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쇼몽>의 원작.

읽어보면 단편집임. 영화는 단편 <라쇼몽>과 <덤불 속>을 믹스시켜서 그리고 있음. 또 모두 영화처럼 어둡고 불쾌하지만은 않음.

내가 본 책에는

1.라쇼몽

2.코

3.두 통의 편지

4.지옥변

5.귤

6.늪지

7.의혹

8.미생의 믿음

9.가을

10.묘한 이야기

11.버려진 아이

12.남경의 그리스도

13.덤불 속

14.오도미의 정조

15.인사

16.흙 한 덩어리

17.세 개의 창

이 실려있음. 다른 출판사 책에는 다른 구성으로 되어 있을지도 모름.

내가 본 건 문예출판사 버전.

단편집을 쭉 보면 마냥 어둡고 불쾌하지만은 않음. 따뜻하고 웃음지어지는 에피소드들도 있음. 특히 <귤> 이 그런데 짧지만 수작임. 그 시대상에서 알 수 있는 따뜻함이 있음.

다만 전체적으로 냉소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음.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자체가 굉장히 냉소적인 사람이라고 함. <귤>의 화자, <가을>의 첫사랑 남성캐릭터, <남경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푸는 방식, <의혹>의 화자 등 많은 부분에서 스스로를 모델로 한 듯한 캐릭터들이 냉소적인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감.

역시 강렬한 건 <라쇼몽> 과 <덤불 속>

그 외에도 <남경의 그리스도>,<흙 한 덩어리>,<묘한 이야기> 등도 강렬했음.

<라쇼몽>

도적들의 소굴이기도 하고 동물과 인간의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나생문'

하인은 어느 날 비내리는 밤 그 안에서 죽은 여성의 머리카락을 뽑고 있는 노파를 보고 분노한다. '악'을 봤을 때 느끼는 분노. 그러나 노파는 이 여성도 나쁜 사람이고 자기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죽을 거라며 시체도 자기를 이해할 것이라 한다. 하인은 자신도 악을 행할 수 있다는 논리를 얻고 노파의 옷을 빼앗아 도망간다.

악의 연쇄 고리일까? 아니면 빗속에서 굶어죽기를 기다리던 수동적인 삶에서 적극적인 삶으로 바뀐 생의 고리 일까? 나생문일까?

우리는 '먹고사니즘' 을 통해 얼마나 주변에 냉혹할 수 있는가

<덤불 속>은 영화를 보면 좋다. 다만 영화 라쇼몽은 감독의 해석이 들어가있기 때문에 좀 더 결말이 명확하다. 심지어 소설<라쇼몽>과 다르게 마지막에 스님이 버려진 아이를 거두며 인간에 대한 마지막 신뢰를 보여주는 장면도 나온다. <덤불 속>은 한 살인사건을 통해 살해당한 신랑,도적,신부의 증언들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도적도 신부도 심지어 죽어 귀신이 되어서 증언하는 신랑도 모두 자기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각자의 관점에서 각자의 시각으로 사실을 재구성한다. 거기에 '진실'은 있어도 '사실'은 없다. 그래서 '사실'은 '덤불'에 둘러쌓인 것처럼 희미하다.

<남경의 그리스도>는 어떤가? 정말 매독에 걸린 착한 매춘부가 성관계를 맺고 자기 병을 낫게 해준 외국인 손님은 그리스도일까? 아니면 성격 꼬인 외국인 기자일까? 화자는 외국인 기자인 것 처럼 이야기하지만 그것 또한 알 수 없다.

<두 통의 편지>의 편지를 보낸 남편의 아내는 정말 바람을 핀 걸까? 아니면 도플갱어일까?

<의혹>의 남편은 아내를 죽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을까? 아니면 과한 죄책감일까?

일본 근대 소설 특유의 탐미적인 느낌과 냉소,허무주의가 잘 버무려졌다. 가끔 다시 읽어보곤 해야겠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