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계좌의 안전자산 30%.
예전에는 이 자리를 예금이나 채권으로 채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문제는 시장 상황에 따라 체감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주식시장이 강하게 오를 때는 안전자산 30%가 답답하게 느껴지고, 반대로 시장이 흔들리면 위험자산 70%가 너무 크게 느껴집니다.
이 사이를 파고든 상품이 바로 주식과 채권을 한 상품에 함께 담는 2세대 채권혼합 ETF입니다.
2026년 9월 3일 기준 국내 상장 채권혼합 ETF의 순자산은 24조3,725억원으로 1월 말보다 59.1% 늘었습니다.
단순히 최근 수익률이 좋아서 돈이 몰린 것만은 아닙니다.
주식 상승에 어느 정도 참여하면서도 채권의 완충 역할을 기대할 수 있고, 일정 요건을 충족한 상품은 퇴직연금 계좌에서 100%까지 편입할 수 있다는 구조가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졌습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새로 상장된 채권혼합 ETF만 18개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11개는 반도체 종목을 담았습니다.
하나자산운용 역시 8월 기준 2세대 채권혼합 ETF 라인업을 7개까지 늘렸습니다.
상품이 많아질수록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중에서 뭐가 제일 많이 올랐지?”
하지만 퇴직연금에서는 단기 수익률보다 먼저 볼 것이 있습니다.
주식 부분이 어디에 집중돼 있는지,
채권은 어떤 만기를 갖는지,
기존 계좌의 위험자산과 얼마나 겹치는지를 봐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도체나 자동차, 개별 성장주를 섞은 테마형보다 국내와 미국 대표지수를 각각 담은 두 상품을 기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퇴직연금에서 100% 편입 가능한 이유
퇴직연금 DC형과 IRP에서는 일반 주식형 ETF처럼 변동성이 큰 위험자산에 적립금의 70%까지만 투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30%는 위험자산 한도에 포함되지 않는 상품으로 운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2023년 규정이 바뀌면서 선택지가 넓어졌습니다.
2023년 11월 금융위원회는 ‘투자위험을 낮춘 상품’의 범위를 확대하면서 채권혼합형 펀드의 주식 편입 한도를 기존 40% 이내에서 50% 미만으로 높였습니다.
이후 주식을 절반 가까이 담으면서도 퇴직연금에서 100% 편입 가능한 채권혼합 ETF가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퇴직연금에서 100% 편입할 수 있다는 말과 원금이 보장된다는 말은 완전히 다릅니다.
100% 편입 가능은 감독규정상 해당 상품을 계좌 전체에 담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금처럼 원금이 보장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채권이 절반 들어 있어도 주식시장이 크게 하락하면 ETF 가격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
채권 역시 금리가 움직이면 가격이 변합니다.
따라서 ‘안전자산’이라는 표현만 보고 위험이 거의 없는 상품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위험자산 70%에 채권혼합 ETF 30%를 넣으면 주식 비중은 얼마나 될까?
여기서 재미있는 계산이 하나 나옵니다.
위험자산 70%를 모두 주식형 ETF로 채웠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남은 30%를 주식 비중이 약 50%인 채권혼합 ETF로 채우면,
채권혼합 ETF 안의 주식 노출은
30% × 50% = 15%
입니다.
여기에 기존 위험자산 70%를 더하면
70% + 15% = 85%
가 됩니다.
즉, 규정상 위험자산 한도는 70%지만 실제 계좌의 주식 노출은 계산상 약 85%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가능한 전략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원래 안전자산 30%를 둔 목적이 변동성을 낮추는 것이었다면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채권혼합 ETF는 단순히 주식 비중을 최대한 높이는 도구로 보기보다, 주식과 채권을 한 상품 안에서 나눠 담는 자산배분 수단으로 보는 편이 낫습니다.
국내형은 코스피200과 단기국공채를 반반씩
국내형으로 볼 만한 상품은 1Q 200채권혼합50액티브입니다.
구조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 코스피200 약 50%,
- 단기국공채 약 50%
를 함께 담습니다.
코스피200 ETF 하나만 사는 것보다는 주식 비중이 낮고, 특정 반도체 종목 몇 개에 집중된 테마형 채권혼합 ETF보다 종목과 업종이 넓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2026년 9월 7일 기준 시장가격은 1만1,150원,
순자산은 약 346억원,
투자설명서상 총보수는 연 0.40%입니다.
위험등급은 4등급, 보통위험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다만 ‘코스피200’이라는 이름만 보고 완전히 고르게 분산돼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코스피200 자체가 시가총액이 큰 기업의 비중이 높기 때문입니다.
실제 구성종목을 보면 국고채가 상위에 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국내 대표지수형이기는 하지만 한국 대형 기술주 흐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품은 아닙니다.
반대로 채권 쪽은 단기국공채를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일반적으로 단기채는 장기채보다 금리 변화에 따른 가격 변동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주식 부분의 변동성을 어느 정도 완충하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채권이 50% 있다고 해서 주식시장이 20% 떨어졌을 때 ETF 손실이 정확히 10%로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결과는 주식과 채권의 가격 움직임, 비중 변화, 리밸런싱 과정에 따라 달라집니다.
미국형은 S&P500과 미국 단기국채를 한 상품에
해외형으로 볼 수 있는 상품은 1Q 미국S&P500미국채혼합50액티브입니다.
이 상품은
- S&P500 약 50%,
- 잔존만기 1년 미만 미국 국채 약 50%
를 함께 담습니다.
국내형이 한국 주식과 국내 단기국공채를 섞는다면, 미국형은 미국 대표주식과 미국 단기국채를 함께 담는 구조입니다.
2026년 9월 8일 장 마감 가격은 1만1,280원,
9월 4일 기준 순자산은 약 3,193억원,
투자설명서상 총보수는 연 0.15%입니다.
위험등급은 마찬가지로 4등급, 보통위험입니다.
국내형보다 순자산 규모가 크고 표시 총보수는 낮습니다.
하지만 이것만 보고 더 좋은 상품이라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미국형에는 한 가지 변수가 더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환율입니다.
이 상품은 환노출형입니다.
따라서 S&P500과 미국 국채의 움직임뿐 아니라 원·달러 환율도 원화 기준 수익률에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 미국 주식이 올라도 원화가 강해져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면 환율이 수익률 일부를 깎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미국 주식이 부진하더라도 달러가 강해지면 손실을 일부 완충할 수도 있습니다.
즉, 해외 분산이라는 장점과 환율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동시에 가져오는 상품입니다.
두 상품을 같이 보면 차이가 더 명확합니다
두 상품의 공통점부터 보면 구조는 비슷합니다.
둘 다 주식 약 50%,
채권 약 50%
를 목표로 하고 있고 퇴직연금 계좌에서 100% 편입 가능한 상품으로 안내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담고 있는 시장은 다릅니다.
국내형은 코스피200과 국내 단기국공채를 담습니다.
미국형은 S&P500과 미국 단기국채를 담고, 여기에 원·달러 환율까지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둘을 함께 보유하면 단순히 ETF 두 개를 사는 것 이상의 의미가 생길 수 있습니다.
- 한국 주식과 미국 주식,
- 국내 채권과 미국 국채,
- 원화와 달러
로 노출을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상품이 두 개라고 무조건 더 안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과 미국 증시가 동시에 하락할 수도 있고,
채권시장과 환율이 같은 시기에 불리하게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두 상품의 최근 수익률을 비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 퇴직연금 계좌의 위험자산 70%가 이미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입니다.
이미 S&P500이 많다면 미국형을 추가할 때 중복을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위험자산 70% 대부분을 이미 S&P500 ETF로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여기에 남은 30%까지 미국 S&P500 채권혼합 ETF를 넣으면 채권은 추가되지만 주식 부분에서는 S&P500 노출이 다시 겹칩니다.
반대로 위험자산 70%에 국내 주식 비중이 이미 높다면 국내 코스피200 채권혼합 ETF 역시 국내 주식 노출을 더 늘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품 하나만 떼어놓고
“이 ETF가 좋은가?”
라고 보는 것보다
“이 ETF를 넣었을 때 내 계좌 전체가 어떻게 바뀌는가?”
를 봐야 합니다.
퇴직연금에서는 이 차이가 특히 중요합니다.
장기간 운용되는 계좌이기 때문에 단기 수익률보다 전체 자산배분 구조가 훨씬 오래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100% 편입 가능과 100% 몰아넣어도 된다는 뜻은 다릅니다
채권혼합 ETF에서 가장 많이 헷갈리는 부분입니다.
퇴직연금에서 100% 편입할 수 있는 상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계좌의 100%를 넣는 것이 적절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규정상 매수 가능 여부와 개인의 적정 투자 비중은 다른 문제입니다.
- 투자자의 나이,
- 은퇴까지 남은 기간,
- 현재 적립금 규모,
- 손실 감내 수준,
- 다른 자산의 구성
에 따라 적정 비중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은퇴가 가까운 투자자라면 주식 비중 약 50%도 생각보다 큰 변동성을 만들 수 있습니다.
채권이 절반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수적인 상품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총보수만 비교해서도 부족합니다
ETF를 비교할 때 총보수부터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중요한 숫자입니다.
국내형 1Q 200채권혼합50액티브의 총보수는 연 0.40%,
미국형 1Q 미국S&P500미국채혼합50액티브는 연 0.15%입니다.
차이는
0.40% - 0.15% = 0.25%포인트입니다.
단순히 1,000만원을 1년 투자한다고 가정하면
1,000만원 × 0.25%
= 약 2만5,000원
수준의 차이입니다.
하지만 실제 투자비용은 표시 총보수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기타비용,
매매 관련 비용,
시장가격과 순자산가치의 차이인 괴리율
등도 실제 투자 성과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미국형에는 여기에 환율까지 추가됩니다.
따라서 표시 보수가 조금 낮다는 이유만으로 미국형이 무조건 유리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퇴직연금 채권혼합 ETF를 고를 때는 이 순서가 더 중요합니다
첫 번째는 실제 내 연금계좌에서 매수가 가능한지입니다.
금융회사와 연금사업자별로 주문 가능한 상품 범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주식 비중입니다.
채권혼합형이라고 해도 주식이 약 절반 들어가는 상품이라면 그 정도의 가격 변동을 감당할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세 번째는 채권의 만기입니다.
단기채인지 장기채인지에 따라 금리 변화에 대한 민감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비용입니다.
표시 총보수뿐 아니라 실제 부담할 수 있는 기타비용과 괴리율까지 함께 보는 것이 좋습니다.
다섯 번째는 해외형이라면 환율입니다.
환헤지 상품인지 환노출 상품인지에 따라 같은 S&P500이 올라도 원화 수익률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계좌 전체입니다.
결국 좋은 ETF보다 좋은 자산배분이 먼저입니다
2세대 채권혼합 ETF의 가장 큰 장점은 주식과 채권을 한 상품 안에서 함께 가져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퇴직연금의 안전자산 영역에서도 주식 상승에 어느 정도 참여하고 싶은 투자자에게는 이전보다 선택지가 넓어진 셈입니다.
하지만 이 구조를
“안전자산 30%에서도 주식을 더 살 수 있는 방법”
으로만 이해하면 본래 목적을 놓칠 수 있습니다.
주식 비중을 늘리는 만큼 계좌 전체 변동성도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형은 코스피200과 국내 단기국공채,
미국형은 S&P500과 미국 단기국채,
그리고 환율이라는 서로 다른 특성을 갖습니다.
어느 상품이 더 좋다고 단정하기보다 현재 내 위험자산 70%가 어디에 투자돼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S&P500이 이미 많다면 국내형이 분산에 더 도움이 될 수 있고,
국내 주식 비중이 높다면 미국형이 지역 분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양쪽 모두 이미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면 채권혼합 ETF를 추가하는 것이 생각보다 큰 분산 효과를 만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퇴직연금에서 중요한 것은 ETF 이름 하나가 아닙니다.
내 계좌 전체를 한 장의 자산배분표로 놓고 봤을 때
- 주식이 몇 %인지,
- 국내와 해외 비중은 어떤지,
- 채권 만기는 어떤지,
- 환율 노출은 얼마나 되는지
를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100% 편입 가능은 제도가 허용하는 최대 범위일 뿐입니다.
실제로 얼마를 담을지는 결국 내 은퇴 시점과 위험 감내 수준, 그리고 현재 계좌 구성에 맞춰 결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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