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을 한 통 사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거운 수박을 집까지 가져온 뒤 반으로 자르고, 껍질을 잘라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밀폐용기에 나눠 담아야 합니다. 다 먹고 난 뒤에는 부피가 큰 껍질까지 음식물쓰레기로 처리해야 합니다. 네 식구가 함께 살던 시절에는 별로 이상하지 않았던 과정이지만 혼자 또는 둘이 사는 가구가 많아진 지금은 수박 한 통을 사는 것 자체가 꽤 큰 일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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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최근 과일 시장에서 재미있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과일을 덜 먹어서가 아니라 과일을 사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큼지막한 수박이나 파인애플을 통째로 가져가는 대신 매장에서 바로 잘라달라고 하거나, 이미 먹기 좋게 손질돼 있는 컵과일과 조각과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조금 더 비싸더라도 집에 가져가 포장만 뜯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과일에 돈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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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과일 손질 서비스 이용 90% 늘었다
이 변화는 최근 유통업계 데이터에서 꽤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롯데백화점의 올해 1~8월 과일 손질 서비스 이지프레시 이용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0%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롯데백화점 전체 청과 매출 증가율은 15%였기 때문에 과일 판매 자체보다 손질 서비스 이용 증가 속도가 훨씬 빨랐습니다. 수박을 구매한 뒤 바로 잘라가는 즉석 커팅 서비스 이용객도 65% 증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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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백화점은 현재 잠실점 등을 포함한 5개 점포에서 수박과 멜론, 파인애플 등을 구매한 고객에게 과일을 손질해주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과일 자체를 구매하면 손질 서비스에는 별도의 비용을 받지 않고, 손질된 과일을 담아가는 포장용기 비용으로 약 2천원 정도만 추가됩니다. 수박을 한 통 사는 것보다 가격이 싸지는 것은 아니지만 집에서 직접 자르고 정리해야 하는 시간을 2천원 정도에 대신 사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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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백화점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올해 1~8월 손질돼 판매된 과일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58%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전체 과일 매출 증가율이 20.6%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손질된 과일을 찾는 수요가 훨씬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수박과 파인애플처럼 원래 손질이 번거로운 과일에서 시작했던 서비스도 사과와 배 같은 비교적 손질하기 쉬운 과일까지 범위가 확대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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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단순히 과일만은 아니라는 점이 보입니다. 과일과 함께 누군가 대신 씻고 자르고 껍질을 처리해주는 시간까지 구매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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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는 과일이 간식처럼 팔린다
백화점에서 손질 서비스가 커지고 있다면 편의점에서는 아예 과일의 상품 형태 자체가 바뀌고 있습니다. GS25의 올해 1~8월 손질과일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6% 증가했습니다. 전체 과일 매출 증가율 20.3%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GS25에서 판매하는 관련 상품만 약 40종으로 컵과일과 조각수박뿐 아니라 사과와 땅콩버터를 함께 구성한 제품처럼 과일을 하나의 간식이나 한 끼 구성품으로 만든 상품까지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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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에서도 올해 1~8월 컵과일 매출이 32.6%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전체 과일 매출 증가율은 27.2%였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생과일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키오스크입니다. 올해 1월 8개 점포에서 시작했던 커팅 생과일 키오스크는 8월 54개 점포까지 늘어났습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설치 점포가 여섯 배 이상으로 확대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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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키오스크에는 일반 편의점 냉장고와 조금 다른 형태로 제철 과일 여러 종류가 컵 형태로 소분돼 들어갑니다. 자몽처럼 집에서 껍질을 벗기기 번거로운 과일부터 수박과 파인애플처럼 한 통을 사기에 부담스러운 상품까지 바로 먹을 수 있는 형태로 판매됩니다. 가격은 상품에 따라 4천~6천원대인데, 올해 상반기에는 설치 점포가 50곳 수준으로 늘어나는 과정에서 관련 매출이 약 9배 증가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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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도 수박을 쪼개 팔기 시작했다
대형마트에서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이마트는 수박과 멜론, 파인애플, 오렌지 등을 포함해 약 20개의 조각과일 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두리안과 망고처럼 가격이 높거나 손질이 번거로운 과일도 조금씩 구매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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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여름철 대표 과일인 수박에서 변화가 크게 나타납니다. 이마트는 조각수박 상품을 만들기 위해 하루에 10kg짜리 수박 약 500통을 손질하고 있으며 지난 6월 조각수박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44% 증가했습니다. 예전에는 마트에 가면 수박 한 통을 고르는 것이 당연했다면 이제는 이미 4분의 1이나 8분의 1 크기로 잘린 수박을 집어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구매 방식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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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과일 한 통이 갑자기 부담스러워졌을까
가장 큰 배경에는 가족의 크기가 있습니다. 통계청의 2024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국내 1인 가구는 804만 가구로 전체 일반가구의 36.1%를 차지했습니다. 여기에 2인 가구까지 합하면 1~2인 가구가 전체 일반가구의 65.1%에 달합니다. 이제 한국의 가구 세 곳 가운데 두 곳가량이 한 명 또는 두 명이 생활하는 집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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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원이 네 명일 때와 한 명일 때 적당한 과일 구매량은 당연히 다릅니다. 네 명이 살 때는 수박 한 통을 잘라놓아도 며칠이면 먹을 수 있지만 혼자 산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냉장고 한 칸을 대부분 차지할 만큼 많은 수박을 며칠 동안 계속 먹어야 하고, 시간이 지나면 수분이 빠지거나 식감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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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 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박스를 사면 개당 가격은 저렴하지만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다 먹기까지 너무 오래 걸립니다. 결국 과일을 싸게 많이 사는 것보다 조금 비싸더라도 필요한 만큼만 사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느끼는 소비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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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가 계속 보고 있는 소포장 경제가 과일 시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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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 게 항상 싼 것은 아니다
여기서 소비자가 계산하는 가격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쇼핑에서는 kg당 가격이나 개당 가격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수박 한 통이 2만원이고 반 통이 1만2천원이라면 한 통을 사는 것이 당연히 더 싸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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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비자가 실제 사용하는 양까지 계산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한 통을 사서 30%를 다 먹지 못하고 버린다면 버리는 과일까지 포함해 돈을 낸 것입니다. 여기에 수박을 집까지 운반하고, 자르고, 보관용기에 담고, 껍질을 처리하는 시간까지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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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이미 잘린 수박은 kg당 가격은 비쌀 수 있지만 소비자는 필요한 양만 사고, 바로 먹고, 남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단순히 상품 가격만으로 어느 쪽이 더 비싼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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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비에서 자주 등장하는 시간가성비라는 개념이 과일에도 적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소비자는 가장 싼 상품보다 자신의 시간을 가장 적게 사용하는 상품을 선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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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껍질도 소비자에게는 비용이다
손질과일이 커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쓰레기입니다. 수박 한 통을 사보면 실제 먹는 부분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양의 껍질까지 돈을 주고 집으로 가져오는 셈입니다. 파인애플 역시 두꺼운 껍질과 꼭지를 제거하면 버리는 부분이 상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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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음식물쓰레기를 직접 분리하고 버려야 하는 1~2인 가구에게는 이것도 번거로운 일입니다. 과일을 먹기 위해 수박 껍질을 잘게 자르고 음식물쓰레기 봉투에 넣어 버리는 과정까지 생각하면 과일을 먹는 일 자체가 귀찮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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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매장에서 손질된 과일을 구매하면 이런 작업의 상당 부분이 유통 단계에서 처리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먹는 부분만 집으로 가져오는 셈입니다. 결국 손질과일의 가격에는 과일뿐 아니라 손질과 쓰레기 처리라는 보이지 않는 서비스가 포함돼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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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손질 서비스가 고급 백화점에서 먼저 커지는 것도 흥미롭다
보통 과일을 잘라 파는 상품이라고 하면 저렴한 편의점 컵과일부터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백화점에서도 같은 변화가 나타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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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과일을 사는 소비자는 가격에 민감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시간과 편의성에는 더 높은 가치를 둘 수 있습니다. 좋은 수박을 고른 뒤 집에 가져가 직접 자르는 대신 매장에서 깔끔하게 손질해 포장해준다면 몇 천원의 추가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충분히 생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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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앞으로 식품시장에서 프리미엄의 의미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조건 더 크고 더 비싼 상품만 프리미엄이 아니라 소비자가 해야 할 일을 얼마나 대신해주느냐가 상품의 가치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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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과일을 파는 것에서 잘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서비스가 확장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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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이 식재료에서 즉석식품으로 이동하고 있다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손질과일을 보면 더 재미있는 변화가 보입니다. 과거 과일은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사서 집에서 먹는 식재료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컵과일은 소비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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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뒤 편의점에서 커피 대신 컵과일을 살 수도 있고, 아침을 먹지 못한 직장인이 출근하면서 과일 한 컵을 살 수도 있습니다. 운동을 마친 뒤 사과와 땅콩버터를 간식처럼 먹을 수도 있습니다. 과일의 경쟁상대가 다른 과일이 아니라 커피와 디저트, 과자와 샐러드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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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의 형태가 바뀌면서 시장의 경계도 달라지는 셈입니다. 수박 한 통은 과일 코너에서만 경쟁하지만 컵수박은 편의점 냉장매대에서 요구르트와 샐러드, 디저트와 경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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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을 더 많이 팔기 위해서는 좋은 과일을 생산하는 것만큼 소비자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먹을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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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이 점점 작은 슈퍼마켓이 되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이 변화는 최근 편의점 산업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편의점 업계는 점포를 계속 늘리는 것만으로 성장하기 어려워지면서 신선식품과 장보기 상품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GS25는 신선식품을 확대하는 신선강화점을 올해 상반기 말 955개까지 늘렸고, CU에서도 반찬과 치즈, 햄 같은 장보기 상품 매출이 올해 2분기 전년보다 18.2% 증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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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도 이 전략에 잘 맞는 상품입니다. 과거 편의점에서 과일이라고 하면 바나나 한두 개나 작은 과일팩 정도가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전문 키오스크까지 설치하면서 작은 신선식품 매장처럼 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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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입장에서는 대형마트까지 가서 여러 상품을 대량으로 구매할 필요 없이 집 앞 편의점에서 오늘 먹을 과일 한 컵과 계란, 우유, 샐러드를 사면 됩니다. 장보기의 단위가 일주일치에서 오늘 하루치로 줄어들수록 편의점에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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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질과일은 건강과 편의성이 만나는 상품이다
과일 시장에는 다른 간편식과 조금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소비자가 편리함을 위해 가공식품을 선택할 때는 건강에 대한 작은 죄책감이 따라올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손질과일은 편하게 먹으면서도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는 느낌을 동시에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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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시간이 없을 때 빵 대신 컵과일을 선택하고, 오후 간식으로 과자 대신 사과를 먹을 수 있습니다. 직접 씻고 깎아야 한다면 포기했을 과일을 손질된 형태라면 먹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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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는 손질과일이 단순히 기존 과일을 작은 용기에 옮겨놓은 상품이 아니라 편의성과 건강이라는 두 소비 트렌드가 만나는 상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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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회사와 유통업체에는 새로운 부가가치가 생긴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도 손질은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똑같은 수박이라도 통째로 판매할 때와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투명한 용기에 담아 판매할 때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상품의 성격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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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여러 종류의 과일을 한 컵에 넣거나 견과류와 요구르트, 땅콩버터 같은 다른 식품과 조합하면 단순한 농산물에서 하나의 완제품으로 바뀝니다. 원재료를 그대로 파는 것보다 상품을 세분화하고 차별화하기도 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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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손질과일 시장이 커질수록 유통업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습니다. 과일은 한번 자르는 순간 통과일보다 신선도가 빠르게 떨어지고 미생물 관리도 중요해집니다. 냉장유통과 포장기술, 유통기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오히려 폐기되는 상품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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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앞으로 경쟁은 누가 과일을 더 잘 자르느냐가 아니라 손질한 뒤에도 얼마나 신선하게 유지하고, 정확한 수요만큼 생산해 폐기를 줄이느냐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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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는 과일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귀찮음을 없애고 있다
최근 생활소비 트렌드를 보면 비슷한 변화가 여러 분야에서 반복됩니다. 채소는 씻어서 나오고, 밀키트에는 필요한 양의 식재료가 이미 손질돼 있습니다. 세탁은 앱으로 맡기고, 새벽배송으로 장을 보며, 도시락은 전자레인지에 몇 분만 돌리면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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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질과일 역시 같은 흐름입니다. 예전에는 상품을 구매한 뒤 소비자가 해야 했던 일을 이제 기업이 대신합니다. 소비자는 그 대가로 조금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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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손질과일 매출 증가를 단순히 사람들이 게을러졌다고 보면 중요한 변화를 놓칠 수 있습니다. 소비자가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자원이 돈에서 시간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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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맞벌이 가구와 1인 가구에서는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돼 있습니다. 퇴근 후 한 시간 가운데 10분을 과일을 씻고 자르는 데 사용할 것인지, 조금 더 비싼 손질과일을 사서 그 시간을 다른 일에 사용할 것인지 선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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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점점 더 많은 소비자가 후자를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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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장 다음은 손질 서비스가 될 수 있다
최근 유통업계에서는 소포장 상품이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수박 반 통, 고기 200g, 한 끼 분량 채소처럼 가족 규모가 작아진 것에 맞춰 상품의 양을 줄이는 변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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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손질과일 시장을 보면 다음 단계가 보입니다. 단순히 양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해야 하는 과정까지 없애는 것입니다. 수박을 반 통 파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껍질까지 제거해 한입 크기로 잘라주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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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런 변화는 과일에서 다른 신선식품으로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세척채소와 손질채소가 일반화됐고 생선과 고기 역시 소비자가 바로 조리할 수 있도록 손질된 상품이 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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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유통의 경쟁이 얼마나 싸게 많이 파느냐에서 얼마나 적게 버리고, 얼마나 편하게 먹게 해주느냐로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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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도 이제 시간가성비를 따지는 시대다
올해 롯데백화점 과일 손질 서비스 이용이 90% 증가하고, 신세계백화점 손질과일 매출이 58% 늘었으며, CU와 GS25에서도 손질과일 매출이 20~30%대 증가했다는 것은 여러 유통채널에서 같은 방향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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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체 과일시장에서 손질과일이 차지하는 규모가 통과일보다 더 커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성장 속도를 보면 소비자가 과일에서 원하는 가치가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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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과일을 살 때 크고 싱싱하며 가격이 싼지가 가장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내가 먹을 만큼인지, 바로 먹을 수 있는지, 쓰레기가 얼마나 나오는지까지 구매 기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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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한 통보다 조각수박이 비싸고 사과 한 봉지보다 컵과일의 개당 가격이 더 비싸더라도 소비자가 계속 선택한다면 그 차액은 단순한 과일 가격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대신 과일을 씻고 자르고 껍질을 버려준 시간의 가격이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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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손질과일이 커지는 현상은 작은 과일 소비 트렌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1~2인 가구 증가와 시간가성비, 음식물쓰레기, 편의점의 장보기 시장 확대 같은 여러 변화가 동시에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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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마트 과일 코너에서 수박 한 통보다 작은 조각수박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거나,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듯 생과일 한 컵을 사는 모습이 더욱 익숙해질지도 모릅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더 많은 과일이 아니라 내 생활에 맞게 바로 먹을 수 있는 과일로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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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요즘 소비자가 돈을 쓰는 곳을 자세히 보면 공통점이 하나 보입니다. 직접 해야 하는 일을 줄여주는 상품입니다. 과일조차 예외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과일만 사는 것이 아니라 과일을 먹기까지 필요한 시간을 함께 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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