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모건은 한국 이커머스 시장이 2026년에 300조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300조원대 시장이라니. 사업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침 흘릴만한 큰 시장이죠. 중국 기업도 이 싸움에 가세했습니다. 지난 2018년 한국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알리익스프레스는 지난해 인기 배우 마동석을 모델로 플랫폼 마케팅을 본격화하며 인지도를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한국상품 전문관인 케이베뉴(K-베뉴)를 개설해 한국 셀러를 끌어모으기 시작했고 상품 영역도 가공·신선식품으로 확대하면서 한국 시장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기준 알리익스프레스 앱 월간 사용자 수는 818만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는데요. 이 수치는 지난해 2월(355만명)과 비교하면 130% 급증한 셈입니다. 이커머스 전체 이용자 수 순위에서도 11번가(736만명)를 제치고 2위까지 치고 올라와 쿠팡(3천10만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 한국 서비스를 개시한 중국계 이커머스 테무도 7개월 만에 581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며 전체 이용자 순위 4위에 안착했구요. 지금 대한민국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C-커머스의 공습'이 거세다며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죠. 특히 알리익스프레스의 모기업인 알리바바그룹은 물류센터 설립 등을 포함해 3년간 11억달러(약 1조4천471억원) 규모의 한국 투자 계획을 세운 것으로 드러나면서 토종 이커머스 기업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국내 ‘공습’ 이후 중국 직접구매 규모가 70%가량 늘어났다는 점입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온 전자상거래 물품 건수는 8881만5000건으로 전년(5215만4000건)보다 70.3% 늘었습니다. 작년 통관된 전체 전자상거래 물품이 1억3144만건으로 전년 대비 36.7% 증가한 점을 고려하면, 중국발 직구 규모는 전체 증가세보다 두배이상 가파르게 늘어난 셈이죠. 중국발 직구 규모는 2020년 2748만3000건에서 2021년 4395만4000건, 2022년 5215만4000건 등으로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전체 직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43%, 50%, 54%에 달했고, 알리와 테무 공습이 시작된 2023년 들어서는 68%로 더욱 확대됐습니다. 금액으로 보면 지난해 중국발 직구 금액은 23억5900만달러(3조1000억원)로 전년(14억8800만달러)보다 58.5% 증가했습니다. 금액 기준 전체 해외 직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1%에서 45%로 커지며 작년에는 미국(14억5300만달러) 등을 제치고 직구 국가 1위에 올라섰구요. 중국 직구의 급증은 초저가 상품을 앞세운 알리익스프레스와 알리 등의 국내 시장 공세과 큰 연관이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시각입니다.
알리와 테무가 국내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누가 뭐래도 가성비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가격이 저렴해서인데요. 동일한 제품 가격이 국내와 비교해 2배 이상 저렴하고, 1000원짜리 제품도 무료배송 해주니 소비자들이 현혹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정말 말도 안되지만 한국 이커머스에서 팔리는 동일한 제품의 가격이 최대 10배 이상 저렴한 경우도 많다고 하죠. 도대체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은 구독자 분들이 많이 계실텐데요. 가격을 저렇게 낮춰서 물건을 팔수 있는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요?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은 바로 재고가 많아서 떨이해야 할 때입니다. 경제의 기본 원리잖아요. 물건이 많으면 가격은 내려간다. 근데 정말 이런 상황이라고? 맞습니다. 이런 상황입니다.
중국은 현재 거의 전체 산업이 과잉 생산 상태로 쌓여 있는 재고가 상당히 많은 상태입니다. 내수 경기 부진으로 재고가 쌓여있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으로 땡처리 하는겁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디플레이션과 위안화 가치가 하락했고, 이에 중국산 제품의 수출가격지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아울러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은 해외 직접구매 방식이라 통관·관세 면제와 KC인증 의무 면제 등의 혜택을 받고 있죠.
아니 재고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배달비가 많이 들텐데 이게 가능한 가격인건지 다시 의구심이 생기는 분들이 계실겁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는 자국에 유리한 국제연합 산하기구 만국우편연합(UPU)의 우편체계를 이용한 우편배송서비스를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UPU 우편체계가 중국에 유리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우편으로 보내면 배송기간이 길기는 하지만 거의 무료로 보낼 수 있는거죠. UPU는 UN 산하 국제 우편 업무를 담당하는 기구입니다. 보편적 우편요금으로 회원국간 자유롭게 우편물을 거래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는데 최근 해외 직구 등 국경 없는 전자상거래 시장이 커지면서 국가간 형평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죠. UPU 협약은 국영이든 민영이든 각 나라 우정기관간 국제 우편물 거래시 적용됩니다. 발송 우체국은 목적지 우체국까지 물품을 운송하는 비용만 부담하고, 실제 목적지까지의 배송비용은 도착국 우체국이 책임지는 겁니다.
오잉? 이렇게 되면 배달국 우체국이 손해를 볼 것 같은데? 네 맞습니다. 그래서 ‘배달국 취급비’ 라는 항목으로 상대국 우체국의 손실비용을 보전해줍니다. 거래 당사국간 주기적으로 발송·도착량에 따라 상호 정산하도록 되어 있죠. 문제는 정산비율이 서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우편발전지수(PDI)에 따라 회원국을 4가지 등급으로 구분해 정산 요율을 차등 적용하고 있는데 우편 발전지수가 높은 미국과 호주, 일본, 프랑스는 1그룹, 우리나라는 헝가리, 체코와 함께 2그룹, 중국, 브라질, 멕시코, 태국 등은 3그룹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3그룹에 속한 중국의 경우 1그룹에 속한 나라들보다 상대적으로 싸게 국제 우편물을 발송할 수 있는 겁니다. 이게 바로 위에서 나온 국가간 형평성 문제이죠.
UPU를 이용한 국제 우편 배송 외에도 자사표준탁송, 국제탁송 등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컨셉은 바로 C2M(Customer To Manufacture), 완전 위탁인데요. 판매자가 중국 내 물류창고에 상품을 배송하면 이후 판매 과정은 플랫폼이 전담합니다. 다시 말해, 민간업체가 운송비가 저렴한 컨테이너 운송 등을 통해 다량의 물품을 한국으로 운송한 다음 국내에서 국내 택배로 다시 접수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제대로 중국파워가 나오죠. 엄청난 탁송물량을 밑천으로 물류업체와의 배송단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겁니다. 쉽게 말해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배송단가를 끌어내려서 거의 제로에 가깝게 만드는 거죠.
배송비만큼 중요한건 뭐다? 배송기간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을 오늘 아니면 내일 바로 물건을 받고 싶어하잖아요. 배송기간을 줄이기 위해 알리가 선택한 첫번째 옵션은 바로 물류센터 구축입니다. 알리바바그룹이 최근 한국 사업 확대를 위해 11억달러(약 1조5000억원) 규모를 투자하는 사업계획서를 한국 정부에 제출했는데요. 그 내용 중 가장 눈에 띄는것이 바로 한국 내 18만㎡ 규모의 물류센터 구축(2억달러) 입니다. 국내 이용자들이 알리에서 주문을 하면 물건을 중국 현지 물류센터에 입고한 뒤 중국 통관과 한국 통관을 거쳐 국내로 배송을 합니다. 통관을 거치기 때문에 아무리 빨라도 최소 배송기간은 5일정도 인데요. 만약 국내 물류센터를 구축할 경우 당장 1~2일로 배송기간이 대폭 단축됩니다.
오호라.. 기회가 보이는데? 네, 바로 국내 택배사들은 지금 속으로 기쁠수도 있습니다. 지난 2~3년 간 쿠팡이 대한민국 유통을 휘어 잡을때 쿠팡 물동량 대부분을 자회사인 쿠팡로직스틱스를 통해 처리했거든요. 때문에 국내 다른 택배사들의 물동량은 오히려 감소했었습니다. 그런데 알리와 테무가 국내 물류센터를 구축하면 국내 택배사들은 물동량 회복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거죠. 택배사 중에서도 알리의 국내 물류 수탁사인 CJ대한통운이 가장 크게 웃고 있습니다. 대한통운은 알리 제품의 국내 배송을 전담하고 있어 알리 점유율 확대의 직접적인 수혜가 예상되기 때문이죠. 올해 CJ대한통운의 물동량 성장률은 5%로 택배시장 성장률 4%를 상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CJ대한통운이 지난해 처리한 알리 익스프레스 물동량은 1분기 346만 상자에서 2분기 531만 상자, 3분기 904만 상자로 크게 늘었습니다. 알리의 급성장에 6개월 만에 처리량이 3배 늘어난 거죠. 올해는 CJ대한통운이 처리하는 알리 익스프레스 물동량이 60~80%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사실 CJ그룹은 전방위적으로 알리와 손을 잡고 있습니다. CJ제일제당의 주요 제품인 '햇반'을 비롯한 만두, 스팸 등 을 알리에 입점시키고 있거든요. 유통업계 일각에서는 "차이나 커머스(알리 익스프레스)와 CJ제일제당, CJ대한통운이 뭉친 이른바 '트리플C(CCC)' 동맹이 새로운 유통시장의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합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7일 알리 익스프레스에 입점해 10일까지 햇반과 만두 등 주요 상품에 대한 '파격 세일'을 진행했습니다. 햇반(210gx24개) 제품은 기존 4만4400원에서 1만9800원으로 56% 가량 싸게 판매했는데, 이는 이마트(2만6970원), 롯데마트(2만5900원) 등 국내 주요 유통업체보다 훨씬 저렴한 수준이어서 큰 논란이 되었죠.
알리의 무서운 성장세에 가장 긴장한 건 누가 뭐래도 쿠팡입니다. 미국 뉴욕 증시 상장사인 쿠팡은 전국 물류망 구축 등에 6조2천억원을 쏟아부으며 '로켓배송'을 도입한 이후 한국 이커머스 최강자가 됐습니다. 그런데 와이즈앱 기준 1년 새 증가한 쿠팡 앱 이용자 수는 57만명으로 알리익스프레스(463만명)와 테무(581만명)에 한참 못 미치고 있거든요. 쿠팡은 '유통왕좌'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유료 멤버십 '와우회원' 혜택 확대라는 전략을 들고 나왔습니다. 기존 회원 '록인'(Lock-in) 효과와 함께 신규 회원 유입도 늘리겠다는 목표인데요. 우선 와우회원은 쿠팡이츠에서 음식을 시킬 때 '무제한 무료배달' 서비스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동안은 음식 가격 할인 혜택이었는데 이제는 아예 배달비를 안 받겠다는 거죠.
쿠팡 와우 멤버십은 무료배송·반품·직구·동영상시청·배달할인 등 이른바 ‘5무(無)’ 혜택을 모두 서비스하며 다른 멤버십과의 차별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쿠팡 와우멤버십 인기는 최근 MLB 개막전 유치, 로켓직구 일본 서비스 런칭, 쿠팡이츠 무료배달 도입 등 다양한 혜택을 추가하며 더욱 늘어나고 있습니다. 와우 멤버십의 핵심 혜택인 쿠팡플레이는 지난 17일부터 21일까지 서울 고척돔에서 열리는 LA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6경기를 국내 처음으로 유치해 와우 회원에게만 예매혜택을 제공했는데 이 경기들은 모두 티켓이 매진됐죠. 이달 초에는 미국, 중국, 홍콩에 이어 로켓직구 서비스를 일본으로 확대했습니다. 일본 로켓직구는 최근 런칭 하루 만에 닛신·가루비 등 주요 과자와 라면 제품이 품절되기도 했죠. 어쨌든 와우 멤버십이 국내에서 넷플릭스보다 많은 1400만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했다는 것은 유료 멤버십의 혜택이 좋다는점이 증명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네이버는 알리의 공습 때문에 영향을 받을까요? 중국 플랫폼을 통한 직구 수요가 늘면 네이버 쇼핑에는 타격이 예상되는게 사실입니다. 네이버 커머스 부문 매출액이 이미 감소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구요. 하지만 네이버 쇼핑이 제공하는 상품 범위와 가격대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알리 때문에 발생한 네이버의 피해액은 구체적으로 따지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중국 직구 거래액이 높은 제품군은 주로 의류·패션 관련 상품인 만큼 국내 시장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란 의견도 존재합니다. 실제로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해외 직구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2~3%대 수준이거든요.
네이버는 사실 알리의 성장이 반가울 수도 있습니다. 바로 광고 때문이죠. 명실상부 네이버는 국내 주요 광고채널이기 때문에 중국 직구 플랫폼들이 국내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려면 네이버 광고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알리는 이미 네이버 가격비교 서비스에 입점했고, 테무도 네이버 광고를 다량으로 집행 중이죠. 최수연 대표는 "네이버 쇼핑의 모델 자체가 광고 중심"이라며 "중국 직구 플랫폼은 경쟁 상대일수도 있지만 전략적 파트너로 볼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알리의 저가 공세에도 자기만의 길을 꿋꿋하게 가는 기업이 있는데요. 바로 다이소입니다. 원조 '가성비 맛집' 다이소는 균일가 정책을 앞세운 오프라인 강화 전략으로 매출 성장세를 이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정공법을 선택한거죠. 뷰티 기업 에이블씨엔씨의 화장품 브랜드 어퓨가 다이소와 손잡고 선보인 ‘더퓨어 티트리’ 라인은 품절 대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중국계 이커머스도 저가 정책을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분야가 다르다는게 다이소 측의 입장입니다. 다이소의 가격과 품질을 경험한 고객들은 다이소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강하다고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죠. 과연 중국발 이커머스의 공세에서 살아남는 브랜드는 누가 될지, 어떤 전략이 먹힐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