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스가 드디어 국내에서 에이스를 밀어내고 1위에 올랐습니다. 시몬스침대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0% 상승한 3138억원, 영업이익률은 전년보다 6%p 오른 10% 입니다. 즉,시몬스는 매출과 영업이익률 모두 두 자릿수를 찍는 '더블-더블'을 달성했죠.

같은 기간 에이스침대는 3462억원에서 11.5%가 줄어든 3064억원의 연간 매출액을 기록하면서 시몬스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시몬스의 매출이 에이스를 앞선 것은 한국 법인을 설립한 1992년 이후 처음입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에이스와 시몬스는 지난해 별세한 안유수 에이스침대 창업주의 두 아들이 각각 맡아 운영 중인 '형제 기업'입니다. 헐...? 장남 안성호 대표가 에이스침대를, 차남 안정호 대표가 시몬스를 경영 중이거든요. 


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은 작년 6월 별세하셨습니다.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침대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1963년 에이스침대 공업사를 설립한 침대 산업에 있어 선구자적인 분이셨죠. 설립 초기 국내에 변변한 침대 스프링 제조 기술은 물론 기기도 없어서 본인 손으로 강선을 감아 스프링을 만들어낸 일화가 정말 유명합니다.

근데 이상하다.. 시몬스는 미국 기업 아닌가? 네, 시몬스(Simmons Bedding Company)는 미국의 침대 제조업체로서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본사가 위치해 있습니다. 1870년에 설립되었으며,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중 하나이구요. 시몬스의 창업자 젤몬 시몬스는 미국 위스콘신 주 케노샤에서 9명의 엔지니어와 함께 침대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란 슬로건을 가지고 대중들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는 브랜드이죠.


한국 시몬스는 미국 시몬스로부터 상표권을 취득해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국내 기업입니다. 경기도 이천의 시몬스 팩토리움에서 국내 자체 생산시스템과 수면 R&D센터를 통해 매트리스를 생산 중이죠. 그리고, 안정호 한국시몬스 대표는 2015년 시몬스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유통까지 싹 바꾸는 도전을 감행했습니다. 기능을 강조하던 TV CF 대신 새로운 형태의 감성적인 CF를 제작했고 새로운 느낌의 팝업스토어 오픈을 통해 젊은 층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죠. 또한 다른 대부분 가구 전문 브랜드들이 해오던 대리점 형태의 판매방식을 바꾸고 모든 매장을 직영 또는 위탁형태로 바꿨습니다.

꾸준한 연구개발을 통해 매트리스의 기술력도 한 차원 높여나가고 있습니다. 다른 침대와 비교해 시몬스 침대가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는 매트리스 부문은 포켓스프링과 시몬스 고유의 '조닝(Zoning)' 시스템,그리고 50여 종의 프리미엄 내장재를 밀도, 강도, 성질, 촉감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조합하는 '레이어링' 기술 등이 조합된 결정체인 'N32 폼 매트리스' 입니다. N32 폼 매트리스는 경도가 획일적이던 기존 폼 매트리스와는 달리 소프트, 레귤러,하드 3가지 타입을 선보이며 개인의 취향에 맞는 침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시몬스는 브랜딩과 마케팅을 절묘하게 결합해서 많은 이들의 찬사를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2020년 열렸던 ‘하드웨어 스토어’ 팝업스토어는 시몬스 브랜딩의 하이라이트이죠. 시몬스 탄생 150주년을 맞아 서울 성수동에 약 두 달 간 문을 연 11.5㎡(3.5평) 철물점인데요. 철물점. 철물점? 네, 3.5평의 공간이나 침대 하나 전시하기도 어려운 공간인데, 대신 브랜드 심볼을 새긴 안전모·작업복·목장갑·볼펜·양말 등을 비치해서 판매했죠.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는 성수동 팝업 전성시대의 포문을 열었다고 평가를 받습니다. 전파를 타는 TV 광고가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만지고 체험하는 오프라인 공간으로 브랜드를 알린 최고의 사례가 손꼽히게 됐죠.

철물점의 성공은 식료품점으로 이어졌습니다. 부산 해운대와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니다. 굿즈 판매뿐 아니라 오래 머무르며 브랜드를 경험하라고 햄버거도 팔았습니다. 시몬스의 팝업 스토어는 누적 20만명의 방문객을 기록합니다. 방문객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굿즈 매출입니다. 시몬스에 따르면 팝업 스토어 굿즈 판매로 약 1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했거든요. 사람들이 비싼 침대는 못 사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했던 시몬스 굿즈는 하나씩 산거죠. 시몬스는 본업인 침대는 안 팔고 왜 굿즈를 만들어 팔았을까요? 우리가 평생 살면서 침대를 몇 번이나 살까요? 평균적으로 10여년을 주기로 구매하니 많아야 서너 번 구매하는거잖아요. 그런데 팝업스토어에서 판매한 굿즈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제품들이죠.


시몬스는 팝업과 굿즈로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를 좁힙니다.

자주 마주치고 경험하게 해 ‘애착(bonding)’을 형성한 뒤

실제 침대를 구매할 시기가 됐을 때 머릿속에 시몬스를 떠오르게 하는 거죠.


이렇게 브랜드 인지도와 대세감에서 이미 업계 최고로 통하던 시몬스는 객관적인 수치인 매출마저 에이스를 제치는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프리미엄 매트리스 시장에서의 우위는 지난해 매출 상승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히죠. 치열한 중저가 시장과 달리 300만원 이상 프리미엄 매트리스 시장, 1000만원 이상의 초프리미엄 시장에서 유독 두각을 나타낸 것이 시몬스의 매출 신장으로 이어진 것이죠. 2016년 출시한 객단가 1000만원 이상의 뷰티레스트 블랙은 지난해 1월 처음으로 월 판매량 300개를 돌파한 뒤 꾸준히 비슷한 판매고를 올리고 있습니다.

제품 선정에 특히나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특급호텔들의 이어진 시몬스 선택은 시몬스의 비상에 날개를 달아줬습니다. 시몬스의 지난해 특급호텔 침대시장 점유율은 90%에 육박하는데요. 최근 4년 새 오픈한 메리어트 제주 리조트 앤 스파, 파르나스 호텔 제주, 그랜드 조선 제주 등이 시몬스 침대를 비치했습니다. 서귀포 중문관광단지의 제주신라호텔, 롯데호텔 제주, 그랜드 조선 제주 역시 시몬스와 손을 잡았구요.


몬스침대의 최상위 라인인 뷰티레스트 블랙은 켈리(Kelly), 데보라(Deborah), 마리옹(Marion), 루실(Lucile), 브리짓(Brigitte), 로렌(Loren) 6개 제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이들 제품 가격은 1000만~3000만원대로 웬만한 소형차 한 대 값과 맞먹죠. 업계에선 시몬스의 뷰티레스트 블랙을 스웨덴의 하이엔드 침대 브랜드 '덕시아나'(DUXIANA), 역시 스웨덴 브랜드인 '해스텐스'(Hastens), 그리고 영국의 최고급 브랜드로 포켓스프링을 처음 개발한 '바이스프링'(Vispring)과 함께 '4대 명품 침대'로 꼽고 있습니다. 킹사이즈 기준으로 2000만~8000만원인 덕시아나의 최고급 제품은 대당 1억원 이상이죠.

응?? 침대 하나에 1억이라고?? 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침대거든요. 국내 스타 중에서는 배우 김효진·유지태 부부, 전지현, 고수, 방송인 박지윤 등이 덕시아나를 구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감독 중 한명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덕시아나 애호가'로 불리죠. 그는 덕시아나 침대만 25개 이상 소유한 것으로 전해집니다.덕시아나는 스웨덴 융(Ljung) 가문이 1926년부터 침대·매트리스만 연구한 기업으로 현재 헨릭 융이 4대째 경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2006년 처음 진출했죠. 놀라지 마세요. 아이유가 사용하는 해스텐스는 '침대계의 롤스로이스"라고 불리거든요. 침대 하나가 최대 12억 원이니 롤스로이스 급이라 불릴만 하죠. 엔트리 모델 마랑가(MARANGA)가 3000만 원대부터 시작합니다. 정말 헉소리 나죠.



경기 불황 속에서도 침대는 이왕이면 좋은 제품으로 구입하자는 소비 심리와 수면이 건강과 직결된다는 인식 확산으로 시몬스도 덕을 본 셈입니다. 시몬스의 프리미엄 비건 매트리스 컬렉션 N32는 침대업계 최초로 전 제품에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 비건 인증까지 획득했구요. ESG경영에 민감한 요즘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닿은 덕분인지 실제 N32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3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안정호 시몬스 대표는 사재를 출연해 ‘시몬스 디자인 스튜디오’라는 ESG 브랜딩 회사를 세웠습니다. 기존 시몬스 공간·아트·브랜딩팀을 주축으로 만든 별도 법인인데요. 그동안 익힌 마케팅 재주를 B2B와 교육 사업으로 확장해보겠다는 계획입니다. 침대 회사가 이렇게 마케팅을 잘 할줄 누가 알았겠어요?

반면 1963년 창업 이래 국내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던 에이스침대는 업계 1위 자리를 친동생이 이끄는 시몬스에 내주는 뼈아픈 현실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최근 침대 업계는 1위 에이스침대가 주춤하는 사이 경쟁사 약진으로 '춘추전국시대'에 돌입하면서 판세가 요동치고 있죠. 특히 중저가 메트리스 렌털업체 때문에 에이스침대는 참으로 난처한 상황입니다. 코웨이의 경우 업계 3위권에 위치할 정도가 되었죠. 렌털업체들은 일시불에 비해 렌털 방식은 부담이 적다는 점을 내세우면서 클리닝·살균 서비스와 함께 토퍼 교체 등 정기 관리 서비스를 매트리스 분야에 도입했습니다. 코웨이는 2022년에는 수면 전문 브랜드 ‘비렉스’(BEREX)까지 선보였습니다. 비렉스 매트리스는 시몬스나 에이스보다 가격대가 낮게 책정돼 있는데, 여기에 정기관리 서비스까지 포함하면 코웨이의 지난해 매트리스 부문 매출액은 25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됩니다.


덴마크 프리미엄 매트리스 기업 템퍼코리아가 지난해 120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미국 침대기업 씰리코리아는 같은해 676억원의 매출을 차지하는 등 중저가침대 시장 경쟁도 한층 치열해졌습니다. 참고로 국내 매트리스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3조원 수준이죠.

에이스침대와 시몬스침대의 역전 현상은 두 기업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층이 확연히 구분되어 더욱 재밌어 보이느네요. 에이스침대의 경우 중장년층 이상이 주 고객인데 반해, 시몬스는 MZ세대를 중심으로 키즈 시장은 물론 중장년층까지 판매층을 넓게 확보하고 있거든요. 중요한 점은 중장년층의 경우 침대 교환 시기를 이사시로 한정하는 경향이 짙은데 반해, MZ세대는 침대도 일종의 소모품으로 판단해 수시로 변화를 주면서 교체 주기도 짧다는 거죠. 여러번 포스팅을 통해 강조했지만 요즘 소비자의 키워드는 바로 MZ 이고 이런 MZ를 타겟팅하는 특별한 마케팅이 바로 팝업스토어죠. 시몬스는 이 중요한 내용을 잘 캐치했던 겁니다.

<좌: 안성호 에이스침대 대표, 우: 안정호 시몬스 대표>


형과 아우의 싸움이 더욱 흥미진진해지는데 가운데, 과연 각 회사가 내세우는 전략 중 어떤 것이 소비자의 마음을 더 훔칠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