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싸우거나 도망치거나: 생존과 번식을 위한 원초적인 욕망

신피질이 생겨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올드브레인은 아직도 인간의 인지과정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올드브레인은 우리에게 원초적인 동기를 제공하며, 또 해결해야 할 문제를 끊임없이 던져준다.

우리는 단조로운 동굴생활에 맞게 조율된 원시적인 뇌를 가지고 이 새로운 세계의 중심에 섰다. 그러한 뇌의 굉장한 힘을 발휘할 줄은 알지만, 그 결과까지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영리하지는 못한다.

알베르트 센트죄르지

올드브레인-포유류 이전부터 존재했던 뇌- 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만족을 추구하고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동기는 상당부분 올드브레인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이러한 동기는 크기 면에서나 활동 면에서 모두 인간의 뇌를 지배하는 신피질에 의해 조율된다.

많은 동물이 신피질 없ㄷ이도 아무 문제 없이 생활하고 생존한다. 실제로 포유류가 아닌 동물들은 지금도 그렇게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신피질은 욕구를 승화하는 위대한 기관이라 할 수 있다. 거대포식자를 피하려는 원초적 동기는 신피질에 의해 상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임무를 완수하고자 하는 동기로, 거대동물을 사냥하고 싶은 동기는 예컨대 마음에 관한 책을 쓰고자 하는 동기로, 번식을 축하는 동기는 유명인이 되거나 아파트를 더 멋지게 꾸미고자 하는 동기로 번역된다.

신피질은 또한 문제해결을 할 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데, 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계층적 속성을 그대로 반영하여 정확하게 모형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대부분 올드브레인이 던져주는 것이다.

우리는 눈을 통해 고해상도의 영상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시신경이 뇌에 전달하는 정보는 시야에 들어온 관심을 끄는 몇몇 대상의 일련의 윤곽과 실마리에 불과하다. 병렬채널을 통해 들어오는 매우 적은 양의 데이터로 이루어진 일련의 영상자료를, 피질의 기억에 의존하여 해석함으로써 우리가 세상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시상

누구나 집중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집중이란 동시에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생각의 대상이나 생각의 꼬리 중에서 하나만을 생생하고 명료한 형태로 정신이 소유하는 것이다. 의식을 한 곳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는 것이 집중의 본질이다. 집중은 어느 하나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다른 것들을 떨쳐낸다는 뜻이다.

월리엄 제임스

중뇌를 거친 감각정보는 시상의 VMpo라는 영역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곳에서 다듬어진 정보는 마지막으로 인슐라(섬엽)라고 하는 신피질 영역에 도달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시상의 역할은 신피질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이다. 신피질의 패턴인식기의 6층과 정보를 주고받는데, 이들 정보는 기본적으로 흥분신호와 억제신호 기능을 한다.

그렇다면 수억 개의 패턴인식기들은 시상과 무슨 대화를 할까? 시상의 주요영역에 손상을 입으면 긴 의식불명상태에 빠진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이들 사이에 중요한 대화가 오가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어느 곳에 집중하는 능력을 발휘할 때 시상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때 시상은 신피질에 담겨 있는 구조화된 지식에 의존한다. 시상은(신피질에 저장되어 있는) 리스트에 따라 생각의 꼬리를 쫓거나 행동계회에 따를 수 있도록 한다.

해마

이 영역의 핵심기능은 새로운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다. 시상을 거쳐 신피질로 들어간 감각정보가 새로운 경험이라고 판단되면 이는 다시 해마로 전달된다.

새로운 경험은 신피질과 해마에 모두 저장되는 것이다. 신피질이 없는 동물은 감각에서 올라오는 정보가 곧바로 해마에 저장되고 그 다음에 감각 사전처리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해마는 크기가 작은 만큼, 해마에 저장된 기억은 잠깐 동안만 유지된다. 해마는 특정한 패턴의 나열을 반복적으로 경험할 때 마다 그것을 계속 신피질에 전달하고, 이로써 자신의 단기기억을 신피질의 계층적 장기기억으로 올려 보낸다.

양쪽 해마가 모두 손상된 경우, 기존의 기억은 유지할 수 있지만 새로운 기억은 만들어내지 못한다. 해마는 알츠하이머에 걸렸을 때 가장 먼저 손상되는 영역이다.

소뇌

날아오는 공을 잡기 위해서는 몇 가지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뇐느 이 문제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다. 뇌는 이런 무수한 방정식을 단순한 추세모형으로 압축한다. 공이 시야의 어느 부분에서 나타났는지, 또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추세를 판단하는 것이다.

소뇌는 한 때 사실상 인간의 움직임을 온전히 통제했던 올드브레인이다. 지금도 우리 뇌에 존재하는 뉴런의 절반이 소뇌에 있지만, 뉴런의 크기가 작아 전체 뇌 무게의 1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의 근육을 통제하는 소뇌의 기능은 대부분 신피질로 넘어갔다.

지금은 움직임이 대부분 신피질에 의해 제어되기 때문에 소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더라도 장애는 비교적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그래도 동작이 예전만큼 부드럽지는 못할 것이다.

쾌감과 공포

공포는 미신의 주요원인이자, 잔인함의 주요원인이다. 공포를 정복하는 데에서 지혜는 시작된다.

버트란드 러셀

신피질이 문제해결에 능하다면, 우리가 풀고자 하는 가장 큰 문제는 종의 생존이다.

초기의 뇌는 이러한 가장 근본적인 욕구를 가능케 하는 기초적인 행동과 더불어, 이러한 욕구를 충족했을 때 보상하는 쾌감과 공포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지금은 신피질이 상당부분 조율하고 통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올드브레인은 여전히 살아서 쾌감과 공포를 자극한다.

쾌감과 연관된 영역으로 측좌핵이 있다. 여기를 자극하는 버튼만 누르다 교미도 먹이도 원하지 않고 죽은 쥐

쾌감은 또한 도파민과 세로토닌 같은 화학물질에 의해서도 조율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포유류 이전의 먼 친척으로부터 유래한다는 점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쾌감과 공포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신피질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중독 행위에 자주 빠진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신피질의 노력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유전적으로 중독성향을 타고난 소수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나 의학적으로 막대한 문제를 야기한다. 심각한 도박의 유혹에서 간신히 벗어났다고 해도 그들은 도파민분비라는 보상과 도파민분비를 촉발하는 행동의 결과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세로토닌은 감정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세로토닌은 뇌의 상위레벨에 존재하는 행복과 만족이라는 감정과 연관된다. 세로토닌은 시냅스의 세기조절,식욕,잠,성욕,소화를 비롯한 여러 기능을 수행한다.

인간의 대뇌반구 양쪽에는 몇 개의 소엽으로 이루어진 아몬드 모양의 아미그달라(편도체)가 있다. 아미그달라 역시 올드브레인의 일부로 몇몇 감정반응 처리에 관여하는데,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감정은 공포다. 포유류 이전 단계의 동물의 경우에는 위험을 상징하는 자극이 미리 프로그래밍 되어 이 자극이 아미그달라에 직접 '싸우거나 도망치는' 메커니즘을 촉발한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신피질을 거쳐 아미그달라로 신호가 전달된다. 신피질이 위험이라고 판단한 정보를 아미그달라로 보내는 것이다.

이 모든 생리현상은 포식자와 갑자기 마주치는 것처럼 실제 위험과 맞닥뜨린 예외적인 상황에서 매우 유용하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인들은 이처럼 '싸우거나 도망치는' 메커니즘이 활성화된 상태를 만성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사회에 살아간다.

우리의 정서경험은 올드브레인과 뉴브레인 양쪽에서 모두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생각은 뉴브레인(신피질)에서 발생하지만, 감정은 올드브레인과 뉴브레인에서 모두 발생한다. 따라서 인간의 행동을 모방하려면 올드브레인과 뉴브레인을 모두 모형화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인지지능만을 모방하고자 한다면, 신피질만 연구해도 충분하다.

원시적인 인간사회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올드브레인은 진화해왔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쾌감과 공포 사이의 갈등은 대부분 의미가 없다. 실제로 지금까지 살펴본 올드브레인은 파충류의 뇌와 대부분 일치했다.

인간의 멄속에서는 지금도 올드브레인과 뉴브레인이 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올드브레인은 쾌감과 공포 경험을 관할하는 권한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뉴브레인은 올드브레인의 비교적 원시적인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기준에 맞게 조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어쨌든 아미그달라 홀로 위험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아미그달라는 신피질의 판단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저 사람이 친구인가 적인가? 나를 사랑할 사람인가 위협할 사람인가? 이 문제는 신피질만이 대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