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역사적, 정치적으로도 굉장히 오래되었고 원인도 복잡하다. 사정을 알고 나면 어느 한쪽이 잘못되었다고 편들기도 힘들다. 그렇지만 전쟁은 나쁘다 생각하고 아무 죄없는 민간인을 학살한 하마스 정권의 테러는 국제적으로 지탄받아야한다. 지금부터 그들의 역사부터 분석해보고 전쟁 당시 나스닥 지수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폭격을 시작하다

유대인

역사는 창세기 성경 때부터 시작된다. 유대인들은 성경에서 나오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가나안"의 땅은 기원전 1209년 무렵에 비석에서 발견되었다.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지역이고 현재의 팔레스타인 땅이다. 유대인들은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이사를 간다. 그리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땅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아브라함과 솔로몬의 후손이라 생각하고 자신들의 영토는 성경에 쓰여있듯이 가나안의 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과 솔로몬 이후 그들의 후손들은 다른 나라에게 지배되고 떠돌이로 살게 된다. 단지 3대까지만 전성기를 유지한 것이다.

가나안은 역사적으로 우리 땅이니 꺼져라 ?

그래도 가나안에 왕국을 세웠다는 근거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이 자신의 땅이라 주장할 수 있기에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이후 유대인들은 쭉 노예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다 반란을 하게 되어 나라를 세우는데 80년도 못가서 망하게 된다.

무려 2천년 동안 나라 잃은 민족으로 역사적 아픔이 있다

유대인들은 2천년이 넘도록 나라 잃은 민족으로 떠돌게 된다. 그 이후 팔레스타인 땅은 거의 대부분 아랍권, 이슬람 세력들에게 통치를 받게 된다. 도중에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 기독교 세력이 침투하긴 했지만 패배하고 오스만 제국 이후 쭉 이슬람 문화권이었다.

팔레스타인의 마음

그러므로 팔레스타인 입장에선 유대인들은 이미 망해서 다른 곳을 떠돌고 있었고 자신들은 쭉 그 영토에서 살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성경을 들먹이며 역사적으로 자기 땅이라 주장하며 나라를 세우는게 어이가 없을 뿐이다.

신뢰가 죽어버린 영국

오스만 제국을 치기 위해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이 내부에서 찢어버리도록 부추겼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에게 각각 독립국가를 세울 수 있도록 정치적 서약을 맺었다. 이를 맥마흔 서약과 밸푸어 서약이라 한다.

즉, 땅 하나에 2개의 나라를 세우도록 한 것이다. 이후 잠시 영국이 위임통치를 하다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골치아파서 UN에게 던져버린다.

유대인들은 전세계 정계를 장악한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유대인들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라를 잃고 동족들도 많이 죽은 유대인들은 더이상 나라를 잃고 싶지 않다는 일념을 갖고 있었다.

베니스의 상인, 샤일록은 유대인의 모델이다

홀로코스트가 일어나기 전 유대인들은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많이 축적하여 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유대인들은 세계의 정계를 장악하고 엄청난 부를 축적한 상태였다.

또한, 유대인들은 유대교 율법을 끝까지 지키면서 미움을 받고 있었다. 결국 은근히 미움을 받던 유대인들은 유럽에 흑사병이 발발했을 때에도 학살당했고 나치 세력들에게 6백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한다.

출저 영화 쉰들러리스트

UN은 한 영토에 각각 나라가 1/2로 통치하라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이를 당연히 수락할 수 없던 아랍인과 유대인들은 분쟁을 일으킨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 아랍인들은 연전연패하고 하이파 전투 이후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1948년 유대인들은 주변의 강대국인 이란, 서구의 미국과 소련의 지지를 받으며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하게 된다.

팔레스타인과 중동 전쟁

현대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근처 아랍국가들은 연합군을 구성하고 이스라엘을 공격한다. 이는 중동 전쟁의 출발을 알리는 시발점이었다.

중동전쟁의 발발

처음엔 이스라엘은 연합국의 공격에 방어만 급급하다 기적적으로 강대국들의 도움을 받아 이스라엘은 승리한다. 북부 갈릴리 지역과 남부 네게브 사막이 이스라엘에게 들어가게 된다.

그러다 근처의 강대국인 이집트가 쿠데타로 왕정이 폐지된다. 그리고 새로운 이집트의 정권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해버리자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을 꼬드겨 2차 중동전쟁을 일으킨다. 전력을 강화시킨 이스라엘은 손쉽게 시나이 반도를 점령했지만 소련과 미국이 이집트 편에 서면서 시나이 반도를 다시 돌려주게된다.

이집트는 이를 갈며 착실히 전쟁을 준비하며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설립하고 테러지원을 한다. 이스라엘은 주변에 적국 밖에 없고 유엔도 철수하자 이판사판으로 이집트에 선공을 시작했다. 그리고 3차 중동전쟁이 일으키고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에게 승리하게 된다. 6일만에 승리하여 6일 전쟁이라고도 한다.

이스라엘은 처음에 점령했던 요충지를 돌려주며 평화 협약을 요구했으나 주변 아랍국들은 거부한다. 이스라엘은 이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고 착실히 자국화했다.

이집트는 4차 중동전쟁을 일으키고 처음에는 이스라엘은 숨도 못쉬고 박살났다. 그러다 이스라엘은 이판사판으로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며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가 발생했다. 보다못한 미국의 개입으로 무기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은 다시 중동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팔레스타인 분열 - 하마스와 파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3차 중동전쟁을 기점으로 이스라엘에게 테러활동을 벌이며 게릴라 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평화협약을 맺고 한발 빼기 시작하고 아랍권 국가들은 서로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인티파다는 이스라엘부터 자유와 해방을 얻기 위한 팔레스타인의 저항이란 뜻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박살내기 위해 리비아를 점령하기도 했지만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인티파다"라는 해방운동을 벌인다. 결국 1988년 팔레스타인은 독립국가로 선포하고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는 유화책으로 오슬로에서 평화협정을 맺는다.

팔레스타인은 나라로 인정되고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총선을 실시하고 자치정부의 활동을 한다. 그러다 과격파인 하마스 정권과 파타 정권으로 나눠지고 팔레스타인은 2차 인티파다를 일으키고 평화협약은 깨지게 된다.

무장 과격파 하마스

국지적으로 테러활동을 계속했다

2차 인티파다 이후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주요 정권으로 부상하게 되고 정치적으로 지지율이 떨어지거나 민심을 돌리기 위해 몇 년마다 이스라엘에 로켓을 날리고 도발을 한다.

출저 나무위키

가장 최근에는 21년 예루살렘에 팔레스타인이 도발을 하고 유혈사태를 일으켰다. 하지만 23년 10월 7일 또 다시 전쟁의 불씨가 일어났다. 또 다시 하마스 정권에서 예루살렘에 테러를 하고 수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이스라엘의 맞대응

개빡친 이스라엘도 전면전을 벌인다고 선포하고 중동은 전운이 감돌게 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시작되었다.

하마스가 테러를 벌인 이유

이스라엘 - 사우디의 정상관계 견제를 위해서이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을 싫어하는 아랍국가와 이란, 사우디의 지원으로 연명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사우디와 정상 국교를 한다면 그들을 지원하는 명분이 없어진다. 게다가 중동국가들이 경제발전만 집중하는 입장에서 팔레스타인은 이제 찬밥 신세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스라엘과 관계를 완화한다. 이스라엘 입장은 자신들을 증오하는 이란과의 맞서기 위해서이다.

이스라엘 4대 분쟁지역

1. 가자지구

하마스가 있다

팔레스타인 영토 안에 있으며 무장 정파이자 현재 정권을 맡고 있는 하마스의 기지이다. 웨스트뱅크와 함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잠재적 영토로 상징된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며 역사가 오래된 고대 필리시테인의 거주지였다.

2. 웨스트뱅크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행정구역이다. 서안지구라고도 하며 가자지구와 같이 잠재적으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영토로 상징되는 곳이다.

3. 예루살렘 동쪽지구

성지 예루살렘

성역으로 여겨지는 곳이기에 각국의 종교가 뒤섞여있어 종교적 분쟁이 많이 일어난다. 현대판 십자군 전쟁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랍과 이스라엘 어느 지역 모두 양보할 수 없는 곳이다. 예루살렘은 성역으로 여겨지며 이스라엘이 1967년 6일 전쟁 당시 점령한 지구이다.

4. 골란고원

이스라엘,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등과의 분쟁지역이다. 이 접경지대를 통해 시리아, 요르단 후원세력들이 팔레스타인을 지원하고 있고 살리리 호수의 수자원은 이스라엘에게 꼭 필요한 생명줄이다.

이 지역들은 매우 위험하므로 절대 여행을 가서는 안 되는 곳이다.

중동 전쟁과 나스닥 지수

중동 지역에서의 전쟁은 에너지 가격 상승과 불확실성을 초래한다. 1973년 10월 6일 제4차 중동전쟁이 발생하고 경제위기를 불러왔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자 중동 국가들은 원유를 감산하여 석유값이 무려 4배나 올랐다.

오일쇼크로 발생한 스태그플레이션

이때, 전세계는 고물가 + 저성장의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지금은 미국의 셰일혁명으로 원유 걱정은 70년대와 다르지만 여전히 석유값이 폭등한다는 것은 보통 국가들에겐 위험 신호이다. 당시 우리나라도 엄청난 쓰나미를 쳐맞았는데 물가상승률이 기존 73년 3.5%인 것이 74년엔 24.8%까지 올랐다. 경제성장률도 마이너스로 쳐박아 버렸다.

기나긴 나스닥 역사에선 티끌만큼 떨어졌다

우리 투자자들은 ?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한다. 중동 지역의 전쟁은 일시적일 수 있기에 투자 포트폴리오는 다각화시켜야만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사람들은 안전자산을 선호하게 되고 주식시장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 원유 수요에 영향을 미치고 선물 시장도 출렁거린다.

나스닥은 주로 기술 기업 위주로 이루어져 중동의 리스크는 기술주보다는 에너지 기업 및 관련 업종의 주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건 그렇고 하루 빨리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