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미국 상원에서 암호화폐 규제 법안인 '클래리티 액트(CLARITY Act)'가 아쉽게도 부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었죠. 찬반 투표에서 49대 50으로 아슬아슬하게 통과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인데요. 보통 이렇게 중요한 규제 법안이 무산되면 시장이 크게 흔들리거나 폭락하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오히려 정반대의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법안이 무산된 직후 약 2주 동안 비트코인은 약 8%, 이더리움은 7%, 니어(NEAR)는 무려 104%, 유니스왑(Uniswap)은 49나 폭등하는 기염을 토했죠.
글로벌 자산운용사 비트와이즈(Bitwise)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맷 호건(Matt Hougan)은 이 현상이 절대 우연이 아니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지난 9월 30일에 발표한 투자자 메모에서 "암호화폐 시장이 장기적인 법적 확실성이라는 비둘기를 놓아준 대신, 훨씬 더 빠르고 깔끔한 규칙이라는 꿩을 잡았다"라고 표현했는데요.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법안 통과를 가로막았던 가장 치열한 쟁점 중 하나는 바로 '스테이블코인 이자 및 보상 지급' 문제였습니다. 전통 은행들은 암호화폐 플랫폼이 스테이블코인 잔액에 대해 이자나 보상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막아달라고 요구했죠. 하지만 법안 자체가 폐기되면서 이 독소 조항도 함께 사라져 버렸습니다. 물론 2025년에 제정된 제니스 액트(GENIUS Act)에 따라 발행사들이 직접 이자를 주는 것은 여전히 금지되어 있지만, 중개인이나 플랫폼에 대한 규제는 공백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 법적 공백을 틈타 거래소들은 연방정부의 상한선 제한 없이 스테이블코인 예치에 대한 '보상'을 자유롭게 지급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되었습니다. 코인베이스(Coinbase)는 이미 모포(Morpho)의 온체인 랜딩 서비스를 활용해 USDC 스테이블코인 보상 프로그램을 대폭 확장했는데요, 이번 사태의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단기 수혜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존 대형 거래소들은 자신들의 강력한 해자, 즉 시장 지배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클래리티 액트가 통과되었다면 국가 차원의 현물 거래소 라이선스가 신설되면서 신규 진입자들의 진입 장벽이 낮아졌겠지만, 법안이 좌초되면서 신규 경쟁자들의 위협도 자연스럽게 사라진 셈입니다.
현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의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체적으로 암호화폐 규정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들이 내놓은 가이드라인들은 의회의 지저분한 타협 산물보다 훨씬 깔끔하고 명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상원 투표 이틀 만에 SEC는 5-년 혁신 면제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이 조치 덕분에 토큰화된 미국 상장 주식들이 허가형 자동 시장 조성자(AMM)와 유동성 풀을 통해 곧바로 거래될 수 있게 되었죠. 만약 클래리티 액트가 통과되었다면 온갖 복잡한 규칙 제정 절차 때문에 수년이 걸렸을 일입니다.
실제로 코인베이스의 토큰화된 주식들은 이미 베이스(Base) 네트워크의 아베(Aave) v4에서 빠르게 구동되며 규제 완화의 효과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로 큰 수혜를 본 곳은 바로 프로토콜 수익을 자사주 매입(buyback)에 사용하는 토큰들입니다. 법안 체제 하에서는 자사주 매입 행위 자체가 토큰을 다시 '증권'으로 분류되게 만드는 빌미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안이 없는 상태에서 SEC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은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한다고 해서 기능형 네트워크 토큰이 곧바로 증권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명확하게 선을 그어주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투표 이후 니어(NEAR), 유니스왑(Uniswap),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 펌프(Pump) 같은 토큰들이 시장의 상승세를 주도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맷 호건은 이것이 영구적인 '법률(statute)'이 아니라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행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는 점을 경고합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언제든 방침이 바뀔 위험이 있죠. 하지만 대형 기업들이 온체인 생태계를 구축하기에는 2년이라는 시간으로 충분하며, 그때가 되면 암호화폐 산업은 너무나 거대해져서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성장해 있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클래리티 액트는 중간선거 이후에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보이지만, 시장은 이미 지금의 느슨하고 합리적인 규제 환경을 기본 값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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