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고갈 이야기가 또 나왔습니다.
이번에 등장한 숫자는 2069년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고갈 연도보다 같이 나온 다른 분석이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국민연금의 장기 운용수익률을 현재 전망보다 2%포인트만 높여도 2120년까지 기금이 소진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보험료를 더 걷는 것도 아니고, 연금 지급액을 줄이는 것도 아닌데 수익률 2%포인트 차이로 기금의 운명이 수십 년씩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죠.
다만 여기서 “수익률 2%만 더 올리면 국민연금 문제는 해결된다”라고 받아들이면 조금 곤란합니다.
왜 그런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국민연금 2069년 고갈, 갑자기 나온 숫자는 아니다
이번 2069년이라는 숫자는 남인순 의원실이 국회예산정책처에 의뢰해 받은 국민연금 시나리오별 재정 전망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현재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2050년부터 들어오는 보험료보다 지급하는 연금이 많아지는 적자 구조로 바뀌고, 2069년에는 쌓아둔 적립기금이 모두 소진되는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여기에는 지난해 진행된 연금개혁 내용도 반영돼 있습니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기존 9%에서 매년 0.5%포인트씩 올라 2033년에는 13%가 되고, 소득대체율은 올해부터 43%가 적용되는 구조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전보다 보험료는 더 내고, 받을 연금도 일부 늘어난 구조로 바뀐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지난해 연금개혁 당시 정부는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점을 2071년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서는 2069년으로 2년 당겨졌습니다.
왜 차이가 날까요?
핵심은 장기 수익률 가정입니다.
정부가 지난해 개혁 당시 사용한 전망에는 국민연금의 장기 운용수익률을 기존보다 1%포인트 높여 약 5.5%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가 반영돼 있었습니다.
반면 국회예산정책처는 약 4.6% 수준의 보다 보수적인 수익률을 기준으로 계산했습니다.
결국 2069년이든 2071년이든 이미 정해진 날짜가 아닙니다.
앞으로 보험료를 얼마나 걷을지, 경제가 얼마나 성장할지, 투자수익률이 얼마나 나올지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시뮬레이션 결과라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한 해 수익률이 고갈 시점을 4년 늦췄다?
흥미로운 부분은 국회예산정책처의 이전 전망과 비교했을 때입니다.
이전에는 국민연금 기금이 2065년에 소진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2069년으로 4년 늦춰졌습니다.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최근 국민연금의 높은 운용수익률입니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18.82%의 수익률을 기록했고, 기금 규모도 1,458조원까지 늘어났습니다.
출발점이 되는 자산 자체가 커지면서 향후 예상되는 기금 소진 시점도 뒤로 밀린 것입니다.
결국 국민연금은 보험료만으로 유지되는 제도가 아닙니다.
이미 쌓여 있는 기금을 얼마나 잘 운용하느냐에 따라 미래 재정 상황도 상당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수익률 1%포인트만 높여도 13년이 달라진다
이번 분석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수익률에 따른 차이입니다.
장기 평균 수익률을 약 4.6%로 가정하면 국민연금은 2050년 적자로 전환되고 2069년 기금이 소진되는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그런데 장기 수익률을 1%포인트 높여 약 5.6%로 만들면 적자 전환 시점은 2060년으로 늦춰지고, 기금 소진도 2082년까지 미뤄집니다.
수익률이 1%포인트 올라갔을 뿐인데 기금 소진 시점이 13년이나 늦어진 것입니다.
여기에 장기 수익률을 2%포인트 높여 약 6.6% 수준으로 유지하면 분석기간이 끝나는 2120년까지 기금이 소진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꼭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2%가 아니라 2%포인트입니다.
기준 수익률이 4.6%라면 이를 6.6%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한두 해가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장기 평균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지난해처럼 한 해에 18%가 넘는 수익을 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왜 수익률 2%포인트 차이가 이렇게 클까?
이유는 복리 때문입니다.
국민연금 기금은 현재 1,400조원이 넘는 규모입니다.
여기에 수익률이 2%포인트 차이 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단순 계산만 해도 1,400조원의 2%는 약 28조원입니다.
1,400조원 × 2% = 28조원
한 해 수익에서만 수십조원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수익이 다음 해 다시 투자된다는 점입니다.
28조원이 다시 투자되고 여기에서 또 수익이 발생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눈덩이처럼 커집니다.
주택담보대출에서도 금리가 1~2%포인트만 달라져도 20년, 30년 동안 내야 하는 이자가 크게 달라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작은 금리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만드는 것이 바로 복리입니다.
국민연금 과거 수익률은 어땠을까?
과거 운용 성과만 보면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나쁜 편은 아닙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자료를 기준으로 1988년 기금 설치 이후 누적 연평균 수익률은 8.04% 수준입니다.
이 숫자만 보면 장기 수익률 6%대가 완전히 불가능한 목표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숫자만 보고 앞으로도 같은 수익률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최근 몇 년간 높은 수익률이 전체 평균을 끌어올린 영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1988년부터 2024년까지의 연평균 수익률은 6.82% 수준이었습니다.
결국 어느 기간을 기준으로 계산하느냐에 따라서도 평균 수익률은 꽤 달라집니다.
또 한 가지 현실적인 문제는 국민연금 기금 자체가 계속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운용 자산이 커질수록 시장에서 원하는 종목을 원하는 만큼 사고팔기가 어려워집니다.
작은 펀드라면 쉽게 매매할 수 있는 자산도 수천조원 규모의 기금이 움직이면 시장 가격 자체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과거에 높은 수익을 냈다고 해서 앞으로 50년, 100년 동안 같은 수준의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국민연금은 보험료만큼 투자수익도 중요하다
국민연금 이야기가 나오면 대부분 보험료율에 관심이 집중됩니다.
“앞으로 몇 %를 더 내야 하나?”
“연금은 얼마나 줄어드는 건가?”
이런 질문이 가장 먼저 나오는데요.
하지만 이번 분석을 보면 이미 쌓여 있는 1,400조원이 넘는 기금을 어떻게 운용하느냐 역시 보험료만큼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가입자에게 받은 보험료를 그대로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국내외 주식과 채권, 부동산, 인프라 등에 투자하면서 수익을 만들어냅니다.
운용수익이 높아지면 보험료 수입 외에 수십조원의 자금이 추가로 쌓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장기간 수익률이 낮아진다면 아무리 보험료를 더 걷어도 기금 소진 시점이 빨라질 수 있습니다.
결국 국민연금의 미래는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뿐 아니라 기금운용 성과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
2069년 고갈도, 2120년 유지도 확정된 미래가 아니다
국민연금 관련 기사에서 가장 자극적으로 보이는 숫자는 항상 ‘고갈 연도’입니다.
2065년, 2069년, 2071년처럼 숫자가 계속 달라지다 보니 “도대체 언제 없어지는 거야?”라고 느끼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고갈 연도는 정해진 미래가 아닙니다.
출산율과 경제성장률, 임금 상승률, 국민연금 가입자 수, 보험료율, 수익률 등 수많은 변수를 가정해서 계산한 결과입니다.
가정이 달라지면 고갈 연도도 달라집니다.
이번 분석이 보여주는 것도 결국 이것입니다.
수익률을 1%포인트 높이면 소진 시점이 13년 늦어질 수 있고, 2%포인트 높이면 2120년까지 기금을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수익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결과 역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2069년에 국민연금이 없어진다”거나 “6.6%만 벌면 연금 문제는 해결된다”고 단순하게 받아들일 내용은 아닙니다.
국민연금 고갈 기사에서 꼭 확인해야 할 한 가지
앞으로도 국민연금 고갈 전망은 계속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럴 때 숫자 하나만 보고 불안해하기보다는 그 전망에서 어떤 가정을 사용했는지 먼저 확인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장기 운용수익률을 몇 %로 가정했는지 살펴보면 같은 국민연금을 두고 왜 고갈 시점이 몇 년씩 달라지는지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국민연금이 몇 년에 고갈되느냐”라는 숫자 하나가 아닙니다.
한 세대에 부담을 몰아주지 않으면서 보험료와 급여 구조를 어떻게 조정할지, 그리고 이미 쌓여 있는 막대한 기금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용할지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번 2069년 전망 역시 국민연금이 반드시 그해에 사라진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지금 어떤 정책과 운용 전략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수십 년씩 달라질 수 있다는 계산에 가깝습니다.
앞으로 국민연금 기사에서 ‘기금 고갈 연도’가 보인다면 숫자만 보지 말고 그 옆에 있는 장기 수익률 가정도 한번 확인해보세요.
같은 2069년이라는 숫자도 훨씬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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