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미국 금융시장에서 가장 눈에 띈 숫자 가운데 하나는 5.22%였습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장중 5.22%까지 오르면서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30년물 국채금리도 5.5% 부근까지 올라 2004년 이후 높은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
채권시장의 공포지수라고 불리는 MOVE 지수도 한 주 만에 약 30% 상승했습니다.
보통 여기까지만 보면 주식시장 분위기도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실제 시장은 정반대였습니다.
같은 기간 나스닥은 사상 최고 종가를 새로 썼고 미국 3대 지수도 주간 기준 상승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미국 국채금리는 19년 만의 높은 수준인데 주식은 왜 오를 수 있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단순히 금리가 얼마나 올랐는지가 아니라 왜 금리가 올랐는지를 봐야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미국 국채금리가 5%를 넘었는데도 나스닥과 빅테크가 강했던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금리가 5%가 넘었는데 주식은 왜 올랐을까?
일반적으로 국채금리 상승은 주식시장에 부담입니다.
미국 국채처럼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평가되는 자산에서 연 5%가 넘는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면 투자자가 굳이 더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주식을 살 이유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술주와 성장주는 먼 미래에 벌어들일 이익을 현재 가치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금리가 높아지면 미래 이익의 현재가치가 낮아지기 때문에 성장주 밸류에이션에는 부담이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금리가 크게 올랐지만 주식시장 역시 함께 상승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하나입니다.
금리가 왜 올랐을까요?
첫 번째 이유, 미국 경기가 생각보다 강하다
이번 장기금리 상승의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는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강하다는 점입니다.
9월 미국 기업활동은 2021년 7월 이후 빠른 확장세를 보였고 제조업 PMI도 57을 기록하면서 시장 예상치인 53.6을 크게 웃돌았습니다.
경기가 예상보다 강하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당장 나쁜 소식만은 아닙니다.
소비가 유지되고 기업 활동이 활발하다면 매출과 이익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연준은 9월 16일 이미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시장에서는 10월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도 높게 보고 있습니다.
경기가 너무 강하면 물가를 다시 자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연준 입장에서는 금리를 더 오래 높게 유지하거나 추가로 올려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강한 경기에서 시작된 흐름이 추가 긴축 기대를 만들고, 이것이 다시 장기 국채금리 상승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경기가 무너지면서 금융시장 불안 때문에 금리가 움직이는 것과 경기가 예상보다 좋아 높은 금리가 유지되는 것은 주식시장이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릅니다.
기업들의 이익이 빠르게 늘고 있다면 투자자들은 어느 정도 높은 금리를 감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금리 상승을 단순히 주식시장 악재라고만 해석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5년 기대인플레이션이 2.3%대에 머물고 있다는 점도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장기금리 급등을 물가가 다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폭등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만 해석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국제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기업의 원가 부담과 물가 상승 압력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확인해야 합니다.
두 번째 이유, 금리보다 강했던 AI 기대감
이번 주 미국 증시를 끌어올린 가장 강한 힘을 하나 꼽는다면 역시 AI였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성장주가 불리하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지만 투자자들은 AI 기업들의 미래 이익 성장에 더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9월 21일 메타는 AI 에이전트 뮤즈 발표 이후 11% 넘게 상승했습니다.
인텔은 12% 가까이 올랐고 AMD도 약 10% 상승했습니다.
ARM을 비롯한 주요 반도체 종목들도 강한 흐름을 보였습니다.
이날 나스닥은 2.26% 상승하며 6월 이후 처음으로 사상 최고 종가를 기록했고 S&P500도 1.49% 올랐습니다.
25일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코파일럿 대규모 개편을 발표하면서 주가가 3.66% 상승해 올해 최고 종가를 기록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시장에서는 두 가지 힘이 충돌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한쪽에서는 국채금리가 5%를 넘으면서 주식 밸류에이션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AI가 기업들의 매출과 이익을 크게 늘릴 것이라는 기대가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AI 쪽의 힘이 더 강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미국 증시를 볼 때 시장 전체가 모두 강하다고 보기보다는 AI와 반도체, 빅테크 중심으로 지수가 올라가고 있다는 점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더라도 모든 종목이 똑같이 상승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국제유가
이번 국채금리 상승을 이해하려면 국제유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국제유가가 크게 올랐고 이것이 다시 인플레이션 우려를 자극했습니다.
흐름을 쉽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기업의 운송비와 에너지 비용이 증가합니다.
소비자가 지불하는 휘발유와 각종 제품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물가가 다시 올라갈 가능성이 커지면 연준이 금리를 더 올리거나 현재 높은 금리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전망이 생깁니다.
그러면 미국 국채금리에도 상승 압력이 생깁니다.
즉, 유가 상승에서 시작된 흐름이 물가 우려를 거쳐 연준 추가 긴축 기대와 국채금리 상승으로 연결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주 후반에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25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관련된 제안을 미국에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국제유가가 2% 넘게 하락했습니다.
9월 26일 기준 WTI는 배럴당 92달러대, 브렌트유는 104달러 안팎에서 움직였습니다.
주식시장은 현재 유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사실보다 앞으로 유가가 더 내려갈 가능성에 먼저 반응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식시장이 현재보다 앞으로의 상황을 먼저 가격에 반영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다만 아직 협상과 관련된 보도 단계라는 점은 구분해야 합니다.
실제 중동 정세가 안정되는지, 원유 공급 문제가 해결되는지는 조금 더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 국채금리 5.2%는 이제 무시해도 될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식시장이 국채금리 5%를 넘긴 상황에서도 올랐다고 해서 이제 금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현재 눈여겨볼 숫자는 금리 자체뿐 아니라 금리의 변동성입니다.
대표적인 지표가 MOVE 지수입니다.
MOVE 지수는 쉽게 말하면 채권시장의 VIX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국채금리가 앞으로 얼마나 크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채권시장 변동성 지표입니다.
이번 주 MOVE 지수는 약 30% 상승하면서 100을 넘어섰습니다.
작년 4월 관세 충격 이후 큰 폭의 주간 상승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금리가 높다는 것보다 채권시장에서 금리가 움직이는 속도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주식시장의 공포지수인 VIX는 15 안팎의 비교적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채권시장에서는 긴장감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데 주식시장에서는 아직 큰 불안을 느끼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런 차이는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찰스슈왑은 과거 2023년 3월 미국 은행 위기 당시 MOVE 지수가 VIX보다 며칠 앞서 상승했던 사례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채권시장이 주식시장보다 먼저 위험 신호를 보낸 사례가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과거와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처럼 채권시장 변동성은 커지는데 주식시장 변동성은 낮은 상황이라면 두 시장 사이의 괴리가 언제까지 유지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10년물 금리가 5.2%인데도 나스닥이 올랐으니 이제 금리는 상관없다"는 식의 해석은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현재는 높은 금리라는 부담을 AI 기대와 강한 기업 실적이 눌러주고 있는 상황에 더 가깝습니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네 가지
이번 주 미국 증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채권시장과 주식시장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채권시장은 인플레이션과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반면 주식시장은 AI와 기업의 미래 이익 성장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이 두 흐름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강해질지를 보려면 몇 가지 숫자를 계속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5.2% 부근에서 안정되는지, 아니면 다시 5.3%, 5.4% 방향으로 올라가는지를 봐야 합니다.
금리가 현재 수준에서 안정된다면 주식시장이 적응할 가능성이 있지만 상승 속도가 다시 빨라지면 기술주에는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국제유가입니다.
중동 협상 기대가 유지되면서 유가가 내려간다면 인플레이션 우려도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협상이 틀어지고 유가가 다시 급등하면 금리 상승 압력 역시 커질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연준의 다음 정책입니다.
10월 FOMC에서 실제 추가 금리 인상이 나오는지, 그리고 연준이 이후 금리 전망을 어떻게 제시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마지막은 결국 기업 실적입니다.
현재 나스닥을 끌어올리고 있는 가장 강한 논리는 AI가 기업 이익을 크게 늘릴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그런데 실제 실적이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높은 금리를 감수하면서까지 높은 밸류에이션을 인정해줄 이유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금리가 조금 더 높아지더라도 기업의 매출과 이익이 그보다 빠르게 늘어난다면 주식은 생각보다 오래 버틸 수도 있습니다.
결국 가장 위험한 조합은 금리가 높은 상태에서 기업 이익 전망까지 동시에 꺾이는 상황입니다.
지금 시장에서는 아직 그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AI와 빅테크의 이익 기대가 높은 금리 부담을 버티게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나스닥이나 S&P500 차트만 보는 것보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와 MOVE 지수를 함께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현재 시장이 알려주는 핵심은 단순합니다.
금리가 높다고 주식이 반드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주식이 올랐다고 높은 금리가 문제가 아닌 것도 아닙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금리가 왜 오르고 있는지, 그리고 기업 이익이 그 부담을 이겨낼 만큼 빠르게 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미국 증시의 방향 역시 이 두 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강해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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