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가 세종사업장과 베트남 생산법인에 총 6조7,800억 원을 투자해 반도체 패키지기판 생산능력을 확대한다. AI 반도체 경쟁의 무대가 GPU·HBM을 넘어 '기판'으로까지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투자다.
세종에 4조2,700억, 단일 제품 투자로는 역대 최대
삼성전기는 지난 28일 이사회를 열고 세종사업장 패키지기판 생산시설 증설에 4조2,700억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이는 지난해 말 연결재무제표 기준 자기자본(9조7,973억 원)의 43.6%에 해당하는 규모로, 삼성전기가 단일 제품에 투자한 금액 중 역대 최대다. 투자는 공시일부터 2028년 5월 31일까지 진행되며, 신규 라인은 세종 연동면 명학일반산업단지 내에 들어서 2028년 9월부터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같은 날 베트남 생산법인도 현지 패키지기판 공장 증설을 위해 2조5,100억 원 규모의 유형자산을 취득하기로 결정했다. 두 지역을 합친 총 투자 규모는 6조7,800억 원에 달한다.
가동률 89%…이미 꽉 찬 공장에 더 짓는 증설
이번 투자가 흥미로운 점은 '선제적 투자'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는 데 있다. 올해 상반기 삼성전기의 패키지기판 전체 생산능력은 36만6,000㎡, 생산실적은 32만5,000㎡로 평균 가동률이 89%에 달했다. 지난해 상반기(68%)보다 21%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더 눈에 띄는 대목은 이 기간 생산능력 자체는 39만9,000㎡에서 36만6,000㎡로 줄었는데도 생산실적은 27만2,000㎡에서 32만5,000㎡로 늘었다는 점이다. 기존 설비의 가동률을 최대한 끌어올려 수요에 대응해온 셈이다. 즉 이번 6조7,800억 원 투자는 아직 열리지 않은 시장을 미리 내다본 것이 아니라, 이미 가동률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당장 필요한 생산능력을 확보하려는 증설에 가깝다.
고객사가 투자금 지원하고 물량도 보장
이번 투자에서 주목할 또 다른 대목은 리스크 분산 구조다. 글로벌 빅테크·반도체 고객사와의 중장기 협력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이번 증설에서, 고객사가 투자금의 일부를 지원하고 중장기 물량도 보장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삼성전기는 대규모 설비투자에 따른 부담과 향후 가동률 변동 위험을 낮출 수 있게 됐다. 앞서 삼성전기는 지난 7월에도 세종사업장을 고성능 패키지기판의 글로벌 생산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 2040년까지 약 8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번 결정은 그 계획의 첫 단계가 구체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사점
AI 가속기의 성능이 높아질수록 칩과 메인보드를 연결하는 패키지기판(FC-BGA)도 더 크고 복잡해져야 하는데, 이번 투자는 그 수요를 미리 감당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고객사의 물량 보장이 있다 해도 2028년 양산 시점까지 시장 상황이 그대로 유지될지는 지켜봐야 할 변수다. 향후 2~3년간 AI 인프라 투자가 예상대로 이어지는지가 이번 대규모 투자의 성패를 가를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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