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장은 주식시장과 조금 다릅니다.
평일 장중에만 열리는 주식시장과 달리 비트코인과 같은 디지털 자산은 24시간, 365일 거래됩니다.
그리고 이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파생상품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무기한 선물(Perpetual Futures)입니다.
이름 그대로 만기가 없는 선물인데요.
기존 선물은 정해진 만기일이 되면 계약을 청산하거나 다음 만기의 상품으로 갈아타야 했습니다.
하지만 무기한 선물은 이런 만기를 없앴습니다.
대신 한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만기가 없다면 선물 가격과 현물 가격을 어떻게 비슷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펀딩비(Funding Rate)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무기한 선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펀딩비는 왜 필요한지, 그리고 이런 구조가 앞으로 금융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쉽게 정리해보겠습니다.
만기가 없는 선물은 왜 만들어졌을까?
먼저 일반적인 선물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전통적인 선물계약은 원래 가격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예를 들어 원유 가격이 앞으로 크게 오를 것이 걱정되는 기업이라면 미리 일정 가격에 원유를 살 수 있도록 선물계약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선물에는 보통 만기가 있습니다.
만기일이 가까워지면 선물 가격은 현물 가격과 비슷한 수준으로 수렴하고, 이후 계약이 현금 또는 실물 방식으로 정산됩니다.
그런데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조금 다른 요구가 생겼습니다.
투자자들은 실제 코인을 직접 보유하지 않더라도 가격 상승과 하락에 투자하고 싶어 했습니다.
특히 적은 증거금으로 레버리지를 활용하거나,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숏 포지션을 간편하게 만드는 수요가 컸습니다.
초기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일정한 만기를 가진 선물계약이 사용됐습니다.
하지만 만기가 여러 개로 나뉘면서 유동성이 분산됐고, 포지션을 계속 유지하려면 기존 계약을 청산한 뒤 새로운 만기의 계약으로 옮기는 이른바 **롤오버** 과정도 필요했습니다.
이런 불편을 없애기 위해 등장한 것이 무기한 선물입니다.
말 그대로 만기 없이 계속 포지션을 유지할 수 있는 파생상품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만기가 없으면 선물 가격이 현물 가격과 크게 벌어져도 이를 강제로 맞춰주는 만기 정산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치가 바로 펀딩비입니다.
펀딩비가 선물 가격을 현물에 붙잡아두는 방법
무기한 선물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을 하나만 꼽으라면 펀딩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펀딩비는 쉽게 말해 롱과 숏 투자자 사이에서 주기적으로 주고받는 비용입니다.
시장 상황에 따라 돈을 내는 쪽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 가격이 강하게 오르면서 투자자들이 대부분 롱 포지션으로 몰렸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롱 수요가 과도하게 많아지면 무기한 선물 가격이 현물 가격보다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때 펀딩비가 플러스가 되면 일반적으로 롱 포지션 보유자가 숏 포지션 보유자에게 펀딩비를 지급합니다.
롱을 유지하는 비용이 높아지는 셈입니다.
반대로 시장이 급락하면서 숏 포지션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무기한 선물 가격이 현물보다 낮아지고 펀딩비가 마이너스로 내려가면 **숏 보유자가 롱 보유자에게 비용을 지급하는 구조**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결국 한쪽 포지션이 너무 많이 몰리면 그 포지션을 유지하는 비용을 높여 균형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펀딩비 정산 주기는 거래소와 상품에 따라 다릅니다.
8시간 단위가 널리 사용되지만 1시간이나 4시간처럼 다른 주기를 적용하는 거래소와 상품도 있습니다.
따라서 장기간 포지션을 유지한다면 방향만 맞히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펀딩비가 얼마나 발생하는지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레버리지가 높고 펀딩비까지 지속해서 지불해야 한다면 예상보다 비용이 빠르게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암호화폐에서는 현물보다 선물이 더 활발할까?
암호화폐 시장을 살펴보면 파생상품 거래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투자자가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 현물보다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자본 효율성입니다.
현물에서 비트코인 1,000만원어치를 사고 싶다면 기본적으로 그만큼의 자금이 필요합니다.
반면 선물에서는 증거금을 활용하기 때문에 더 적은 자금으로 큰 포지션을 운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만큼 수익뿐 아니라 손실도 확대됩니다.
레버리지가 높아질수록 강제청산 위험도 함께 커집니다.
두 번째는 하락장에서도 투자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현물 투자는 기본적으로 가격이 올라야 수익을 얻기 쉽습니다.
하지만 선물에서는 숏 포지션을 활용해 가격 하락에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미 보유한 현물 자산의 가격 하락 위험을 줄이기 위한 헤지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유동성 집중 효과입니다.
만기가 있는 선물은 3개월물, 6개월물처럼 계약별로 투자자가 나뉠 수 있습니다.
반면 무기한 선물은 대표 계약 하나에 거래가 집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래량이 충분히 많아지면 호가가 촘촘해지고 대규모 주문을 처리하기도 쉬워집니다.
이 때문에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무기한 선물 가격과 거래 움직임이 시장 심리를 파악하는 중요한 지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무기한 선물은 왜 24시간 금융과 연결될까?
무기한 선물의 영향은 암호화폐 시장에만 머물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중앙화 거래소뿐 아니라 블록체인 위에서 직접 거래하는 **탈중앙화 무기한 선물 거래소, 이른바 Perp DEX**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거래와 정산이 특정 국가의 증시 개장 시간에 반드시 맞춰질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기존 주식시장은 국가마다 거래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주말이나 장 마감 이후 큰 사건이 발생해도 일반 투자자는 정규시장이 다시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암호화폐 시장은 24시간 움직입니다.
새벽에 미국 경제지표가 발표되거나 주말에 지정학적 문제가 발생해도 시장 가격이 즉시 움직입니다.
이런 환경을 경험한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전통 금융에서도 거래시간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토큰증권과 실물자산 토큰화(RWA)가 발전하면 거래 가능한 자산의 범위가 더욱 넓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식, 국채, 원자재, 부동산 등 현실에 존재하는 자산을 블록체인 기반 토큰으로 표현하고 거래하려는 시도입니다.
다만 모든 금융자산이 곧바로 24시간 온체인 시장으로 전환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증권 규제, 투자자 보호, 거래소 운영, 청산과 결제, 자산 보관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분명한 점은 있습니다.
금융시장이 더 긴 거래시간과 빠른 정산 구조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펀딩비와 미결제약정을 함께 보는 이유
무기한 선물을 직접 거래하지 않는 투자자에게도 펀딩비는 꽤 유용한 지표입니다.
시장이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쏠려 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 가격이 계속 오르면서 펀딩비까지 크게 상승한다면 롱 포지션이 과도하게 몰리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격이 하락하면서 펀딩비가 큰 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한다면 숏 포지션이 지나치게 쌓여 있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미결제약정(Open Interest·OI)까지 함께 보면 시장 상황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미결제약정은 아직 청산되지 않고 남아 있는 파생상품 계약 규모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가격이 오르면서 OI도 함께 증가한다면 새로운 레버리지 자금이 시장에 들어오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격 변동과 함께 OI가 급격히 줄어든다면 대규모 청산이나 포지션 정리가 진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다만 펀딩비나 OI 하나만으로 앞으로 가격이 오를지 내릴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시장의 포지션과 과열 정도를 확인하는 보조 지표에 가깝습니다.
무기한 선물, 단순한 레버리지 상품이 아니다
무기한 선물은 처음 보면 단순히 레버리지를 사용할 수 있는 투기 상품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조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금융상품입니다.
기존 선물에서 가격을 현물에 수렴시키던 '만기'를 없애고, 그 역할을 **펀딩비라는 반복적인 비용 구조로 대신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투자자는 만기를 신경 쓰지 않고 롱과 숏 포지션을 운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반대로 레버리지와 청산, 펀딩비라는 새로운 위험도 함께 떠안게 됐습니다.
앞으로 토큰화 자산과 온체인 금융시장이 확대된다면 무기한 선물에서 사용된 일부 구조가 다른 금융상품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선물 가격이 오른다, 내린다"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펀딩비가 왜 움직이는지, 미결제약정이 왜 증가하는지, 시장에 어느 방향의 레버리지가 몰리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
이 구조를 이해해야 24시간 움직이는 디지털 자산 시장을 조금 더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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