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의 열기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계를 지나 ‘기계를 만드는 기계’, 이른바 마더머신으로 불리는 공작기계산업까지 퍼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대기업이 투자를 큰 폭으로 늘리자, 그 아래 소부장 업체들이 고정밀 공작기계 발주를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공작기계산업의 최대 고객이 자동차에서 반도체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반도체, 공작기계업계의 ‘뉴노멀’이 되다
숫자가 먼저 말해준다. 업계 1위 DN솔루션즈의 올해 1분기 수주 잔액은 1조130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4% 늘었다. 중견 업체 스맥의 수주 잔액도 1년 새 47.9% 증가했는데, 스맥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수주의 약 70%가 반도체산업에서 나왔다고 한다. 특히 반도체 부품을 정밀 가공하는 데 특화된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원래 공작기계산업의 최대 수요처는 자동차였다.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금속 부품만 수만 개, 이걸 깎고 뚫는 데 공작기계가 대거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흐름은 다르다. 지난 6월 설비투**수를 보면 반도체 부문이 250.7로, 자동차(152.6)를 훌쩍 뛰어넘으며 전체 지수 상승을 이끌었다.
삼성·SK하이닉스가 아니라 소부장이 사는 이유
흥미로운 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공작기계를 직접 사들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구매의 주역은 소부장 업체다. 반도체 대기업이 생산라인을 증설하면, 그 라인에 부품과 소재, 장비를 납품해야 하는 소부장 업체들이 먼저 생산 설비를 확충한다. 이때 핵심 설비 중 하나가 바로 부품 가공용 공작기계인 셈이다.
반도체 부품에는 쿼츠, 세라믹, 실리콘처럼 깎기 까다로운 소재가 많이 쓰인다. 그래서 컴퓨터 수치제어(CNC) 기술이 적용된 머시닝센터(MCT)나 수치제어(NC) 선반, 연삭기 같은 고정밀 절삭기계 발주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실제로 NC 선반 수주액은 지난해 상반기 7686억원에서 올 상반기 9127억원으로 18.7% 늘었고, MCT 수주액도 같은 기간 20.9% 증가했다. 이는 전체 공작기계 수주액 증가율(15.3%)을 웃도는 수치다.
하반기 전망은 더 밝다
공작기계산업은 통상 설비투자가 몰리는 상반기 실적이 하반기보다 좋은 편이다. 하지만 올해는 다른 흐름이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공작기계산업은 경기 하강기엔 이를 미리 반영하고, 상승기엔 뒤따라 더 좋아지는 특성이 있다”며 반도체 호황이 장기화하는 만큼 하반기에도 수주 증가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수출 증가세가 내수보다 훨씬 가파르다는 점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싣는다. 올 상반기 해외 수주는 1조2216억원으로 1년 전보다 21.9% 늘었지만, 국내 수주는 4.7% 증가에 그쳤다. 여기에 인공지능 기술 발달로 공작기계 수요가 반도체를 넘어 로봇, 우주항공, 방위산업 등으로 확산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물론 모든 업체가 이 훈풍을 누리는 건 아니다. 범용 선반과 단순 임가공에 머무는 중소·영세 업체는 반도체 호황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 초정밀 가공이 가능한 CNC 기반 고성능 NC 절삭기계를 설계·제작할 기술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DN솔루션즈, 스맥, 화천기계, 위아공작기계 등 기술력을 갖춘 상위 기업들이 이번 호황의 과실을 집중적으로 가져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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