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메리웨더>
"참 기괴한 일이었습니다. 매일매일 우리는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었는데도 거래를 중단하지 않았거든요." 한 트레이더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회사는 피투성이가 되고 있었다.
LTCM은 포지션을 줄여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시장이 경색되어 줄일 방도가 없었다. 떠들썩한 선전 속에 성장을 구가하던 파생상품에도 불구하고 신용시장에는 유동성이 전혀 돌지 않았다. LTCM은 모든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손실이 쌓일 경우 LTCM처럼 차입거래를 한 회사들은 손실에 파묻히지 않도록 무엇이든 팔아야만 한다. 그러나 살 사람이 없는 시장에서 팔려면, 가격은 정상곡선의 극단쪽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장기적인 시각이란 차입금이 많은 경우에는 갖기 어려운 사치품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무엇을 팔고 있는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팔아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자본은 자연스럽게 가치와는 상관없이 리스크가 높은 자산들로부터 낮은 자산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월스트리트 전역에 있는 수천 명이 다른 프레이드헤임에 의해 확대된 공포로 인한 혼란은 '자기 충족적 예언'이 되었다. 그 용어를 명명한 머턴의 아버지가 이론화한 그대로였다. 은행들은 가격 폭락에 따라 헤지펀드에서 등을 돌렸다.
웨일의 친구 워렌 버핏은 자기 사람들을 체크하는 한편, 버크셔 헤더웨이가 헤지펀드들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지를 최대한 자세하게 보고하라고 했다. 시절이 수상해지면 본능적으로 회사의 현금을 움켜쥐는 버핏은 이 보험 업종의 자회사가 스왑 트레이드에서 적정한 담보를 챙기고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투자가들은 무조건 안정성을 원했다. 그들은 가격에 상관없이 안전성이 높은 채권이 가져다주는 마음의 평화를 원했던 것이다.
힐리브랜드의 강경한 협상 원칙 덕분에 펀드와 베어스턴스는 어떠한 계약도 맺지 않았고, 그래서 베어스턴스는 원하는 때에 청산을 그만둘 수 있었다. 그러므로 힐리브랜드의 원칙은 현 시점에 이르러 LTCM에게는 재앙이었지만, 베어스턴스에게는 축복이 되었다.
LTCM은 이같이 연계된 거래들을 같은 은행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그 일 자체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펀드는 무려 6만 개라는 깜짝 놀랄 만한 수의 개별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LTCM이 처음에 망설였던 것이 약점이 되었다.(거래들을 연계시키는 문제는 힐리브랜드가 당초 은행들에 공개하지 말자고 주장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힐리브랜드와 다른 트레이더들은 펀드가 잘 나갈 때는 비밀 고수가 지나쳐 오만하게 보이기까지 해도 무방했지만, 이제 그들은 잘난 척하는 우월감은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LTCM은 자신들이 욕보였던 그 은행들에 가서 관용을 애걸했다. 또한 파트너들은 호남아 맥켄티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27억 달러를 투자가들에게 되돌려 주었던 기억에도 괴로워했다. 그들은 투자가들에게 돈을 찾아가라고 강요하지 않았던가, 그 돈이면 그들의 문제는 풀렸을 것이지만, 투자가들은 이제 더 이상 LTCM에 끌리지 않았고 재투자하려고 들지도 않았다. 더욱이 은행들 대부분이 제 스스로를 추스리기에도 급급한 처지였다. 우리가 가장 돈이 필요할 때, 가장 돈이 있을 만한 곳(LTCM의 경우는 소로스와 같은 투자가나 기타 투자 은행들과 기관들) 역시 쪼들리고 있다는 것은 늘 있는 아이러니 아닌가.
매톤은 슬픈 표정으로 웃었다. "자넨 반이나 남았다고 하지만, 반밖에 안 남았을 때는 사람들은 다 까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네. 사람들은 자네들에게 불리하게 시장을 밀고 갈 거야. 그들은 더 이상 자네의 거래에 걸지 않을 걸세. 그러니 자넨 끝난 거라고."
냉정하고 단호하게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사무실에 나와 있기만 해도 회사의 출혈이 덜해지기라도 한 듯이 새벽같이 나와 밤늦게까지 일했다.
시장은 어떤 뉴스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 저널' 은 '실망한 시카고, 매니저 지수 구매' 라고 거의 코미디에 가까운 설명을 인용 보도했다.
경제 전반은 탄탄했지만, 금융시장은 지나친 차입 투기와 지나친 확장에 시달리고 있어 월스트리트 전체가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엇다. 머턴의 모델이 가정했던 냉정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트레이더는 과거에는 혹시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는 도처에 공황 심리만이 판치고 있었다.
"8월31일은 특이한 날이었습니다." 크레디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의 스트래티지스트인 커티스 샘포는 회상했다. "채권이 거의 거래되지 않다 보니, 그 많던 채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아연할 따름이었지요." 어떻게든 부담을 줄여야 했던 펀드의 입장에서 8월은 생각도 하기 싫은 최악의 채권시장으로 끝났다. 채권시장 자체가 없었다.
과거에는 그렇게 부풀어오른 스프레드는 경제 붕괴의 전조였다. 그러나 이번 경우엔 실물 경제에는 불황의 흔적도 없었다. 아마도 약간 둔화되기는 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채권시장의 붕괴는 경제 전반의 흐름이 아니라, 월스트리트만의 지나친 낙관주의(그리고 지나치게 많은 차입 투기) 가 빚어낸 공포에 의한 것이었다.
파트너들은 낯선 장소에, 모델의 신봉자들로서는 탐험해 본 적이 없는 그런 곳에 와 있었다. 스태비스는 파트너들이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유형의 변동성' 에 부딪혔다고 느꼈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8월과 같은 손실의 가능성은 있을 수 없었다. 그것은 우주의 생성 이래 한번 있을까말까 한, 아니 우주가 여러 번 생성되었다 사라진다고 해도 있을 법하지 않은 기묘한 사건이었다.
"(거래들 간의) 상관 관계는 1에 가깝다." LTCM은 모든 배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손실을 입었다. 주사위는 무작위적으로 던져지지 않았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악의에 찬 누군가에 의해 던져진 주사위 였다.
LTCM의 비극은 크레디트 스프레드가 다시 좁아질 것이라는 데 배팅을 했지만, 투자가들이 유동성이 없는 채권으로부터 이탈하면서 스프레드는 더욱 넓어지게 되었다.
그의 분석에 LTCM은 누군가가 실수했다는, 예를 들어 기회가 줄고 있던 1997년 말에 부채를 줄이지 않았다든가 따위의 말은 전혀 없었다. 메리웨더는 자신의 트레이더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시장이 그들과 반대로 움직이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암시했다.
LTCM은 9월 2일에 이 내부 문서를 팩스로 보냈다. 그런데 한 투자가가 이 서한을 금융 뉴스 통신사인 블룸버그에 흘려, 투자가들이 다 받아보기도 전에 보도되어버렸다. 이 원하지 않는 작은 사건이 파트너들에게는 날벼락과 같았다.
야유하는 언론들에 시달림을 당하기는 했지만, 펀드는 트레이더들이 햄턴스에서 돌아온 이제부터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8월은 아마도 변덕스러운 달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휴가를 가 있었잖아." 파트너들은 서로에게 말했다. "이제 제대로 될 거야"
그러나 메리웨더의 서한이 부쳐진 다음 날 무디스는 브라질의 신용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나쁜 조짐이었다.
"이건 말도 안 돼." LTCM의 한 트레이더가 짜증을 냈다. 만약 영국이 '우량처로의 피난' 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면, 독일도 마찬가지여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논리적이든 아니든 간에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더들은 가라앉으려는 배에서 달아나는 쥐들처럼 LTCM의 거래로부터 달아났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LTCM은 자금을 찾아 헤매는 동안 이것저것에 대해서 약간씩, 나아가 포트폴리오 전반에 대해서도 공개를 해야만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비밀고수주의에 철저하던 헤지펀드가 장부를 모두에게 공개하고 만 것이다. 빈센트 매톤이 말했듯이, 시장은 약한 자를 밀어내는 공모에 가담했다.
"LTCM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서였지요."
힐리브랜드는 틀린 적이 없었다. 그의 말대로, 일단 비밀을 털어놓으면 벌거벗은 채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던은 LTCM의 도산으로 인해 출구를 향한 질주가 시작된다면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전체 시장이 단 하나의 출구를 통해 빠져나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메리웨더와 LTCM은 이렇게 스프레드가 벌어졌으니 마침내 상황을 반전시킬 최대의 기회가 눈앞에 이르렀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우리는 이런 기회가 올 날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로센펠드는 말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 기회를 이용할 수단이 없었다.
그러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파트너들은 예전에 그들에게 모든 문을 열어주었던 불패의 후광을 잃어버린 뒤였다. 그들에게 화려한 경력은 있었지만 마법은 없었다. 그리고 마법이 없는 한 그들은 또 하나의 평범한 펀드일 뿐이었다.
매니저가 높은 수수료를 받으면 투자가들은 무조건 문을 두드리지만, 수수료를 낮추는 순간 가차없이 떠나버린다.
한편 그리니치에서는 골드만삭스의 조사 요원들이 사무실을 샅샅이 뒤졌다. LTCM의 스태프들은 골드만삭스의 누가 누구인지 제대로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헤지펀드의 파일들을 뒤졌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완고한 골드필드는 펀드가 그토록 열심히 보호하던 LTCM의 포지션들을 LTCM의 컴퓨터로부터 대형 랩탑 컴퓨터에 그대로 복사해 간 듯했다고 한다. 그동안 뉴욕에 있는 골드만삭스의 트레이더들은 똑같은 포지션들을 팔았다. 어느 날 장의 마감 무렵에 펀드의 포지션들이 제 값 이하로 내려가자, LTCM의 사무실에 있던 몇몇 골드만삭스의 트레이더들이 트레이딩 데스크로 가서 그 포지션들을 사겠다고 제의했다. 이처럼 골드만삭스는 돈만 아는 가장 추악한 투자 은행의 면모를 과시하기라도 하듯 뻔뻔스럽게도 거리의 양쪽에서 따로 놀았다. 메리웨더와 그의 파트너들 눈앞에서 골드만삭스는 LTCM을 강간한 것이다.
상관 관계는 1이 되었다. 모든 주사위 쌍이 연속 1이 나왔다. 수학자들은 이런 일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들은 무작위적인 시장이 검은 양 다음에 흰 양, 동전의 앞면 다음에 뒷면, 잭 다음에 듀스가 나오는 정상분포를 이끌어내리라고 생각했지 모든 거래에서 매일같이 반복되는 엄청난 손실을 이끌어내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교수들은 자신들이 잘 알고 있던 만고의 진리, 즉 시장에서 양 극단은 항상 부풀어 있다는 진리를 외면했다.
그들은 뉴욕의 수많은 트레이딩 플로어에서 멀리 떨어진 자신들의 유리 궁전 속에서 트레이더들이 무작위적으로 움직이는 분자나 힐리브랜드와 같이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 아니라, 욕심과 공포에 의해 움직이며 극단적인 행동이나 감정의 변화를 보이는 보통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었던 것이다. 그리고 1998년 늦여름에 채권시장의 사람들은 특히 위험한 신용에 대해 극단적으로 공포에 질렸다. 이것을 교수들은 모델링하지 못했다.
그들은 시장을 정확하게 예언 가능한 것으로 프로그래밍하면서, 정작 현실의 트레이더들을 지배하고 있는 본능, 약탈적이고 탐욕적이며 무조건 보호 받으려는 본능은 망각했다. 한마디로 그들은 '인간적 요소' 를 잊었던 것이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뿐만이 아니었다. LTCM의 포트폴리오에 대한 정보는 이제 사방에 다 알려졌다. 살로먼은 펀드의 포지션을 몇 달째 두들겨대고 있었다. 도이체 방크는 스왑 트레이드에서 빠져나갔고, 예전에는 주식 변동성에 전혀 관심이 없던 아메리칸 인슈어런스 그룹이 갑자기 주식 변동성의 입찰에 나서고 있었다. LTCM의 고통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왜 갑자기 그런 관심을 보였겠는가? JP 모건과 UBS 역시 변동성을 사들이고 있었다. 이러한 행동은 확실히 약탈적인 것이었다. 그 게임은 월스트리트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것으로, 목적은 간단했다. 만약 LTCM이 시달림을 당할 만큼 당하면, 두손들어 항복하여 자신들이 공매한 주식을 다시 사들일 것이다. 그러면 그 포지션의 소유자들은 누구나 한 몫 잡을 것이 아닌가!
나중에 그리니치가 주장한 피해 망상적인 가설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세계에 대한 파트너들의 일방적인 시각이 음모성을 상당히 그럴 듯하게 받아들여지게 했는데, 특히 그러한 설명을 통해 자신들의 손실을 남의 탓으로 돌릴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회사의 손실이 쌓여감에 따라 파트너들의 핵심 소그룹과 다른 사람들 간에 잠재되어 있던 갈등이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주류에 끼지 못한 파트너들은 자연스럽게 힐리브랜드와 하가니의 실패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호킨스와 하가니는 서로를 헐뜯기 시작했고, 숄스와 힐리브랜드는 거의 말도 섞지 않았다.
그들의 위압적이고 냉담한 스타일에도 화를 냈다. 숄스가 느끼기에 비밀스러운 힐리브랜드는 진정한 파트너였던 적이 없었다. 그가 다른 사람들을 한번이라도 믿은 적이 있었던가. 아니러니컬하게도 그것은 지금까지 은행들이 터뜨려온 불평이었다.
그들의 닳을 대로 닳은 신경과 엄청난 손실에도 불구하고 파트너들은 일말의 긴장감을 유지했다. 그것은 그들이 인간이라는 증거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뿐 아니라 명성까지도 잃었다. 메리웨더는 다시금 한 때 빛나던 경력을 재앙으로 망치고 말았다는 참을 수 없는 모욕에 직변하고 있었다.
그룹에서 가장 다감하고 회사에 가장 충실했던 로센펠드는 특히 애처로울 지경으로 충격을 받았다. 최소한 그는 고통에 휩싸일 때 소리 지르는 일을 창피해하지 않았다.
그의 스승인 머턴 역시 정상이 아니었다. 그는 정신이 혼란하여 자신을 주체하지 못했다. LTCM의 몰락으로 인해(그의 필생의 업적인) 현대 금융학의 입지가 흔들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결국 교수는 인간이었다. 숄스 역시 만약 회사가 도산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받은 노벨상의 가치를 하찮게 볼 것이라는 점을 알았다. 우연히도 펀드가 하락할 때, 숄스는 오랫동안 계획만 하고 있던, "동네 꼬마가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다" 며 자신을 떠받들던 고향 온타리오 주 해밀턴을 방문했다. 그의 청중들은 LTCM의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이 날의 영광스러운 초대 손심은 더할 수 없는 긴장 상태를 견디고 있었다. 고향에서 자신의 즐거웠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말한 뒤 숄스는 말 그대로 무너져버렸다.
-이러고 숄스는 반성하고 차입투기를 그만 뒀을까? 아니. 그는 다시 돌아감.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예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함.
뮬린스의 전망역시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단정한 은행가는 한 때 자신이 앨런 그리스펀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상상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전혀 가능성이 없었다.
최소한 루빈 장관은 활황 국면의 시장이 많은 은행가들의 신중함을 둔감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5년,6년,7년 동안 호황이 계속되면, 신용을 베푸는 사람들은 주의력을 잃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는 위원회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버핏의 요점은 일관된 것이었다. 그는 골드만삭스가 세부 사항을 처리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투자가 LTCM에 의해 운용되거나 또는 존 메리웨더와 연관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리고 연결이 두절되었다.
시장은.... 기능을 멈출 수 있습니다.
월리엄 맥도나우,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마침내 은행가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LTCM에 쏟아 붓기 시작했다. 사실은 그리니치의 '나쁜 놈들'로부터 돌려받을 만큼은 다 받은 뒤였다. 그러나 지난 4년 동안 파트너들은 파트너들대로 각 은행들에 대해 가장 좋은 건만 챙기면서도 자신들의 우월감을 감추려 하지도 않았었다. 이제 파트너들은 그 죄값을 치르게 된 셈이었지만, 은행가들은 자신들이 순전히 이용당하기만 했다고 느꼈다. 그렇다보니 일부 은행가들이 파트너들을 당연히 해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왜 그들에게 봉급을 주어야 하는가? 앨리슨과 코진은 메리웨더에게 돌아가는 사정을 알려주기 위해 계속해서 자리를 떴다. 메리웨더는 자신을 향한 분노를 들으면서도 잘 참고 있는 듯했다. "알겠습니다.제가 할 수 있는 한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그는 중얼거렸다.
나중에 그들은 4대 은행과의 안전보장이사회 회의가 10분 정도 진행되었을 때 코진과 태인이 맥도나우를 한켠으로 불러 갑자기 새로운 사태 발전을 보고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버핏이 입찰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난 우리가 협력하고 있는 줄 알았소!" 솔로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마침내 11시 40분이 되자 메리웨더는 팩스를 한 장 받았다. 팩스는 버크셔 해더웨이, AIG, 그리고 골드만삭스가 펀드를 2억 5000만 달러에 사겠다는 내용이었다. 만약 수락한다면, 그들은 즉시 37억 5000만 달러를 더 투자하여 운용이 원활하도록 도와주는데, 그 중 30억 달러는 버크셔가 조달한다고 했다.
버핏은 1998년이 시작될 때 47억 달러의 가치를 가지던 펀드를 2억 5000만 달러에 사겠다고 제의한 것이다.
계속된 하락장에 시달린 LTCM은 겨우 5억 5500만 달러의 가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더욱이 메리웨더가 다른 입찰자를 찾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버핏은 시한을 오후 12시 30분으로 못을 박았다.
리커즈는 메리웨더의 사무실로 돌아가서 "버핏의 입찰은 결렬되었습니다." 라고 전했다.
오후 5시 15분, 앨리슨은 메리웨더에게 전화해서 조건을 이야기했다. LTCM은 14개 은행을 대표하는 새로운 스포크로부터 36억 5000만 달러를 융자받을 것이고, 그 대신에 은행들은 펀드의 자산 중 90%를 받아갈 것이다. LTCM의 기존 투자가들은 4000만 달러의 가치를 지닌 나머지 10%의 권리를 계속 유지할 것이지만, 여기에 들어 있는 파트너들의 지분은 전액 자신들과 LTCM의 부채에 포함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파트너들은 한때 19억 달러에 달했던 LTCM에 대한 개인 투자의 대부분을 약 5주 만에 다 날렸다는 점이다.
구제 다음 날부터 LTCM과 여타 헤지펀드들에 관한 정부 차원의 감사를 요구하는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헤지펀드들 때문에 받게 될 타격을 강조하기라도 하는 듯, UBS는 겸손하게 LTCM에 대한 기존 투자를 전액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연준이 "거짓말 포커의 명수" 들을 구제하고 있다는 반감이 여론의 대세였다.
메리웨더와 그의 수하들은 이 사태가 어쩌다 잘못된 거래의 하나쯤으로 간주하고 잊어버리려는 듯 새로운 헤지펀드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그것이야말로 자신들이 다시 태어나기 위한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반성은 없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은행가들은 스캐든의 한 회의실에, 파트너들은 경비가 삼엄한 다른 회의실에 모여 있었다. 앨리슨은 두 회의실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메리웨더를 통해 주기적으로 파트너들의 입장을 전달받았다. 하가니는 복도에서 살로먼 스미스 바니의 블랙과 마주치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믿을 수 없어요" 라고 말했다. 하가니는 자신들의 거래가 곧 반등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 수익 모두가 파트너들이 아닌, 은행들의 차지가 된 것이다. 블랙은 그를 안쓰럽게 여겼다.
대다수는 서명은 찬성했다. 그들은 기진맥진하여 어서 빨리 비극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힐리브랜드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래도 메리웨더는 완전히 만족하지 않고 "우리 팀은 우리가 일을 그만 두고서 새로운 펀드를 해도 좋다고 하지 않는 한 서명하지 않을 겁니다." 라고 말했다. LTCM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이제 그것이 그들의 새로운 목표였다.
파트너들이 그만둘 계획이라는 사실을 알면 은행들이 절대로 36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던 앨리슨은 메리웨더를 한쪽으로 불러 서류상으로는 그런 계약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파트너들 모두가 3년 동안은 있어야 한다.
파트너들은 서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잔뜩 의기소침해진 그들은 그들을 난쟁이로 보이게 할 만큼 엄청나게 큰 방 한구석에 뭉쳐서 기다리고 있었다. 힐리브랜드는 변호사가 아닌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계약서를 읽고 있었다. 그 혼란스러웠던 사흘간을 웅변하듯이, 계약서는 주변이 온통 연필로 적은 변경 사항들로 가득했고, 곳곳이 기존 문구 위에 그어진 엑스 자와 위아래를 가리키는 화살표 투성이었다. 리커즈와 몇몇 다른 변호사들이 힐리브랜드에게 계약서의 내용을 설명해 주려고 했지만, 그는 거절하고 직접 읽겠다고 했다. 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계약 내용을 간신히 읽어 내려갔다.
-실패와 파산, 시장에서의 퇴출은 비참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발들이지 말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연준은 시장의 입지를 리스크 관리와 압력받을 때의 손실 법칙이 적용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 예측 불가능한 극단으로 움직이게 했다.
LTCM 대외비 비망록, 199년 1월
LTCM의 파멸은 파트너들에게는 비극이었다. 끝없는 탐욕에 사로잡혀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외부의 투자가들에게 투자금을 강제로 상환받아 가게 했고, 결국 그들은 자신들만 남아 몰락의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월스트리트의 마법사들은 개인적으로 19억 달러를 잃었다. 가장 자신만만했고 거의 5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소유했던 로렌스 힐리브랜드는 자신의 파산을 실감했다. 아내 데보라의 재산에 의존하여 생활할 수 밖에 없게 된 그는 크레디 리요네에 2400만 달러의 부채를 갚는 동안 파산자의 불명예를 피하게 해 달라고 사정해야만 했다. 대부분의 다른 파트너들도 재산의 90% 이상을 잃었다. 그들은 가지고 있던 거의 모두를 펀드에 투자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연방준비은행의 온건한 인수 방식과 허버트 앨리슨의 관리 덕분에 대부분의 파트너들은 대다수 미국인들보다 훨씬 부자로 남을 수 있었다. 정상적인 금융 정책 하에서 성공한 사람이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20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이상하게도 실패자들도 보호를 해준디ㅏ.
트레이딩의 대가 하가니는 순식간에 벌어진 펀드의 파멸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여 집을 걸고서라도 다시 시작해 보자고 주장했다. 그러자 하가니의 한 친구는 이렇게 말하였다. "개인적인 비극이지요. 그는 늘 그 생각만 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겁니다."
-사람은 반성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으니 변하지도 않는다.
머턴은 LTCM의 실패로 현대 금융학과 자신의 뛰어난 학문적 업적에 오점을 남기게 된 것에 대해 괴로워했다. 모델이 실패했다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였지만, 오히려 그는 "해결책은 더욱 정교하고 복잡한 새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무지의 인정, 배우지 못한다.
그러나 LTCM(과 다른 헤지펀드) 이 전체 월스트리트를 좀먹은 것은 사실이다. 은행들은 펀드의 경이적인, 그러나 쉽게 빠져나가는 수익의 유혹에 넘어가, 풍부한 자본으로 비슷한 트레이딩 부서를 편성하고 헤지펀드의 여러 전략을 흉내 내었다. LTCM의 몰락 뒤에는 은행들 역시 채권에서 손실을 입었고, 러시아에서 그리고 주식 변동성에서도 손실을 입었다. 익숙함이 흉내 내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던 것인데, 바로 그것이 은행의 '노출' 에 대한 진정한 대가였다.
앨런 그린스펀은 10월 15일에 다시 금리를 인하했다. 이것은 그가 시장에 유동성이 회복될 때까지 계속 금리를 인하하겠다는 신호였다. 월스트리트는 랠리를 시작했고, 채권 스프레드는 좁아졌다.
구제 한 달 뒤에 LTCM은 스태프의 20%에 가까운 33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그 후로는 사직이 줄을 이었다. 펀드는 자그마한 고용 계약 해제 조건을 제시했는데, 그 회유책에 따른 비용은 메리웨더와 그의 팀원들이 부담했다. 회유된 직원들은 밖에 나가서 펀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사직 계약에 서명했는데, 파트너들은 자신들의 수치스러운 비밀이 드러나게 될까봐 끝까지 우려했다.
1998년 말고 1999년 초에 걸쳐 파트너들은 투자가들을 찾아다녔다. 표면적으로는 펀드의 재앙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였지만, 실제로는 앞으로 새로운 펀드를 모집할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앨리슨은 메리웨더가 유럽의 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재앙에 대한 순회 브리핑(다음 출발을 위한 서곡)에 나선 사실을 알고 할 말을 잃었다. 컨소시엄은 메리웨더에게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컨소시엄의 한 은행가는 "이 자들이 정말로 자기네가 만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하고 물었다.그들은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했다. 재갈이 물려지기 전에 있었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은 앞으로의 만회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스스로를 이상적으로 묘사했다. 즉 자신들은 이 불합리하고 맹목적인 세상에 의해 불행하게 당한 총명하고 대단히 합리적인 그룹이라고 이상화한 것이다.
파트너들은 책임을 인정하는 것 같았다. 책임이 있다고 말했고, 여러번 사죄도 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이 무엇에 대해 사과하는지는 한번도 말하지 않았다. 메리웨더와 팀원들은 자신들의 투자 규모나 차입 투기 방식이 파산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부인했다. 그들은 기본적인 전략에 결함이 있었다는 것조차 부인했다. 도리어 그들은 회의를 거듭할수록 다른 트레이더들의 불합리성과 맹목성을 비난했다. 그들의 LTCM을 외부적 사건, 특히 8월의 유동성 부족에 기인한 9월의 냉혹한 청산 소동의 희생자로 묘사했다.
"제가 들고자 하는 예는 여러 아들을 둔 아버지의 경우입니다. 아들들은 각자 아버지가 필요할 때 도와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만약 형제 중 하나가 도움을 필요로 하면, 아버지 자신과 다른 형제들의 행동을 뒷받침해 줄 자원이 줄게 되겠지요. 뒷받침해 주는 옵션의 가치는 가치 자체가 줄어든 것입니다. 이것이 부분적으로 8월에 유동성으로 이탈했던 원인입니다. 이와 같은 예에서 확인되듯이, 다른 아들이, 그러니까 가령 러시아가 제대로 뒷받침을 받지 못하자, 그 결과 다른 모든 아들들, 즉 다른 후진국들도 신용도가 떨어진 것입니다."
숄스는 학계와 금융 일선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와 같은 압력을 받아 손실된 유동성 요서를 모델링하지 않은 점과 그것이 가격에 미친 영향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비유동성은 단순히 문제의 '표현'이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의 자기 옹호적인 설명에서 빠진 내용은 LTCM이 어떤 가정 하에 스스로를 그런 위험에 노출시켰는가 하는 점이다. 시속 30마일로 운전하는 사람이 얼음 위에서 미끄러졌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도로가 왜 이렇게 엉망이냐고 불평할 수 있다. 그러나 시속 100마일로 운전하는 사람은 그럴 수 없다.
그들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인 100년 만에 한 번 닥칠 만한 '퍼팩트스톰' 에 의해 당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100년에 한 번이 아니라 전에도 여러 번 일어났다. 멕시코에서, 월스트리트에서, 주식에서, 채권에서, 은의 가격에서, 태국에서, 러시아에서, 브라질에서 일어났었다. 금융의 재앙에 휘말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금융의 여사는 '팻테일', 즉 종전의 가격들로는 예측할 수 없는 이례적이고 극단적인 가격의 움직임들로 가득하다.
자신들의 비극으로부터 배운 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파트너들은 구제 받기 전과 똑같이 스프레드가 계속해서 지나치게 벌어져 있으며, 지금이 투자 적기이고,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고 주장했다. 모델이 그렇게 알려준 것이었다. 모델을 굳게 믿었지만 그들은 틀린 것으로 증명 되었다. 최소한 구제 1년 후까지도 그들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지 못했다. 월스트리트는 회복되었지만, LTCM이 했던 거래들은 회복되지 않았다.
1999년 여름에 들어 미국의 스왑 스프레드는 다시 부풀어오르기 시작하여, 1998년의 경악할만한 최고점보다 더 높은 112포인트에 이르렀다. 100년 만에 한 번 있을까말까한 폭풍이 불과 2년 사이에 두 차례나 찾아온 것이다.
펀드는 컨소시엄에 36억 5000만 달러의 부채를 변제했다. 그리고 2000년 초에 청산되었다.
그러므로 LTCM의 문제는 단지 유동성의 부족만이 아니었다. 아마도 펀드의 전체 전략이 틀렸기 때문일 것이고, 1998년 당시 신용에 대한 세계의(그리고 LTCM의) 시각이 다소 지나치게 낙관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연준의 개입이 제한적이고 정부의 돈이 전혀 투입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은행들은 연준의 막강한 힘과 영향력이 배후에 없었다면 협력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고 분명히 LTCM은 파산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은행들과 다른 이들은(비록 일부 사람들이 옛아한 것과 같이 엄청날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더욱 심각한 손실에 시달렸을 것이다. LTCM이 끼칠 손실을 막대한 것이지만, 전체 월스트리트가 나눈다면 재앙 수준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 매도는 끝이 나면서, 사려는 사람들이 돌아오고 시장은 안정을 찾았을 것이다. 물론 극단적인 경우 파산하는 은행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손실이 일어나도록 방관한다면, 다른 많은 사람들과 기관들이 신중하지 못하게 리스크를 감수하는 경우를 예방하게 될 것이다. 특히 최근 10년 동안 금융시장이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어리석은 짓을 하면 대가를 치루게 마련이라는 교훈을 새겨주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문제를 잉태하고 있는 투자가들은 LTCM의 연착률에 솔깃하여 연준에 의존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보면, 애석하게도 연준이 개입하기로 한 결정은 1998년 9월의 공포스러웠던 상황으로 미루어 이해는 가지만 시장에 필요한 교훈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헛되이 버린 것이 된다.
만약 LTCM의 사례가 증명한 것이 있다면, 전통적인 유가증권에서는 아주 잘 운용되던 공시 제도가 파생상품 계약에서는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왜 은행들이 대출을 해주었는가? 하는 질문이 나오게 된다. 리퍼블릭 은행의 전직 회장 월터 웨이너는 1999년 초 공개 심포지엄에서 은행들은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고 발언했다. "클럽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LTCM의 규칙대로 행동해야만 했어요. 하든가 말든가 할 수 있을 뿐 조건은 협상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은행들은 가입했다. 그들 역시 탐욕스러웠다. 그들은 LTCM의 성과에 감탄했고, 파트너들은 실적과 학위, 그리고 명성에 현혹되어 있었다. - 개인들도 사기 당할 때 똑같은 심리 상태. 조급 탐욕 게으름
케인스 말대로 잘 알고 하는 한 가지 투자가 잘 모르고 하는 여러 가지 투자보다 나은 법이다. LTCM의 사례는 여러 바구니에 나누어 담은 계란이 한꺼번에 깨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더욱이 LTCM은 똑같은 형태의 투자를 계속하는 시점에서 다양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잘못을 범했다.
러시아 및 기타 신흥 시장:4억 3000만 달러
선진국들에서의 지랙셔널 트레이드(일본 채권의 공매 등): 3억 7100만 달러
연계 주식(폭스바겐과 셸 등): 2억 8600만 달러
수익 곡선 차익거래:2억 1500만 달러
S&P 500 주식들 : 2억 300만 달러
하이일드:1억 달러
합병 차익거래: 거의 본전
이 7가지 종류에서 1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 그러나 LTCM은 그 정도는 견딜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의 가장 큰 거래 두 가지를 살펴보자.
스왑 : 16억 달러
주식 변동성 : 13억 달러
회사를 파산으로 몰고 간 것은 이 두 가지 거래다. LTCM은 이 두 시장에서 지나치게 대규모 투자를 했다. 거래 규모가 너무 커서 거래시장의 효율성을 왜곡시킬 수도 있을 정도였다. LTCM의 차입 비율이 30 대 1만 아니었더라도, 그리고 파생상품 장부에 있는 엄청난 차입 투기가 더해지지만 않았더라도 그런 것은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크게 투자할 수도 있고(그로 인해 유동성이 낮아지고) 차입 투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차입 비율이 높은데다가 유동성이 적은 투자가들은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는 것처럼 끝에 가서만 옳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시장의 상황을 옳게 판단해야 한다.
다만 교수들은 트레이더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항상 논리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이것이 바로 LTCM이 남긴 진실한 교훈이다. 모델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트레이더들은 실리콘 칩에 의해 통제된느 기계가 아니다. 그들은 감수성이 강하고 따라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떼지어 다니고 무리 속으로 피한다.
사실 LTCM은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펀드로서, 금융경제학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는 두 원칙을 이용하여 시장에 고삐를 채우려는 일대 실험이었다. 미래의 리스크를 과거의 가격과 변동성을 근거로 추측할 수 있다는 믿음이 거의 모든 투자 은행과 트레이딩 부서에 팽배해 있었다. 바로 이것이 LTCM의 기본적인 실수였고, 그들의 엄청난 손실은 현대 금융학의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풀기 어려운 결점을 폭로한 것이다.
메릴린치는 바로 이 점을 1998년도 연차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메릴린치는 시장의 리스크에 대한 노출을 측정하기 위해 수학적 리스크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 이 은행은 자신들이 보증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더 많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제공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델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라고 언급하여, 이러한 모델의 위험성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암시했다.
만약 월스트리트가 LTCM의 몰락에서 딱 한 가지 교훈을 얻어야 한다면, 바로 이 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 번에 또 다른 머턴이 리스크를 관리하고 가능성을 예측하기 위한 정교한 모델을 제시할 때, 과거에 대한 완벽한 기억을 가진 컴퓨터가 미래의 리스크를 수량화할 때, 투자가들은 반드시 그리고 재빨리 다른 길을 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월스트리트는 거의 배운 것이 없었다. 1999년 11월에 JWM(메리웨더와 그의 파트너들, 즉 메리웨더, 하가니, 힐리브랜드, 레하이, 로센펠드, 그리고 아준 크리슈나마차르)은 '랠러티브 밸류 오포튜니티 펀드' 에 관한 자료를 뿌리고 다녔다. 이들에 따르면, 새로운 펀드의 차입 비율은 15대 1의 평범한 수준으로 제한될 것이고, 더 엄격한 원칙들이 적용되며, "포트폴리오 회사가 1998년에 경험한 바와 같은 유형의 극단적인 사건에도 견딜 수 있는 실용성을 보증하기 위해" 고안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사용할 것이었다.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위기에 근거하여 고안된 어떤 수학적 시스템이 미래의 몰락을 예측할 수 있다고 보증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메리웨더에게 JWM의 성공적인 출발은 또 다른 화려한 재기였다.(사실 이런 일은 월스트리트에 비일비재하다) 그가 45억 달러의 손실을 입어 월스트리트 전체와 더 많은 사람들을 자신과 함께 몰락시킬 것처럼 보였던 대사건이 일어난 지 15개월이 지난 1999년 12월, 메리웨더는 주로 불운했던 LTCM의 예 투자가들로부터 2억 5000만 달러의 자본을 모아 재출발 했다.
https://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774
고향에서 눈물을 흘렸던 마이런 숄스는 이후 1999년 플래티넘 그루브 자산운용을 설립하여 재기를 노렸지만 2008년에 다시 큰 손실을 입었던 경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