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탄소배출권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탄소배출 허용 총량이 줄어든 제4차 계획기간이 시작되면서 발전사와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배출권을 사들인 영향이다. 일부 기업은 비용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제4차 계획 기간(2026~2030년)의 배출허용총량을 이전 기간보다 17% 감소한 25억3730만t으로 책정했다. 구조적으로 공급이 줄다 보니 선제적으로 탄소배출권을 확보하려는 기업의 수요가 몰리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2026년 국내 탄소배출권 가격 급등의 구조적 배경과 산업계 영향 및 대응 전략
1. 서론: 탄소배출권 가격 급등과 2026년 하반기 탄소 시장의 패러다임 전환
2026년 10월 현재, 대한민국 탄소배출권(K-ETS) 시장은 과거의 침체를 벗어나 전례 없는 가격 급등세와 거래량 폭증을 기록하며 중대한 구조적 전환기를 통과하고 있다. 2026년 10월 11일 및 12일 한국경제신문을 비롯한 주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해 온실가스 배출권(KAU26)의 톤(t)당 가격은 3만 원 선을 돌파하며 유례없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2026년 10월 8일 기준 한국거래소(KRX)에서 KAU26은 장중 3만 450원을 기록하였으며, 이는 1년 전인 2025년 하반기 당시 8,800원 수준에 머물렀던 배출권 가격 대비 무려 234.7% 폭등한 수치다. 불과 1년 만에 기업이 부담해야 할 탄소 비용이 3배 이상 폭증한 셈이다.
이러한 가격 급등은 단순한 단기적 수급 불균형이나 연도별 정산 시점의 일치로 빚어진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2026년 1월부터 공식적으로 개시된 제4차 배출권거래제 계획기간(2026~2030년)에 따른 배출허용 총량의 대폭 축소,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 급증, 그리고 다가오는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본격 과금 시행에 대비한 국내 산업계의 선제적 물량 확보 경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구조적 결과물이다.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가 2026년 9월 발간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6년 8월 아시아·태평양 배출권 시장이 평균 2% 상승하는 데 그친 반면, 한국 배출권(KAU)은 13.5% 상승하며 역내 주요 시장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 6월부터 8월 사이 현물 시장의 월간 거래량이 2015년 시장 개설 이후 최대 수준을 갱신하는 등, 시장 참여자들의 매수세가 집중되었다. 제3차 계획기간(2021~2025년) 내내 톤당 1만 원대 안팎에 머물며 온실가스 감축의 재무적 유인(Incentive)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국내 탄소 시장이, 이제는 기업의 영업이익과 국가의 수출 경쟁력을 직접적으로 좌우하는 핵심 재무 변수로 자리 잡았다.
본 보고서는 2026년 8월부터 10월에 이르는 최근 3개월간의 시장 데이터와 국회 입법 동향, 산업계 지표를 바탕으로 탄소배출권 가격 급등의 구조적 원인을 심층 분석한다. 나아가 철강, 시멘트, 발전 등 다배출 산업계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진단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시장안정화제도(K-MSR) 및 탄소차액계약제도(CCfD) 추진 현황, 그리고 기업 차원의 근본적인 탈탄소 비즈니스 모델 전환 전략을 종합적으로 조망한다.
2. 2026년 하반기 탄소배출권 시장 동향 및 가격 상승의 구조적 메커니즘
2.1. 최근 3개월간의 가격 추이 및 거래 동향 분석
2026년 상반기부터 시작된 가격 상승세는 3분기(7~9월)와 4분기 초입(10월)을 거치며 한층 가팔라졌다. 2026년 5월까지만 해도 톤당 1만 5,000원대에서 1만 8,000원대를 형성하던 KAU25 가격은 8월 20일 장중 3만 100원까지 치솟으며 2020년 이후 6년 만에 처음으로 3만 원 선을 상회했다. 이후 8월 말 구형물인 KAU25의 거래가 2만 9,450원으로 종료되었고, 9월부터 시장의 주력 종목이 2026년물인 KAU26으로 교체된 이후에도 가격 강세는 꺾이지 않았다.
2026년 9월 말과 10월 초에 걸쳐 KAU26은 2만 9,000원 후반대에서 지지선을 구축한 뒤 지속적으로 3만 원대 돌파를 시도했다. 10월 8일 한국거래소(KRX) 현물 시장에서 KAU26은 전일 대비 3.05%(900원) 상승한 3만 450원에 장을 마감하며 완벽히 3만 원대에 안착했다. 이날 하루 거래량만 20만 6,777톤에 달했으며, 10월 초 거래일 전반에 걸쳐 대규모 물량이 손바뀜 현상을 보였다.
자료: 한국거래소(KRX) 배출권시장 정보플랫폼 (2026년 10월 기준)
이와 더불어 국내외 탄소배출권 관련 금융 투자 상품의 수익률 역시 급등했다. 2026년 9월 중순 기준, 유럽 탄소배출권을 추종하는 'KODEX 유럽탄소배출권선물ICE(H)' 등 주요 ETF 2종은 한 달 새 6%대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전체 상장지수펀드 수익률 상위권에 랭크되었고, 최근 6개월 수익률은 16.99%에 달해 국제 유가 선물 수익률을 압도하는 성과를 보였다. 이는 배출권이 단순한 환경 규제 준수용 명세서를 넘어 독립적인 대체 투자 자산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음을 방증한다.
2.2. 제4차 계획기간(2026~2030)의 배출허용 총량 축소와 선형 감축경로
최근 배출권 가격 상승의 가장 근본적인 동인은 '구조적 공급 긴축'이다. 정부가 확정하여 2026년 1월 1일부터 전면 시행된 제4차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에 따르면, 향후 5년간의 전체 배출허용 총량은 25억 3,730만 톤으로 책정되었다. 이는 제3차 계획기간(2021~2025년)의 28억 7,841만 톤 대비 약 16.8%에서 17.9%가량 대폭 축소된 수치다. 특히 772개 할당대상 업체에 부여된 실질 사전 할당량은 23억 6,299만 톤에 불과하여, 다수의 기업이 할당량 부족 상태에서 4차 기간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감축 방식의 질적 전환이다. 제3차 계획기간까지는 연도별 감축량이 비정형적으로 느슨하게 설계되어 있었으나, 제4차 계획기간부터는 매년 일정한 양씩 배출 허용량을 기계적으로 줄여나가는 '선형 감축경로(Linear Reduction Path)'가 최초로 도입되었다. 이 방식에 따라 연간 배출허용 총량은 2026년 약 5억 5,848만 톤에서 시작해 매년 약 2,551만 톤씩 축소되어 2030년에는 4억 5,644만 톤까지 떨어진다. 이러한 가시적이고 불가역적인 공급 축소 일정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시간이 지날수록 배출권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강력한 시그널을 제공하였으며, 향후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선제적으로 배출권을 매집하려는 '가수요(假需要)'를 폭발시키는 핵심 기제로 작용했다1.
2.3. 발전 부문 유상할당 비율 급증 및 벤치마크(BM) 기준 강화
공급 축소 시그널과 결합하여 실질적인 매수 수요를 창출한 것은 유상할당 비율의 파격적인 확대다. 정부는 발전 부문(59개 기업)의 유상할당 비율을 2026년 15%에서 시작하여 2027년 20%, 2028년 30%, 2029년 40%, 2030년 50%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하도록 법제화했다. 제3차 계획기간 내내 산업 및 발전 전 부문에 10%의 유상할당 비율이 획일적으로 적용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5배나 높은 징벌적 수준의 상향이다. 반면 발전 외 부문(산업·수송·건물 등 713개 기업)은 15% 수준을 유지하며,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탄소누출 우려 업종은 한시적으로 전량 무상할당을 유지받았다.
무상으로 지급받는 배출권이 반토막 나는 상황에서 한국전력 산하 발전 5사를 비롯한 전력 기업들은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매월 열리는 경매 시장과 상시 현물 시장에서 대규모 롱(Long, 매수) 포지션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실제로 2026년 5월 유상할당 경매 응찰률은 218.5%를 기록하며 과열 양상을 보였고, 7월에는 전환(발전) 부문이 전체 시장 매수량의 59%를 싹쓸이하며 가격 상승을 최전선에서 주도했다.
여기에 동일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 중 온실가스 배출 효율이 우수한 기업에 배출권을 더 많이 주는 '배출효율기준(BM, Benchmark)' 할당의 적용 대상이 기존 62%에서 75% 이상으로 대폭 확대되었다. BM 계수 자체도 2026년 평균 효율 수준에서 2030년 상위 20% 수준으로 단계적 강화를 예고하고 있어, 노후 화석연료 설비를 가동하는 저효율 기업들은 구조적으로 배출권을 대량 매입해야만 공장을 가동할 수 있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2.4. 과거 과잉할당분 회수와 중장기 수급 타이트닝 심화
제3차 계획기간 동안 에너지통계 정정 및 산업 가동률 저하 등의 이유로 전환(발전) 부문에 과도하게 배분되었던 잉여 배출권 2,395만 톤을 정부가 회수하기로 결정한 조치 역시 수급 재평가의 도화선이 되었다. 비록 해당 물량을 반납해야 하는 기업들에게 제4차 계획기간까지 분할 납부를 허용하여 단기적인 충격은 분산시켰으나, 결과적으로 시장에 잠재되어 하방 압력을 가할 수 있었던 2,400만 톤 규모의 잉여 공급 폭탄이 완전히 소멸함으로써 시장의 긴축 기조는 굳어졌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향후 KAU 가격이 톤당 2만 7,000원에서 3만 3,000원 사이의 견고한 박스권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하는 '기본 시나리오(Base Scenario)'를 내놓고 있다. 발전 부문의 지속적인 매수 수요와 2027년 유상할당 상향(20%)에 대한 선반영 기대감이 하단을 강하게 지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천연가스 가격 급등으로 석탄 발전 비중이 늘어나거나 혹한기로 전력 수요가 폭증할 경우, 배출권 가격이 4만 원 선을 위협할 수 있다는 '강세 시나리오(Bull Scenario)'도 힘을 얻고 있다.
3. 글로벌 탄소 무역 장벽(EU CBAM) 본격화와 한국 산업계의 파급 효과
국내 탄소배출권 시장의 격변은 글로벌 기후 통상 환경의 변화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특히 2026년은 그동안 배출량 보고 의무만 부과되며 유예 기간을 거쳤던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실질적인 비용 과금 단계로 돌입한 원년이다.
3.1. EU CBAM 인증서 가격 급등과 철강업계의 비용 부담 증폭
CBAM은 EU 역내로 수입되는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6개 품목에 대해,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에 상응하는 'CBAM 인증서' 구매를 강제하는 관세 성격의 제도다. 이때 인증서 가격은 유럽 배출권거래제(EU ETS) 경매 낙찰 가격의 분기 가중평균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2026년 10월 5일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2026년 3분기 CBAM 인증서 적용 가격은 톤당 82.32유로로 확정되었다. 이는 1분기 75.36유로, 2분기 75.28유로에서 정체되어 있던 가격이 3분기 들어 9.35% 급등한 결과다. 10월 8일 환율(1유로=1.12달러)을 적용하면 달러 기준 톤당 약 92.20달러, 원화 기준 12만 원을 훌쩍 넘어서는 막대한 금액이다. 내년부터는 분기 단위로 고정되던 인증서 가격 공시 주기가 매주 단위로 실시간 전환됨에 따라, 유럽 탄소 시장의 변동성이 한국 수출 기업의 납품 단가에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극단적인 재무 리스크 환경이 조성된다.
주: 달러 환산은 2026년 10월 8일 환율 기준 적용
이러한 EU의 과금 조치로 인해 가장 심대한 타격을 입는 부문은 대한민국 수출의 중추인 철강 산업이다. 2026년 초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대EU CBAM 대상 수출 물량 중 철강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98%에 달한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연구에 따르면, CBAM 도입으로 철강업계가 짊어져야 할 부담은 단일 산업에 그치지 않고 비금속광물, 운송장비, 건설업 등 후방 연쇄 산업으로 전이되어 국가 경제 전반의 부가가치 창출을 위축시킬 수 있다.
국내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한국경제인협회는 배출권 가격이 톤당 4만 원 선으로 오를 경우, 제4차 계획기간(2026~2030년) 동안 전체 산업계가 부담해야 할 배출권 구매 비용이 무려 27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비관적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이 중 발전 부문이 21조 851억 원, 철강이 1조 3,756억 원, 반도체 및 정유가 각각 9,000억 원 이상의 비용 폭탄을 맞을 것으로 추산되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해당 추산이 KAU 가격을 지나치게 높게 가정하여 과대계상되었다고 반박하였으나, 개별 기업의 현실은 이미 임계점에 도달해 있다. 포스코의 경우 내년에만 탄소배출권 500만 톤이 부족하고 현대제철 역시 300만 톤이 부족할 것으로 추산되어, 두 기업에서만 연간 6,000억 원, 향후 5년간 약 3조 원의 구매 비용 누수가 발생할 위기에 처해 있다.
3.2. '싼 탄소 가격'의 딜레마와 탄소 주권(Carbon Sovereignty)
EU CBAM의 복잡한 정산 논리는 한국 경제에 '탄소 주권'이라는 새로운 통상 철학적 과제를 던졌다. CBAM은 대상 제품을 수입할 때, 원산지(한국)에서 해당 제품 생산을 위해 실제로 지불한 탄소 가격을 입증할 경우 그만큼을 EU 인증서 구매 의무에서 공제해 준다.
전통적인 제조업 논리에 따르면, 국내 배출권 가격(KAU)을 1만 원 이하로 낮게 유지하고 100% 무상할당을 통해 기업의 탄소 비용을 0원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원가 경쟁력 확보에 유리하다. 그러나 CBAM 체제에서는 국내에서 내지 않은 탄소 비용을 EU 국경을 넘을 때 고스란히 유로화로 토해내야 한다. 즉, 탄소 가격이 싸다고 해서 비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의 기후대응기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재원이 유럽연합의 국고로 유출되어 유럽의 친환경 인프라 투자에 쓰이는 황당한 국부 유출 상황이 발생한다.
반대로, CBAM 공제액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국의 배출권 가격을 단숨에 EU 수준(12만 원)으로 끌어올리거나 철강업계에 대한 무상할당을 전면 폐지할 경우, 내수 시장이나 탄소 관세가 없는 아시아, 미주 시장으로 수출하는 제품들의 가격 경쟁력까지 완전히 붕괴하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한다. 따라서 국내 탄소 가격을 톤당 3~4만 원 선으로 서서히 안착시키면서 징수된 유상할당 수입금을 즉시 기업의 저탄소 공정(수소환원제철, 전기로 등) 전환 보조금으로 투입하는 고도의 '탄소 주권 확보 전략'이 필수적이다.
4. 정부의 입법 및 정책적 대응: 규제 정상화와 보호 장치의 결합
배출권 가격의 급등과 통상 장벽이라는 이중 파도를 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는 2026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굵직한 입법 및 제도 정비를 단행했다.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완충 장치(K-MSR)와 기업의 혁신 투자를 보장하는 금융 기법(CCfD), 그리고 이를 담보하는 헌법적 수준의 중장기 감축 목표가 일제히 가동되었다.
4.1. 가격 변동성을 통제하는 양방향 밸브: 한국형 시장안정화제도(K-MSR)
배출권 가격이 단기간에 3배 이상 폭등하며 3만 원을 돌파하자, 산업계의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한국형 시장안정화제도(K-MSR, Korean Market Stability Reserve)'를 2026년 하반기 전격 도입했다. 기존 제3차 계획기간까지의 시장 안정화 조치는 배출권이 극도로 부족할 때 정부가 보유한 예비분을 시장에 임의로 푸는 일방향적이고 불투명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4.
그러나 제4차 계획기간부터 가동되는 K-MSR은 '수량 기반' 조절 기능과 '가격 상하한제'를 결합한 선진화된 양방향 하이브리드 완충 시스템이다. 시장에 배출권이 과잉 공급되어 가격이 폭락 조짐을 보일 경우, 정부는 정기 경매 물량을 축소하여 유통량을 MSR 예비분으로 자동으로 거두어들인다. 반대로 2026년 현재처럼 배출권 품귀 현상으로 가격이 사전에 공표된 상한선(트리거)을 돌파할 경우, 제4차 기간 동안 비축된 8,528만 톤의 K-MSR 예비분 중 일부를 시장에 기계적으로 방출하여 급등세를 진정시킨다. 기후부는 2026년 6월까지 해당 제도의 세부 운영 기준과 상하한 발동 가격을 구체화한 고시를 제정하여 시장의 불확실성을 크게 낮추었다. 이로써 기업들은 극단적인 가격 리스크를 배제한 상태에서 합리적인 내부 탄소 회계를 수립할 수 있게 되었다.
4.2. 탈탄소 기술 투자의 마중물: 탄소차액계약제도(CCfD)의 법제화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이 탄소를 줄이기 위해서는 공정 자체를 뜯어고치는 막대한 자본 투자(CAPEX)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포스코가 추진 중인 수소환원제철 시범 설비 도입에는 약 15억 달러(약 2조 원) 이상의 자금이 소요된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막대한 돈을 들여 저탄소 설비를 지어 놓았는데, 미래에 배출권 가격이 1만 원 이하로 폭락해 버리면 감축 투자의 수익성을 회수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가격 불확실성 리스크'를 안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리스크를 국가가 전적으로 부담하여 혁신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 '탄소차액계약제도(CCfD, Carbon Contracts for Difference)'를 도입하기로 하고, 이를 담은 '탄소중립산업법(가칭)' 제정을 2026년 하반기 목표로 적극 추진 중이다. CCfD는 정부와 기업이 미래의 특정 '행사 가격(Strike Price)'을 장기 계약(예: 10년)으로 고정하는 파생 금융 기법이다. 설비 투자 후 실제 시장의 탄소배출권 가격이 계약 가격보다 낮을 경우, 정부가 기후대응기금을 통해 그 차액을 기업에 현금으로 보전해 준다. 이를 통해 기업은 미래 배출권 가격 폭락에 대한 우려 없이 확정된 수익률을 바탕으로 조 단위의 탈탄소 투자를 과감하게 집행할 수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유상할당 확대로 인해 2026년 2조 9천억 원 규모로 불어난 기후대응기금을 CCfD 보전 재원 및 직접 감축설비 설치 보조금으로 전액 환류하는 '녹색 대전환(K-GX)' 정책을 공식화했다.
4.3. 헌법 불합치 해소와 중장기 감축 경로의 법제화 (2026년 8월)
탄소배출권 시장의 장기적 신뢰성을 담보하는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2026년 8월 26일 국회 본회의를 여야 합의로 통과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이 법안은 지난 2024년 8월, 헌법재판소가 2031년 이후의 명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부재하여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내렸던 '헌법불합치' 결정을 2년 만에 해소한 역사적 후속 입법이다.
개정안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53~61% 감축, 2040년 69~80%, 2045년 84~90% 감축한다는 '범위형 중장기 감축 목표'를 대한민국 법률에 최초로 명문화했다. 이와 함께 기후 정책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기후과학위원회'를 신설하고, 막대한 재정 소요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 기후대응기금의 재원으로 '녹색국채(Green Bond)'를 발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신설했다.
다만, 논란도 존재한다. 감축 목표가 특정 수치가 아닌 범위형으로 설정되었고, 실제 규제의 기준이 되는 감축 궤적이 매년 균등하게 줄어드는 '선형 감축(하한선)'을 기반으로 설계됨에 따라, 기후 단체와 국가인권위원회는 "초기 집중 감축을 회피하여 누적 배출량과 미래 세대의 부담을 여전히 방치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45년까지의 불가역적인 감축 스케줄이 법제화됨에 따라 배출권 시장 참여자들은 향후 20년간 탄소 자산의 희소성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확실한 장기 프라이싱(Pricing) 근거를 얻게 되었다.
5. 기업의 탈탄소 비즈니스 모델 전환 및 생존 전략
톤당 3만 원을 돌파한 탄소 비용은 경영진에게 기존의 '사후 정산(Compliance)' 마인드를 버리고 선제적인 '전략(Strategy)' 마인드로의 전환을 강제하고 있다. 감축은 더 이상 규제 부서의 비용 처리 업무가 아니라, 재무, 투자, R&D를 포괄하는 전사적 생존 전략이 되었다.
5.1. 의사결정의 패러다임 전환: 내부 탄소가격(ICP)의 전사적 도입
선도적인 기업들은 투자 의사결정 시 탄소 비용을 재무 제표에 선제적으로 얹어 계산하는 '내부 탄소가격(Internal Carbon Price, ICP)' 체계를 고도화하고 있다. ㈜한화와 한화토탈에너지스 등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탄소 감축 로드맵 이행 상황을 투명하게 공시하는 한편, 신규 설비를 도입하거나 사업을 확장할 때 예상되는 온실가스 배출 증감분을 자체 설정한 내부 탄소 가격으로 환산하여 투자수익률(ROI)에 직반영하고 있다. 이는 당장 설치비용이 저렴한 화석연료 기반 설비라 하더라도, 가동 시 매년 지불해야 할 톤당 3~4만 원의 배출권 구매 비용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는 비싸더라도 전동화(Electrification) 설비나 저탄소 공정을 채택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합리적 재무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5.2. 간접 배출(Scope 2) 비용 회피를 위한 재생에너지 직접구매(PPA) 폭발
제4차 배출권거래제에서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이 최대 50%까지 상향됨에 따라, 발전사들이 경매로 지불한 수조 원의 탄소 비용은 전력 도매가격(SMP) 인상을 거쳐 최종적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에 고스란히 전가된다. 즉, 산업계는 공장에서 굴뚝으로 뿜어내는 직접 배출(Scope 1)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전력을 사다 쓰는 간접 배출(Scope 2)에 대해서도 요금 인상이라는 이중고를 맞게 된다.
이러한 전력 비용 폭등의 확실한 방어책으로 '재생에너지 직접 전력구매계약(PPA)'과 자가소비형 태양광 구축이 산업계 전반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배출권 가격이 톤당 3만 원에 육박하면서, 전력 사용에 따른 배출계수로 환산할 경우 한전의 전기를 사용할 때 kWh당 약 13~15원의 숨은 탄소 벌금이 부과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한다. 이 숨은 비용을 고려하면, 다소 비싸다고 여겨졌던 민간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소의 전기를 직접 구매하는 PPA가 화석연료 기반의 전력보다 저렴해지는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 현상이 발생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역시 2026년 8월 재생에너지 PPA 중개플랫폼을 공식 출범시켜 43개 기업이 1GW 규모의 재생에너지를 직접 거래하도록 지원하며 기업의 RE100 이행과 Scope 2 감축을 전폭적으로 조력하고 있다.
5.3. 외부사업(Offset) 발굴을 통한 가성비 감축과 한계
자체 공정 혁신만으로 배출량을 줄이기 어려운 기업들은 협력업체나 외부의 탄소 감축 활동을 지원하고 이를 자사의 실적으로 인정받는 '상쇄배출권(Offset)'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기업이 협력 중소기업의 낡은 보일러를 고효율 기기로 교체해 주거나, 농촌에 태양광 설비를 지어주고 여기서 줄어든 배출량을 자사의 K-ETS 이행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2026년 기후부는 충북 음성 개인주택 태양광 확산 사업 및 수소버스 교체 등 10건의 외부사업을 승인하여 총 76만 톤의 감축량을 새롭게 인증하기도 했다.
비록 제4차 계획기간부터는 전체 배출량의 5%까지만 상쇄배출권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도가 제한되지만, 배출권 가격이 3만 원을 호가하는 상황에서 5%의 대체 물량조차 수백억 원의 현금 유출을 방어하는 핵심 수단이 되므로, 기업들은 앞다투어 기후테크 스타트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외부사업 방법론을 개발하고 있다.
<시사점>
탄소배출권 가격이 톤당 3만 원을 돌파하며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6년 10월 8일 온실가스 배출권(KAU26) 가격은 톤당 3만450원으로, 1년 전 8800원 수준에서 3배 이상 뛰었습니다. 그동안 낮은 가격 탓에 온실가스 감축 유인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국내 탄소시장이 기업의 수익성과 수출 경쟁력을 좌우하는 변수로 급부상한 것입니다.
가격 급등의 배경은 복합적인데, 올해 시작된 제4차 배출권거래제 계획기간(2026~2030년)에 배출허용 총량이 이전보다 크게 줄었고,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도 단계적으로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과거 과잉 할당된 배출권의 회수와 배출효율 기준 강화까지 겹치면서 시장의 공급 여력이 빠르게 축소됐습니다. 기업들이 향후 가격 상승을 우려해 배출권 확보에 나선 것도 상승세를 부추겼습니다. 또한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실질적인 비용 부과 단계에 들어선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탄소 감축은 이제 환경정책을 넘어 국제 무역의 생존 조건이 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산업계의 비용 부담입니다. 철강·시멘트·석유화학 등 탄소 다배출 업종은 공정 전환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데다 배출권 구매 비용까지 늘어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발전사의 탄소 비용은 전력 생산원가에 반영돼 산업용 전기요금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제품 가격에 비용을 전가하면 물가 부담이 커지고, 그렇지 못하면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됩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배출권 가격이 톤당 4만원에 이를 경우 2026~2030년 산업계의 구매 부담이 27조 원에 육박할 수 있다고 추산했습니다. 추정치의 적정성을 둘러싼 논란은 있더라도 탄소 비용이 기업 경영의 중대한 위험 요인으로 떠올랐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특히 수출기업은 국내 배출권 가격만 볼 일이 아닙니다. EU는 수입 철강 등 탄소집약 제품에 탄소 비용을 부과하는 CBAM(탄소국경조정제도 : 2026년 1월 1일부터 시행, 사실상 탄소관세)을 통해 역내외 기업 간 탄소 비용 격차를 줄이려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탄소 비용을 낮게 유지한다고 해서 수출기업의 부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탄소 비용이 적으면 유럽에서 추가 부담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국내 탄소 가격을 급격히 올리면 유럽 외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저탄소 가격이나 일률적인 인상 대신, 국내 감축 투자와 수출 경쟁력을 함께 고려하는 정교한 정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탄소 가격은 기업에 감축 투자를 유도하는 신호인 동시에, 급격한 변동은 생산과 투자 계획을 흔드는 위험 요인이기도 합니다. 정부는 시장안정화제도를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게 운영해 일시적인 수급 쏠림과 과도한 가격 변동을 완화해야 합니다. 다만 가격 상승을 막기 위해 배출권을 무분별하게 풀거나 감축 목표를 후퇴시키면 시장의 신뢰와 정책 일관성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안정화 조치는 가격을 억누르는 수단이 아니라 시장 기능을 지키는 안전판이어야 합니다.
배출권 유상할당으로 확보한 재원을 기업의 탈탄소 전환에 돌려주는 일도 중요합니다. 수소환원제철과 전기로, 시멘트 저탄소 공정, 재생에너지 조달 등은 초기 투자비가 크고 투자 회수 기간도 깁니다. 정부는 탄소차액계약제도(CCfD)와 감축 설비 지원을 통해 탄소 가격 변동에 따른 투자 위험을 줄이고,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뒷받침해야 합니다. 지원은 감축 성과와 연계하고, 경쟁력 있는 기술과 사업에 집중해야 합니다. 재정 지원이 기업의 탄소 비용을 대신 부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산성 향상과 신산업 육성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기업 역시 배출권 구매를 통한 사후 대응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투자 단계부터 탄소 비용을 반영하고, 에너지 효율 개선과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 저탄소 공정 전환을 추진해야 합니다. 공급망 전체의 배출량을 측정하고 검증하는 역량도 갖춰야 합니다. 특히 중소 협력업체는 독자적으로 전환 비용과 탄소 정보를 관리하기 어려운 만큼 대기업과 정부가 공동 지원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탄소 감축 역량의 격차가 수출기업 간 경쟁력 격차로 굳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탄소배출권 가격 급등은 기업에 분명한 부담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배출권 가격을 낮추는 데만 매달린다면 산업 구조 전환은 늦어지고, 글로벌 탄소 무역 장벽 앞에서 더 큰 비용을 치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준비가 부족한 기업에 비용만 떠넘기는 것도 해법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측 가능한 탄소 가격, 실효성 있는 전환 지원, 과감한 기술 혁신이 함께 가야 합니다. 탄소중립 시대의 경쟁력은 배출권을 얼마나 싸게 확보하느냐가 아니라, 같은 제품을 얼마나 적은 탄소로 생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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