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시장의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가상자산을 두고 ‘투기성 자산’이라는 시선이 강했다면, 이제는 글로벌 은행이 직접 블록체인 결제망을 시험하고 법원도 블록체인에서 발생한 범죄에 기존 법률을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은행이 직접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국경 간 결제를 시험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내 법원이 탈중앙화된 이더리움 네트워크 역시 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놓았습니다.


가상자산 시장이 단순한 투자 시장을 넘어 기존 금융과 법률 시스템 안으로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은행이 직접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 이유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미국 대형 은행인 US뱅크(U.S. Bank)에서 나왔습니다.


US뱅크는 2026년 9월 자체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인 USBDC를 활용해 북미와 유럽에 있는 은행 법인 사이에서 실제 국경 간 결제 파일럿을 진행했습니다.


단순히 ‘블록체인을 검토하고 있다’는 수준이 아닙니다.


실제로 자금을 블록체인 위에서 이동시키는 거래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USBDC는 스텔라(Stellar) 블록체인을 이용했으며, US뱅크는 기존 은행의 재무·리스크·컴플라이언스·운영 시스템과 블록체인 결제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왜 은행들이 이런 실험에 관심을 갖는 걸까요?


핵심은 24시간 결제와 효율성입니다.


기존 국제송금은 은행과 국가, 통화, 중계기관에 따라 처리 과정이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환전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고 최종 수취인 계좌에 돈이 들어오기까지 추가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하면 은행 영업시간에 맞출 필요 없이 블록체인상에서 24시간 가치를 이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국제송금은 무조건 며칠씩 걸린다는 인식이 있지만 현재 SWIFT망 자체의 처리 속도도 상당히 빨라졌습니다. SWIFT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제송금의 약 90%가 목적지 은행까지 1시간 이내에 도달합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국가별 규제 확인이나 현지 은행의 내부 처리, 환전, 수취인 계좌 입금 과정 등에 따라 실제 고객이 돈을 사용할 수 있는 시점에는 차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의 경쟁력은 단순히 ‘SWIFT보다 무조건 빠르다’가 아니라, 24시간 결제가 가능하고 기존 은행 시스템과 블록체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연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존 국제송금은 은행과 결제망, 경우에 따라서는 중계기관을 거치는 구조입니다. 반면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토큰 형태로 가치를 이전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용 시간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기존 국제송금은 금융기관의 영업시간이나 국가별 결제 시스템의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한 24시간 365일 거래가 가능합니다.


거래 내역을 확인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기존 국제송금은 주로 금융기관의 내부 시스템을 통해 처리 상태를 확인하지만, 스테이블코인 거래는 블록체인에 기록된 거래 내역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비용 구조 역시 조금 다릅니다. 기존 국제송금에서는 은행 수수료와 환전 비용, 경우에 따라 중계 수수료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에서는 블록체인 네트워크 수수료가 발생하며, 실제 법정화폐로 바꾸는 과정에서는 온·오프램프 비용이나 환전 비용이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스테이블코인이라고 해서 항상 비용이 크게 줄어든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블록체인을 사용하고 어떤 금융기관과 연결되는지에 따라 실제 비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 기존 국제송금의 핵심 과제가 국가별 결제망과 은행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것이라면,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에서는 규제 준수와 준비자산 관리, 상환 구조, 보안 문제까지 함께 해결해야 합니다.


즉 스테이블코인이 모든 국제결제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형 은행이 직접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실제 결제에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 중요한 변화입니다.










 “탈중앙화면 법 적용도 어렵다?” 국내 법원의 판단


금융권이 블록체인을 활용하기 시작하는 동안 국내에서는 또 다른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블록체인 범죄에 대한 법원의 판단입니다.


2026년 7월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는 허위 가상자산 스테이킹 사이트를 이용해 피해자의 메타마스크 지갑에 접근한 뒤 스마트컨트랙트를 통해 가상자산을 빼낸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피고인 측에서는 이더리움이 중앙관리자가 없는 탈중앙화 네트워크라는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이더리움 역시 여러 노드와 검증자가 P2P 방식으로 거래를 검증하고 전자적 정보를 전달·처리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정보통신망법에서 말하는 ‘정보통신망’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블록체인은 중앙 서버가 없으니까 기존 사이버 범죄 관련 법률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논리가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허위 사이트에 속아 출금 권한을 승인했고, 이를 이용해 가상자산이 빠져나갔다는 점이 중요하게 판단됐습니다.


법원은 이런 과정을 정상적으로 부여된 접근 권한을 이용한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이번 판결 하나만으로 모든 DeFi나 스마트콘트랙트 관련 사건에 정보통신망법이 자동으로 적용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각 사건의 구조와 접근 방법, 피해자의 권한 부여 과정 등에 따라 법적 판단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은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탈중앙화 기술이라고 해서 기존 법체계 밖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은행은 블록체인을 활용하고, 법원은 책임 기준을 만들기 시작했다


최근 나타나는 두 가지 변화는 방향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US뱅크 사례는 블록체인이 기존 금융 시스템 안에서 실제 결제 인프라로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반면 국내 법원 판결은 블록체인을 악용한 범죄라고 하더라도 기존 법률 체계가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한쪽에서는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책임 범위가 구체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변화는 가상자산 시장에서도 중요합니다.


앞으로는 단순히 기술이 빠르거나 토큰 가격이 많이 오른다는 이유만으로 프로젝트를 평가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큽니다.


준비자산은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토큰을 실제 화폐로 상환할 수 있는지, 어떤 금융기관과 연결돼 있는지, 규제와 자금세탁방지 기준을 준수하고 있는지, 해킹이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주체가 명확한지까지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은 이름처럼 가격이 안정적이라고 해서 모든 위험이 사라지는 자산은 아닙니다.


발행사의 준비자산과 상환 능력,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안정성, 규제 환경에 따라 위험 수준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상자산 시장, 이제 무엇을 봐야 할까?


앞으로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신뢰성과 규제 대응 능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형 금융기관이 블록체인 기반 결제에 참여하면 기관 자금이 움직일 수 있는 인프라는 넓어집니다.


동시에 법적 책임 기준이 구체화되면 시장 참여자 입장에서도 어떤 행위가 허용되고 어떤 행위가 문제가 되는지 판단하기 쉬워질 수 있습니다.


결국 앞으로 중요한 것은 단순히 ‘탈중앙화냐 중앙화냐’가 아닐 수 있습니다.


  1. 누가 발행하고,
  2. 무엇으로 가치를 보장하며,
  3. 어떤 규제를 받고,
  4.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


이 네 가지를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가상자산 시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 금융과 법률 시스템 안으로 점점 깊숙이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은행이 직접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법원이 블록체인 네트워크에도 기존 법률을 적용하기 시작한 지금.


가상자산 시장은 ‘규제가 없어서 자유로운 시장’에서 규칙 안에서 활용되는 금융 인프라로 한 단계 이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