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생각하는 기계 분해하기: 뇌과학이 밝혀낸 사실들

중요한 것은 모두 케이스에 담겨있지, 그래서 뇌는 해골에 담겨있고 빗은 플라스틱갑에 담겨있고 돈은 지갑에 담겨있는 거야.

조지 코스탄자, [사인필드] '뒤집어진 엿보기 구멍' 중에서

요컨데, 우리 마음속에 입력되는 데이터는 조각가가 다듬는 돌덩이와 매우 비슷하다. 어떤 의미에서 조각상은 태곳적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 돌덩이 속에는 수천 개의 조각상이 존재하지만, 조각가는 그 무수한 조각상 중에서 어떤 조각상 하나만 구원해낸다.

우리 개개인이 인식하는 세상 역시 '감각'이라는 원초적 혼돈에 불과하며 그 속에서 어떤 생각이든 끄집어낼 수 있는 '재료'에 불과하다.

똑같은 돌에 조각가마다 다른 조각상을 구원해내듯이, 단조롭고 표정 없는 혼돈에서 우리는 저마다 다른 세계를 구원해낼 것이다! 나의 세계 역시 이 세상에 담겨있는 100만 개 세계 중 하나일 뿐이다. 그 모든 세계가 그것을 조각해낸 사람들에게 실재인 것처럼 나의 세계 역시 나에게는 실재다. 하물며 개미나 오징어나 꽃게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세계는 나의 세계와 얼마나 다르겠는가!

월리엄 제임스

지능은 생물학적 진화의 궁극적인 목표일까? 아니, 진화에 목표가 있다면 지능은 그 중 하나라도 될 수 있는 것일까? 스티븐 핑커는 이렇게 말한다.

'뇌를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열성 당원답게, 우리는 인간의 뇌가 진화의 최종목표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이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자연선택은 지능에 전혀 관심이 없다. 자연선택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을 복제하는 유기체들의 생존율과 번식률의 차이에 따라 결정될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기체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에 적합한 형태를 획득한다. 그것이 전부다. '지금 여기'에서 성공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진화를 끌고 가지 못한다.... 생명은 계단이나 사다리가 아니라 가지가 무성한 덤불이며, 살아있는 유기체는 덤불의 줄기나 뿌리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의 끝에 존재한다.'

핑커는 더 나아가 인간의 뇌에 대해서 '혜택보다 비용이 오히려 높은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핑커는 여기서 더 나아가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반응도 느리며, 학습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등 뇌의 여러 단점을 덧붙인다.

이러한 문장 하나하나가 표면적으로는 맞는 말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핑커는 논의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생물학적 진화가 어던 특정한 방향성을 갖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진화과정이 '반드시' 더 뛰어난 지능을 향해 나아가는 것도 아니다. 진화는 '어떤 방향으로든' 나아갈 수 있다. 심지어 수백만년 동안 거의 진화하지 않고 생존에 성공한 생명체도 많다.

하지만 무성한 진화의 가지를 빽빽하게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진화는 더 뛰어난 지능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중 하나로 삼았다.

진화과정에서 우연히 계층적 학습능력을 갖춘 신경메커니즘을 갖게 되었는데, 이러한 신경메커니즘이 진화의 가장 중요한 목적, 즉 생존에 지극히 유용하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급변하는 환경에서 빠른 학습은 매우 유리한 결과를 낳았고, 이로써 신피질을 확보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명확해졌다. 물론 신피질이 없다고 해서 학습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과 식물은 모두 학습을 통해 환경에 적응한 것이다. 다만 신피질이 없을 경우 학습은 '유전적 진화' 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신피질 없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새로운 행동을 학습하려면 엄청난 세대-수천 년-를 거쳐야 한다. 신피질이 제공하는 가장 두드러진 혜택은 이러한 학습을 며칠 만에 달성할 있다는 것이다.

신피질은 곧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다.

약 6500만 년 전에 일어난 백악기 말의 대혼란은 신피질이 없어 갑작스런 환경변화에 재빨리 적응하지 못한 수많은 생물들의 멸종으로 이어졌다.

신피질에서 사용되지 않는 장거리 연결은 결국 끊어진다. 신피질에서 특정 영역이 손상되었을 경우 인접한 영역이 그 기능을 대체하지만, 원래 영역만큼 효율적으로 기능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웨딘의 연구에 따르면 신피질에 구축된 최초의 연결망은 모듈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극도로 질서정연하고 반복적이다. 모듈의 격자구조는 신피질에서 '길잡이 연결망' 역할을 한다. 이러한 구조는 지금껏 연구된 영장류와 인간 뇌에서 한결같이 발견되며, 감각을 처리하는 하위레벨에서 감정을 다루는 상위레벨까지 신피질 전체에 걸쳐 뚜렷하게 나타난다.

정보처리 메커니즘의 보편성

신피질이, 적어도 신피질의 특정한 영역이 계층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가장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영역은 시각피질로, 이는 V1,V2,V5(또는 MT)라고 하는 영역으로 다시 나뉜다.

V1은 기초적인 윤곽선과 모양을 인식한다. V2는 사물의 외형, 양쪽 눈에 나타나는 이미지의 차이, 공간적 방향성을 인식하며, 이미지의 일부가 물체의 일부인지 배경인지 인식한다. 이보다 더 상위에 있는 영역에서는 대상의 정체, 얼굴, 그들의 움직임 같은 개념을 인식한다.

신피질의 정보처리방식이 보편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뇌의 가소성이다. 가소성은 학습을 통해 뇌의 연결망이 달라지거나 어느 한 영역의 역할을 다른 영역이 대신 할 수 있는 특성으로, 이는 신피질 전체에 공통된 알고리즘이 작동한다는 뜻이다.

부상이나 뇌졸증으로 뇌손상을 입은 환자들이 신피질의 다른 영역을 활용해 손상된 영역의 기능을 다시 학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뇌가소성은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베드니는 전혀 뜻밖의 사실을 발견한다.

진화를 통해 인간만이 갖게 된 언어처리능력은 지금까지 왼쪽 전두엽과 측두엽 피질에서 발휘되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선천적인 맹인들의 경우, 일부 언어기능을 수행할 때 시각피질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러한 시각피질의 활동이 실제로 언어처리를 담당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선천적 맹인의 왼쪽 시각피질은 언어를 관장하는 영역과 거의 유사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론적으로, 시각처리를 위해 진화했다고 여겨졌던 뇌 영역도 초기 경험을 통해 언어를 처리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연구의 의미는 명백하다. 물리적으로 비교적 멀리 떨어져있는 신피질 영역,, 또 개념적으로 매우 다르다고 여겨지는 영역이 본질적으로 똑같은 알고리즘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아무런 공통점도 없어 보이는 패턴을 처리하는 영역이 서로 기능을 대체할 수 있다.

UC버클리의 신경과학자 대니얼 펠드먼

그에 따르면 '뇌는 가소성 덕분에 감각세계에 패턴을 익히고 기억할 수 있으며, 움직임을 개선하고... 부상 후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가소성을 가능케 하는 것은 '피질 속 시냅스와 수상돌기의 형성, 제거, 형태학적 변형을 포괄하는 구조적 변화'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손상된 피질영역을 다른 영역이 대체하여 새롭게 지식이나 기술을 학습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원래 영역만큼 뛰어난 기능은 발휘하지 못한다. 이처럼 가소성에 한계가 존재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평생에 걸쳐 습득하고 완벽하게 다듬어야 하는 기술도 있는데, 그런 기술을 다른 피질 영역을 활용해 다시 습득해야 한다면 당장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두 번째, 무엇보다도 그 기술을 수행하는 피질 영역의 크기가 줄어든다. 손상된 영역을 대체할 영역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영역도 자신이 맡은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손상된 영역이 하던 일까지 떠맡기 위해서는 기존에 처리하던 업무 중 일부를 포기해야만 한다.

세 번째, 우리 뇌는 특정 형태의 패턴을 특정 뇌 영역에서 가장 잘 처리할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있다. 예컨대 얼굴인식은 방추모양주름에서 갖아 잘 처리한다. 이는 진화의 명백한 결과다.

신피질 내 패턴인식모듈의 기본적인 알고리즘은 동일하다. 가장 기초적인 감각패턴을 처리하는 '하위레벨' 모듈에서 가장 추상적인 개념을 인식하는 '상위레벨' 모듈까지 신피질의 어느 영역에서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는 매우 중요한 결론으로, 신피질의 여러 영역들이 서로 대체할 수 있다는 뇌가소성을 입증하는 무수한 증거들로 뒷받침이 되고 있다. 특정한 패턴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도록 뇌 영역은 제각각 어느 정도 최적화되어 있지만 이것은 부차적인 결과일 뿐, 신피질의 기본 알고리즘은 어디서나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우리가 학습하는 패턴, 특히 중요한 패턴에는 상당량의 리던던시 존재한다. 패턴을 인식하는 메커니즘은 방금 학습한 패턴을 기억하는 메커니즘과 같다. 입력된 모든 패턴은 패턴의 나열로 저장되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이야기구조와 같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학습뿐만 아니라, 우리 몸을 움직이는 물리적 동작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리던던시 패턴은 사물과 사람과 생각이 다양한 맥락에서 조금씩 달라지더라도 그것을 무리없이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 뇌가 패턴을 처리할 때 이러한 파라미터를 입력한다는 강력한 증거는, 바로 인공지능시스템이다. 이러한 파라미터값을 입력해야만 인공지능은 인간에 근접하는 인식정확도를 획득한다.

마지막으로 증거를 하나 더 덧붙이자면, 지난 수십 년간(인간의 음성언어나 문자언어처럼) 실재세계의 현상을 인식하고 지능적으로 처리학 위해 개발된 인공지능 분야의 기술들은 모두 수학적으로 패턴인식 마음이론에 기초한 모형과 매우 흡사하다. 물론 뇌를 복제하는 것이 인공지능 연구의 목적은 아니었지만, 가장 효율적인 인공지능 기술을 찾는 기나긴 여정이 다다른 곳이 결국은 우리 뇌의 본래적인 작동방식과 똑같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