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재정의 변곡점과 821조 원 규모의 '슈퍼 예산'


  • 2026년 9월 2일, 서울경제신문을 비롯한 국내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주요 지면을 할애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발표한 2027년도 '슈퍼 예산안'의 세부 내역과 거시경제적 파장을 대서특필하였다. 사상 최초로 총지출 800조 원 시대를 여는 이번 예산안은 820조 9,000억 원 규모로 편성되었으며, 이는 전년도 본예산 대비 12.8% 급증한 수치다. 이러한 증가율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10.6%를 훌쩍 뛰어넘는 역대 최대 폭의 확장재정 기조를 의미한다.

  • 이러한 파격적인 지출 팽창의 핵심 동력은 반도체 산업의 슈퍼사이클에 따른 이례적인 세수 호조에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력 기업들의 영업이익 급증과 법인세 납부 실적 개선에 힘입어, 2027년 국세수입은 사상 최대치인 584조 4,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풍부해진 세수를 바탕으로 정부는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을 대폭 축소하는 동시에 첨단산업과 청년, 소외계층 등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는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특히 급증한 세수 중 162조 3,000억 원을 별도의 '미래대응기금'으로 적립하여 국가의 장기적 성장 동력 확보와 재정 완충지대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은 이번 예산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 그러나 이 막대한 반도체발(發) 초과 세수를 대하는 시각을 두고 거시경제학계와 재정학계 내부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촉발되었다. 단일 산업의 호황이 빚어낸 세수 증대를 고정적인 지출 확대로 연결하는 '확장재정'의 불가피성을 옹호하는 입장과, 경기 순환적 특성을 고려하여 이를 '재정건전화'와 국가채무 상환에 우선적으로 투입해야 한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본 보고서는 최근 2개월 이내에 발표된 정부의 2027년 예산안 및 중기재정운용계획 자료를 바탕으로 슈퍼 예산안의 거시적 구조와 자원 배분 양상을 심층 해부하고, 미래대응기금을 둘러싼 거버넌스 논란과 학자들 간의 의견 차이를 다각도로 조명하여 국가재정운용의 중장기적 정책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2027년도 예산안의 거시경제적 배경과 세입·세출 구조

[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세입 구조의 극적 변화]

  • 2027년 예산안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세수 폭증이 지출 폭증을 견인하는 전례 없는 세입 구조의 질적 변화다. 내년도 총수입은 올해 본예산 대비 205조 6,000억 원(30.4%)이라는 경이적인 증가 폭을 기록하며 880조 8,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총수입이 총지출을 웃도는 예산안이 편성된 것은 2019년도 본예산 이후 무려 8년 만의 일이다.

  • 이러한 세입 급증의 진원지는 단연 국세수입이다. 내년도 국세수입은 584조 4,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94조 2,000억 원(49.8%) 폭증할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는 당초 시장의 낙관적 전망치였던 550조 원 안팎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이러한 현상은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전년 동기 대비 167% 급증한 11조 2,083억 원의 법인세를 납부한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법인세 증가와 더불어 관련 기업 종사자들의 성과급 확대로 인한 소득세 증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특정 산업의 경기 사이클이 국가 전체의 세입 구조와 재정운용의 선택지를 단숨에 넓히는 극적인 결과를 낳은 것이다.

[ 총지출 820조 원 시대의 개막과 재정 지표의 역설 ]

  • 정부는 유입된 세수를 바탕으로 총지출을 전년 대비 93조 원(12.8%) 늘린 820조 9,000억 원으로 편성하였다. 표면적인 재정 지표는 지출의 대폭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괄목할 만한 개선세를 보여준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올해 본예산 기준 -3.9%에서 내년에는 -0.1%로 대폭 호전된다. 적자 절대 규모 역시 107조 8,000억 원에서 3조 1,000억 원으로 100조 원 넘게 급감하여, 장부상으로는 완전한 균형재정에 근접한 모습을 나타낸다.

주요 재정 지표

2026년 본예산 (조 원)

2027년 예산안 (조 원)

증감액/증감폭

비고

총지출

727.9

820.9

+93.0 (+12.8%)

2009년 이후 최대 증가율

총수입

675.2 (추정)

880.8

+205.6 (+30.4%)

반도체 호황 편승

국세수입

390.2

584.4

+194.2 (+49.8%)

법인세·소득세 급증

관리재정수지 적자

107.8

3.1

-104.7

GDP 대비 -3.9% → -0.1%

국가채무

1,413.8

1,519.8

+106.0 (+7.5%)

사상 첫 1,500조 원 돌파

국고채 총발행량

225.7 (계획)

222.8

-2.9

차환 수요 폭증으로 220조 유지

  • 그러나 심층적인 거시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지표 개선의 이면에 중대한 역설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3조 원대로 급감함에도 불구하고, 2027년도 국가채무는 전년 대비 106조 원가량 불어나 사상 최초로 1,500조 원을 돌파한 1,519조 8,000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또한, 신규 적자국채 발행 물량은 다소 줄어들었으나, 과거 발행된 국채의 만기가 도래함에 따라 이를 갚기 위한 차환용(만기 상환용) 국채 발행 수요가 무려 110조 7,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0조 2,000억 원이나 급증하였다.

  • 결과적으로 내년도 국고채 총발행 규모는 여전히 222조 8,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최근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연 3.8%대 후반으로 치솟아 이자 상환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세수 급증분을 기존 채무 상환에 직접적으로 투입하지 않고 지출 팽창과 별도 기금 적립에 우선 배분함으로써 재정수지의 일시적 흑자 전환이 실질적인 국가 부채 구조의 건전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모순적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전략적 자원 배분과 주요 지출 내역의 정책적 지향점


  • 정부는 820조 9,000억 원이라는 방대한 재원을 바탕으로, 국가 경제의 장기적 잠재성장률을 반등시키고 반도체 나홀로 호황의 이면에서 심화되는 K자형 양극화를 완화하려는 '쌍끌이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지출을 뒷받침하기 위해 재량지출 분야에서 관행적·저성과 사업을 중심으로 38조 6,000억 원을 삭감하고, 의무지출 구조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내국세 연동제 폐지(32조 5,000억 원) 및 교부세 산정 방식 개편(30조 5,000억 원)을 통해 도합 107조 6,000억 원 규모의 뼈를 깎는 지출 구조조정을 병행하였다.

[ 미래 성장엔진 발굴 및 첨단산업 초격차 인프라 투자]

  • 재정 투자의 최우선 순위는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의 패권 경쟁에 대비한 첨단 인프라 확충에 놓여 있다. 정부는 반도체 경쟁력 유지, 피지컬 AI 선도국가 도약, 그리고 전력·용수·산업단지 등 첨단산업 핵심 인프라를 구축하는 이른바 '3대 메가프로젝트'에 전년 대비 무려 97.2% 급증한 21조 3,000억 원을 집중 투입한다. 반도체 단일 산업에 쏠린 경제 구조를 다변화하여 '제2의 반도체'를 육성하기 위해 SMR(소형모듈원전), 우주항공, 바이오 등 미래성장 엔진 분야 전체에는 22.7% 증액된 62조 8,000억 원의 재원이 배정되었다.

  •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대전환 예산 역시 눈에 띄게 확충되었다. 기후대응기금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 확산을 위한 금융지원 예산은 1조 5,108억 원으로 두 배 이상 팽창하였으며, 공장 지붕 태양광 융자 예산(5,440억 원)과 가정형 태양광 예산(750억 원)이 대폭 증액 편성되어 탄소중립 시대를 대비하는 정책적 의지를 드러냈다. 나아가 반도체 특별회계(2조 6,000억 원)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에 대비하기 위한 자원안보기금(1조 4,000억 원)이 새롭게 신설되는 등 특정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재정 플랫폼이 다각화되었다.

[ K자형 양극화 해소와 국민 체감형 복지 및 지역 균형 발전]

  • 경제의 거시적 파이를 키우는 동시에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히 엮는 데에도 막대한 자원이 투입된다. 예산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보건·복지·고용 분야에는 단일 분야 역대 최대 규모인 289조 원이 할당되었다. 특히 내년도 예산안은 각종 복지 혜택의 가늠자가 되는 기준중위소득을 역대 최고 수준인 6.7% 인상하여, 저소득층을 비롯한 취약계층이 사회 안전망의 혜택을 더 폭넓게 누릴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상향 조정하였다.

  • 청년층의 생애주기별(취업, 주거, 자산 형성 등) 맞춤형 지원 예산은 올해보다 53.5%라는 압도적인 증가율을 기록하며 43조 3,000억 원으로 책정되었다. 출생아가 성인이 될 때까지 국가가 자산 형성을 매칭 지원하는 '우리아이자립펀드'가 신규 도입되어 내년도에 1,465억 원이 우선 투입되며, 내년 신입생부터 지역 국립대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는 등 파격적인 청년·교육 정책이 포함되었다. 아울러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소상공인, 농어민, 취약 노동자들의 민생 안정을 도모하는 '모두의 성장' 분야에는 전체 예산안 중 5대 중점 분야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117조 1,000억 원(전년 대비 36.6% 증가)이 집중 배정되어 지역 우대 원칙을 강하게 천명하였다. 필수의료 인력 유출과 지역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보건복지부 소관 1조 2,600억 원)가 신설된 점도 국민 체감형 복지 강화의 일환이다.

재정 운용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뇌관: '미래대응기금'

  • 2027년 슈퍼 예산안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기제이자 논쟁의 뇌관은 단연 162조 3,000억 원 규모로 신설되는 '미래대응기금'이다. 세입이 극단적으로 팽창하는 상황에서 이를 곧바로 일반회계의 항구적 지출로 연동시킬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통제하기 위해, 정부는 최근 10년간 내국세 추세선을 초과하여 걷힌 '추가 세수(Windfall Tax Revenue)'를 기본 재원으로 삼아 거대한 재정의 저수지를 축조하였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세수 증가세가 지속될 경우 기금 규모가 최대 200조 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 기금의 포트폴리오 메커니즘과 운용 전략]

  • 정부가 설계한 미래대응기금의 내부 포트폴리오는 경제상황의 변동성을 고려하여 크게 세 갈래로 나뉘어 운용된다.

  • 첫째, 사업계정 투자를 통해 45조 4,000억 원(또는 45조 5,000억 원)을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4대 핵심 분야에 내년부터 즉각적으로 수혈한다. 이는 단기적인 경기 부양과 장기적인 인적·물적 인프라 투자의 재원으로 활용된다. 둘째, 총괄계정을 통해 12조 5,000억 원을 국채 신규 발행 물량을 축소하는 데 제한적으로 배정하여, 채무 상환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일정 부분 반영하였다. 셋째,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104조 4,000억 원은 일종의 '비상금' 내지 '파킹통장'의 성격으로 남겨둔다. 이 막대한 여유자금은 향후 반도체 경기가 꺾이고 세수가 급감하는 재정 보릿고개가 닥쳤을 때, 국가 경제의 거시적 충격을 흡수하고 재정 여력을 보강하는 재정 완충지대(Fiscal Buffer)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 행정부의 과도한 재량권과 '쌈짓돈' 전락 우려 ]

  • 기획예산처는 기금의 존재 이유를 '대규모 세수를 생산적 지출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 플랫폼이자 재정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자동 안정화 장치'로 규정한다. 국가 경제에 예기치 못한 충격이 가해졌을 때, 절차가 복잡하고 국회에서 정쟁의 대상이 되기 쉬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지 않고도 비축해둔 여유자금을 신속히 투입할 수 있다는 기동성은 행정부 입장에서 압도적인 장점이다.

  • 하지만 재정학적 관점에서 이 기금은 치명적인 민주적 통제권의 결함을 지니고 있다. 미래대응기금은 성격상 '금융성 기금'으로 분류된다. 현행 국가재정법 등 관련 법령에 따르면, 일반 예산은 지출 내역을 변경할 때 반드시 국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지만 금융성 기금은 주요 지출 항목의 최대 30% 범위 내에서 국회 동의나 심의 없이 행정부가 대통령령을 통해 자체적으로 증액하거나 감액할 수 있다. 내년도 총지출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160조 원대의 거대 자금이 30%의 유연성을 띠게 된다면, 행정부는 사실상 국회의 견제를 받지 않고 매년 수십조 원의 상시적 추경 편성권을 손에 쥐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의회 민주주의의 핵심인 입법부의 재정 통제권을 심각하게 무력화시키고, 기금이 특정 정치적 목적이나 선심성 정책을 위한 '쌈짓돈(Slush fund)'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거센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반도체 초과 세수의 활용 방향을 둘러싼 학계의 견해 차이


  • 이번 예산안을 관통하는 핵심 쟁점은 "단일 산업의 초호황이 가져다준 우연적 성격의 추가 세수를 국가 부채 상환을 통한 재정건전화에 쓸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양극화 해소와 미래 투자를 위한 확장재정에 쓸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국내 거시경제학자 및 재정학자들은 각기 다른 경제 이론과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팽팽한 논리적 대립을 보이고 있다. 본 장에서는 쟁점별로 학자들의 견해를 심층 분석한다.

[ 확장재정 및 미시적 선별 지원 불가피론의 논리 ]

  • 거시경제 지표상으로는 뚜렷한 호황 국면임에도 불구하고 그 온기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는 현상에 주목하는 학자들은, 징수된 초과 세수를 소외된 부문에 재분배하는 확장재정이 불가피한 시대적 요구라고 역설한다.

  • 이윤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극심한 K자형 양극화 현상에 천착한다. 수출 대기업과 첨단산업 부문은 유례없는 실적을 경신하고 있으나, 내수 소비와 소상공인, 지방 경제는 깊은 침체의 수렁에 빠져 있다. 이 교수는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 속에서 낙수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청년층과 지방 소멸 지역, 취약 노동자들을 겨냥한 미시적인 재정 개입과 선별적 지원책은 정부의 당연한 책무이자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진단한다. 다만 그는 대규모 재정 투입이 거시적 총수요를 과도하게 자극할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고 시중 금리가 상승하여, 결과적으로 보호하고자 했던 취약계층의 실질 구매력이 하락하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계하며 세밀한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주문하였다9.

  •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반도체 나홀로 성장의 그늘을 짚으며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옹호한다. 정 교수는 현행 예산안이 지나치게 성장과 첨단 인프라에 편중되어 있으며, 양극화가 굳어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오히려 복지 지출 확충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라고 평가한다. 특히 역대 최대로 예산 덩치를 키웠음에도 막대한 세수가 남아도는 이례적인 흑자적 상황에서, 세출을 급격히 팽창시키기보다 잉여 재원을 '미래대응기금'이라는 형태로 묶어두고 위기 시 방파제로 활용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대해 현재로서는 가장 실효성 있는 대안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 재정건전화 최우선론과 경기 순응적 정책에 대한 비판 ]

  • 반면, 장기적 거시경제 안정성과 국가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재정 원리주의자들은 정부의 재정 팽창 기조를 매섭게 비판한다. 이들은 반도체 호황이 영속될 수 없다는 '경기 순환론'과 정부 지출의 '하방 경직성'을 논거로 제시한다.

  •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거시경제 정책의 핵심 원칙인 '반주기적(Counter-cyclical) 재정 운용'의 관점에서 이번 예산안의 '시점(Timing)'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경제학의 정석에 따르면 확장재정은 경기가 침체되어 민간 수요가 위축되었을 때 이를 보전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경제는 반도체 부문의 강력한 견인으로 잠재성장률을 상회하는 궤도를 달리고 있다. 이러한 호황기에 정부마저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으면 경기 진폭을 더욱 키우는 경기 순응적(Pro-cyclical) 부작용이 초래되며 거시경제의 변동성만 가중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김 교수는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3조 원대로 사실상 제로에 근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차환과 적자 보전을 위해 여전히 100조 원 넘는 국채를 발행하여 기금이라는 여유자금에 밀어넣고 있는 구조"의 재정적 모순을 날카롭게 해부하며, 빚을 내어 비상금을 조성하는 행태를 꼬집었다.

  •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도주의적 관점에서 복지 예산과 경상 지출이 지니는 '하방 경직성(Downward Rigidity)'의 위험을 강하게 경고한다. 반도체 사이클은 본질적으로 극심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와 같다. 법인세 호황이라는 단기적 유동성에 취해 항구적인 성격을 띠는 복지 및 의무 지출을 한 번 늘려놓게 되면, 향후 사이클이 꺾여 세수가 급감하는 불황기에 도달하더라도 이미 기득권화된 지출을 삭감하는 것은 정치·사회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늘어난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막대한 국채를 발행하거나 증세를 단행해야 하는 구조적 파탄에 직면하게 된다는 논리다.

  •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세수 전망에 깃든 낙관론을 경계한다. 그는 1500조 원을 넘어선 국가 부채의 심각성을 상기시키며, 초과 세수가 발생하면 기금을 무작정 불리기에 앞서 기존 국가채무를 상환하는 데 우선적으로 투입하는 재정 준칙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세수가 넘칠 때마다 새로운 지출처를 발굴하는 행태가 고착화되면, 세수 결손기에는 재정 다이어트 대신 곧바로 빚에 의존하는 '습관성 추경'이라는 재정 중독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하였다.

  • 거시경제 동향을 분석한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제적 관점에서 아쉬움을 표했다. 현재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들이 인플레이션 대응과 막대한 정부 부채로 인해 극심한 재정 불안정성을 겪고 있다. 양 교수는 한국이 유례없는 세수 호조를 맞이한 지금이야말로 부채 상환을 통해 다른 선진국들과 차별화되는 압도적인 재정건전성을 국제 사회에 증명하고 국가 신인도를 격상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나, 지출 확대로 그 황금 같은 기회를 허공에 날려버리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 미래대응기금의 거버넌스 확립과 통제권에 관한 제언 ]

  • 미래대응기금의 막대한 규모와 재량권 확대를 우려하는 학자들은, 기금 자체가 지니는 당위성보다는 그 운용 방식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적 가드레일이 시급함을 역설하고 있다.

  •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금이 세수 결손 상황에서 국회의 추경 심의를 건너뛰는 우회로로 악용될 소지가 짙다고 분석한다. 본래 세수결손이 발생하면 행정부는 국회에 추경안을 제출하여 세입 재추계의 타당성을 입증하고 지출 구조조정의 내역을 엄격히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기금의 30% 증액 재량권을 활용해 국회의 개입 없이 독단적으로 재정을 메워버린다면, 의회가 정부의 곳간을 감시하고 자의적 씀씀이를 통제하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본질적으로 무너진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기금 규모에 걸맞은 강력하고 독립적인 외부 견제장치가 필수적임을 주장한다.

  •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향후 세수 기반에 대해 다소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면서도 통제 장치 강화에 동의한다. 그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공급 계약이 이미 2028년까지 확고하게 맺어져 있어 단기간 내에 세수 펑크가 재현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일 기금의 규모가 160조 원에 육박하는 만큼, 행정부의 전단적 운용을 막기 위해 국회에 대한 기금 보고 주기를 현재보다 훨씬 단축하고, 자금의 인출 목적과 기준을 법률적 차원에서 촘촘하게 제어해야 한다고 조언하였다.

  •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기금이 '재정 완충'이라는 본연의 거시경제적 목적을 상실한 채, 각 부처가 사업 예산이 부족할 때마다 무분별하게 꺼내 쓰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였다. 양 교수는 추가 세수를 맹신하여 기금을 적립하기 전에 기존 재원 부족분과 부채 상환 소요액을 먼저 차감하는 보수적인 운용 룰을 수립하고, 기금의 자금 운용 지배구조(Governance)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26~2030년 중기 국가재정운용계획의 구조적 취약성과 리스크

  • 정부가 2027년 예산안과 함께 국회에 제출할 예정인 '2026~203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의 내부 수치를 해부해보면, 단기적인 지표 개선의 환상 너머로 심각한 구조적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 2030년 '예산 천조국' 진입과 부채 누증의 딜레마 ]

  • 정부는 내년의 파격적인 예산 증액에 그치지 않고, 2030년까지 연평균 총지출 증가율을 8.4%라는 매우 공격적인 수준으로 상향 조정하였다. 1년 전 중기 계획에서 제시했던 연평균 5.5% 확대 기조에 비해 지출의 가속 페달을 훨씬 강하게 밟은 것이다. 이 궤도대로라면 대한민국의 총지출 규모는 불과 4년 뒤인 2030년에 1,005조 2,000억 원에 도달하며 이른바 '예산 1,000조 원 시대'의 장을 열게 된다. 이재명 정부 5년 동안 늘어나는 총지출액만 약 332조 원에 달해, 과거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3개 정부에 걸쳐 누적 증액된 지출 합계인 348조 원에 육박할 만큼 재정 팽창의 속도가 가파르다.

  • 문제는 씀씀이는 항구적으로 고착화되는 반면, 이를 뒷받침하는 반도체 호황발 세입 증가세는 일정 시점이 지나면 기저효과에 의해 평년 수준으로 회귀하거나 급감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미스매치의 결과로, 정부 스스로 작성한 중기 전망에서도 2027년에 3조 1,000억 원으로 축소되었던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불과 3년 뒤인 2030년에는 다시 100조 8,000억 원 규모로 팽창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매년 100조 원 안팎의 적자가 지속됨에 따라 2027년 1,519조 원이던 국가채무는 2030년에 이르러 1,734조 1,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로 누증될 전망이다.

[ 극단적 낙관론에 의존한 재정 경로의 취약성 ]

  • 더욱 치명적인 리스크는 이러한 2030년의 전망조차도 거시경제 환경이 완벽하게 우호적일 것이라는 '극단적 낙관론'을 전제로 성립된다는 점이다. 정부의 중기 재정 전망은 매년 실질 성장률 2% 내외를 달성하고, 명목 GDP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세수 기반이 견고하게 유지된다는 이상적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국가채무비율을 49.0% 선에서 통제할 수 있다고 상정하고 있다.

  • 그러나 현실의 거시경제는 언제나 파상적인 충격을 수반한다. 만약 미·중 패권 전쟁의 격화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분절, 피지컬 AI 투자의 거품 붕괴, 혹은 차세대 칩셋 경쟁에서의 일시적 도태 등으로 인해 반도체 하강 사이클이 예기치 않게 앞당겨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기획예산처의 조용범 차관 역시 브리핑 과정에서 "반도체 세수가 계속된다고 무작정 전제할 수는 없다"며 미래 세수 변동의 하방 리스크를 이례적으로 인정하였다. 더욱이 막대한 국고채 차환 발행이 지속되는 가운데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연 3.878% 수준으로 치솟은 고금리 환경이 장기화될 경우, 단순히 빚을 내는 이자 비용(채무 상환 이자)만으로도 매년 수십조 원의 경상 지출이 증발하게 된다. 성장 효과가 지연되고 세수가 기대치를 밑도는 상황에서 금리마저 높은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 시나리오가 도래한다면, 100조 원 수준으로 통제하겠다던 2030년의 적자 규모는 통제 불능의 상태로 폭증하여 국가 신용등급을 위협하는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사점>

2027년 예산안이 올해보다 12.8% 늘어난 역대 최대 수준인 820.9조 원으로 불어났습니다. 이는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국세수입이 584조4000억원까지 급증하면서 총수입이 총지출을 크게 웃도는 이례적인 세입 여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이 기회를 활용해 인공지능(AI), 반도체, SMR, 우주항공, 바이오 등 미래산업에 투자하고 청년과 지방, 취약계층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다만 호황의 세수를 불황에도 감당해야 하는 항구적 지출로 연결하는 것에는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더욱이 정부가 162조3000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별도로 마련한 것은 이번 예산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실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도체 호황으로 생긴 일시적 초과 세수를 일반회계 지출로 모두 소진하지 않고 미래를 위한 재원으로 비축한다는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기 변동에 대비할 재정 완충장치를 만든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숫자만 놓고 보면 안심하기 어렵습니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07조8000억원에서 3조1000억원으로 급감하지만 국가채무는 1,519조8000억원으로 늘어납니다. 국고채 총발행 규모도 222조8000억원에 이릅니다. 장부상의 재정수지가 좋아졌다고 해서 국가의 재정 체력이 그만큼 튼튼해졌다고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특히 반도체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더 큰 문제는 지출의 하방 경직성입니다. 호황기에 한번 늘린 복지와 의무지출은 경기가 꺾였다고 쉽게 줄일 수 없습니다. 정부가 2030년 총지출을 1000조원 이상으로 늘리는 경로를 제시한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세수 증가가 둔화하는 순간 확장재정의 부담이 고스란히 국채와 이자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호황기에 재정을 얼마나 많이 쓰느냐보다 호황기에 얼마나 절제하면서 미래에 투자하느냐가 국가의 재정 실력을 가릅니다.

그런 점에서 미래대응기금은 ‘제2의 곳간’이 아니라 엄격한 원칙 아래 관리되는 국가의 미래보험이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세수가 예상보다 많이 들어올 때마다 기금부터 불리는 구조를 경계해야 하며, 초과 세수의 일정 부분은 기존 국가채무 상환에 우선 투입하고, 그 뒤 남는 진정한 잉여재원을 미래대응기금에 적립하는 원칙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빚을 안고 비상금을 쌓는 식의 재정 운용은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기금 운용의 투명성도 필수입니다. 160조원에 달하는 거대 기금에 행정부의 과도한 재량권이 주어진다면 국회의 재정 통제권이 약화될 우려가 큽니다. 위기 때 신속하게 돈을 쓸 수 있는 기동성과 민주적 통제는 어느 하나를 포기할 문제가 아닙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금 인출에는 국회의 사전 또는 신속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적립·인출 기준과 사용 내역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미래를 위한 돈일수록 현재의 정치적 필요에 휘둘리지 않게 만드는 장치가 더 강하게 요구됩니다.

무엇보다 이번 슈퍼예산이 성공하려면 반도체 호황의 과실을 ‘제2의 반도체’를 만드는 데 써야 합니다. AI·첨단 제조업·SMR·우주항공·바이오·에너지 등 미래산업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되, 정부의 산업정책이 과거처럼 부처별 나눠먹기와 보여주기식 R&D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성과가 낮은 사업은 과감하게 퇴출하고, 민간의 기술과 자본을 끌어낼 수 있는 분야에 재정을 집중해야 합니다.

결국 이번 예산은 ‘슈퍼예산’이라는 규모보다 슈퍼사이클 이후를 얼마나 준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반도체가 벌어준 세수는 반도체 호황이 끝난 뒤에도 남을 자산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일부는 부채를 줄이는 데 쓰고, 일부는 미래대응기금으로 축적하며, 나머지는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투자에 집중하는 식의 균형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