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암호화폐 시장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된 사건 중 하나는 2011년에서 2014년 사이에 작성된 이후 10년 넘게 미동도 않던 비트코인 지갑 6개가 갑자기 활성화된 일입니다. 이 지갑들에서는 약 4000만 달러(한화 약 530억 원) 상당에 해당하는 553.59개의 비트코인이 한꺼번에 이동했는데요. 심지어 이 가운데 한 지갑은 무려 15년 이상 단 한 번도 코인을 움직이지 않았던 진짜 초창기 지갑이었습니다. 과거 비트코인이 고작 몇 달러에 거래되던 극초기 시절의 지갑들이 하나 둘 깨어나다 보니, 시장에서는 초기 투자자들이 드디어 거대한 시세 차익을 실현하려고 대량 물량을 던지는 것이 아니냐는 공포감이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하지만 시장 리서치 기관인 갤럭시 디지털(Galaxy Digital)의 분석을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그림이 그려집니다. 갤럭시 리서치는 1년 이상 같은 주소에 머물러 있는 코인을 휴면 코인으로 정의하는데요. 분석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동안 블록체인 상에서 이동한 휴면 비트코인의 수량은 오히려 2022년 3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지난 2024년과 2025년에는 2017년 대세 상승장 수준으로 장기 보유자들의 대규모 이동이 일어나며 '대분배(Great Distribution)' 시기를 거쳤지만, 올해 2026년의 휴면 코인 이동량은 지난해보단 절반 이하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즉, 장기 투자자들이 일제히 시장을 이탈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조금 다를 수 있다는 뜻이죠.
더 중요한 포인트는 온체인(On-chain) 데이터 특성상 지갑 간의 이동이 곧바로 '매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공개된 블록체인은 코인이 A에서 B로 이동했다는 사실만 보여줄 뿐, 주인이 단순히 보안이 더 뛰어난 지갑으로 옮겼는지, 자산 관리 업체에 맡겼는지, 아니면 개인 자산을 정리하는 중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번에 움직인 6개 지갑 중 5개는 거래소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주소로 코인을 보냈습니다.
거래소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은 당장 팔 의도가 없을 확률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나머지 단 하나의 지갑만이 독일의 암호화폐 수탁 및 거래 서비스 제공업체인 뵈르제 슈투트가르트 디지털(Boerse Stuttgart Digital)로 40개의 비트코인을 보냈을 뿐입니다.
이번 지갑 이동의 배경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외부 변수들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동된 지갑 중 2개는 뉴욕주 법원에 제기된 이른바 '노아 도(Noah Doe)' 소송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원고 측은 오랫동안 방치된 3만 9000여 개의 주소에 아주 미량의 비트코인과 함께 소송 통지서를 보낸 뒤,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뉴욕주의 미반환 재산법에 따라 해당 코인을 무주물로 처리하겠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이에 장기 방치 지갑 소유자가 소유권을 증명하기 위해 코인을 움직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또한 지난 7월 콜드카드(Coldcard) 하드웨어 지갑의 키 생성 기능에서 결함이 발견되면서, 공격자가 비밀번호를 추측할 수 있다는 우려에 단 일주일 만에 21만 개가 넘는 비트코인이 안전한 새 지갑이나 규제 수탁 기관으로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양자 컴퓨터가 발전하면 과거 공개키가 노출된 옛 지갑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양자 컴퓨터 위험론'을 지갑 이동의 원인으로 꼽기도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제 고래 투자자들이 양자 위험 때문에 코인을 매도하는 경우는 없으며 이는 단지 시장의 거대한 억측일 뿐이라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