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장을 다니다 보면 중개사무소 앞에서 한참 서성이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최근 이야기를 나눠본 중 한 사람은 임차인이었는데 만기는 다가오는데 갱신하자니 얼마를 올려달라고 할지 겁나고, 나가자니 갈 집이 없다고 했다.
법에는 분명 방패가 있는데 왜 그걸 쓰지 못하고 머뭇거릴까.?
요즘 임대차2법 개편 얘기가 다시 나오는 걸 보며 이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
숫자를 보면
이 머뭇거림은 기분 탓이 아니다.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1년 새 18.8퍼센트 줄었고, 갱신 계약 중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실제로 쓴 비율은 지난해 8월 56.9퍼센트에서 올해 8월 48.7퍼센트로 내려갔다.
반대로 집주인과 합의로 재계약한 비중이 51.2퍼센트로 절반을 넘었다. 전월세상한제의 5퍼센트 보호는 청구권을 써야 따라오는데 쓰는 사람이 줄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걸 법이 힘을 잃었다는 신호보다 법이 깔아둔 전제가 무너졌다는 신호로 읽는다. 이사 갈 집이 있어야 거절하고 버틸 수도, 협상할 수도 있는데 그 집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기간
법을 만든 취지는 임차인이 4년은 안심하고 살게 하자는 것이었고, 그 취지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갱신은 5퍼센트에 묶이고 신규는 시세대로 뛰는 이중가격이 굳어지면서 집주인도 임차인도 서로를 경계하게 됐다.
임대차2법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분쟁이 올해 조정 접수의 71.8퍼센트라는 통계는 그 피로감의 크기를 보여준다. 집주인은 갱신 때 못 올린 만큼을 신규 계약에서 받으려 하고, 임차인은 갱신을 거절당할까 눈치를 본다. 양쪽 다 이해가 되는데 이 구조에서 마음 편한 사람은 별로 없다.
개편론
개편론은 두 방향으로 갈린다. 폐지하거나 상한을 풀어서 이중가격을 없애자는 쪽이 있고, 갱신 횟수를 늘려 최대 9년까지 거주를 보장하자는 쪽이 있다.
둘 다 일리가 있다.
다만 나는 어느 쪽이든 법을 만지는 것만으로는 지금의 전세난이 풀리지 않는다고 본다.
전문가들이 꼽는 매물 감소 원인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의 실거주 의무, 신규 입주 감소, 집주인들의 월세 선호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없앤다고 입주 물량이 늘지 않고, 9년으로 늘린다고 월세로 돌아선 집주인이 전세로 돌아오지도 않는다.
반대로 지금 제도를 그대로 두는 것도 합의 갱신이 절반을 넘는 현실을 외면하는 일이라 답이 아니다.
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임대차2법 개편안을 내놓지 않았다.
대통령이 9월 18일 기자회견에서 전월세 세부 정책을 마련 중이라고만 밝혔고, 9월 17일에는 토허제 보완책으로 임차인이 청구권을 행사하면 그 갱신 기간을 집주인의 실거주 유예로 인정하기로 했다.
임차인의 불안을 덜어주려는 취지는 좋다. 다만 한쪽에서는 실거주 의무로 매물을 줄이고 다른 쪽에서는 그 부작용을 메우는 보완책이 붙는 모양새가 나는 조금 어색하다. 규제 하나에 부작용 해결용 장치 하나가 따라붙는 일이 전세 시장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
집을 구하는 일은 결국 불확실성을 줄이는 일이다.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은 2년이라는 시간을 사는 장치인데, 그 시간을 쓰지 못하고 합의 갱신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늘수록 법은 서류 위에만 남는다.
제도는 늘 시장보다 한 박자 늦고 사람은 그 틈에서 가장 먼저 비용을 치른다.
규제가 바뀐다는 소식이 들리면 시장이 어디로 움직일지부터 계산하곤 했는데, 그 아래에서 만기를 기다리는 임차인의 마음은 숫자에 잘 잡히지 않는다.
✔마치며✔
임대차2법 개편이 어느 방향으로 가든 시행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 임차인이 할 수 있는 건 현행 제도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만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 사이에 문자나 이메일로 갱신 의사를 남기고, 합의 갱신을 하더라도 청구권을 쓰면 5퍼센트라는 기준선이 있다는 걸 알고 협상에 나서자.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거절하면 그 말을 기록해두는 것도 잊지 말자. 내 집 마련을 준비 중인 무주택자라면 지금의 전세난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가정으로 다음 갱신 때의 인상 폭을 미리 계산해두는 편이 낫다.
컨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