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미국 자회사 솔리다임(Solidigm)이 미국 증시 상장을 검토하는 가운데 국내 금융당국이 중복상장 규제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시장이 성장하면서 기업용 저장장치와 낸드플래시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진 상황에서, 이번 상장 논란은 단순한 기업공개(IPO) 문제가 아니라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와 기존 주주 보호 문제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특히 이번 사안은 국내 기업이 해외 자회사를 상장할 때도 국내의 주주 보호 규제가 적용될 수 있는지를 둘러싼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상장이 성사되면 대규모 자금 조달과 자회사 가치 재평가라는 기회가 생길 수 있지만, 반대로 모회사 주주에게 돌아갈 가치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2026년 10월 19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장은 국회에서 솔리다임의 미국 상장이 중복상장 제한 규정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금융당국은 국내 규정에 따라 증권신고서 제출 등 별도의 심사가 필요한지 검토하고 있다. 다만 해외 상장에 관련 규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한 공식적인 해석 절차가 남아 있으므로, 현재 단계에서 상장 자체가 최종적으로 금지됐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솔리다임은 어떤 기업인가?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인텔의 낸드플래시 및 SSD 사업을 인수한 뒤 2021년 출범시킨 기업이다. SK하이닉스는 2020년 인텔의 관련 사업을 약 9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용 저장장치 시장에 대한 사업 기반을 확대했다.
솔리다임의 핵심 사업은 데이터센터와 서버 등에 사용되는 기업용 SSD다. 일반 소비자가 사용하는 저장장치와 달리 기업용 SSD는 대규모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저장하고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인프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AI 모델의 규모가 커질수록 학습 데이터와 추론 결과, 기업 데이터 등을 저장하고 처리하기 위한 인프라 수요도 늘어날 수 있다. 따라서 솔리다임은 AI 산업의 성장과 함께 사업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최대 1,500억 달러 기업가치 전망, 아직 확정된 숫자는 아니다
시장에서 관심을 끄는 대목은 솔리다임의 잠재적인 상장 가치다.
로이터는 2026년 9월 25일 보도에서 솔리다임이 이르면 2027년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기업가치가 최대 1,500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관계자들의 전망을 전했다. 상장으로 약 150억 달러를 조달할 가능성도 거론됐다.
다만 이 숫자는 확정된 공모가나 공식적인 기업가치가 아니다. 상장 여부와 시기, 공모 규모, 시장 상황에 따라 실제 평가액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 높은 가치가 거론되는 이유는 AI 데이터센터가 저장장치 산업의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AI 시스템에서는 연산 능력뿐 아니라 데이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공급하는지도 중요하다. 기업용 SSD와 고용량 저장장치의 역할이 커지면 솔리다임의 사업 가치도 재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AI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만으로 높은 기업가치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매출 증가율과 영업이익률, 시장점유율, 주요 고객사와의 계약, 향후 설비투자 부담을 확인해야 한다.
솔리다임이 상장하면 SK하이닉스 주주에게 좋은 일일까?
상장의 긍정적인 측면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솔리다임이 독립적인 시장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비상장 자회사는 모회사 실적에 포함돼 평가되는 경우가 많지만, 별도로 상장하면 시장에서 자회사 자체의 성장성과 수익성을 평가할 수 있다.
둘째, 신규 자금을 조달해 사업 확장에 활용할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용 저장장치 시장이 커지는 상황에서 생산능력 확대와 연구개발, 신규 제품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셋째, SK하이닉스가 보유한 자산의 가치가 보다 명확해질 수 있다. 자회사 가치가 독립적으로 평가되면 투자자들이 모회사 기업가치를 분석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늘어난다.
반면 위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존 주주의 가치가 어떻게 보호되느냐는 것이다. 모회사가 보유한 핵심 자회사를 별도로 상장하면 투자자는 자회사 주식에 직접 투자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모회사 주가가 자회사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거나, 자회사의 성장 성과가 기존 모회사 주주에게 기대만큼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한 상장 과정에서 신규 주식이 발행되면 기존 지분율이 낮아질 가능성도 검토해야 한다. 실제 희석 여부와 영향은 구체적인 공모 구조와 기존 주주의 지분 보유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상장으로 기업가치가 높아진다는 사실과 모회사 주주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문제다.
중복상장 규제가 중요한 이유
한국 금융당국은 자회사 상장이 모회사 소액주주의 이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줄이기 위해 관련 규제를 강화해 왔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2026년 7월 공개된 강화된 규정은 자회사 상장 과정에서 이사회 승인과 소수주주 동의 등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마련됐다. 솔리다임의 경우 미국 법인이라는 점 때문에 국내 규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쟁점이 되고 있다.
이 문제는 SK하이닉스만의 이슈가 아니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 사업을 확대하고 해외 자회사의 독립적인 자금 조달을 추진할 경우 비슷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규제가 명확해지면 기업은 상장 계획을 수립할 때 필요한 절차와 주주 보호 의무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 반대로 적용 기준이 불명확하면 해외 자본 조달 계획이 늦어지거나 기업의 투자 일정에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사안은 주주 보호와 기업의 자금 조달 자율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가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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