. 국내 위스키의 경우 병입과 동시에 72%의 세금이 붙는데, 단순 계산으로 제조 원가가 1만원이면 7500원이 세금으로 더해지는 겁니다. 게다가 위스키는 다른 주류 대비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오크통부터 시작해 고가의 증류기, 이 모든 걸 수용할 증류시설까지 갖춰야 하기 때문이죠. 결과적으로 K위스키는 수익성을 전면에 내세운 이마트가 계속 이어갈 수 없었기에 와인앤모어가 손을 떼게 되었습니다.
대신 위스키 유통에 더욱 힘을 주고 있습니다. 제 지난해 와인앤모어에서 판매된 와인 매출은 줄어들었지만 위스키는 전년 대비 2.2% 늘어났거든요. 동시에 브랜드 이미지도 변경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2일, 송석현 신세계엘앤비 대표는 국내 1위 와인유통사 와인앤모어를 와인 중심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한다는 비전을 선포했습니다. 대표적인 움직임은 채널 확대입니다. 기존의 와인앤모어에서만 판매하던 와인·주류 제품을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의 신규 유통채널에도 입점시켜서 와인앤모어의 제품 판로를 대폭 확장할 계획이거든요. 제품 라인업도 확장됩니다. 라이프 브랜드에 걸맞게 와인·주류는 물론 와인성분을 함유한 고기능성 화장품 등 다양한 고객체험 라인이 포트폴리오에 추가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번 설 명절에 일정 금액 이상의 와인앤모어 구매 고객에게 '청룡 에디션 패키지'를 제공했는데요. 용이 와인잔을 들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고급스러운 포장을 더한 청룡 에디션 패키지를 시작으로 와인앤모어의 라이프 브랜드 전환을 가속화한다는 방침입니다.
이마트에서 사실 가장 아픈 손가락은 신세계건설입니다. 이마트 실적 하락의 주요인으로 작용한 신세계건설 일부 사업도 정리되고 있는데요. 지난 14일 작년 실적 발표와 함께 신세계건설 레저사업 부문을 조선호텔앤리조트에 매각했다고 공시했습니다. 신세계건설과 조선호텔앤리조트는 14일 각각 이사회를 열어 신세계건설의 레저사업 부문 일체에 대한 영업양수도 계약을 결의했는데요. 양수도 대상이 된 신세계건설의 레저사업 부문은 경기 여주시 자유 씨씨(CC·18홀), 경기 여주시 트리니티클럽(18홀), 아쿠아필드(하남·고양·안성 스타필드 내 3곳), 조경사업 등입니다. 매각 대금은 1819억6200만원으로 해당 금액은 금융권 등을 통해 조달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신세계건설은 이번 매각을 통해 부채비율을 큰 폭으로 줄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레저사업 부문 매각을 통해 약 300억원의 자본이 늘어나는 효과와 함께 부채로 인식되는 약 2700억원 규모의 골프장 회원 입회금도 소멸하기 때문이죠. 지난해말 이 회사의 부채비율(별도기준)은 953%로, 이번 레저사업 매각과 함께 지난달 말 절차가 마무리된 영랑호리조트 합병이 반영되면 400%대까지 줄어들게 됩니다. 신세계건설은 레저산업부문 매각을 통해 재무 구조를 대폭 개선하고 이후 본업인 건설업 분야에서 체질 개선 작업을 본격화할 방침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앞서 신세계건설은 지난달 19일에도 유동성 확보를 위해 신세계 그룹의 아이티(IT)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신세계아이앤씨와 금융기관을 통해 2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한 바 있습니다.
신세계건설은 공사 원가 상승,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분양실적 부진 등으로 전년도와 비교해서 1757억원이 늘어난 187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신세계건설은 사업지의 절반 정도가 대구에 몰려있는데, 대구 지역 주요 사업장 3곳의 분양률은 약 20% 수준에 머물러 있어 공사비 회수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신세계건설은 주택 사업 미분양 리스크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요. 신세계건설은 지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아파트·오피스텔·생활형 숙박시설 등 총 15개 단지를 분양했는데 이 중 8곳에서 미분양이 났습니다. 특히 대구 수성구 ‘빌리브 헤리티지’ 아파트는 지난 2022년 일반분양에서 총 146가구 가운데 25가구만 계약되며 분양률이 10%대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지난해 8월 입주가 시작됐지만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 상태가 반 년 넘게 이어지며 결국 공매로 넘어간 상태이죠.
이외에도 ‘빌리브 라디체’, ‘빌리브 루센트’ 아파트와 ‘빌리브 에이센트’와 ‘빌리브 명지 듀클래스’ 오피스텔도 분양률이 50%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빌리브 센트하이(55.2%), ‘빌리브 리버런트(67.8%)’ 등도 분양한 지 2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도 미분양 현장으로 남아있죠. 이렇게 미분양이 속출하자 신세계건설의 신규 공급은 사라졌습니다. 지난해는 ‘빌리브 에이센트’ 오피스텔 분양 1건이 전부였고 올해는 분양 계획조차 없는 상황입니다. 현재 신세계건설이 분양을 앞둔 단지는 ‘천안 백석동 공동주택 신축공사’ 등이 있습니다. 참고로 이마트는 신세계건설의 지분 42.7%를 들고 있으며 최대주주인 상태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마트의 부진을 신세계건설 탓으로만 돌릴수는 없습니다. 별도기준으로 보면 이마트의 2023년 영업이익은 1,880억원인데요. 2022년 영업이익 2,589억원과 비교해도 줄었고, 영업이익률 자체도 1.1%로 1년 전보다 0.4%포인트 줄었습니다. 이마트의 실적은 우리가 알고있는 할인점 이마트와 트레이더스 등으로 구성이 되는데, 할인점 부문의 매출이 4분기에 전년비 3.8% 줄었고, 영업이익도 감소했습니다. 요새 저PBR이라는 말이 유행이죠. 이마트는 저PBR주 가운데서도 PBR이 낮은 종목입니다. 시가총액이 자산의 10분의 2 수준이거든요. 최근 저PBR주가 각광을 받는 가운데에도 이마트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모습인것도 모자라 도리어 부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죠. 저PBR주 매력을 오롯이 발휘하려면 실적을 뚜렷하게 개선시켜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한 전문가에 따르면 이마트 주가는 PBR 0.2배 미만으로 코스피200 기업 중 가장 낮지만 밸류에이션 및 할인점 의무휴업 규제 완화 등의 변수를 고려할 때 추가적인 주가 하락이 가능하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니 실적 개선이 선행되기 전까지는 보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죠.
이마트는 올해 오프라인 본업 경쟁력 회복과 온라인 자회사의 비효율 제거, 수익구조 안정화를 통해 실적을 개선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이마트와 이마트에브리데이, 이마트24 등 3사 기능 통합을 통한 원가 경쟁력 확보와 물류 효율화로 주요 상품을 상시 최저가 수준으로 운영해 가격 리더십을 주도하고 집객 선순환 시너지를 도모한다는 계획이구요. 첫 적자라는 아픔을 맛 본 이마트가 올해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한걸음 한걸음이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