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하나 떠오르고 있습니다.
바로 전기입니다.
AI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필요한 전력 규모도 기가와트(GW) 단위로 커지고 있는데요.
AI 연산은 순간적으로 많은 전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전원이 중요합니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도 필요하지만,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진다는 한계가 있죠.
그래서 요즘에는 이런 말까지 나옵니다.
“AI 경쟁의 다음 병목은 반도체가 아니라 전력이다.”
이런 상황에서 빅테크와 에너지 업계가 함께 주목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SMR, 소형모듈원자로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빌 게이츠가 설립한 미국 원전 기업 테라파워(TerraPower)의 나트륨(Natrium) 원자로와 SK이노베이션의 협력이 눈길을 끌고 있는데요.
오늘은 AI 데이터센터에 왜 SMR이 필요한지, 테라파워의 나트륨 기술은 기존 원전과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SK이노베이션은 여기에서 어떤 역할을 하려는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AI 데이터센터에 왜 SMR이 필요할까?
SMR은 Small Modular Reactor의 약자로 우리말로는 소형모듈원자로라고 합니다.
기존 대형 원전보다 규모를 줄이고 주요 설비를 모듈화해 제작하는 것이 특징인데요.
AI 데이터센터 입장에서 SMR이 관심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태양광은 밤에 발전하지 못하고 풍력 역시 바람이 없으면 발전량이 줄어듭니다.
반면 원전은 날씨와 관계없이 장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AI 데이터센터처럼 24시간 멈추지 않고 돌아가야 하는 시설에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조건이죠.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송전망입니다.
발전소에서 아무리 많은 전기를 만들어도 데이터센터까지 보내줄 송전망이 부족하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SMR은 대형 원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양한 입지를 검토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전력 수요처와 가까운 곳에서 발전하는 이른바 ‘지산지소형 전력 공급’ 대안으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다만 SMR이라고 해서 아무 곳에나 바로 설치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원전인 만큼 인허가와 안전성 검증, 부지 확보 같은 절차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테라파워의 나트륨 SMR은 무엇이 다를까?
테라파워의 나트륨(Natrium)은 기존 원전과 출발점부터 조금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는 냉각재입니다.
기존 가압경수로(PWR)는 물을 냉각재로 사용합니다. 물이 높은 온도에서도 끓지 않도록 높은 압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압력용기와 관련 안전설비가 필요합니다.
반면 테라파워의 나트륨 원자로는 물 대신 액체 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소듐냉각고속로(SFR)입니다.
나트륨은 끓는점이 약 883℃로 높아 높은 압력을 유지하지 않고도 고온 운전이 가능합니다.
쉽게 말하면 물을 고압으로 눌러 사용하는 기존 원전과 달리, 나트륨이라는 냉각재를 활용해 낮은 압력에서 열을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테라파워 나트륨 기술에서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저압 운전 구조입니다.
액체 나트륨의 높은 끓는점을 활용하기 때문에 기존 가압경수로처럼 매우 높은 압력을 유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는 피동형 냉각 설계입니다.
사고나 전원 상실 상황에서도 자연적인 열 전달과 공기 순환을 활용해 잔열을 제거할 수 있도록 설계합니다.
셋째이자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열에너지저장시스템(TES)입니다.
원전에 ‘열 배터리’를 붙였다?
나트륨 원자로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가 바로 TES입니다.
TES는 쉽게 말해 원자로 옆에 붙어 있는 ‘열 배터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다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ESS처럼 전기를 배터리에 직접 저장하는 방식은 아닙니다.
원자로에서 발생한 열을 용융염 형태로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다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이게 왜 중요할까요?
일반적인 원전은 일정한 출력으로 장시간 운전하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력 수요는 항상 일정하지 않습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나 산업시설이 많아지면 특정 시간대에 전력 수요가 갑자기 크게 늘어날 수 있습니다.
나트륨 시스템은 원자로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전하면서 남는 열을 저장해두고, 전력이 많이 필요한 순간에는 저장한 열까지 활용해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테라파워가 공개한 나트륨 설계는 기본 전기출력이 345MW이고, 저장된 열을 활용하면 최대 500MW 수준까지 전력 출력을 높일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원전은 안정적으로 돌리고, 전력 생산량은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조절하는 구조인 셈입니다.
그래서 나트륨 기술이 AI 데이터센터 시대와 잘 맞는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입니다.
기존 원전과 비교하면?
기존 가압경수로와 테라파워 나트륨 원자로의 차이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기존 가압경수로는 물을 냉각재로 사용하고 높은 압력에서 운전합니다. 반면 나트륨 원자로는 액체 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해 상대적으로 낮은 압력에서 운전할 수 있습니다.
잔열 제거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기존 원전은 다양한 능동·피동 안전설비를 활용하지만, 나트륨 원자로는 자연순환을 활용한 피동형 냉각 시스템을 적용합니다.
출력 조절 방식도 다릅니다. 기존 원전은 원자로 자체의 출력을 조절하는 방식이 중심이라면, 나트륨 시스템은 원자로를 안정적으로 운전하면서 열에너지저장시스템을 활용해 전력 생산량을 유연하게 조절합니다.
결국 단순히 원자로 크기만 줄인 것이 아니라 냉각재부터 열 저장, 출력 조절 방식까지 기존 원전과 다른 구조를 적용한 차세대 원자로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케머러 1호기는 어디까지 왔을까?
테라파워의 첫 나트륨 원자로는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에 건설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케머러 1호기(Kemmerer Unit 1)입니다.
2026년 3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건설 허가를 승인했고, 같은 해 4월에는 원자로 건설이 공식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미국 에너지부는 첨단원자로실증프로그램(ARDP)을 통해 이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으며, 최대 20억 달러 규모의 비용 분담이 승인돼 있습니다.
즉 아직 상업 운전 단계는 아니지만, 단순히 연구실에서 개발 중인 기술 수준을 넘어 실제 원전을 짓고 있는 단계까지 올라왔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미 에너지부는 현재 프로젝트 완료 시점을 2030년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SK이노베이션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기서 국내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는 회사가 바로 SK이노베이션입니다.
SK는 이미 테라파워 투자자로 참여해왔는데요.
2026년 8월에는 관계가 한 단계 더 확대됐습니다.
테라파워와 SK이노베이션은 나트륨 기술의 미국·한국 및 일부 해외시장 상용화를 위한 협력에 나섰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단순히 “유망한 SMR 기업에 투자했다” 정도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SK그룹은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전력 소비 사업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앞으로 AI 산업이 커질수록 SK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전력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테라파워와의 협력을 단순한 재무적 투자보다 장기적인 에너지 공급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도체·AI·에너지가 하나로 연결된다
조금 큰 그림에서 보면 SK그룹의 구조도 흥미롭습니다.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를 생산하고, SK텔레콤은 AI 데이터센터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SK이노베이션은 에너지 사업을 맡고 있습니다.
즉 반도체에서 AI 데이터센터로, 다시 전력 공급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하나의 그룹 안에서 연결될 수 있는 구조입니다.
AI 산업이 커질수록 결국 전력 확보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에너지 사업의 전략적 가치도 함께 커질 수 있습니다.
특히 모든 전력을 하나의 발전원으로 해결하기보다 단기적인 전력 변동에는 LNG나 BESS를 활용하고, 장기적으로 필요한 안정적인 무탄소 전원에는 원전이나 SMR을 활용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조합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SMR이 당장 돈을 버는 사업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테라파워의 나트륨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고 해서 이미 상업적으로 검증된 사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케머러 1호기는 현재 건설 단계이고 앞으로도 공사, 연료 공급, 운영허가, 실제 상업운전 등 넘어야 할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미국 NRC의 건설허가와 운영허가는 별개입니다.
현재는 원자로를 건설할 수 있는 허가를 받은 것이고 실제 가동을 위해서는 별도의 운영허가 절차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투자 관점에서는 “SMR 시대가 당장 열렸다”라고 보기보다는 “상용화를 향한 중요한 단계가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 정도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AI 시대가 열리면서 반도체만큼 중요한 산업이 하나 더 등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전력 산업입니다.
AI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엄청난 전기를 사용합니다.
재생에너지와 ESS만으로 모든 수요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 보니 안정적인 무탄소 전원인 원전과 SMR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중 테라파워의 나트륨 원자로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원자로를 작게 만든 것이 아니라 액체 나트륨 냉각과 열에너지저장시스템을 결합해 원전의 안정성과 전력 공급의 유연성을 동시에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SK이노베이션이 투자뿐 아니라 상용화를 위한 협력까지 확대하면서 국내 투자자 입장에서도 관심을 가져볼 만한 연결고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앞으로 AI 관련 에너지 뉴스를 볼 때는 기술만 볼 것이 아니라 “누가 전기를 만들 것인가”, 그리고 “그 전기를 누가 사용할 것인가”를 함께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AI 시대에는 이 두 가지가 점점 더 가까워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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