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가상자산 규제가 조금씩 명확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서 비트코인 시장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졌습니다.
비트코인이 다시 7만5천달러 선까지 내려왔고, 미국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 주가도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시장의 관심을 끈 사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미국의 ‘클래리티법(CLARITY Act)’입니다.
9월 15일 미국 상원에서 진행된 절차 표결 결과는 찬성 49표, 반대 50표였습니다.
법안을 다음 단계로 진행시키기 위해 필요한 60표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처리가 일단 멈춰선 것입니다.
그렇다면 클래리티법은 도대체 어떤 법이길래 가상자산 시장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했을까요?
그리고 이번 표결 실패로 미국의 가상자산 제도화도 끝난 것일까요?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가상자산은 증권일까, 상품일까?
미국 가상자산 시장에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누가 무엇을 규제하느냐’입니다.
어떤 디지털 자산과 거래가 증권 규제를 받아야 하는지, 어떤 영역을 상품 규제 체계로 다뤄야 하는지를 두고 시장의 불확실성이 컸습니다.
클래리티법의 정식 명칭은 ‘Digital Asset Market Clarity Act of 2025’입니다.
핵심은 디지털 자산 시장에 대한 연방 규제 체계를 만들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역할을 보다 명확하게 나누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 가상자산은 누가 감독하고, 거래소는 어떤 규칙을 지켜야 하는가?”
라는 기본적인 기준을 법으로 정하려는 것입니다.
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가 설명한 법안 구조를 보면 증권에 대한 SEC의 권한을 유지하면서 디지털 상품 현물시장과 관련 중개업체에는 CFTC의 감독 체계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장이 기대했던 것은 단순한 ‘규제 완화’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불명확했던 규칙을 법으로 정해 기업과 금융기관이 어느 선까지 사업을 할 수 있는지 예측하기 쉬워진다는 점이 중요했습니다.
왜 시장에서는 호재로 봤을까?
기업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규제의 강도보다 규칙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사업을 시작했는데 나중에 어떤 기관이 규제할지 모르거나, 같은 자산을 두고 법적 해석이 달라진다면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클래리티법이 주목받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SEC와 CFTC의 역할을 법률로 구체화하면 가상자산 거래소와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사업 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법안 통과를 미국 시장의 규제 불확실성을 낮출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봐왔습니다.
실제로 이 법안은 2025년 7월 17일 미국 하원에서 294대134로 통과했습니다.
남은 큰 관문이 상원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그 상원에서 제동이 걸렸습니다.
클래리티법 49대50
최종 부결된 것은 아닙니다
9월 15일 상원에서 진행된 것은 클래리티법 자체를 최종적으로 통과시킬 것인지 결정하는 본표결이 아니었습니다.
정확히는 H.R.3633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motion to proceed’에 대해 토론종결을 요청하는 절차 표결이었습니다.
미 상원 공식 기록에 따르면 이 표결은 찬성 49표, 반대 50표로 부결됐습니다.
60표가 필요했기 때문에 법안을 다음 단계로 진행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따라서 “클래리티법이 완전히 폐기됐다”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표결 직후 재심 가능성을 남기기 위한 동의도 상원 기록에 올라왔습니다.
다만 시장이 기대했던 일정대로 법안을 빠르게 처리하기는 어려워졌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왜 60표를 확보하지 못했을까?
법안을 둘러싼 쟁점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표결 직전까지 상원에서는 수정안 협상이 이어졌고, 공직자의 가상자산 관련 이해충돌 규정과 금융 안정성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거론됐습니다.
Reuters에 따르면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가족의 가상자산 사업과 관련해 더 강한 윤리·이해충돌 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응해 표결 직전 공개된 수정안에는 공직자의 가상자산 사업과 관련한 제한을 강화하는 내용 등이 추가됐지만 합의를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은행권의 우려도 있었습니다.
일부 은행업계에서는 스테이블코인에 제공되는 보상 구조가 은행 예금의 이탈을 유도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은행의 대출 재원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이런 제한이 스테이블코인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맞섰습니다.
결국 이런 쟁점에서 충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공화당 의원 일부도 반대표를 던지면서 60표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비트코인 7만5천달러
코인베이스도 함께 흔들렸다
시장 반응은 빨랐습니다.
Reuters에 따르면 상원 표결 이후 비트코인은 약 4% 하락하며 7만5,908달러 수준에서 거래됐습니다.
가상자산 관련주도 함께 흔들렸습니다.
코인베이스와 서클 주가는 각각 약 9% 하락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트코인이 7만5천달러대로 내려간 이유를 전부 클래리티법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미국 금융시장에서는 국제유가 상승과 인플레이션 우려, 미국 국채금리 급등까지 동시에 나타났습니다.
9월 15일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5%를 넘었고 뉴욕 증시 역시 주요 지수가 동반 하락했습니다.
가상자산 역시 위험자산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금리와 유동성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결국 클래리티법 표결 실패가 투자심리를 압박한 것은 맞지만, 당시 비트코인 하락에는 금리와 유동성, 증시 분위기 등 여러 변수가 함께 작용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그렇다면 비트코인 전망은?
클래리티법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번에 실패한 것은 최종 법안 표결이 아니라 상원에서 논의를 진행하기 위한 절차 표결입니다.
따라서 법안 자체가 자동으로 폐기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60표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앞으로 초당적 합의를 추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특히 표결 직후 재심 가능성을 열어두는 절차가 취해졌기 때문에 향후 수정안이나 추가 협상을 거쳐 다시 표결에 나설 가능성 자체는 남아 있습니다.
다만 언제 다시 표결이 진행될지는 현재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까지 고려하면 향후 처리 일정은 의회의 추가 협상을 확인해야 합니다.
미국의 가상자산 제도화도 끝난 것은 아니다
클래리티법이 당장 진행되지 않는다고 미국의 가상자산 규제가 모두 멈추는 것은 아닙니다.
SEC와 CFTC는 기존 법률 아래에서도 가상자산과 관련된 규정과 감독 기준을 계속 마련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CFTC는 2026년에도 암호자산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디지털 상품의 개념을 설명하는 규칙을 내놓는 등 관련 감독체계를 정비하고 있습니다.
다만 의회가 명확한 법률을 만들지 않는다면 행정부나 규제기관이 만든 규칙은 향후 정책 방향에 따라 다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Reuters 역시 이번 법안이 멈추면서 당분간 SEC와 CFTC의 기존 권한을 활용한 규제가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 의견을 전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결과는 미국의 가상자산 제도권 편입이 끝났다는 의미라기보다, 의회를 통한 규제 명확화 일정이 다시 불확실해졌다고 이해하는 편이 적절합니다.
앞으로 무엇을 확인해야 할까?
이제 비트코인 시장에서는 클래리티법 하나만 볼 것이 아니라 여러 변수를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상원이 클래리티법을 다시 표결할지, 추가 수정안이 나올지 확인해야 합니다.
동시에 SEC와 CFTC가 어떤 규정을 내놓는지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투자시장에서는 미국 기준금리와 국채금리, 시중 유동성, 비트코인 현물 ETF의 자금 유입과 유출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법안 논의가 다시 시작되더라도 시장 유동성이 줄어들고 투자자금이 계속 빠져나간다면 가상자산 가격이 바로 회복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규제 불확실성이 줄어드는 동시에 위험자산으로 자금이 다시 유입된다면 시장 분위기를 판단할 수 있는 또 다른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9월 15일 미국 상원에서 클래리티법을 진행하기 위한 절차 표결은 49대50으로 실패했습니다.
필요한 60표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미국 가상자산 시장이 기대했던 규제 명확화 일정에도 제동이 걸렸습니다.
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비트코인은 7만5천달러대로 내려왔고 코인베이스와 서클 같은 가상자산 관련주도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다만 이번 표결 하나만으로 비트코인의 장기 방향이나 미국의 가상자산 제도화가 끝났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클래리티법은 최종 부결된 것이 아니며 재논의 가능성이 남아 있고, SEC와 CFTC의 규제 정비도 별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법안이 다시 논의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가상자산 가격 상승을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앞으로 중요한 것은 미국 의회가 규제 공백을 어떤 방식으로 정리하는지, SEC와 CFTC가 어떤 기준을 마련하는지, 그리고 실제 시장의 자금이 어디로 움직이는지를 함께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번 49대50 표결이 보여준 것은 한 가지입니다.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가격뿐 아니라 ‘규칙이 언제, 어떤 형태로 만들어지는가’도 점점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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