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은 대한민국 최장수 기업입니다.

1896년에 창업을 했으니 무려 127년이나 됐네요!!!

재계 서열로는 16위로, 본사는 을지로 6가(두산타워)에 위치해 있고

현재는 전자소재 및 연료전지 제조업에 주로 임하고 있습니다.

1896년에 서울 종로에서 창업한 박승직 상점이 시초인데,

창업주 박승직이 쌀을 한말 두말 쌓아서 큰 산을 이루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설립 당시에는 포목점으로 시작을 하였고,

조선 내에서 생산되는 포목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생산되던 수입산 포목까지 취급하였다고 합니다.

포목점을 하면서 주요 단골들에게 사은품으로 화장품을 제공했는데

이것이 반응이 좋아 1916년에는 화장품 공장을 만들고

"박가분" 이라는 화장품을 생산해 히트시켰습니다.

(박가분이라는 이름을 아는게 제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역사극을 많이 봤기 때문이겠죠~~~~? ㅠㅠ)

또 박승직 사장은 쇼와기린맥주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해 주식을 일부 소유하기도 했습니다.

사업과정에서 이토 히로부미 국민대추도회 발기인을 지냈고,

창씨개명을 하고 미키상사로 바꾼후 국방헌금을 내는 등 친일의 역사가 있는 점은 무척 아쉽고 슬픈 일입니다.

광복 후 박승직 상점은 문을 닫았으나,

박승직의 아들 박두병이 1946년 두산상회를 다시 세웁니다.

귀속재산이 된 쇼와기린맥주 관리인으로 선임되어 주류 생산에 뛰어 들었고,

1952년에 후신인 동양맥주를 정식으로 불하받아

그 약자인 OB 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래서 1978년 이전까지는 그룹 이름도 두산그룹이 아닌 OB 그룹이었습니다.

1969년에는 박두병 동양맥주 사장이 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나고,

전문 경영인 운영 체재가 확립되었고,

1977년부터는 정수창 사장이 그룹 회장이 되어 국내 최초로 전문 경영인 출신 총수 시대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81년에는 박용곤이 회장이 되어 3세 경영체제를 확립하고 1983년에 을지로 사옥으로 이전했습니다.

1990년대까지 두산은 기술소재 사업, 정보유통사업, 생활문화사업등 경공업 분야에서 사업을 영위하였습니다.

병뚜껑을 생산하는 삼화왕관, 코카콜라를 유통하던 두산음료, OB 맥주, 두산백화, 두산 경월 같은 소비재 기업과 폴로랄프로렌 및 월풀 수입사로도 알려진 두산상사, 두산유업(유가공사업), 두산종합식품(즉석김치사업)에도 손을 댔었네요.

1982년에는 프로야구단 OB 베어스를 창단하였고,

1985년에는 동아출판사 및 동아인쇄공업을 인수해 출판/인쇄업에도 진출했습니다.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고 있던 중,

1991년 경상북도 구미에서 두산전자가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을 일으킵니다.

이로 인해 낙동강 라인인 대구, 경북, 부산, 경남 지역에서 두산 불매 운동이 일어나고

소비재 중심의 사업(OB 맥주, 코카콜라, 버거킹, KFC, 네슬레, 코닥,3M 등)을 하던 두산은 큰 타격을 입습니다.

무엇보다 창립 당시부터 1위를 놓지지 않았던 OB 맥주가 직격탄을 맞고

경쟁사인 크라운에 1위 자리를 내 준 후 매출도 곤두박칠 칩니다.

이 사건 이후 당시 회장이던 첫째 박용곤이 물러나고

1995년 적자 규모 9000억원, 부채비율 625% 로 창사이래 최대 위기를 맞습니다.

1996년 둘째 박용오가 회장으로 취임하여 소비재 위주의 사업을 영위하고자 고집하였으나

셋째 박용성, 5남 박용만이 소비재 사업을 반대,

차남 박용오를 퇴출시켰고,

박용오는 박용성과 박용만을 비자금 조성과 탈세로 고발하는 등 형제의 난을 겪었습니다.

형제의 난은 결국 미국 컨설팅 업체 맥킨디 앤 컴퍼니사의 권고로

OB 맥주를 비롯해 코카콜라, 버거킹, 3M 등의 계열사를 매각 혹은 사업 철수를 통해 구조조정하면서 소비재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됩니다.

그리고 1998년 기존 OB 맥주 법인이 모기업 두산 상사, 두산정보통신, 두산동아, 두산경월 등을 합병해 (주)두산으로 탈바꿈한 후 을지로 사옥을 하나은행에 매각하고 동대문 두산타워로 본사를 이전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중공업, 플랜트 기업으로 변모했으며,

2001년 한국 중공업을 인수하면서 중공업 그룹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2003년에는 고려산업개발, 2005년에는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하면서 글로벌 인프라 지원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하기도 했습니다.

또 2008년에는 중앙대학교 재단을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2008년에는 밥캣 인수를 위해 과다한 차입금을 지불하였으나,

서브프라임 사태로 건설 경기가 가라 앉고,

그로 인해 기업가치가 폭락하면서 부채 문제가 도래했고,

그룹 차원에서 밥캣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면서 이를 영구채로 전환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밥캣 인수와 동시기인 두산건설의 PF 부실이 두산 그룹을 위기에 빠지게 합니다.

2013년 11월 26일, 두산건설이....

오전에는 자본감소를, 오후에는 유상증자를 단행하였습니다.

미분양으로 인해 두산 건설은 몇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으며,

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에서 돈을 쏟아 부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온갖 미분양과 사업적자로 적자를 지속하던 두산건설은 2019년에 상장폐지 절차를 밟게 됩니다.

2018년 들어서는 두산중공업, 두산밥캣, 두산인프라코어의 흑자 전환으로 그룹 분위기는 반전됩니다.

특히 두산 인프라코어는 자회사인 밥캣과 중국시장에서의 성공으로 영업이익이 1조에 육박하는 성과를 내었습니다.

그런데도 영구채 이자와 당기순손실이 누적되어서 당기순이익은 계속 적자였네요 ㅠㅠ

두산 중공업 또한 2018년 4분기에 순손실 5000억을 기록합니다.

결국 2020년에는 직원 2600여명을 명예퇴직 시킨다고 발표하였고

4월 1일에는 구조조정 절차를 밟기 시작합니다.

2020년에는 두산그룹의 핵심인 두산인프라코어가(현재는 현대두산인프라코어) 매물로 나왔습니다.

2021년 두산 그룹 위기의 중심이었던 두산건설 지분권을 사모펀드에 매각하면서 두산그룹에서 계열 분리가 됩니다.

이러한 혹독한 구조 조정 과정을 거쳐

두산의 2021년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도 대비 403% 증가,

계열사인 두산 중공업 역시 최고 558% 가 급증하면서 흑자 전환에 성공합니다.

두산의 2023년 8월 11일 종가는 106,900원이었습니다.

최근 10년간 주가 추이를 보면

2020년 3월 20일에 최저가인 25,700원을 기록했고,

2021년 11월 19일에 148,000원을 기록했네요.


배당은 해마다 꾸준히 실시했으며,

2022년 12월 확정된 배당금이 주당 2000원,

배당률은 무려 9.69% 입니다!!!


2023년에 예상되는 매출액과 영업이익 또한 상당히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