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 만의 첫 잭슨홀 무대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8월 28일(현지시간)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 기조연설 무대에 올랐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처음 서는 잭슨홀 연설이자, 취임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 자리에서 워시 의장은 물가 상승세에 대한 강한 경계감을 드러내며,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충분하지 않다면 추가 긴축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시장은 이를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매파적 신호로 받아들였고, 연설 직후 9월 금리 인상 기대는 큰 폭으로 뛰었다.

“기조적 물가 흐름에 확신 없으면 우리가 할 일이 있다”

워시 의장은 연설에서 Fed의 판단 기준을 분명히 했다. 기조적 인플레이션이 목표를 향해 뚜렷하고 충분한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Fed의 책무라는 취지였다. 구체적인 금리 인상 시점을 못 박지는 않았지만, 물가 둔화가 미흡할 경우 추가 긴축이 뒤따를 수 있다는 여지를 분명히 남겨둔 셈이다.
실제 지표를 봐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Fed가 선호하는 물가지표인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7월 기준 전년 동월 대비 3.7% 올랐고, 최근 6개월 상승률을 연율로 환산하면 4.1%에 이른다. PCE와 소비자물가지수(CPI) 모두 헤드라인과 근원 지표 전부 Fed 목표치인 2%를 웃돌고 있다.
워시 의장은 최근 몇 달간의 지표가 예상보다 양호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기조적 흐름의 의미 있는 개선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지금 Fed의 초점은 물가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2% 물가 목표는 “확고하고 고정된 목표”라는 표현으로 재확인하며, 단기 금리가 Fed의 이중 책무(물가 안정과 고용 극대화)를 달성하는 핵심 수단이라는 원칙도 다시 강조했다.
지난 수년간 이어진 고물가에 대한 책임론도 피하지 않았다. 65개월간 지속된 높은 인플레이션의 책임은 온전히 중앙은행에 있다는 것이 워시 의장의 진단이었다. 아울러 주택·농업 등 일부 부문에서 부담 신호가 나타나고는 있지만, 전반적인 금융 여건을 긴축적이라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도 내놓으며 추가 긴축의 여지를 열어뒀다.

실물경제는 여전히 견조하다는 평가

물가에는 강경한 입장을 취했지만, 미국 실물경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낙관적인 시각을 유지했다. 최근 4개 분기 동안 실질 소비지출은 2%를 웃도는 증가세를 보였고, 기업 투자까지 포함한 민간 국내 최종구매(PDFP)는 올해 들어 약 3%의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둔화된 고용 증가세에 대한 해석도 눈길을 끈다. 워시 의장은 이를 경기 수요의 급격한 약화보다는 노동 공급 증가세가 정체된 결과로 봤다. 실업률이 4.1%로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실업수당 청구 건수도 낮다는 점에서, 현재 노동시장은 사실상 완전고용에 부합한다는 평가다.

“포워드 가이던스”는 그만…가공되지 않은 시장 신호를 보겠다

이번 연설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시장과의 소통 방식에 대한 언급이다. 워시 의장은 자신의 발언을 “개요” 혹은 “등산 지도”라 불러도 좋으니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안내)라고만은 부르지 말아달라고 농담을 던지며 운을 뗐다. 그러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도입됐던 포워드 가이던스 방식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고 평가했다.
특정 경제지표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금리를 어떻게 움직일지 미리 알리는 이른바 ‘반응함수’를 공개하는 데도 부정적이었다. Fed의 반응함수를 설명하기 위한 전망 제시는 실제 현장보다 이론과 실험실에서 더 잘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경제 상황에 따라 정책 판단의 기준 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국채 가격과 거래량, 각종 자산 가격, 달러 가치, 신용 비용과 가용성 등에서 나오는 가공되지 않은 명확한 시장 신호를 중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근 확대되고 있는 미 재무부의 국채 바이백(조기매입)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시장은 매파로 해석…9월 인상 확률 35.4%→55.7%

이날 연설이 특정 시점의 금리 인상을 예고한 것은 아니었지만, 물가에 대한 판단과 추가 대응 조건을 이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이 반영한 9월 금리 인상 가능성은 연설 전날 35.4%에서 연설 이후 55.7%로 뛰어올랐다.
경제분석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이번 발언이 지난 7월 FOMC 기자회견 때보다 훨씬 분명하고 매파적인 메시지였다고 평가했다. 향후 물가 지표가 강하게 나온다면, 기존에 예상했던 12월보다 앞서 금리 인상이 단행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채권시장에서도 단기물 중심으로 금리가 뛰었다. 통화정책 전망에 민감한 미국 2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설 이후 장중 4.3%대까지 상승했다. 달러도 강세로 돌아섰고, 뉴욕증시는 소폭 하락하며 시장 전반이 추가 긴축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