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구가 너무 많아서 밑줄 그을 것이 너무 많았던 책. 저자가 읽었던 책들과 그 속의 지식들을 꼭꼭 씹어서 본인의 언어로 전달해주는 책. 그리고 그 책들까지 추천을 해주니.. 그 책들도 기록해놓고 하나씩 읽어야지..

행태재무학, 재귀성이론, 확률적사고,주식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가? 까지.. 나에게는 필요한 것들이 잔뜩 든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었음. 좋은 책인가는 독자에 따라 다른 것. 각 원서들을 읽고 본인의 해석을 가진 분들에게는 모르겠지만 아직 인용된 원서들을 다 보지 못한 나에게는 분명 좋은 책이었음.

라틴어로 '부정의 통로'를 의미하는 '비아 네가티바'는 무어시 진리가 아닌가를 밝힘으로써 결과적으로 진리에 조금씩 접근해나가는 방법입니다. 쉽게 말해서 보약을 먹는 것보다 담배를 끊는게 좀더 확실하게 건강해지는 길이죠.

마이클 모부신은 어떤 시스템에 '실력'이 존재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간단한 질문 하나를 제시합니다. '일부러 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마이클 모부신이 쓴 또 다른 책 <통섭과 투자>에 흥미로운 펀드 분석 결과가 나옵니다. 미국에서 2006년까지 10년간 운용된 펀드들을 비교한 결과, 전체 펀드의 회전율이 89%였습니다. 그런데 지수를 이긴 펀드, 즉 시장평균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펀드의 회전률은 35%에 불과했습니다.

우리 두뇌는 간단히 말하자면 '예측 기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래 예측의 핵심은 '패턴 인식'입니다.

이처럼 지나치게 뛰어난 패턴 인식 기능이 때때로 오류를 범해는데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패턴으로 유의미한 패턴을 추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파레이돌리아' 나 '몬데그린'을 검색해보면 다양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A라는 자극으로부터 B라는 결과를 예측하는 과정 또한 일종의 패턴 인식입니다. A라는 자극이 B라는 패턴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A와B의 관계가 강화되고, 쉽게 발화됩니다. 이것을 '학습'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뇌는 언제나 스토리텔링을 원합니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연관성 착각, 통제 착각, 일반화된 과잉반응 등 관련이 없는 두 현상을 관련 있는 것으로 이어붙이려는 인간의 성향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경험을 쌓고 논리적인 추론을 할수록 미래를 더욱 정교하게 예측할 수 있으리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주식시장을 비롯한 현실의 다양한 면면은 '복잡적응계(서로 연결된 다양한 요소에 의해 완성되므로 복잡하고, 경험에서 배우고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적응적이라는 의미의 조직이나 구조, 시스템)'의 성격을 띱니다. 변수가 너무 많을뿐더러 어떤 변수가 존재하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고, 각각의 행동 주체가 다른 주체의 행동에 따라 자신의 의사결정을 수정합니다.

복잡적응계에서의 어설픈 경험은 잘못된 학습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여기에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입니다. 우리는 '학습'이라는 것을 순수하게 이성적이고 의식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 두뇌에는 '도파민 보상 회로'라는 것이 있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하면 중뇌에 있는 복측피개영역(VTA)이 도파민을 생성합니다. 도파민은 측좌핵,해마,편도체,전전두엽으로 전달됩니다. 측좌핵은 도파민을 받거나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에서 활성화돼 우리가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복측피개영역에 도파민을 더 보내달라고 요구합니다. 도파민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와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에도 전달돼 도파민을 분비하게 한 상황 또는 행동을 기억시킵니다. 전전두엽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지를 결정하는 영역입니다. 여기서는 쾌락의 가치를 평가하고, 앞으로 그 행동을 계속할 것인지를 판단합니다.

측좌핵의 요구에 부응하려면 다시 그 행동을 해야 하므로 동기가 유발됩니다. 한편 전전두엽은 이 즐거움이 몸에 해로운 쾌락이라고 판단하면 행동을 실행하지 않도록 명령합니다.

흥미롭게도, 도파민은 전전두엽의 명령을 '삭제'하는 역할도 합니다. 당장의 쾌락을 추구하느라 이성적인 판단력이 마비되는 일이 바로 도파민 때문에 일어납니다. 자극과 쾌락이 반복되면 나중에는 그 자극을 유발할 수 있는 상황만 되어도 도파민이 분비되는데요, 도파민은 전전두엽피질의 명령을 차단하고 눈앞의 쾌락을 추구하게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습관'이라고 부릅니다.

새로운 경험을 '시작하는 뇌'와 이미 여러 번 해온 일을 '반복하는 뇌'는 다릅니다. 사람들이 처음 어떤 과제를 수행할 때는 전두엽과 해마 영역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여러 번 했던 과제를 반복할 때는 기저핵 안의 조가비핵이 활성화됩니다.

불확실한 보상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두뇌는 훨씬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모호성이 크면 편도체와 전두엽피질이 활성화되고, 선조체는 비활성화 됩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이 익히 알고 있는 패턴이라는 착각이 들면 선조체가 활성화되면서 습관적으로 행동하게 합니다. 복잡계에서는 다양한 패턴이 잘못된 패턴 학습으로 이어지고, 습관적인 반응은 잘못 인식된 패턴에 따른 무의미한 의사결정을 하도록 그대로 놔줍니다.

보상 회로에 따른 학습 프로세스는 선사시대에 야생동물,맹독,전염병 등으로부터 살아남기에는 유리했습니다. 패턴 인식 능력은 생존에 도움을 줍니다. 어떤 식물이 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인식했다면 피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두뇌는 자본시장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아직은요

세라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습니다.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물질'이라고 알려져 있죠. 세로토닌의 주요 역할은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의 수치를 적절히 조절해주는 것입니다. 도파민은 아까 동기부여와 습관 형성에 크게 기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이라고 말씀드렸죠. 도파민의 또 다른 역할이 있는데, 바로 인식된 패턴에 대한 확신의 정도를 높여주는 것입니다. 도파민 분비가 과하면 다른 사람의 사소한 표정 또는 몸짓에서 공격성을 읽어내거나,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귀신을 봤다고 믿는 등의 일이 벌어집니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도파민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습니다. 노르아드레날린은 노르에피네프린이라고도 불리는데요 몸을 긴장하게 하여 주위를 경계하고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각성시킵니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 수치가 제멋대로 날뛰게 되어 우울증 또는 무기력증에 빠지거나, 반대로 충동적으로 공격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성공 경험을 한 사람은 세로토닌 수치가 높아집니다. 세로토닌 수치가 높은 사람은 행동거지가 다릅니다. 허리를 쭉 펴고 위풍당당하게 걷습니다. 자기 주장이 강합니다. 침착하고 자신감 넘치는 말투 등 태도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사람들에게 더욱 신뢰감을 주게 됩니다.

사람들은 '성공한 투자자'의 말을 듣고 주식을 삽니다. 그들도 돈을 법니다. 왜냐고요? 지금은 강세장이니까요. 원칙이 옳아서 돈을 번게 아니라, 그냥 시장이 다 같이 오르니까 돈을 번 겁니다. 세상일은 내가 잘해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기보다는 그저 좋은 시기에 좋은 장소에 있었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에게는 일종의 '군집 스위치'가 있습니다. 다수와 함께 움직이면서 동질감을 느낄 때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낍니다.

위험 추구 성향이 낮다는 건 가진 것을 잃기 싫어한다는 뜻입니다. 사회적 지위나 재산은 결국 상대적입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다들 돈을 벌면, 나는 상대적으로 뒤처지게 되지요. 위험 추구 성향이 낮은 사람들일수록 남보다 뒤처지는 걸 못견디기 때문에 이들도 주식투자에 뛰어듭니다.

그때가 강세장의 끝입니다.

주식을 팔고 났는데 주가가 급락하는 모습을 본 투자자의 머릿속은 어떨까요? 곰에게 쫓겨 나무 위로 도망쳤다고 상상해봅시다. 곰이 더는 쫓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복측피개영역에서 오피오이드가 분비됩니다. 오피오이드는 천연 헤로인이라 볼 수 있는 아편성 물질로, 통증을 줄여줍니다. 지방의 섭취를 부추겨 다이어트를 실패로 이끄는 호르몬이기도 하죠.

반면, 주식을 팔지 못하고 버티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머릿속은 어떨까요? 세로토닌 수치가 줄어듭니다. 자신감이 줄어들고 무기력해집니다. 우울증에 빠지거나 조바심을 내거나 공격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설득력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타인의 세로토닌 수치를 알아보니까요. 세로토닌이 부족한 '패배자'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주가가 '많이 빠졌다'고 느꼈을 때, 미리 잘 팔고 나왔던 '도파민 뿜뿜' 투자자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네, 다시 삽니다. 왜냐고요? 난 똑똑하니까요.

강세장에 배 아파하던 사람들이 장기 약세장에 대해서 자신 있게 '썰'을 풀고 다닙니다. 세로토닌 수치가 높아진 분들이 하는 이야기라 굉장히 그럴싸해 보입니다.

직관은 우리가 어떤 상황을 접하자마자 빠르게 내려지는 결정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그 사람의 첫인상을 판단합니다. 첫인상을 결정할 때 두뇌에서는 편도체와 후대상회가 활성화됩니다. 편도체는 공포나 불안 등을 관장하는 두뇌의 중추이고, 후대상회는 보상에 대한 판단을 하는 영역입니다.

첫인상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훨씬 많은 새로운 자극이 필요합니다.

<바른 마음>에서는 직관이 어떤 답을 내려버린 이후에, 우리가 이성적으로 하는 추론 행위는 직관을 옹호하기 위한 변명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합니다.

편도체는 감정의 중추로, 뇌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칩니다. 일상 활동은 감각피질로 입력되고, 감각피질에서는 감각작용 중 마지막 단계로 편도체에 신호를 보냅니다.

해마는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꾸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조직입니다. '기분 일치 가설'에 따르면, 감정과 결부된 기억은 쉽게 각인되고 회상하기도 쉽습니다.

'통합 정보 이론' 의식은 정보 처리의 특정 형태라는 것입니다.

이 가설이 시사하는 바는, 그리고 앞서의 여러 실험이 의미하는 바는, 자아가 수행하는 '의식적 추론'의 힘은 생각보다 약하고, 그 추론의 대부분의 '비의식적 자아', 프로이트식으로 표현하자만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입니다.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교수는 이렇게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의식을 벗어난 주체를 '무의식적 좀비'라고 부릅니다.

비의식적 자아는 원시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생존하는데 크게 기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좀비는 자본시장이라는 복잡계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무의식의 힘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의 '좀비'에게 투자 의사결정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격이 됩니다.

의사결정을 반드시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이 한 문장을 이해했다면 이 책을 다 읽었다고 봐도 됩니다.

기록을 하지 않으면 과거의 의사결정을 왜곡하게 되고, 왜곡된 기억을 가지고 현재를 평가하면 잘못된 결론을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평가로부터 나온 원칙을 아무리 시장에 적용해봤자 잘못된 학습밖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장하지 못합니다.

성공을 위한 확실한 원칙이 존재하기 어려운 복잡적응계에서는 확률론적으로 사고할 수 밖에 없고, 확률론적 사고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은 확실하지 않은 가설들을 쌓아 올리다가 어느 순간 방아쇠를 당기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언제나 '틀릴 수 있음'을 전제해야 하고, '틀린 이후에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우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반증 가능성'입니다. 의사결정에 포함되는 가설은 반증 가능한 형태여야 합니다.

즉, 어떤 경우에도 이 명제가 '틀렸음'을 입증할 수 없습니다. 투자자는 예상했던 시나리오가 달성되지 않는 경우 무한히 기다릴 뿐이며, 어떤 유의미한 지식도 축적할 수 없습니다.

복잡적응계에서 좋은 원칙이란, '여러 번 시행했을 때'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원칙입니다. 앞의 사례처럼 반증 가능한 명제들로 투자 의사결정을 조립해나가면, 한 번의 시행에서 나쁜 결과가 나오더라도 원칙을 꾸준히 개선할 수 있습니다.

저는 투자 의사결정은 전날 저녁에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낮에는 각종 스트레스에 노출되기에 코르티솔과 테스토스테론 분비량이 늘어납니다. 코르티솔은 '스트레스 호르몬' 이라고도 불립니다. 긴장,공포,고통 등 다양한 스트레스에 맞서 신체 전반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호르몬입니다. 테스토스테론은 대표적인 남성 호르몬입니다. 일반적으로 공격성을 부추기고 지위 상승에 대한 욕구를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커질수록 사람은 습관에 의존하늰 자동조종 모드가 됩니다. 에두아르도 안드라데와 댄 애리얼리의 실험에서 인간은 감정적인 자극을 받으면 이익이 될 제안도 거절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근시안적 손실 회피'가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손실을 자주 볼수록 위험 회피 성향이 커진다는 의미입니다.

시장으로부터 아예 눈과 귀를 막아버리는 것은 당장의 성급한 의사결정과 잦은 매매를 방지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인 성장에는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의사결정을 하는 시간과 그 의사결정을 집행 하는 시간을 분리하는 것이 나쁜 매매를 방지하면서 장기적으로 의사결정의 질을 높여가는 길입니다.

앵커링 이펙트

A

-간디가 사망한 나이가 144세보다 많았는가, 적었는가?

-간디는 몇살에 사망했는가?

B

-간디가 사망한 나이가 55세보다 많았는가, 적었는가?

-간디는 몇살에 사망했는가?

이때의 숫자가 처음의 숫자와 유의미하게 차이가 있다면 앵커링 이펙트를 직접 겪은 것입니다. 순서대로 이어진 두 질문은 독립적입니다.

기세 좋게 오르던 주식이 하락하면 투자자들은 '싼 가격', 즉 다시 매수할 수 있는 가격이 어디쯤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이 회사는 2016년에 이익이 정점을 찍고 이후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주가도 이에 따라 하락했습니다. 영업이익률이나 ROE등 여러 지표를 적용하여 생각해봤을 때, 시장평균보다 더 높은 프리미엄을 부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2016년 하반기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주가가 바닥 대비 무려 50%나 상승한 것입니다. PER이 27배까지 하락했다가 40배까지 상승한 거예요. 고점에서 적용받던, 70배의 PER 대비 27배는 너무나 싸 보였던 것입니다. 최근 3년 평균으로 봐도 40배는 부여받고 있었으니, 30배 미만에서는 살만하다는 생각을 하기 쉬웠습니다.

역시나 주가는 하방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하락했습니다. 2018년 PER이 13배 수준까지 내려간 다음에야 바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심리학에서 이와 유사한 편향으로 '경로 의존성'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특정 경로를 걸어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그 경로를 유지하는 것이 비합리적임을 알아도 경로를 바꾸는 것을 꺼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가짜 반등, 개미꼬시기 라고 부르는 것들 흔히들 세력의 농간이라고 치부하지만 앵커링 효과 및 경로의존성의 결과?

'내가 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면, 지금쯤 어던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주식을 신규로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기꺼이 팔아버릴 것인가, 아니면 무시하고 계속 가져갈 것인가?'

거래의 기본은 상대방의 생각을 읽는 것입니다. 어떤 주식을 볼 때 현재의 상태만 보는 것보다 주식이 걸어온 경로를 봐야 합니다. 그러면 과거에 이 주식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즉 이 주식을 바라보고 있는(또는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진 경로 의존성 또는 앵커링 이펙트로는 무엇이 있을까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지나치게 높은(낮은)가격'의 이유 한가지를 댈 수 있습니다.

겸손한 태도는 투자를 할 때 아주, 아주아주 중요합니다. 여기서 겸손함이란 넒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인과관계에 겸허해지기(회의론),미래예측이 불확실하다는 사실 인정학, 좋은 성과에 우쭐대지 않기 등 세상과 나 자신을 바라볼 때 모두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1.A 사건이 B 사건보다 선행해야 한다.

2.A와 B 사이에 논리적인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3.A와 B를 함께 발생시키는 독립적인 사건 C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1을 알아내기는 쉽습니다. 2는 어렵습니다. 3은 아주 어렵습니다. 자연과학에서는 '재현성'이라는 기준으로 인과를 검증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영역에서는 동일 조건에서 반복 실험을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B 라는 현상을 봤을 때, 선행해서 발생한 A라는 사건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때 A와 B의 논리적 개연성을 추측할 수는 있지만, 2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스토리텔링에 중독된 우리 뇌가 마구잡이로 만들어낸 개연성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별개의 사건 C가 존재하지 않음을 우리는 입증할 수 없습니다.

투자는 성과가 확연히 눈에 드러나는 행위입니다. 어느 시점엔가는 투자자가 돌려받을 수익(또는 손실)을 명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그런 성과가 나왔는지는 매우 불확실합니다.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우리 두뇌의 특성상 뭐라도 이유를 갖다 붙이고 싶어 하겠지만요.

결과를 평가할 때는 신중한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결과가 잘 나왔더라도 내가 잘한 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전두엽은 의사결정을 완결하는 '이성'에 필요한 부분입니다. 전두엽은 정서 반응을 통합하여 의사결정을 합니다. 정서 반응을 처리하는 전두엽 부위가 손상된 엘리엇은 문서작업에 어떤 색의 볼펜을 슬지, 어떤 라디오 채널을 들을지, 주차를 어디에 해야 할지 등 아주 사소한 의사결정조차 신중에 신중을 기하다 결국 결정을 하지 못합니다. 직장에서 해고되고 아내와 헤어지고 사업도 실패했지만, 그런 자신의 처지에 고통을 느끼지조차 않습니다.

감정을 배제하면 의사결정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나의 행동이나 감정에 대해서 두뇌가 언제나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내고 있다면, 우리가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느끼는 생각이 진정 합리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가 늘 제약당하고 편향에 가득 차 있다면, 오히려 반대로 편향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1.게이가 싫다

2.합리적으로 보이는 이유를 붙인다.

3.게이는 나쁘다. - 커뮤니티 등에서 수없이 보이는 모습

만약 자신이 프로젝트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면, 일단 '실패했다'라고 상상해봅시다. 그러면 실패한 상황이 머릿속에서 '앵커로 작용하고, 실패한 상황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편향되게' 찾아내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나의 실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여기서도 사고의 편향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대화를 할 때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형태로 이야기를 꺼내느냐에 따라 다른 반응을 접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대화 상대방이 호의를 갖고 있는 어떤 대상과 결부시켜서 이야기를 꺼내거나, 자신감 있고 겸손한 태도로 이야기를 하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감정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연산장치의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두뇌의 작동 방식을 잘 이해하면 감정에 휘둘리는 의사결정을 줄일 수 있고, 오히려 감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편향을 제거할 수도 있습니다.

코넬대학교 행동과학과 교수인 J. 애드워드 루소는 합리적 의사결정과정으로 '결정의 틀 짓기, 정보 수집하기, 결론에 도달하기, 경험으로 부터 학습하기'라는 4단계를 제시합니다. 그 첫 단계인 '결정의 틀 짓기'는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의사결정에 대해 훈련받지 않은 사람들은 틀 짓기를 무시하고 바로 정보 수집 단계로 뛰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정의 틀을 짓는다는 것은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머니볼/세이버 메트릭스

'어떤 선수를 데려와서 지암비를 대체할까? 라는 질문을 고수했다면,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엇을 것입니다. 질문을 '부족한 재정으로 필요한 스탯(인물의 능력 수준을 가시화한 수치)을 맞추려면 선수를 어떻게 조합해야 하는가?'로 바꿈으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투자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대답할 수 없는 난감한 질문을 주고받다 보면 무의미한 결론으로 이어지고, 무의미한 경험이 무의미한 학습으로 쌓입니다.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차근차근 던지다 보면, 대답하기 어려웠던 질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A'주식의 주가가 오를까?라는 질문에는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질문을 '주가는 EPS X PER인데, A 주식의 앞으로 1년간 EPS는 O% 증가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이 전망이 실현됐을 경우 PER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식으로 바꾼다면 좀더 답변하기가 수월합니다.

투자의 세계로 돌아와 보자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의 종류가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겠지요? 우리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대략 다음의 주제들입니다.

금융 시스템

금융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은 투자자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중앙은행의 정책이나 환율 등 다양한 매크로 변수가 내 자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내가 소유한 자산이 어던 권리를 보장하는지 알 수 없는 채로 매매를 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질 수밖에 없는 도박에 나서는 셈입니다.

기업의 활동

막연히 '넷플릭스의 내년 주가는 얼마가 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보다는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의 크기, 시장 점융율, 수익성 등으로 차근차근 질문을 던지는 것이 찾아나가기 편한 방법입니다.

공시정보

기업의 공시 사항에 관한 질문이라면 반드시 답변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A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얼마인가? 경쟁사 대비 어떠한가?는 기업의 상태를 파악하는 아주 기초적인 질문이면서 정답이 존재하는 질문입니다. 이를 조금 응용해서 미래 예측에 관한 질문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A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내년에 어떻게 변할 것인가? 와 같은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감가상각비가 과다하여 경쟁사 대비 3%뒤지는데, 5년 전에 투자를 완료한 설비의 감가상각이 올해로 종료되어 내년부터는 경쟁사와 유사한 정도로 영업이익률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형태의 문답은 반증 가능한 형태입니다. 예를들어 감가상각비는 예상대로 줄었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익률 회복이 상쇄됐다. 등으로 왜 틀렸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의 경험이 쌓일수록 틀릴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연구 결과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연구 결과는 비단 주식시장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심리, 과학기술, 역사 등에 대해서도 끝없이 많은 연구가 존재합니다. 이런 연구를 접하면 접할수록 질문을 좀더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애플의 주가는 얼마가 적정할까?'라고 물었다가도 고민을 깊이 하다보면 '애플은 제조업에서 미디어 회사로 변모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과정에서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은 얼마나 확장될 수 있을까? 미디어 회사에 대해서 높은 프리미엄을 부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으로 질문을 바꿀 수 있습니다.

개인의 상태

지금이 주식에 투자하기 좋은 때인가? 라는 질문은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주식에 투자하기 좋은 때 라는 건 원래 없거든요. 이 질문을 이렇게 바꾸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됩니다. "저의 예상 노동 가능 기간과 연봉 상승률, 은퇴 후 필요한 월간 비용을 고려했을 때 재테크를 통한 기대수익률은 6.5%입니다. 그러면 현재 저의 재산에서 주식에 얼마의 비중을 배분해야 할까요?

좋은 질문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어야 하고 그 대답은 '틀릴 수 있어야' 합니다.

대답할 수 있다와 정답을 찾을 수 있다는 다른 이야기 입니다. 나쁜 질문을 좋은 질문으로 바꾸는 일은 정답을 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대답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질문을 구축하는 일은 자신에 대한 검증 과정이기도 합니다. 나쁜 질문을 좋은 질문으로 변환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풀어야 할 문제를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늘 하지만 무의미한 질문들

바닥이 어디입니까?

'프랙탈' 부분을 확대하더라도 확대하기 전과 유사한 모양이 반복되는 기하학적 구조를 '프랙탈 구조'라고 합니다. 프랙탈의 신기한 특징 중 하나로 측정 단위에 따라 표면적이 달라진다는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서해안은 리아스식 침강 해안으로 해안선이 복잡합니다. 압록강에서 해남까지의 직선거리는 650Km이지만, 해안서느이 실제 거리는 그 7배가 넘는 4719km 입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실제 거리'라는 것도 산업에서 통용되는 측정자를 기준으로 했을 경우이고 만약 1센티미터 단위로 촘촘하게 측정해본다면 더 길어질 것입니다.

주가 변동을 기록한 차트도 프랙탈입니다.

어떤 차트가 일간 차트이고 주간 차트인지 분간할 수 있나요? x축의 수치를 표시해주지 않는 한 우리는 측정자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어떤 구간의 주가 차트든 그 구간을 다시 잘게 쪼개서 확대해보면 유사한 모양을 찾을 수 있습니다.

투자를 시작할 때는 '내가 이 게임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즉 '얼마간의 기간에 유의미한 수익률을 달성할 것을 목표로 하는가'에 대해 먼저 대답해야 합니다. 인생에서 투자에 나서는 전체 기간을 의미할 수도 있고, 개별 투자 건의 유효기간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투자 기간이 1년이라면, 내가 신경 써야 할 주가의 측정자는 대부분의 일간 변동을 무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오늘 하루 동안 단기 매매를 통해 수익을 내겠다고 한다면 분단위, 심지어 초 단위의 주가 변동까지 모두 중요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어떤 타임라인의 주가 변동을 예측하여 수익을 내고자 하는가' 또는 '내가 맞힐 수 있는 주가 변동의 타임라인은 어떤 단위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주식시장은 하나의 시장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게임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마치 일반 승용차와 레이싱카가 공공도로에서 함께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어서 차를 가지고 도로에 나왔다면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달하는 것이 나의 미션 아닐까요?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레이싱카를 만났다고 해서, 그 차를 추월해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안전한 운전을 위해서는 그 차를 무시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어떤 게임을 하느냐는 내가 스스로 정의해야만 합니다.

독일의 응용수학자이자 경영컨설턴트인 군터 뒤크는 <호황 vs 불황>이라는 저서에서 경기 변동의 근본 원인으로 '국부적 영리함'을 꼽습니다. 각 경제 주체는 분위기가 좋을 때 생산과 투자를 늘리고, 분위기가 나쁠 때 비용을 줄이고자 노력합니다.

모든 경제 주체는 과거의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왜곡된 의사결정을 합니다. 즉, 각 경제 주체가 더 영리하게 행동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경기의 변동이 발생한다는 얘기입니다.

현실이 언제나 이런 사이클에 꼭 맞게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시사점은 모델을 설명하는 변수들입니다. 금리는 정책변수입니다. 기업의 실적으로 대변되는 실물경기의 침체와 과열을 조절하기 위하여 정부가 금리라는 수단을 활용해 정책적으로 개입하니까요.

주가는 투자자들의 기대감입니다. 경기가 안 좋을 때는 공포감에 자산을 내다 팔기도 하지만, 경기가 안 좋으니 부양책이 나올 거라는 기대감으로 자산을 더 사서 가격을 상승시키기도 합니다.

"경기가 좋아질까요?" 또는 "지금 주식투자를 해도 될까요?"라는 질문은 좋은 대답을 얻기 어렵습니다. 좋은 질문은 "다수의 사람이 경기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요?", "새로이 투자에 나서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연간 수익률은 얼마인가요? 앞으로의 성과를 얼마나 낙관하고 있나요?" 등입니다.

언제 사면 되나요?

다수의 사람이 낙관적으로 기대하면 고점이고, 다수의 사람이 부정적이면 저점일까요? 아닙니다. 100명 중 51명이 낙관적으로 전망한다고해서 내일부터 주가가 하락한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100명 중 100명이 낙관적으로 변해야만 주가가 하락하는 것도 아닙니다. 낙관론자와 비관론자의 비율을 계산해봤자 단기적인 예측에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마켓 타이밍을 추구할 수 없다면 매수,매도의 판단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가격대는 얼마나 편안한가?

-현 가격대에서 3년간 보유할 경우 연평균 기대수익률은 얼마인가?

-만약 상승한다면 얼마나 상승할 수 있고, 하락한다면 얼마나 하락할 수 있는가?

PER은 시가총액을 순이익으로 나눈 값입니다. 여기서 분자와 분모를 뒤집은 값을 이익수익률이라 부릅니다. PER이 10이면 이익수익률은 10%가 되지요. 내가 이 기업을 완전히 소유하고 있다고 했을 때, 100이라는 자기자본을 투입해서 10만큼의 순이익을 거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값을 다른 투자 대상과 비교할 수 있겠지요. 예를 들어 채권이 3%의 이자를 준다면, 채권보다 3배가 넘는 수익을 거두는 셈입니다. 사업의 불확실성이라는 리스크를 감당한 대가로 얻는 프리미엄이지요.

주가가 마구마구 올라서 PER이 30이 됐다면 이익수익률은 3.3%입니다. 채권 이자율이 3%라면, 내가 짊어진 리스크에 비해서 그다지 매력적인 값이 아닙니다. 이런 상태가 바로 '불편한 가격대'입니다. 그런데 만약 금리가 쭉 하락해서 1%가 됐다면, 앞서의 사례와 유사하게 3.3%의 이익수익률도 꽤 매력적인 상황입니다. 그러면 편안한 가격대가 될수도 있지요.

따라서 편안함의 척도는 일단 다른 자산군에서 얻을 수 있는 기대수익률에 주식이라는 '위험한 자산'에 투자함으로써 감내해야 할 '프리미엄'이 적정한가입니다. 이 수치를 주식의 향후 기대수익률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단일한 값을 척도로 편안함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하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더욱 낙관적으로 바뀌어서 기대수익률을 떨어뜨린다면(즉, 가격을 상승시킨다면) 기대수익률이 어느 정도까지 낮아지는 것을 합리적으로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리스크 프리미엄은 5% 정도면 충분한데 현재 시장에서 10%정도의 프리미엄을 부여하고 있다면, 주가가 한참 더 올라도 굳이 팔 이유가 없는 거죠.

반대로 사람들이 비관적으로 바뀌어서 가격을 떨어뜨린다면 어디까지 떨어뜨릴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도 해봐야 합니다. 가격이 내려가는 것은 기대수익률을 상승시킨다, 즉 리스크 프리미엄을 높인다는 뜻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리스크 프리미엄이 5%인데 현재의 프리미엄이 3%라면, 주가가 한참 더 하락해서 5%가 되더라도 저는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이렇게 상승과 하락 두 방향을 모두 고려해봤을 때, 잠재적인 하락폭보다 잠재적인 상승 폭이 더 크다면 비로소 진정으로 '편안한 가격대'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편안한 가격에 도달했다'란 '바닥에 가까운 가격이다' 또는 '곧 반등이 임박했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락 잠재력 대비 상승 잠재력이 더 크고, 여기서 더 하락하더라도 내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시장이 어떻게 될 것 같나요?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인가요? 미래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는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써야만 합니다.

시장이 오를지 내릴지는 모릅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시장이 일단 하락했다고 가정하고 왜 하락했는지를 물어봅시다. 다음으로는 시장이 일단 상승했다고 가정하고 왜 상승했는지를 물어봅시다. 딱히 대답이 떠오르지 않나요? 그럼 아직 경험이 부족한 것입니다. 한쪽으로만 대답이 떠오르나요? 그럼 편향된 생각을 갖고 계신 겁니다.

주식시장은 복잡계입니다. 복잡계는 창발, 자기 조직화, 자기 조정, 경로 의존성 등의 특성을 보입니다. 집단의 어떤 특성이 구성 요소의 개별적인 특성이나 움직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창발'이라고 합니다.

각 개인을 아무리 연구해도 사회 전체의 움직임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과학의 창시자인 에밀 뒤르켐은 "사회적 사실은 개인의 외부에 존재하는 실체다"라고 했습니다

각 투자자는 다른 투자자 또는 거시경제 현상과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움직임을 만들어냅니다. 복잡계에서 전체의 특성을 개인의 합으로 환원할 수 없다는 것은, 역으로 전체의 움직임과 무관한 개별적 움직임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각 투자자의 성과는 전체의 성과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탑-다운 접근법은 전체 시장과 상관없이 장기적으로 큰 폭의 상승을 보이는 종목을 놓치기 십상입니다.

장세도 관점에 따라 누군가는 강세장으로, 누군가는 약세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2011년 7월을 보자면, 당시에는 뼈아픈 약세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서 보니 2011년 전체는 무난한 횡보장이었습니다. 2017년까지로 범위를 확대해보면 심지어 강세장의 일부였지요. 2020년까지로 보면 2011년 7월은 10년짜리 박스권 장세의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작은 일부분이었을 뿐입니다.

그 기간에 큰 폭의 상승을 보인 주식이 매우 많습니다. 주식은 기본적으로, 투자의 타임라인을 길게 가져갈수록 유리한 게임입니다. 장세에 신경 쓰면서 잦은 매매를 반복하다 보면 개별 종목의 큰 흐름을 놓칩니다.

장세에 대한 질문은 수익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최소한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도움이 되는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시장의 변동을 이기고 좋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주식을 어떻게 골라낼 것인가?'

무엇을 사면 되나요?

아무리 노력해도 운의 작용을 피해 갈 순 없습니다. 그러나 운이 작용하는 시스템과 운'만' 작용하는 시스템은 다릅니다. 타인의 추천에 의존하는 매매는 운만 작용하는 게임을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건, 아주 조금이라도 나의 언어로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 한 줄이라도

내가 아무리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도 남들이 '맛없다'라고 평가해버리면 맛없는 요리가 되는 곳이 자본시장입니다. 내가 1라운드에 상대방을 KO시켜도, 남들이 '당신이 졌어'라고 판단하면 판정패가 되는 곳이 자본시장입니다.

언제 팔아야 하나요?

인간은 '행동의 후회'를 '비행동의 후회'보다 더 강하게 느낍니다.

아이디어가 소진되어서 주식을 팔았는데, 손해를 본 상태에서 팔았으면 나는 '손절 원칙을 엄격히 지키는 사람'이 됩니다. 이익을 본 상태에서 팔았으면 '익절을 철저히 하는 사람'이 됩니다.

원점에서 다시 고민해봤더니 과거보다 더 매력적이라 주식을 더 샀는데, 그때 과거 매수 시점보다 주가가 하락해 있는 상태였다면 나는 '저가에 추가 매수를 하는 물타기 전문가'가 됩니다. 주가가 오른 상태에서 그 결정을 했다면 나는 '달리는 말에 올라타는 추세 추종자'가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내 머릿속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현상만을 보고 일반론을 추측하려 할 뿐이지요. 그런 관찰에서 나온 격언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저는 마음이 흔들릴 때면 3분의 1을 매도 합니다. 저에게는 일종의 매직 넘버입니다.

있어보이지만 위험한 격언들

장기적으로 투자하라.

시장 전체를 매수하여 장기적으로 보유한다는 것은 곧 자본주의의 생존에 배팅하는 일입니다.

주식을 매수할 때는 내 아이디어의 타임라인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디어에는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아니, 있어야만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반증 불가능한 아이디어를 무한정 붙들고 있느라 손해를 보게 되니까요.

장기투자 전략이 유명해진 데에는 워런 버핏의 발언이 크게 기여했습니다. "주식을 10년간 보유할 생각이 없다면, 단 10분도 보유하지 마라."라는 발언은 장기투자를 권하는 발언으로 자주 인용됩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하기로 이 말은 무조건 10년간 보유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주식을 볼 때, 그 회사의 앞으로 10년간의 미래를 그려볼 정도로 회사와 산업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투자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뜻입니다.

남들과 반대로 움직여라.

예측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노출을 조절할 수는 있습니다.

1년 이내에 무너질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고 합시다 정확히 몇 번째 차량이 지나갈 때 무너질지에 베팅하는게 '예측'이라면, 이 다리를 건너갈 때 보험을 들어놓는 게 '노출'입니다.

던져야 할 질문은 '지금 공포감이 최대치인가, 아닌가?' 가 아닙니다. 최대, 최소는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습니다. 던져야 할 질문은 '사람들이 더 공포감에 빠진다면 가격이 얼마나 더 하락할 수 있는가? 어느 정도의 가격이면 거저먹는 가격이라고 할 수 있는가?' 등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질문은 '예측을 위한 질문'이 아닙니다. 현재 가격이 2만원인데, 이 질문에 1만원이라는 대답을 내놨다고 합시다. 그 대답을 '1만원까지 하락했다가 반등한다'라는 예측으로 활용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가격에 매수한다면 50%의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라는 점을 스스로 인식한다는 뜻입니다.

생활 속에서 발견하라

2009년 시점 기아차를 보는 투자자들의 우려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K7을 필두로 한 새로운 라인업은 이 모든 부담을 차례차례 다 털어버리는 기폭제였습니다.

차를 팔아서 매출액이 30% 늘어났다면, 이익은 50% 급증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2017년의 현대차는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한 해 450만대의 자동차를 전 세계에 팔고 있는, 나름대로 세계 톱클래스로 인정받는 자동차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런 현대차에 연간 30만 대가 추가되어봤자 전체 판매량에 대한 기여도가 7%에 불과합니다. 당시 투자자들이 현대차에 대해 가지는 우려는 한전 부지에 대한 과도한 투자, 환경 규제 대응, 기업 승계등이었습니다. 근본적인 기업 운영 철학에 의문을 품고 있는 와중에 신차 하나가 흥했다고 하여 이런 우려가 해소될 수는 없었지요.

철저히 분석하라

주식투자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예 기업을 청산하지 않는 이상은, 다른 누군가가 내 주식을 좋은 가격에 사줘야 합니다.

철저히 분석해서 남들이 모르는 회사의 소중한 가치를 나만 알아냈다고 합시다. 그게 주가랑 무슨 상관이 있죠? 남들이 지금 모르고 있는 무언가는 앞으로도 모를 가능성이 큽니다.

'나만 파악하고 있는 이 가치를 남들이 언제 어떤 경로로 알게 될 것인가?' 내가 해야 할 고민

그 땅이 정확히 얼마인지보다는, 남들이 언제 어떻게 알아봐 줄 것이냐가 수익을 거두는 데 훨씬 중요합니다.

철저한 분석의 문제는 또 있습니다. 경마 에측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이 참여한 한 연구에 따르면, 일정 수준 이상 정보가 주어져도 예측의 정확도는 올라가지 않지만 자신의 예측에 대한 확신의 정도는 정보의 양에 비례하여 계속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정보의 양이 많아질수록 판단의 실제 정확도와 믿음 간의 갭이 오히려 더 커지는 거죠.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함정에 빠지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습니다. 뭐라도 내 생각을 가진 상태에서 다음 상황을 마주한다면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모든 걸 사전에 완전히 준비한 채로 세상에 나설 수는 없습니다. 틀릴 것을 각오하고 틀렸을 때 어떻게 배워나갈 것인가를 염두에 두었다면, 얼른 밖으로 나가서 다양한 상처를 겪어보는 것이 빠르게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길입니다. 이런 태도를 <이기는 결정>에서는 다음과 같이 우아하게 표현합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엄격함은 정확한 단일 수치 예상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추정치를 정확하게 정의할 때 가능하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단 하나의 올바른 비전을 선택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미래를 예상하고 그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엄격한 과정을 통해 얻어진다.

역사는 반복된다.

레이 달리오는 <원칙>에서 "다른 시대,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더 많이 공부하라"라고 충고 합니다. 우리는 역사를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공부하는 것과 역사가 반복되리라고 믿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습니다.

통계적 기법은 그 추정에 사용된 샘플 데이터가 '일어날 수 있는 전체 사건'을 대변한다고 가정합니다. 쉽게 말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분포가 모두 과거에 반영되어 있다는 가정입니다.

새 시대라는 생각이 위험한 것처럼, 과거가 반복될 거라는 아이디어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겪는 어떤 일도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지만, 완전히 똑같이 반복되는 경우도 없습니다.

현재는 유동성을 아무리 풀어도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지 않는 특이한 시대입니다. 2017년 미 연준의장 재닛 옐런은 이런 현상을 '미스터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낮은 실업률, 경기 회복, 풍부한 유동성 등 인플레이션의 모든 요소를 갖췄음에도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지 않았죠. 코로나 19로 경제에 타격을 입은 지금, 당연히 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술 발달에 힘입은 생산성 증가 덕분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현재의 정설입니다.

반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디플레이션, 저금리, 유동성에 힘입은 자산 가격 급등 등의 개별 현상은 과거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투자 철학을 갖추어라

투자 세계에는 운이 많이 작용하는데, 우리는 성과가 좋을 때마다 운을 실력으로 착각합니다. 성과가 나쁜 사람들은 발언을 할 기회도 줄어들뿐더러 우리는 성과가 좋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원칙과 '철학'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성과가 나빠지면 그들의 이야기 또한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그때그때 성과가 좋은 사람들의 '철학'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사실상 그들 모두가 단지 운이 좋았을 가능성은 크게 고민하지 않습니다.

생명체가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 인지 기능과 조작 기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금융 시장을 비롯한 인간 사회에서는 인지 기능과 조작 기능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가 오길래 우산을 썼는데, 내가 우산을 썼다는 이유로 비가 그친다거나 더 많이 온다거나 하는 일이 벌어지는 거죠. 이상하죠?

소로스가 직접 쓴 예시를 빌려봅시다. '비가 온다'라는 명제는 참-거짓을 꽤 명확하게 판별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혁명의 순간이다'라는 명제를 생각해봅시다. 이 명제는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 시기가 혁명고 아무 관련이 없는 때였을 수 있지만,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지금이 혁명이라고 인식하고 혁명에 나서는 순간 이 명제는 참이 됩니다.

알고리즘 분야에서는 A 함수의 출력값이 B 함수의 입력값이 되고 B 함수의 출력값이 다시 A 함수의 입력값이 될 때, 두 함수의 관계를 '피드백 루프'라고 부릅니다. 피드백은 '긍정적 피드백'과 '부정적 피드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긍정적 피드백은 그 뉘앙스와 달리 상당히 무서운 현상을 만들어냅니다. 긍정적 피드백이 있는 시스템은 루프가 반복될 수록 출력값이 점점 극단으로 치닫습니다. - 마이크와 스피커가 가까워지면 생기는 하울링

부정적 피드백은 반대로 시스템을 안정시킵니다. - 자동차 운전시 한쪽으로 쏠리면 반대쪽으로 움직여 균형을 잡음

균형을 벗어나려는 입력값이 있을 때 이를 다시 균형으로 복귀시키는 출력값을 내놓는 시스템이 부정적 피드백을 가진 시스템입니다.

쉽게 말해서 술을 마시다가 한 친구가 감정이 격해졌을 때 옆 친구도 덩달아 흥분하면 긍정적 피드백이고요, 옆 친구가 진정하라고 말려주면 부정적 피드백입니다.

조지 소로스는 "행동경제학은 재귀 과정의 절반만 분석한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정보량의 제한, 처리 능력의 부족, 감정의 영향 등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저버리고 불리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주변 사람이 어떤 선택을 했느냐가 내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사회심리학에서 '자기실현적 예언'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일종의 피드백 루프입니다.

균형이 어디인지는 어떻게 알죠?

같은 상황을 보고 누군가가 예외적 현상이라고 주장할 때 누군가는 균형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는 각자가 생각하는 균형이 있습니다. 비트코인이 1000만원을 넘어갈 때 많은 사람이 말도 안된다고 했지만, 그 가격에 코인을 사는 사람들은 2000만원 이상이 균형 가격이라고 지금까지는 너무 저평가 되어 있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조금 전 행동경제학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은 정보량의 제한,처리능력의 부족, 감정의 영향 등으로 비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모두는 각자 주어진 상황에서 나름의 의사결정을 합니다. 어디가 균형점인지는 각자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그러니까 거래가 이루어지는 거죠. 그게 바로 '시장'입니다.

가치는 '주관적인 환상'이고, 가격은 '합의된 환상'입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주관적인 환상들 사이에 가끔 접점이 생기고, 그때 거래가 성사됩니다.

1973년과 1979년의 두 차례 오일 쇼크는 전 세계 경기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두 차례 오일 쇼크가 진행 중이던 당시 공급량을 그다지 크게 줄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1973년 9월 아랍의 총 생산은 하루 1940만 배럴 이었고, 감산이 가장 심했던 11월에는 하루 1540만 배럴이었습니다. 즉 하루 400만 배럴이 감소했는데 다른 나라의 증산과 수출로 90만 배럴이 충당됐고 순감소폭인 310만 배럴은 세계 소비의 약 5.5%에 불과했습니다. 이를 두고 모리스 아델만 교수는 이렇게 평했습니다

"가격이 상승하는 이유는 실제적인 공급 감소가 아니라 공급 감소가 생길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가격 - 가치 갭 모델

이 모델의 작동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정1-주식에는 내재가치가 존재한다.

가정2-가격이 가치와 차이 날 때가 있다.

가정3-장기적으로 가격은 가치에 수렴한다.

행동지침1-가치를 엄격하게 분석하라.

행동지침2-가격이 가치보다 충분히 쌀 때를 기다려서 매수하라.

행동지침3-가격이 가치에 도달하면 미련 없이 매도하라.

이런 투자법을 익히고 나면, 뭔가 남들과 다르게 여유 있고 철학적인 투자자가 될 것 같지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 방법은 이론적으로도, 실제로도 문제가 많거든요. 이론적인 문제부터 짚어봅시다.

가정1 주식에는 내재가치가 존재한다.

이 명제는 일단은 참입니다. 문제는 내재가치 산정이 매우 주관적이고, 따라서 각 시장 참여자가 생각하는 내재가치의 범위는 보통의 상황에서 매우 넓을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가정2 가격이 가치와 차이 날 때가 있다.

가격 - 가치 갭 모델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시장은 비효율적이다'라고 쉽게 가정합니다. 뭐 거기까지는 좋습니다.

가정3 장기적으로 가격은 가치에 수렴한다.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일단 가치 산정이 주관적이라는 점만 생각해봐도 이 명제는 매우 이상합니다만, 그걸 제쳐두고서라도 여전히 많이 이상합니다.

가정 2에서 시장은 비효율적이라고 했습니다. 근데 왜 가정 3에서는 시장이 효율적일 수 있다고 하는 걸까요? 시장이 내가 주식을 살때까지는 비효율적으로 가격을 가치보다 싸게 매겨놨다가, 감사하게도 내가 주식을 산 다음에 느닷없이 효율적으로 작동해서 가격을 올려준다는 말인가요?

이런 방법론을 가지고 실제 시장에 뛰어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가격이 가치에 수렴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는데,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수가 없습니다. 1년 동안 주가가 20% 상승했다면 탁월한 수익률입니다. 그런데 10년동안 20%가 상승했다면 연 복리 1.84%입니다. 모호합니다.

이 모델의 궁극적인 문제는 '반증 불가능하다'라는 점입니다. 적정 PER이 15다라는 명제는 반증되지 않습니다.

가격이 하락했다는 건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간다는 뜻이고, 내가 틀렸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입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관점에서 볼 때, 틀렸을 가능성이 커진다면 위험에 대한 노출을 줄여야겠죠. 이 모델에서는 내가 틀렸을 가능성이 커질 때마다 위험을 더 늘리라고 종용합니다. 아주 위험합니다. 가격이 하락할 때마다 주식을 더 사라고 하는데, 더 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대주주가 되거나 파산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

이런 수많은 모순 때문인지 이 모델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행동지침 하나를 추가합니다.

행동지침4 확실히 눈에 보이는 가치를 추구하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예측은 어려우니, 당장 눈에 보이는 유형자산 또는 현금흐름이 꾸준히 창출되는 안정적인 사업 등에만 가치를 부여하겠다는 뜻입니다.

이건 그저 '취향'입니다. 그 취향 탓에 무형의 가치에 기반한 수많은 기회를 놓쳐버리고는, '나는 철학을 지켰어'라며 자신을 다독이는 것이 이 모델을 추종하는 투자자들의 행태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이 모델이 다 맞는다고 칩시다. 그래도 큰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진짜 객관적인 어떤 가치가 존재하고, 모종의 이유로 지금 괴리가 생겼고, 어제 내가 주식을 샀더니 감사하게도 오늘부터 가치에 '수렴'하기 시작했다고 합시다. 일테면 1만원 짜리를 5000원에 샀고, 오늘부터 사람들이 이 주식을 1만원짜리였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는 얘기입니다.

사람들은 이 주식을 사서 어디까지 올릴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서, 어느 가격까지 이 주식을 살 의사가 있을까요? 일단 1만원은 아니겠지요. 1만원짜리를 1만원에 사봤자 아무 수익이 안나니까요. 1만원에 이 주식을 사줄 사람은 없으니, 모두가 1만원이 되기 전에 먼저 팔려고 하겠지요. 그렇다면 예를 들어 9000원에 팔고 싶다고 합시다 그런데 9000원에 주식을 사는 사람들은 1만원에 누군가에게 팔기 위해서 사는 거잖아요? 그런데 1만원에는 아무도 사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아니까 9000원에 사지도 않습니다. 그럼 다시 9000원에 아무도 사지 않을 것을 알기에 더 낮은 가격에 팔고 싶을 테고 그럼 8000원에 주식을 팔려고 하겠지요. 이런 식으로 계속 생각해보면, 가격은 5000원에서 전혀 오르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가격은 가치에 수렴하지 않습니다. 스쳐 지나가거나, 영원히 도달하지 않습니다.

제한적 합리성 모델

가격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가격-가치 갭 모델'이 아니라 '제한적 합리성 모델'로 바꾸어야 합니다.

투자자는 각자의 주어진 환경에서 나름의 의사결정을 합니다. 이 의사결정은 합리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각 투자자는(대부분 잘못된 학습으로 이루어진)원칙을 토대로(턱없이 부족한 또는 쓸데없이 많은) 정보를 조합하여 의사결정을 합니다. 의사결정 이후 좋건 나쁘건 어떤 결과를 얻게 되고, 그 결과를 토대로(또다시 잘못된) 새로운 학습을 하고 새로운 의사결정을 합니다.

이런 각 투자자가 만나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가격입니다. 가격에 대한 이런 관점을 저는 '제한적 합리성 모델'이라고 합니다. 이 모델의 작동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정1 각 투자자는 각자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가정2 각 투자자가 입수할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다.

가정3 각 투자자는 제한된 정보와 불완전한 원칙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가정4 각 투자자의 의사결정 결과는 다른 투자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행동지침1 다른 투자자가 입수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를 추측한다.

행동지침2 다른 투자자가 사용하는 의사결정 원칙을 추측한다.

행동지침3 현재 이 주식을 관찰하는 사람들(오늘 매수한 사람, 오늘 매도한 사람, 과거에 매수해서 보유하고 있는 사람, 관심있게 보지만 매수하지 않은사람)의 의사결정 근거를 추론한다.

행동지침4 시장 참여자들이 지금보다 더 낙관적으로 변했을 때 얼마나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도 주식을 사려고 할지, 반대로 더 비관적으로 변했을 때 얼마나 더 낮은 가격에도 주식을 팔려고 할지 추론한다.

행동지침5 현재 가격 대비 위 4번의 상승 잠재력이 하락 잠재력보다 클 경우 매수하고 보유한다.

행동지침6 위 1~4번을 계속 업데이트 한다. 5번을 만족하지 못할 경우 비중을 줄이거나 매도한다.

다만 유사한 의사결정 행태를 그룹으로 묶어서 모델링 할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치 추종자, 즉 가격-가치 갭 모델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가격이 상승할수록 매도하고 싶어 안달이 납니다. 반면에 추세추종자, 즉 달리는 말에 올라타서 수익을 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가격이 상승할수록 더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섭니다.

높은 PER을 가진 인터넷 기업이 상장했다면, 가치 추종자가 이 기업을 어떻게 바라볼지는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애초에 안 샀을 테니까요. 앞으로도 살 일이 없을 거고요.(만약 주변에 가치 추종자가 이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했다면 고점의 신호로 보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의 두뇌는 순식간에 생각을 끼워 맞춥니다. 우리는 그 생각이 진실이고 나의 자아이자 의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 안의 '무의식적인 좀비'가 내 생각을 대부분 조종하고 있습니다.

생각의 차이를 포착하는 것은 투자 기회를 찾는 첫걸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이 함정에 빠집니다.

'내 생각에 시장이 틀렸어. 그러니까 지금 사야 해.'

이 두 문장 사이에는 아주 중요한 질문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중 핵심은 한쪽이 틀렸다는 것을 어떻게 깨닫게 되는가입니다.

틀린쪽이 시장일 수도 있고 나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