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패턴인식 마음이론. 뇌의 정보처리 알고리즘

생각실험을 통해 밝혀낸 뇌의 작동메커니즘을 바탕으로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을 개념화한 단순한 이론적 모형을 만들어보자. 단순한 사물인식에서 고차원적인 감정이나 추상적 사고까지 모든 연산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입력하고 처리하고 출력할까?

생각과 느낌과 인지를 만들어내는 기계가 있다고 생각해보라. 이 기계를 그대로 확대해 건물처럼 내부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 안에 들어가면 무엇이 보이겠는가? 서로 밀고 당기는 기계부품들만 보일 뿐, 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전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신피질의 계층구조

신피질의 주요기능은 계층적으로 구성된 정보의 패턴을 다루는 것이다. 또한 신피질 자체가 계층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따라서 신피질이 없는 동물(기본적으로 포유류가 아닌 동물)은 계층구조를 이해하는 능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실재세계에 존재하는 본래적인 계층구조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포유류에게만 있는 이유는 포유류가 가장 최근에 진화한 뇌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피질은 감각을 지각하고, 시각적 대상에서 추상적 개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인식하며, 동작을 제어하며, 공간을 지각하는 일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일까지 갖가지 추론을 하며, 언어를 구사한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생각'이라고 간주하는 모든 능력을 관장한다.

뇌의 가장 바깥면을 덮고 있는 신피질은-인간의 경우-2.5밀리미터 두께로 된 펼쳐진 2차원 조직이다. 설치류의 경우 뇌의 표면이 매끄러운데, 이 표면을 덮고 있는 신피질을 쫙 펼치면 우표 크기 정도가 된다. 하지만 영장류로 올라서면서 뇌의 포면에 깊은 주름이 생겨 돌기와 고랑이 만들어지고 이로써 뇌의 표면적이 크게 늘어나는 혁명적 진화가 발생한다. 이로써 신피질은 전체 뇌 무게의 80퍼센트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더욱이 호모사피엔스는 이마가 넓어지면서 신피질은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발달한 전두엽은 특히 고차원적인 개념과 관련한 한층 추상적인 패턴을 처리하는 기능을 한다.

얇은 신피질은 기본적으로 여섯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있다. 가장 바깥쪽을 1층이라고 하고 가장 안쪽을 6층이라고 한다. 2층과 3층에 있는 뉴런에서 솟아난 축삭은 신피질의 다른 영역과 연결되어 있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5층과 6층에 있는 뉴런에서 솟아난 축삭은 주로 신피질 아래에 있는 시상과 뇌간과 척수로 이어진다. 6층의 뉴런들은 특히 시상에 위치한 뉴런들로부터 정보를 전달받는다.

세포층의 두께는 뇌의 부위마다 달라진다. 예컨대 운동피질에서 6층이 매우 얇은데, 이곳에서는 시상과 뇌간과 척수로부터 정보를 전달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시각처리를 주로 담당하는 후두엽에서는 4층이 세 개의 층으로 다시 나뉘는데, 이는 시상을 비롯하여 다양한 곳에서 들어오는 정보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신피질에서 무엇보다 특기할만한 점은 그 기본 구조가 매우 균일하다는 것이다.

마운트캐슬은 뉴런기둥 안에 또 다른 기둥이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했지만, 더 작은 구조로 나눌 수 있는 가시적인 경계는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이러한 기본적인 단위의 뉴런기둥들이 제각각 '패턴인식기'로서 작동하며 신피질의 기초를 구성한다고 생각한다. 마운트캐슬이 이러한 '미세기둥'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눈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패턴인식기 사이에는 물리적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시각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뉴런기둥은 수많은 패턴인식기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패턴인식기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한다. 신피질에서 관찰할 수 있는 모듈 간의 정교한 연결망은 유전자코드에 의해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습득하는 패턴을 반영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논리를 처리하는 능력은 약한 반면, 패턴을 인식하는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 신피질은 기본적으로 거대한 패턴인식기라고 할 수 있다. 논리적 변환을 수행하기 위해 최적화된 구조가 아니다. 하지만 논리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 우리가 의존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관은 이것밖에 없다.

예컨대 사람이 체스를 두는 방식과 일반적인 컴퓨터 체스프로그램이 작동하는 방식

카스파로프에게 말을 이동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초당 몇 개나 분석해낼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한 개도 어렵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어떻게 딥블루와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고도의 훈련을 통해 습득한 강력한 패턴인식능력이다.

카스파로프는 약 10만 개의 말의 이동경로를 알고 있었다. 이것은 우연한 숫자가 아니다. 이떤 분야든 대략 10만 개의 지식뭉치를 통달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약 10만 개의 어휘로 희곡을 썼다.

일반적인 의학전문가들은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약 10만 개 정도의 개념을 통달한 것으로 나타난다.

카스파로프는 체스판에 놓인 말을 보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말이 이동할 수 있는 10만 개의 경우의 수를 대조한다. 이러한 10만 번의 대조는 순식간에 일어나며, 눈 깜박할 사이에 일치하는 것을 찾아낸다. 모든 뉴런이 패턴을 떠올리며 정보를 처리한다.

우리 뇌는 컴퓨터와 달리 이미지 자체를(다시 말해 2차원적 픽셀의 배열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패턴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반복되어 입력되면서 그 자체로 '패턴'을 만드는 '특성의 리스트'로 저장된다.

흔한 '상식'이라고 하는 지식이 우리 머릿속에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리던던시가 입력되어야 할 것이다. '거리의 지식'은 실제로 '책상머리 지식'보다 훨씬 많은 신피질의 작동을 요구한다. 책상머리 지식을 습득하는 데 100개의 패턴(100번의 리던던시)을 입력해야 한다면, 거리의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1억 개가 넘는 패턴을 입력해야 한다. 물론 리던던시 횟수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아주 일상적인 패턴은 수천 번을 반복 입력해야 겨우 습득할 수 있지만, 아주 새로운 현상은 10번만 반복해도 습득할 수 있다.

인간의 신피질이 저장할 수 있는 패턴은 약 3억 개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3억 개라는 숫자가 대단히 많은 것처럼, 또는 적은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것만 가지고도 호모사피엔스는 말과 글, 그리고 온갖 도구와 다양한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발명품들은 또 다른 발명을 낳았고, '수확가속법칙'으로 설명한 기술정보콘텐츠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이끌어냈다. 이런 성과는 인간을 제외한 그 어떤 종도 이룩하지 못한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침팬지를 비롯한 몇몇 종들 역시 언어를 사용하고 이해하며 원시적 도구를 사용하는 초보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도 신피질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기가 인간에 비해 상당히 작다. 특히 전두엽이 작다. 인간의 신피질은 자신의 지능을 이해할 수 있는 단계, 더 나아가 인간의 뇌보다 훨씬 강력한 인공지능을 만들어낼 수 있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궁극적으로 우리 뇌는, 자신이 만들어낸 기술의 도움을 받아 3억 개의 패턴처리기보다 훨씬 많은 패턴을 담아낼 수 있는 인공신피질을 만드는 단계까지 나아갈 것이다. 이제 인간의 패턴처리기가 수십억 개, 아니 수백억 개로 늘어나는 시대가 눈앞에 온 것이다.

패턴인식기의 구조

신피질에 존재하는 약 3억 개의 패턴인식기가 인식하는 패턴은 제각각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부분은 입력부로, 주요패턴을 만들어내는 하위레벨 패턴을 구성한다. 하위레벨 패턴에 붙어 있는 설명은 그것을 참조하는 상위레벨 패턴에서 활용하지 않을 수 있다. 예컨대, 'A'라는 글자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A'를 구성하는 사선 두 개와 가로선 하나를 참조해야 하지만, A를 처리하는 패턴들은 각각의 획에 붙어 있는 설명을 가져가지 않고도 그것을 활용할 수 있다.

패턴의 두 번째 부분은 패턴명명부다.

입력부로 들어온 신호를 종합하여 그것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패턴과 일치하는지 점검하고, 패턴이 일치한다고 판단될 경우 축삭을 활성화한다. 축삭을 활성화한다는 것은 패턴인식기가 패턴의 이름을 외친다는 뜻이다. "이봐, 방금 'A'라는 글자를 봤어!"

패턴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부분은 출력부로 상위레벨 패턴으로 이어진다. 'A'의 경우, 'apple'처럼 'A'를 포함하는 단어들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웹링크와 같다.

이러한 패턴들은 상위레벨 패턴-우리가 '글자'라고 부르는 범주에 속하는 패턴-의 일부가 된다.

이렇게 출력된 패턴들은 상위레벨의 패턴-우리가 '단어'라고 부르는 범주에 속하는 패턴-의 일부가 된다.

글자가 아닌 대상의 실제 '이미지'를 처리할 때도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계층적 패턴인식이 이루어진다.

소리정보를 처리하는 방식도 똑같다.

패턴인식 마음이론의 중요한 속성은 각각의 패턴인식모듈 안에서 패턴이 처리되는 방식이다. 패턴인식기마다 입력된 정보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축삭이 활성화되는 '인식의 문턱'이 있다. 자신이 맡은 패턴을 성공적으로 인식했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뇌(와 인공지능시스템)는 결국 다음 세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자신이 인식을 담당한 패턴이 나타날 확률을 종합적으로 계산한다.

1.관찰된 크기를 표시하는 파라미터가 인코딩 되어있는 입력정보

2.입력정보의 크기를 대조할 수 있는 파라미터(예상되는 크기와 그 크기의 가변성)

3.입력정보의 가중치를 표시하는 파라미터

이러한 각각의 지표들을 계산하여 우리 뇌는 거대한 인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모든 패턴인식기가 동시에 작동한다고 해도, 이러한 개념적 계층구조를 타고 올라가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인식이 한 단계 높은 레벨로 올라가는 데에는 100분의 1초에서 10분의 1초까지 시간이 걸린다. 실험결과, 얼굴처럼 비교적 높은 레벨의 패턴을 인식하는 데에는 10분의 1초 이상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패턴에 심각한 왜곡이 있을 경우 1초 이상 걸릴 수도 있다.

신피질은 자신에게 곧 닥칠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스스로 예측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신피질의 주요임무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신피질을 계속 늘려온 이유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개념적 계층구조의 최상위 영역에서는 끊임없이 예측이 일어난다. 다음에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올까? 다음에 누가 무슨 말을 할까? 모퉁이를 돌면 누가 나타날까? 내가 한 행동의 예상되는 결과는 무엇일까? 이러한 예측은 신피질의 어떤 레벨에서나 끊임없이 일어난다.

패턴의 특징

예컨대 우리는 사람읭 얼굴을 어떻게 알아볼까? 어쨌든 얼굴을 알아보기 위해 입력되는 데이터는 최소한 2차원 정보일 것이다. 얼굴을 볼 때 반드시 눈 먼저 보고 그 다음에 코를 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 이상의 악기와 음성이 동시에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소리 역시 최소한 2차원 정보다.


촉각입력 역시 마찬가지다. 피부 자체가 기본적으로 2차원적 감각기관이다. 그러고 이러한 패턴은 시간이라는 새로운 차원이 더해지면서 3차원 데이터가 된다.

따라서 신피질의 패턴처리기에 입력되는 정보는 3차원, 또는 적어도 2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신피질 구조에서 패턴은 1차원, 즉 리스트처럼 순차적으로 입력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앞에서 보았다. 1차원적인 입력으로 2차원적, 3차원적 현상을 재현해내는 것이 가능할까?

하지만 음성인식시스템과 시각적 인식시스템 등 다양한 인공적인 패턴인식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1차원적 입력으로 2차원적, 3차원적 현상을 재현해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냈다.

또한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 패턴을 학습하는 것은 기억의 토대를 이루는 메커니즘과 완벽하게 동일하다. 예컨대 실제 개를 보았을 때 우리 기억은 '개'에 대한 보편적인 이데아 역할을 하고, 연주곡을 들었을 때 우리 기억은 악보 역할을 한다. 실제로 기억은 우리가 학습하고 인식한 패턴의 리스트로 적절한 자극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파악하기 위한 판단기준이 된다. 결국 신피질에서 기억은 인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기억은 또 다른 생각/기억(이 둘은 동일한 것이다)에 의해 촉발되어야 한다. 패턴을 인식할 때도 이러한 촉발 베커니즘을 경험할 수 있다. A,P,P,L을 지각하면 APPLE패턴은 다음에 E를 보게 될 것을 예측하고, E 패턴이 곧 나타날 것이라는 신호를 촉발한다. 피질에서 이러한 상호작용이 주목 받으면 E를 보기 전에도, 심지어 E를 찾을 수 없을 때에도 E를 떠올릴 것이다.

기억에서도 이와 유사한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연상에는 완벽한 사슬이 존재한다. 오래된 기억을 촉발한 기억(즉,패턴)을 어렴풋하게 인식한다고 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없다. 과거의 기억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웹페이지를 보려면 웹링크를 클릭해야 하듯이 몇 년씩 잠잠하게 묻혀있던 기억이 표면에 떠오르기 위해서는 어떤 '촉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다른 웹페이지가 링크를 걸어놓지 않으면 웹페이지가 '고아'가 되어 버리듯이 기억도 그것을 촉발하는 기억이 사라지면 잊혀질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의 마음을 '읽어' 그 사람의 신피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의 기억을 해석해내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인가 촉발해주기만을 기다리며 신피질에 저장되어있는 패턴은 물론, 이미 촉발되어 활성화된 상태의 패턴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눈에는 동시다발적으로 활성화되는 수백만 개의 패턴인식기만이 '보일' 것이다. 100분의 1초 뒤에는 그러한 패턴인식기로 인해 또 다른 패턴인식기들이 활성화되는 상태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패턴은 다른 패턴의 리스트가 되고, 그 리스트는 또 다른 패턴의 리스트가 된다. 이런 과정은 최하위레벨의 가장 기초적이고 단순한 패턴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반복된다.

전체 레벨의 정보를 '모두' 내 피질로 완벽하게 복사하지 않는 한, 더 높은 레벨의 패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신피질 내에 존재하는 각각의 패턴은 그 아래 레벨에서 올라오는 정보 측면에서만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어떤 패턴이든 같은 레벨에 있는 다른 패턴은 물론 그 보다 높은 레벨에 있는 패턴도 알아야 해석할 수 있다. 그런 패턴들이 '의미의 맥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결국, 뇌에서 활성화된 연관된 축삭을 감지하는 것만으로는 그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읽어낼 수 없다.

우리가 경험한 바를 더듬어보면, 어떤 생각과 기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는 해도' 그것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생각과 기억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면, 우리는 그것을 언어로 옮겨야만 한다. 이러한 생각을 언어로 옮겨야만 한다. 이러한 생각을 언어로 옮기는 임무 역시,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우리가 습득한 패턴을 처리하는 패턴인식기가 수행한다.

언어 역시 본질적으로 계층적 구조물이지만, 신피질의 계층적 속성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더욱 진화했으며, 마침내 실재세계의 계층적 속성을 반영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노엄 촘스키는 언어적 계층적 구조를 학습하는 능력을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신피질의 구조와 일치한다. 촘스키는 2002년 공동집필한 논문에서 '순환'을 인간만이 가진 독특한 언어능력이라고 설명한다. '순환'이란 작은 부분을 모아 큰덩어리를 만들어내고 그 덩어리를 모아 다시 더 큰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인간은 이러한 과정을 무한하게 반복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순환능력 때문에 한정된 단어만으로 문장이나 문단과 같은 정교한 구조를 무한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촘스키는 뇌구조를 언급하지 않지만, 그가 설명하는 순환이라는 능력은 신피질의 능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어떤 이야기를 여러 번 듣는 경우, 우리는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구체적인 발화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단어의 배열'을 그대로 외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단어의 정확한 순서'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전달할 때마다 '구체적인 단어의 순서로 번역해내에 하는 언어구조'를 기억한다. 여러 사람을 거쳐 전달될 때마다 이야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구체적인 생각의 처리과정에서도 리던던시는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어떤한 감각이든, 언어적인 개념이든, 사건에 대한 기억이든, 우리 삶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항목은 하나의 패턴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패턴은-어떤 레벨에서나-여러 번 반복되어 입력된다. 이는 단순한 반복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다른 측면과 시점이 반영된 조금씩 다른 반복이다. 어떤 방향에서든 어떤 조명에서든 익숙한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리던던시 때문이다. 계층구조를 형성하는 각각의 레벨마다 상당한 리던던시가 존재하고, 이로써 그 개념에 발생할 수 있는 가변성을 충분히 처리해낼 수 있다.

따라서 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신피질을 들여다보면, 기초적인 레벨에서 인식하는 원시적 감각패턴에서 연인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무수히 다양한 패턴에 이르기까지 모든 레벨의 패턴인식기들의 수많은 축삭이 일제히 활성화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감각정보를 처리하는 최상위레벨 위에는 개념을 처리하는 계층구조가 존재한다. 개별적으로 처리된 다양한 감각정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영역도 존재한다. 배우자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소리정보와, 그녀의 존재를 암시하는 듯한 시각정보와, 그녀가 늘 쓰는 향수를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후각정보가 입력되었을 때 우리는 '논리적 연역'이라는 정교한 처리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이러한 감각인식을 조합해 배우자가 있다는 사실을 곧바로 인지한다. 연관된 모든 감각정보와 인지적 단서를 하나의 다중 레벨 인지를 통해 통합하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어떤 여자와 잠깐 마주쳤다고 해도, 나의 신피질에는 그녀의 패턴을 담은 다수의 복사본이 저장된다. 하지만 일정한 기간이 지나도록 그녀를 떠올리지 않는다면, 이러한 패턴인식기들은 다른 패턴을 저장하는 데 사용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이 희미해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신피질의 놀라운 패턴인식능력

패턴이 완벽한 형태로 제시되지 않아도, 심지어 패턴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어도 우리는 그것을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첫 번째 이유는 뇌의 자동연상기능 때문이다. '자동연상'이란 패턴의 일부만으로 패턴 전체를 연상해내는 능력으로, 패턴인식기 하나하나가 기본적으로 이러한 기능을 지원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변형되거나 왜곡된 패턴이라도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는 불변이성이다. '불변이성'이란 패턴에 변이가 발생한 경우에도 그것을 일관되게 인식해내는 능력으로, 이는 네 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

신피질 기능의 열쇠:학습

뇌의 가장 중요한 활동은 그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다.

마빈 민스키, [마음의 사회]

하지만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신피질에는 어떠한 패턴도 채워져있지 않다. 처음 뇌가 만들어졌을 때 신피질은 백지와 같은 상태로 존재한다. 신피질은 학습능력과 패턴인식기들을 연결하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러한 연결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인간의 학습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다. 뇌가 만들어지는 생물학적 발생과정과 동시에 학습은 시작된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뇌는 이미 형성된다. 물론 이렇게 처음 만들어진 뇌는 사실상 파충류의 뇌에 가깝지만, 약 20주 정도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거대한 생물학적 진화가 자궁 속에서 벌어진다. 수정 후 26주가 되면 태아의 뇌는 이제 신피질을 갖춘 완벽한 뇌로 탈바꿈한다. 이제 태아의 신피질은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학습을 시작한다.

태아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특히 엄마의 심장소리가 가장 크게 들린다. 음악의 리드미컬한 속성이 인류문화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인류문명 중에서 그림과 같은 시각예술이 없는 문명은 있어도 음악이 없는 문명은 없었다. 또한 음악의 박자는 심장박동수와 거의 일치한다. 물론 음악의 박자는 다양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음악은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다- 심장박동수 역시 마찬가지로 다양하다. 실제로 심장박동이 지나치게 규칙적인 경우, 그것은 오히려 심장에 병이 있다는 징후라고 한다.

태아는 또한 수정 후 26주부터 눈을 뜨기 시작한다. 수정 후 28주부터는 거의 하루 종일 눈을 뜨고 있다. 자궁 안에는 볼 것이 별로 없지만, 빛과 어둠은 감지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각적 패턴을 신피질은 처리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지능에서 학습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인간의 신피질과, 신피질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다른 뇌 영역(해마와 시상 등) 을 컴퓨터로 완벽하게 모형화해도, 별다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는 신생아의 뇌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과 같다.

학습과 인지는 동시에 발생한다. 정보가 입력되는 것이 곧 학습이고, 패턴을 학습하는 것이 곧 그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신피질은 계속 들어오는 입력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어떤 레벨에서 패턴을 제대로 처리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면, 그 패턴은 다음 상위레벨로 보내진다.

이 최적화 해법이 함축하는 중요한 의미는,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경험은 인지된다고 해도 영구적인 기억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산책을 하면서 모든 레벨에서 수백만 개의 패턴을 경험했다. 길을 걷는 동안 가로등, 우편함, 사람 들의 모양과 빛깔이 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것 중 어느 것도 독특하지 않았으며, 내가 인식한 패턴들은 이미 오래 전 리던던시 최적화 수준에 도달한 것들이었다. 더 이상 저장할 필요가 없는 정보들이었기 때문에, 산책에서 본 것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몇 안되는 세부적인 정보 역시, 앞으로 몇 번 더 산책을 하면서 획득할 새로운 패턴이 덮어쓸 것이다.

생물학적 신피질은 물론 그것을 모방하려고 하는 인공지능에 모두 적용되는 중요한 사실은, 개념적 수준에서는 동시에 여러 레벨에서 학습이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개념적 수준에서는 본질적으로 한 번에 한 개, 많아야 두 개 정도의 레벨에서만 학습이 가능하다. 그 학습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고 난 다음에야 다음 레벨의 학습이 진행될 수 있다. 하위레벨에서 학습된 내용이 지속적으로 미세하게 수정되는 와중에도 학습의 초점은 언제나 추상적인 레벨에 맞춰져 있다. 기초적인 모양을 인지하기 위해 씨름하는 갓난아기나 뇌의 작동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씨름하는 우리나, 복잡성의 레벨은 한 번에 하나씩만 학습된다. 신피질을 모방한 기계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한 번에 하나의 레벨씩, 추상성을 계속 높여준다면, 기계도 마침내 인간과 같은 학습능력을 갖출 날이 올 것이다.

패턴의 출력은 그 패턴 또는 하위레벨 패턴의 입력값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출력값을 다시 입력값으로 삼는 이러한 피드백루프는 인간의 뇌에 강력한 순환기능을 부여한다.

생각의 방향성

꿈은 방향성 없는 사고의 전형이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능력은 좌우 대뇌반구를 연결하는 뇌들보가 절단되거나 손상된 분리뇌 환자들에게서 극적으로 나타난다. 좌뇌가 우뇌에 입력된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언어중추를 제어하는 좌뇌는 우뇌가 방금 한 일을 설명하기 위해 이야기를 지어낸다.

이상한 춤을 추는 꿀벌

우리는 언제나 사건의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전형적인 사례를 보고 싶다면 주식방송을 틀어보라.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든 그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를 사람들은 그럴듯하게 설명해낸다. 이처럼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한 사후설명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주식해설가들이 정말 시장을 이해하고 있다면, 애초에 이렇게 해설하는 것은 시간낭비에 불과할 것이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역시 신피질이 하는 일이다. 신피질은 특정한 제약에 부합하는 이야기와 설명을 찾아내는 데 뛰어난 소질을 발휘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도 내에서, 꿈을 구성하는 실질적인 내용 역시 패턴의 나열이라 할 수 있다. 이 패턴들은 이야기라는 형태를 띤 제약을 상징한다. 이러한 제약에 맞게 우리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꿈은 실제로 꿈 속 경험을 이야기로 꾸며내고 각색한 꿈의 새로운 버전에 불과하다. 꿈을 이야기하는 동안 원래 경험했던 실제 꿈의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무수한 패턴들이 활성화된다.

잠잘 때 꾸는 꿈과 깨어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행동은, 심지어 생각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고 배운다.

또한 어떤 생각은 문화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금기는 대부분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토대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생산적인 관행을 강요함으로써 사회의 진보를 저해할 수도 있다. 빛을 타고 여행하는 생각실험을 아인슈타인을 뺀 나머지 과학자들이 하지 못한 것도, 그런 상상은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관행 때문이었다.

문화적 규칙은 올드브레인, 특히 아미그달라의 도움을 받아 신피질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예외없이 온갖 잡다한 생각을 촉발하는데, 그 중 일부는 위험한 생각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문화적 규범을 어기는 행동은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으로 추방당할 수 있다는 것을 어릴적부터 배웠기 때문에, 신피질은 이런 생각이 자신의 안녕을 위협한다고 인식한다. 생존에 대한 위협을 느끼는 순간 아미그달라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아미그달라의 주요역할은 공포를 유발하는 것이고, 공포가 휩쓰는 순간 그러한 생각은 완전히 차단당하고 만다.

꿈을 꿀 때는 이러한 금기에 대한 인식이 느슨해지고, 이로서 문화적으로 성적으로 직업적으로 금지된 행동을 하는 꿈을 꾸게 된다.

하지만 꿈을 활용하여 직업적인 금기를 느슨하게 만드는 것은 창조적인 문제해결에 유용한 도움을 주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꿈을 해석함으로서 그 사람의 심리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본적으로 매우 타당한 것이다. 꿈은 어쨌든 신피질의 작용이기에, 꿈을 분석하면 신피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또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