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리와 아모레퍼시픽이 단순한 입점 관계를 넘어 함께 상품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두 회사는 9월 29일 전략적 파트너십을 위한 JBP를 체결하고, 뷰티컬리에서만 판매하는 컬리온리(Kurly Only) 상품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완성된 상품을 컬리가 받아서 판매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품 기획 초기 단계부터 뷰티컬리 MD가 직접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유통사와 화장품 회사의 흔한 협업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번 계약은 조금 다릅니다. 컬리는 고객 데이터를 알고 있고, 아모레퍼시픽은 제품을 만드는 기술과 브랜드를 갖고 있습니다. 이제 두 회사가 이 두 가지를 결합해 아예 처음부터 뷰티컬리 고객을 위한 상품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유통사가 무엇을 팔지 고르는 단계를 넘어 무엇을 만들지까지 결정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
컬리온리는 단순한 한정판이 아닙니다
이번 협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컬리온리입니다. 이름 그대로 뷰티컬리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단독 상품입니다. 컬리와 아모레퍼시픽은 단순 패키지 변경이나 증정품 구성에 그치지 않고, 상품 기획 단계부터 컬리 MD가 참여해 차별화된 제품을 개발할 계획입니다. 공동 마케팅과 신규 카테고리 육성도 함께 추진합니다.
현재 뷰티컬리에는 설화수와 헤라뿐 아니라 에스트라, 일리윤 등 아모레퍼시픽의 여러 브랜드가 이미 입점해 있습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협업 단계를 한 단계 더 깊게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연령대의 고객이 어떤 제형을 많이 사는지, 어떤 가격대에서 구매 전환이 높은지, 어떤 브랜드를 함께 구매하는지 등을 컬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 데이터를 제품 개발 과정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 기존 화장품 제조사 단독 기획과 가장 큰 차이입니다.
⠀
왜 아모레퍼시픽은 컬리 MD에게 제품 기획을 맡길까?
아모레퍼시픽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뷰티 브랜드를 운영하는 기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설화수·헤라·에스트라·일리윤처럼 성격이 다른 브랜드를 이미 갖고 있기 때문에 제품을 만드는 능력이 부족해서 컬리와 협력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제조사 입장에서는 누가 제품을 살 것인가를 더 정확하게 아는 유통사와 연결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브랜드가 제품을 만들고 유통사가 진열하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유통사가 소비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런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컬리가 가진 강점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컬리는 오랫동안 식품을 판매하면서 고객별 구매 주기와 가격 민감도, 취향을 분석해왔고, 이 큐레이션 방식을 뷰티로 확대했습니다. 그동안의 판매 데이터가 쌓이면서 이제는 단순히 잘 팔릴 제품을 선택하는 수준을 넘어 어떤 제품이 잘 팔릴 가능성이 높은지를 개발 단계에서 제안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온 것입니다.
⠀
뷰티컬리는 이제 컬리에서 꽤 중요한 사업입니다
컬리는 2022년 11월 뷰티컬리를 정식 출범했습니다. 처음에는 신선식품으로 성공한 회사가 왜 화장품까지 파느냐는 시선도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2026년 1분기 뷰티컬리 거래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2% 증가했고, 2분기에도 13.5% 성장했습니다. 특히 럭셔리 뷰티뿐 아니라 인디 브랜드 판매가 늘면서 컬리의 비식품 사업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컬리 전체 실적도 좋아졌습니다. 올해 1분기 거래액은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고, 매출은 7,457억원, 영업이익은 242억원을 기록했습니다. 2분기 영업이익도 274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회사는 뷰티·리빙 같은 신규 카테고리와 3P, 풀필먼트 사업 확대가 수익성 개선에 기여했다고 설명합니다.
즉 뷰티컬리는 더 이상 식품 고객에게 화장품도 같이 파는 부가 서비스가 아닙니다. 컬리가 식품을 넘어 종합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
올리브영과는 다른 방식으로 경쟁해야 합니다
국내 뷰티 유통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사업자는 여전히 올리브영입니다. 전국 오프라인 매장망과 높은 브랜드 인지도를 갖고 있고, 신제품을 직접 보고 테스트할 수 있다는 장점도 큽니다.
컬리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컬리는 온라인 데이터와 큐레이션, 배송, 단독 상품이라는 다른 무기를 가져갈 가능성이 큽니다.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제품만 판매한다면 소비자는 가격이 더 싸거나 포인트 혜택이 좋은 곳으로 쉽게 이동합니다. 하지만 뷰티컬리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 늘어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특정 제품을 사고 싶다면 컬리 앱에 들어올 이유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결국 컬리온리는 제품 하나를 더 파는 전략이 아니라 고객이 다른 플랫폼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만드는 락인 전략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
유통사의 PB와는 무엇이 다를까?
유통사가 직접 제품을 기획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PB 상품이 먼저 떠오릅니다. 대형마트나 편의점이 제조업체에 제품 생산을 맡기고 자체 브랜드를 붙이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번 협업은 조금 다릅니다. 컬리 브랜드를 붙인 화장품을 아모레퍼시픽이 대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 경쟁력은 그대로 활용하면서 컬리 고객에게 맞는 전용 상품을 공동 기획하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이 구조는 브랜드에도 장점이 있습니다. 제조사가 자신의 브랜드 인지도를 유지하면서 유통사의 데이터와 고객층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통사는 제품 개발 노하우를 처음부터 새로 쌓지 않고도 차별화된 단독 제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즉 브랜드와 플랫폼이 서로의 강점을 교환하는 방식입니다.
⠀
아모레퍼시픽에도 단독 상품이 중요한 이유
온라인 뷰티 시장에서는 동일한 제품이 여러 플랫폼에 동시에 판매됩니다. 소비자는 네이버, 쿠팡, 올리브영, 백화점몰 등에서 가격을 비교할 수 있고, 할인 경쟁이 심해지면 브랜드도 가격 통제가 어려워집니다.
반면 특정 플랫폼에서만 판매하는 제품은 직접적인 가격 비교가 어렵습니다. 상품 구성이나 용량, 패키지를 다르게 만들면 소비자는 단순 최저가보다 제품 자체의 매력을 보고 구매하게 됩니다.
아모레퍼시픽 입장에서도 이런 단독 상품은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새로운 소비자의 반응을 확인하는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습니다. 반응이 좋으면 향후 일반 제품으로 확대하거나 새로운 라인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습니다.
⠀
상품 기획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데이터입니다
이번 협업에서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자산은 제품 자체보다 데이터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컬리는 어떤 고객이 어떤 제품을 샀는지뿐 아니라 식품·건강식품·리빙 상품과 함께 무엇을 구매했는지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리미엄 식품 소비자가 어떤 화장품을 선호하는지, 민감성 스킨케어 고객이 어떤 건강 관련 상품을 함께 구매하는지 같은 패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데이터가 뷰티 상품 기획에 활용되기 시작하면 기존 화장품 판매 방식과 상당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제품을 출시한 뒤 소비자 반응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데이터를 먼저 보고 제품을 만드는 역방향 구조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
앞으로는 플랫폼마다 다른 화장품을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컬리와 아모레퍼시픽의 협업이 성공하면 비슷한 방식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같은 브랜드라도 올리브영용 상품, 컬리 전용 상품, 특정 온라인몰 전용 세트가 각각 다른 형태로 등장할 수 있습니다.
이미 패션과 식품에서는 플랫폼 단독 상품이 흔합니다. 특정 편의점에서만 파는 신제품이나 온라인몰 전용 식품처럼 희소성을 만들어 고객을 끌어오는 방식입니다. 이제 그 경쟁이 화장품까지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것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늘어나지만 제품 비교는 더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같은 브랜드라도 용량과 구성,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단순 가격만 비교하기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
컬리에게는 상장 이후를 준비하는 사업이기도 합니다
컬리는 최근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고 IPO 재추진 가능성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습니다. 식품 배송 회사라는 이미지에 머문다면 성장성 평가에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반면 뷰티와 리빙, 3P, 풀필먼트까지 확대하면 컬리를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컬리는 2025년 창사 이후 처음으로 연간 영업흑자를 기록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영업이익 516억원을 기록하며 수익성 개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뷰티컬리와 비식품 사업 확대가 이런 사업 구조 변화에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모레퍼시픽과의 협업도 단순한 뷰티 이벤트보다 컬리가 어디까지 플랫폼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
결국 유통사의 힘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좋은 브랜드를 많이 입점시키는 것이 좋은 유통사의 조건이었습니다. 앞으로는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어떤 상품을 만들지까지 제안할 수 있는 유통사가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컬리는 고객 데이터를 제공하고, 아모레퍼시픽은 브랜드와 연구개발 능력을 제공합니다. 컬리온리는 이 두 가지가 결합된 첫 결과물이 될 예정입니다.
아직 어떤 브랜드에서 어떤 제품이 나올지는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볼 포인트는 실제 첫 컬리온리 상품이 무엇인지, 기존 제품의 단순 변형인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제품인지, 그리고 소비자가 단독 상품에 얼마나 반응하는지입니다.
이번 협업이 성공한다면 뷰티컬리는 단순히 화장품을 모아 파는 온라인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브랜드를 골라주는 플랫폼에서, 브랜드와 함께 제품을 만드는 플랫폼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이 변화가 이번 컬리와 아모레퍼시픽 협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뷰티컬리 #컬리 #컬리온리 #아모레퍼시픽 #KurlyOnly #설화수 #헤라 #에스트라 #일리윤 #화장품브랜드 #뷰티플랫폼 #K뷰티 #유통트렌드 #이커머스 #단독상품
컨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