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억달러 규모 대미투자펀드가 조만간 서명될 1차 합의문을 통해 실체를 드러낸다. 핵심은 미국 본토에 짓는 대형 원자력발전소 8기다. 여기에 텍사스 가스복합화력발전소, 알래스카 파이프라인천연가스(PNG) 개발까지 더하면, 한국이 미국에 약속한 투자금 대부분이 'AI 에너지 인프라'라는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그림이 완성된다.

무엇이 합의문에 담기나

국회와 관계 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지난 7일 국회 비공개 당정협의회에서 대미 투자 진행 상황을 여당 의원들에게 보고했다. 협의회에 참석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원전 건설과 관련해 "'8기 건설 추진'이라는 큰 틀의 방향성이 이번 투자 합의문에 담길 것"이라며 "장소와 규모는 미정"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산업부는 1호 프로젝트로 220억달러 규모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를 최종 선정했다고 보고했다. 비공개로 열린 한미전략투자운영위원회에서는 이 계약안도 함께 의결됐다.
양국은 오는 18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합의문에 서명할 것으로 전해졌다. 원전 8기 중 일부는 한국형 노형인 APR1400, 나머지는 웨스팅하우스의 AP1000으로 짓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APR1400이 사상 처음 미국 땅에 지어진다면, 시공 경험을 갖춘 국내 기업과 원전 기자재 업계가 직접적인 수혜를 보게 된다.

왜 하필 지금, 왜 한국인가

미국 빅테크는 생성형 AI를 넘어 범용인공지능(AGI)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데이터센터 투자가 폭증하면서 정작 전력이 모자라는 '전력 기근' 현상이 발생했다. 미국은 이를 풀어줄 파트너로 가스터빈 기술과 원전 시공 능력을 동시에 갖춘 한국을 낙점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숫자로 보면 왜 원전 8기가 펀드 소진의 열쇠인지 드러난다. 2024년 상업 가동에 들어간 미국 조지아주 보글 원전은 1기당 건설비가 180억달러에 달했다. 한국이 짓는다 해도 최소 100억~150억달러 이상이 들 것으로 전망된다. 8기를 모두 짓는다면 800억~1200억달러가 필요하고, 여기에 엔시날 프로젝트(약 220억달러)를 더하면 2000억달러 펀드의 대부분이 채워지는 구조다.

팀 코리아 르네상스, 혹은 비용 폭탄

원전 시공 역량과 부품 공급망이 약해진 미국 입장에서는 주기기 제작부터 시공, 운영 관리까지 에너지 밸류체인 전반을 한국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원자로·터빈 등 핵심 기기를 만드는 두산에너빌리티와 세계 각지에서 원전을 지어본 현대건설 등이 미국 사업을 크게 확대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당정 협의에 참여한 한 여당 관계자는 "원전을 짓는다면 사실상 두산에너빌리티나 현대건설 등 팀코리아 국가대표 기업들이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현지의 치솟는 인건비와 물가, 강한 노조의 영향력, 까다로운 인허가·환경 규제를 고려하면 공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비용이 대미투자펀드에 고스란히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체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결국 2000억달러는 한국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인데, 미국이 관리에 얼마나 힘을 쏟아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사업관리·운영위원회 등을 통해 상업적 합리성, 투자금 회수 시점과 기간, 인허가 리스크를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