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들 사이로 보석같은 문구들이 숨어 있는 책. 그리고 김현준도 힘든 시기를 겪을 때 본인의 책임감에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부분에서 대단하다고 느낌. 그건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을 지켜내는 일.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서 하자.

2005년의 나는 주식 초보였다. PER이 낮은 주식들을 골라서 샀다. 풍력발전기의 타워를 만드는 동국산업, 건설 폐기물을 처리하는 인선이엔티, 세계적으로 유명한 절삭 공구들을 파는 와이지-워 같은 기업들이 기억난다. 각자의 사업 영역에서 훌륭하게 자리 잡았으면서도 PER이 3~4배에 불과했다. 그런데 웬걸, 아무리 기다려도 별다른 수익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큰 손실을 본건 아니었지만..

PER이 낮아도 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은 주식시장이 현재 기업이 창출하는 이익의 지속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투자하기 위해서는 기업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 아이디어를 검증해야 한다. 투자 아이디어를 검증하려면 당연히 투자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

먼전 회사를 정하고 그 회사의 개요나 투자 아이디어를 적는다. PER,ROE등 간단한 재무지표도 기재한다. 마지막으로 회사의 강점,약점,경제적 해자 등 정성적인 내용을 쓰는데, 여기서 초보 투자자가 주의할 점이 있다.

마케팅 용어 중 SWOT 분석이라는 것이 있다. 기업의 내재적인 강점과 약점, 외부 환경에 따른 기회와 위협요소를 규정하고 그에 따른 전략을 수립하는 분석이다.

'강점이 몇 개고, 약점이 몇 개니까 어떻다'라는 식의 접근은 더더욱 안된다. 당연히 세계 최초 기술력, 세계 최초 원가 우위와 같은 수식어에 마음을 줄 필요도 없다. 냉정하게 어떤 일이 일어날 확률과 그럴 때 예상되는 주가 변동률을 곱한 기댓값에 따라서만 행동해야 한다.

워렌 버핏은 전통적 가치주에서 미래를 발견하지 못해 지금의 방법으로 진화했는데 나는 거꾸로 갔다.

이 회사는 영업이 악화일로여서 생산능력을 점점 줄이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공장과 설비도 내다 팔고 허허벌판인 땅만 늘어갔다. 내가 주목한 포인트다. 신풍제지가 보유한 토지는 경기도 평택시에 있었는데, 이 주변에 고덕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재무제표에는 장부가로만 기재돼 있어 확실히 저평가된 기업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또한 주가가 오르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해당 토지를 처분할 때 반짝 올랐는데, 그마저도 시장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금세 제자리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경영자가 회사의 자산을 개인 재산과 동일시하고 주주 몫을 나눠주지 않는다면, 회사의 자산 가치는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가 주식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주식시장 참여자 대다수가 기업에 관심을 두는 것은 물론, 거래량이 동반돼야 한다.

<증권분석>의 안전 마진은 채권투자에서 나온 개념이다.

주주는 기업의 재산을 나눌 때 가장 후순위 청구권자이므로 순이익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채권자에게는 이자비용을 차감하기 전의 영업이익까지만 중요하다.

그에 따라 매년 갚아야 할 원리금이 100만원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때 영업이익이 100만원이라면 채권투자자는 아무런 걱정이 없다. 영업이익 100만원에서 원리금 100만원을 빼고 나면 이익이 남지 않을 것이므로 세금을 걷고 싶어하는 정부와 배당을 받고 싶어하는 주주는 발을 동동 구르겠지만, 앞서 말했듯 채권자는 괜찮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는 것이 안전 마진이다. 기업을 잘 분석해 최악의 상황에서 미래의 영업이익이 얼마만큼 감소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자는 것이다.

내 좌우명은 두개다. 첫째는 정도다.

"한 건에 맛을 들이면 암수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정수고 오히려 따분해질 수 있다. 그러나 바둑은 줄기차게 이기지 않으면 우승할 수 없고, 줄기차게 이기려면 괴롭지만 정수가 최선이다."

둘째는 일신우일신이다.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뜻으로, 나날이 발전해야 함을 이르는 고사성어다.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

2022년의 나는 ROE보다 PER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ROE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투자자에게 더 적합한 지표다.

첫째는 주가에 관심이 없어야 한다. 그 주식을 '영원히'보유하면서 그 회사가 벌어들이는 순이익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비상장기업 투자자가 그렇다. 그만큼 주가라는 변수가 빠지면 ROE는 매력적인 투자 지표가 된다.

둘째는 자기자본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배당금을 제외한 순이익은 모두 자기자본이 되므로 순이익이 누적된 만큼 자기자본이 늘어난다. 따라며 매년 같은 순이익을 기록하는 기업이 ROE를 유지하려면 순이익을 모두 배당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다행히도 워렌 버핏의 투자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 주로 비상장기업에 투자하며, 그가 희망 투자 기간을 "영원"이라고 이야기한데서 알 수 있듯이 PEF처럼 나중에 되 팔 일도 별로 없다.

그렇다면 배당은 어떨까? 워런 버핏은 배당금을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배당소득세를 내야 하고, 그 배당금으로 또 다른 투자 대상을 찾아야 하는 일이 번거롭기 때문이다. 훌륭한 경영자가 알아서 자본을 재배치하는 회사에 투자하면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다행히 워런 버핏은 전 세계에서 자본 재배치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다. 소유한 기업이 굳이 배당이라는 이름으로 자기자본을 줄이지 않더라도 그 자금을 이용해서 더 좋은 기업을 인수한다. 그렇기에 본인이 투입한 자금 대비 회사가 얼마나 벌어들이는지가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단순히 회계장부상의 ROE가 아니라.

"조선업은 수주부터 인도까지 수년이 소요되는 수주 산업이야. 현대미포조선은 이미 몇 년 치 일감을 따놓았기 때문에 지금의 이익이 감소할 우려가 없다고."

그래도 이해가 안 됐다. 주식시장은 예측 가능한 미래를 모두 주가에 반영한다. 그래서 수주 산업은 우량한 수주를 받았을 때부터 주가가 오르기 시작한다.

모르는 주식에 투자해서 손실을 보고 있다면 지금이 손절매를 하기에 가장 좋을 때다. '조금만 기다리면 오르지 않을까?', '이만큼 반등하면 팔아야지' 하는 생각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고, 그 때 운이 따라주면 분명히 나중에 더 큰 손실을 보게 된다.

투자는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만 이길 수 있다. 만기가 정해져 있으면 조급해지고 제아무리 적정 주가를 잘 계산했다고 해도 그 주가에 언제 도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위기를 계기로 브이아이피투자자문은 큰 변화를 겪었다. 워런 버핏의 후예들이 왜 시장 충격에 더 큰 손실을 봤는지, 어떻게 해야 같은 일을 다시 겪지 않고 안전한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점검에 들어갔다.

금융위기 전과 후를 꼼꼼히 들어야보니 문제는 이랬다. 크게 보면 워런 버핏이 설파하는 진정한 가치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타격을 입은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이 훌륭하고 경제적 해자가 충분한 기업에 투자했다면 주가가 그렇게 하락할 일도 없고, 만약 주가가 하락했다고 하더라도 매우 편하게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주식을 더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PER,PBR 같은 표면적인 밸류에이션 지표에 집중해 투자하다 보니 경기가 냉각됐을 때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주가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하락했을 뿐만 아니라 회생 가능성에 의문이 생기면서 공포가 극에 달했다.

브이아이피 투자자문도 그랬다. 중국이 모든 수요를 빨아들여 대다수의 기업이 승승장구하는 장기 호황기 속에서 기업 본연이 가지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간과한 것이다.

우리는 몇천만원짜리 자가용만 하나 사도 순정품을 쓰지 않으면 A/S에 문제가 생긴다는 제조사의 엄포에 타이어나 엔진오일,배터리를 교체할 때 순정을 쓸지 대체품을 쓸지 고민한다. 그러니 수백, 수천억 원을 호가하는 대형 선박은 오죽할까.

한국쉘석유는 본사에서 정해준 제품을 팔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 기업이 가진 브랜드 가치나 전환 비용은 직접 구축한 것이 아니라 모회사의 후광 때문에 얻어진 것이기는 하나, 이 회사가 높은 수익성을 기록하는 데는 변함이 없다. 다만 대양을 떠다니는 배의 척수와 이동하는 거리는 해운 경기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한국쉘석유 또한 불경기를 겪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지켜본바 경기는 반드시 순환하고 불경기를 겪은 이후 다음 호경기에는 이전 사이클에서보다 더 높은 이익을 얻는다.

정리하면 이익이 늘어나는 기업을 비싸지 않게 사자는 뜻이 된다. GARP는 경제적 해자가 없거나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작정 장기 투자해서는 안 된다. 시간과 시장앞에 겸손한 자세로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회사를 추적,관찰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