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 기업이 자체 개발 신약으로 미국 시장에 직접 진출하고, 현지 판매망까지 구축하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미국 제품명 엑스코프리·XCOPRI)를 통해 신약 개발부터 미국 허가, 현지 판매까지 직접 수행하는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런 SK바이오팜이 이번에는 연구개발 조직 자체를 크게 손봤습니다.


핵심은 단순히 연구 인력을 늘리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 후보물질 발굴 → 임상 → 허가 → 상업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더욱 빠르게 연결하겠다는 전략에 가깝습니다.


특히 중추신경계(CNS) 연구 조직을 CEO 직속으로 격상하고 글로벌 제약사 출신 전문가와 의사과학자를 전면 배치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여기에 항암 분야의 차세대 기술인 RPT와 TPD까지 확대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SK바이오팜이 그리고 있는 다음 그림은 무엇일까요?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CNS 조직을 CEO 직속으로, 무엇이 달라질까?


SK바이오팜은 기존 중추신경계(CNS) 연구 조직을 CEO 직속 ‘신경과학본부(Neuroscience본부)’로 확대 재편했습니다.


조직도만 보면 단순한 변화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개발에서는 의사결정 속도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후보물질 하나를 개발하려면 수년의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가능성이 낮은 후보물질을 늦게 정리할수록 비용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CEO 직속 조직으로 바꾼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연구 진행 상황과 투자 우선순위를 최고경영진이 더욱 빠르게 판단하고, 가능성이 높은 파이프라인에 자원을 집중하겠다는 것입니다.


신경과학본부를 이끌 인물로는 김태호 박사를 영입했습니다.


김 본부장은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에서 약 12년간 신경과학 분야 신약 발굴과 포트폴리오 전략을 담당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20년 이상 신경과학 연구개발 경험을 쌓은 만큼 앞으로는 세노바메이트 이후를 책임질 차세대 뇌질환 신약 후보 발굴과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이끌게 됩니다.


결국 이번 조직 개편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좋은 후보를 더 빨리 찾고, 가능성이 낮은 후보는 더 빨리 판단하겠다”는 것입니다.


신약 개발의 속도와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연구실에 의사를 투입하는 이유


이번 개편에서 눈여겨봐야 할 또 하나의 변화는 **의사과학자(MD)**의 역할 확대입니다.


신약 개발에는 생각보다 큰 장벽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연구실과 실제 환자 사이의 거리입니다.


실험실에서는 뛰어난 효과를 보였던 후보물질도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나 낮은 효과 때문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글로벌 제약업계에서는 연구 초기부터 임상 경험이 있는 의사를 참여시키는 전략을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SK바이오팜 역시 이 부분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소아신경과와 뇌전증 전문의 출신인 수니타 미스라(Sunita Misra) 최고의학책임자(CMO)가 글로벌 임상 개발을 이끌고 있습니다.


여기에 항암 분야에서 오랜 연구 경험을 쌓은 의사과학자 **김수영 MD**도 영입하며 항암 임상 역량을 확대했습니다.


그렇다면 의사과학자가 연구 초기부터 참여하면 어떤 점이 달라질까요?


첫 번째는 임상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후보물질을 개발할 때부터 실제 환자가 약을 얼마나 잘 복용할 수 있는지,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지, 현재 치료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의료 수요가 무엇인지 함께 고려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글로벌 임상과 허가 전략을 더욱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FDA를 비롯한 규제기관과 임상시험 방법을 협의할 때도 임상 경험이 있는 전문가가 참여하면 환자 치료 관점에서 보다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즉, 연구실에서 좋은 물질을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약을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고려하겠다는 전략입니다.







CNS만으로는 부족하다, 항암으로 확장하는 SK바이오팜


SK바이오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야는 역시 중추신경계입니다.


하지만 회사가 준비하고 있는 미래 성장동력은 CNS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항암 분야에서도 **방사성의약품 치료제(RPT)**와 **표적단백질분해(TPD)** 기술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육성하고 있습니다.


먼저 RPT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방사성의약품 치료제 RPT란?


RPT(Radiopharmaceutical Therapy)는 암세포를 찾아가는 물질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하면 암세포를 찾아가는 ‘유도장치’에 방사선 치료 기능을 결합하는 개념입니다.


암세포에 보다 선택적으로 방사선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글로벌 제약업계에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는 분야입니다.


최근 글로벌 제약사들이 RPT 관련 기업과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와 인수합병에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TPD는 무엇일까?


TPD(Targeted Protein Degradation)는 이름 그대로 질병을 일으키는 특정 단백질을 분해하는 기술입니다.


기존 약물은 문제가 되는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TPD는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우리 몸이 원래 가지고 있는 단백질 분해 시스템을 활용해 문제가 되는 단백질 자체를 제거하는 방식입니다.


기존 저분자 치료제로 공략하기 어려웠던 단백질까지 새로운 치료 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신약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SK바이오팜 입장에서도 의미가 큽니다.


그동안 CNS에 집중됐던 사업 구조에 RPT와 TPD라는 새로운 성장축이 추가되면 특정 치료제나 파이프라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CNS에서 확보한 경험을 기반으로 항암 영역까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단계에 들어간 셈입니다.









SK바이오팜이 강조하는 ‘이스트-웨스트 브리지’


이번 전략을 이해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이스트-웨스트 브리지(East-West Bridge)’입니다.


쉽게 말하면


아시아에서 좋은 신약 후보를 찾고, SK바이오팜의 글로벌 개발·상업화 역량을 활용해 미국과 유럽 시장까지 연결하는 전략입니다.


아시아에는 경쟁력 있는 초기 신약 후보물질과 바이오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많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글로벌 임상시험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FDA를 비롯한 각국 규제기관의 허가 절차를 통과해야 합니다.


판매망까지 직접 구축하려면 난도가 더욱 높아집니다.


SK바이오팜은 이 부분에서 차별점을 만들겠다는 전략입니다.


엑스코프리 개발 과정에서 FDA 허가 경험을 쌓았고, 미국 현지 판매 조직도 운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트-웨스트 브리지 모델은 크게 세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인바운드(Inbound)입니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서 경쟁력 있는 초기 신약 후보물질이나 파이프라인을 발굴해 도입합니다.


두 번째는 개발 가속화(Bridge)입니다.


SK바이오팜이 보유한 연구개발 인프라와 글로벌 임상 경험을 활용해 전임상과 임상 개발 속도를 높이는 단계입니다.


세 번째는 아웃바운드(Outbound)입니다.


개발된 신약을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직접 상업화하거나, 상황에 따라 글로벌 제약사를 대상으로 기술수출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SK바이오팜이 단순히 다른 회사의 기술을 사오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좋은 기술을 발굴하고, 개발하고, 글로벌 시장까지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신약을 처음부터 모두 자체 개발해야 하는 부담도 낮추면서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핵심은 ‘두 번째 엑스코프리’를 만드는 것


SK바이오팜의 이번 조직 개편을 단순한 인사 변화로만 보기에는 변화의 범위가 상당히 넓습니다.


CNS 조직은 CEO 직속으로 격상됐고,


글로벌 신경과학 전문가가 합류했으며,


의사과학자를 중심으로 임상 역량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RPT와 TPD를 중심으로 항암 분야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의 신약 기술을 미국과 유럽 시장으로 연결하는 이스트-웨스트 브리지 전략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전략이 향하는 목표는 하나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엑스코프리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글로벌 신약을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바이오 기업의 진짜 경쟁력은 신약 하나의 성공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첫 번째 성공에서 얻은 현금과 경험을 다음 파이프라인에 다시 투자하고, 그 과정이 반복될 수 있어야 합니다.





SK바이오팜 역시 이제 중요한 시험대에 올라섰습니다.


엑스코프리라는 첫 번째 글로벌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두 번째, 세 번째 신약까지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가 앞으로의 핵심입니다.


이번 CNS 조직 개편과 글로벌 인재 영입이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SK바이오팜이 하나의 성공 신약을 보유한 기업을 넘어 지속적으로 글로벌 신약을 만들어내는 제약사로 성장할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