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스는 나더러 고객에게 무슨 조언을 하는지 물었다.

"다가오는 위기로부터 최대한 스스로를 보호하고 시장을 피하라고 합니다."

케인스는 나와 정반대 의견을 취했다.

"대체 어디에서 공황이 비롯된다는 건가요?"

"공황은 드러난 현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데서 비롯될 겁니다.

나는 이런 기세의 폭풍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펠릭스 소마리 [취리히의 까마귀] 1927년 케인스와의 대화



복잡성 이론은 공식적으로는 1960년대에 창안되었으나 그 원리에 대한 관찰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됐다.

현대의 복잡성 이론은 1960년대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에서 수학과 기상학을 연구하던 에드워드 로렌즈의 논문과 함께 시작됐다.

로렌즈의 논문은 대기에 관한 것이지만 그 결론은 복잡계 전반에 두루 적용된다.

그 유명한 '나비효과'의 기원이다.

'특정한' 허리케인의 정확한 시작점을 오래전에 예측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허리케인이 마이애미를 강타할 가능성까지 내버려둘 수는 없다. 마이애미에서 허리케인이 일어나는 것은 거의 확실한 사실이므로 항상 예방책을 갖춰두는 것이 필수다. 마찬가지로 '특정한' 시장 공황을 날짜까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고 해서 공황 자체의 규모와 빈도에 대한 타당한 통찰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통찰은 분명 가능하다.

베이즈 통계학은 데이터가 부족할 때나 문제가 불분명하고 전통적인 통계학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할 수 없을 때 가장 유용하다.

베이트 통계학을 이용하면 한 가지 혹은 여러 가설을 세운 다음 이후에 얻는 정보를 활용하여 새로운 가설을 얻을 수 있다.

베이즈 정리의 핵심은 일련의 사건이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주사위를 굴릴 때와는 달리 현실세계의 새로운 사건은 그 이전의 사건과 별개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월가와 중앙은행은 각각의 사건이 연관성 없이 일어난다는 모형에 의존한다.

복잡성 이론은 두 가지 도구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첫째, 대리자다. 대리자는 복잡계 내의 행위자에 불과하다.

둘째, 피드백이다. 초기 행동에서 산출된 결과가 그 후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한다.

대리자와 피드백은 복잡계 기본 구성단위다. 그 외에 또 무엇이 필요할까? 대리자가 다양해야 시스템에 도움이 된다. 대리자들이 동질적일 때는 대리자 한 명의 행동이 다른 대리자의 행동을 바꾸기보다 강화하기 때문에 피드백이 미약하다. 주식 시장에는 황소와 곰, 선물 매입인과 매도인, 부자와 빈자, 노인과 젊은이 등 다양한 대리자가 존재한다. 자본시장에서는 대리자의 다양성이 두드러진다.

또 하나는 대리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이다.

적응은 희소한 자원에 대한 경쟁에서 비롯된다. 귀중한 자원을 무한정 이용할 수 있다면 생존 전략이나 적응 행동이 필요하지 않다.

자원의 희소성 때문에 개인은 자기 몫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취한다.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는 문제가 경제학의 근본이다.

자본시장에서 희소한 자원은 이익이다.

이런 행동은 군중을 형성한다. 군중 속에서 어떤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행동을 강화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에 따라 성공 전략을 취하는 사람이 지나치게 많아지는 바람에 그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이런 적응 행동은 피드백과 기억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물리학자들은 군중을 분석하기 위해 '반군중'이라는 개념을 상정한다. 반군중은 기존 군중과 정반대로 행동하는 추종자들을 끌어들인다. 이런 군중-반군중의 행동은 대량의 기억과 피드백을 통해 이루어진다. 군중과 반군중을 가르는 요인은 예측이다.

실시간 정보는 대리자의 반응을 잠재우기보다 촉진한다.

특정한 바에 가려고 하는 사람이나 특정 주식의 매입 여부를 고심하는 투자자는 예측 목적에 따라 세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군중은 미래가 과거와 비슷하리라 예측한다. 반군중은 미래가 과거와 다르리라 예측한다. 세 번째 유형은 어느 것도 예측을 하지 않으며 머릿속으로 동전던지기를 하여 얻어낸 무작위 결과를 토대로 행동한다.

그러나 반군중이 너무 많아지면 그 곳은 다시 초만원이 된다. 그러면 반군중 가운데 일부는 군중과 같은 생각으로 집에 머물기로 할 것이다. 그 때문에 바는 다음 주말이면 한적해질지도 모른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 된다.

군중과 반군중은 각각 참가자 과반수 정도를 끌어들이는 반면에 무작위 행위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실험을 통해 복잡계의 가장 강력한 특징이 '창발'(새로운 성질이 자발적이고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것) 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복잡계에서는 뚜렷하게 상반되는 집단들이 어떤 강요 없이 출현한다. 또한 불특정 다수의 피드백과 기억에 근거한 사전협의 없이 나타난다.

창발적 행동이 있다는 것은 복잡성 이론을 통해 충분히 입증된다. 이는 직관적으로도 당연한 일이다. 월가에서 흔히 하는 이야기가 '사려는 사람이 있으면 팔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상승장의 매입인은 미래가 과거와 흡사하리라 믿는 군중이다. 매도인은 미래가 과거와 다르다고 믿는 반군중이다.

자본시장은 다양성,소통,상호작용,적응 행동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복잡계에 관한 서술적 정의에 부합한다.

공포는 군중과 반군중이 하나로 행동할 때 생겨난다. 완벽하게 질서정연한 시장은 파는 사람만 있고 사는 사람이 없는 시장이다. 이런 시장은 곧바로 붕괴하며 가격이 0으로 곤두박질치게 마련이다. 그 실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자연적인 복잡계에서는 붕괴가 그런대로 자주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사회는 대형 은행의 파산을 감당하는 법을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1987년,2000년,2008년의 폭락 이후에 회복했고 최고점을 갱신했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이 시장 붕괴를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규모의 시장 붕괴가 일어나면 시스템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기 때문이다. 회복은 커녕 시스템 자체가 소멸해버린다.

LTCM 이야기를 지금 돌이켜보는 이유는 1998년 위기가 2008년 위기의 전조였기 때문이다. 1998년과 2008년의 위기는 상황은 달랐지만 그 원리는 같았다.

1998년이나 2008년이나 동일한 재료로 빚어진 위기였다. 과도한 레버리지, 파생금융상품, 구닥다리 위험 모형에 대한 의존 등등. LTCM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이를 적용했더라면 2008년의 위기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퀀트들이 도박꾼들과 다른 점은 스스로가 도박꾼의 승률이 아닌 카지노의 승률을 지닌다고 믿은 것이었다. 퀀트들은 확실한 일에만 돈을 걸었기 때문에 큰돈을 따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믿었다. 그들 생각으로는 그저 판돈을 두 배로 키우는 일만 반복하면 그만이었다.

위험을 분산했다는 것은 망상이었다. 위험분산은 시장이 평온하며 투자자들이 시간을 들여 가치를 발굴하고 스프레드를 수렴시킬 수 있을 때만 가능한 법이다.

고요한 시장의 순위험(모든 통제 조치가 제 기능을 하고 있을 때의 위험 수준으로, 잔여 위험이라고도 한다.)은 시장이 혼란에 빠지면 총위험(모든 통제 조치가 기능하지 못할 때의 위험 수준으로, 내재 위험이라고도 한다.)으로 바뀌는 법이다. 그들은 피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했다. LTCM이 대마불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레버리지와 투명성 문제보다 한층 더 위협적인 문제가 존재했다. 월가는 아직까지도 깨닫지 못했지만 위험이 파생금융상품의 순포지션이 아닌 총포지션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 세계에서는 시티은행과 뱅크오브아메리카가 골드만삭스와 그런 거래를 하는 동시에 그 거래에 내재된 위험을 헤지하기 위해 반대 방향의 거래를 하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가 파산하면 어떻게 될까? 그들의 공매도 포지션이 상쇄될 기회가 사라지므로 시티은행의 10억 달러짜리 헤지 포지션이 갑자기 총매입 포지션이 된다. 시티은행은 시장에서 10억 달러어치의 5년 만기 중기채권을 매도해야 대차대조표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정반대 상황에 처한다. 당장 10억 달러어치의 2년 만기 중기 채권을 매입해야 골드만삭스의 포지션이 합성매입 포지션(콜 매입과 풋 매도가 결합된 포지션)에서 사라졌을 때 발생한 순매도 포지션을 상쇄할 수 있다.

복잡계에서 규모는 크기와 같은 뜻이며, 구체적으로 위험을 창출하는 지표를 말한다. 1998년 LTCM의 붕괴와 2008년 AIG의 부실 뿐 아니라 바로 앞에 소개한 예시들은 파생금융상품의 위험이 월가와 규제기관의 추측과는 달리 순가치가 아닌 총명목가치에 내재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총명목가치는 규모를 가늠하는 단순한 척도 중 하나다. 총명목가치가 증가하면 위험이 비선형적 형태로 증가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쉽게 말해 파생금융상품의 총명목가치가 두 배 증가하면 위험이 두 배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복잡계의 특성에 따라 10배나 100배까지도 증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양한 실험에서 일정하게 관찰되는 결과들이 있다.

  • 자본시장은 복잡한 역학계다.

  • 복잡성은 기억이나 피드백을 통해 경로의존성을 보인다.

  • 자본시장의 위험은 규모에 대한 지수함수다.

  • 초기 시스템 환경의 작은 변화가 여러 다른 결과를 낳는다.

  • 시스템에서 질서정연하거나 카오스적인 일들이 산출될 수 있다.

그린스펀이 간과한 사실은 원천 위험 한 단위로부터 생성될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의 명목가치에는 상한선이 없다는 점이다. 대출 10억 달러가 스와프를 통해 열 가지 세부 위험으로 나뉘고 제각각 거래되어 총명목가치가 10억 달러가 된다면 그린스펀의 견해가 정당화될 것이다. 현실은 이와 다르다. 딜러들은 10억 달러의 기초증권에서 100억 달러가 넘는 스와프를 창출해낸다.

글래스-스티걸 법의 폐지는 금융계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데 일조했다. 새로운 유형의 복합 금융회사를 설립하는 일이 가능해짐에 따라 대형 은행 한 곳의 부실이 은행 시스템 전체를 무너뜨릴 정도로 시스템의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또한 시중은행도 투자은행처럼 자기계정 거래와 그에 수반되는 파생상품 거래에 관여할 수 있게 됐다.

2000년 이전에는 주식 이익,채권,금리,통화만이 스와프의 기초자산으로 허용됐다. 원유,금속,곡물 같은 원자재 거래는 정부가 규제하는 선물거래소에서 이루어졌다. 다른 원자재의 거래는 선물 시장에서도, 스와프 시장에서도 허용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원자재가 파생금융상품 형태로 거래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2000년에 스와프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서 모든 형태의 파생금융상품이 그 어떤 규제도 받지 않고 거래되는 길이 열렸다. 엔론 같은 회사는 재빨리 전력 선물을 위한 장외시장을 만들었고 그 때문에 수십 억 달러 규모의 회계 부정을 저질러 몰락했다. 그램,루빈,서머스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은행들도 자본 요건이 완화되기를 바랐다. 은행의 자본 요건은 국제결제은행 산하의 바젤위원회에 의해 정해졌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최초의 은행 자본 규제는 1988년 '바젤1'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됐다. 몇 년도 지나지 않아 바젤 1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불만이 나왔다.

그 결과 2001년에서 2004년 사이의 수정 작업을 거쳐 '바젤II' 라는 자본 규제타 탄생했다. 바젤II는 레버리지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려도 안전하다는 위험관리 모형을 부분적으로 반영하여 은행이 레버리지 비율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허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