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 정부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 완성 목표를 기존 2047년에서
2039년으로 8년 앞당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2039년이면 지금 대통령 한 사람의 임기 안에 끝낼 수 있는 사업이 아닙니다.
그런데 열흘 뒤인 8월 14일,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 또는 연임제로 바꿔
중간평가가 가능한 책임정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다시 밝혔습니다.
경제만 놓고 보면 질문은 단순합니다.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최대 8년까지 정책을 이어갈 수 있다면 부동산, 증시,
산업정책도 지금보다 덜 흔들릴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성은 있습니다.
재선 가능성이 생기면 첫 임기 성과를 유권자에게 다시 평가받아야 하기 때문에 정책의
책임성과 연속성을 높이는 유인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임기만 바꾼다고 장기정책이 자동으로 살아남는 것은 아닙니다.
법률과 예산, 국회 합의, 장기계획이 함께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8년까지
일할 수 있어도 정책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4년 연임제, 핵심은 ‘8년’보다 중간평가
현재 우리나라 헌법은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한 번 대통령이 되면 다시 출마할 수 없습니다.
반면 4년 연임제는 첫 4년을 마친 뒤 다시 선거에 출마해 한 번 더
연속 집권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4년 중임제는 정치권에서 비연속적인 재도전까지 허용하는 의미로 구분해 쓰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두 표현이 함께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제도 설계가 확정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현행 헌법 제128조 2항은 대통령 임기 연장이나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이
이뤄져도 개헌 제안 당시 대통령에게는 그 효력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진행되는 논의를 곧바로 현직 대통령의 ‘8년 집권’ 문제로 연결해서
보는 것은 현행 헌법 취지와는 맞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더 중요한 부분은 최대 재임기간이 8년이라는 숫자보다 첫 4년 뒤 다시 선거를 치른다는 구조입니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첫 임기 동안 내놓은 경제정책의 결과를 유권자에게 다시 평가받아야 합니다.
실제로 베슬리와 케이스(Besley & Case)는 미국 주지사 사례를 분석해 재선에
도전할 수 있는지 여부가 세금과 정부지출 같은 정책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다만 여기서 선을 그어야 합니다.
재선 가능성이 생긴다고 해서 좋은 경제정책이 자동으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평가받을 유인이 생긴다는 것과 실제 정책의 질이 좋아진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부동산은 대통령 임기보다 ‘규칙이 얼마나 오래 가느냐’가 중요
부동산 정책은 대통령 한 사람의 결정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보유세와 거래세는 법률과 세제 개편이 필요하고, 대출 규제는 금융당국과 은행 심사 기준에 연결됩니다.
주택 공급 역시 토지 확보, 인허가, 교통망, 전력, 예산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4년 연임제가 도입되면 첫 임기 정부는 4년 뒤 다시 평가받는다는 점을 의식할 수 있습니다.
정책을 갑자기 뒤집는 데 따르는 정치적 부담이 지금보다 커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 효과도 있습니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세금이나 대출, 각종 지원책을 유권자가 당장 체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정하려는 유인 역시 커질 수 있습니다.
결국 부동산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대통령 임기가 4년인지 5년인지보다 세금, 대출,
공급정책의 기준이 얼마나 예측 가능하게 유지되느냐입니다.
예를 들어 집을 살 때 취득세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유세가 언제 바뀌는지,
대출 한도가 어떤 기준으로 달라지는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존 계약에는 어떤 규칙을 적용하고 신규 계약에는 언제부터 새로운 제도가 적용되는지도 명확해야 합니다.
부동산은 정책 발표에서 실제 입주까지 수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누가 정책을 발표했느냐보다 다음 정부가 인허가와 교통, 공공택지,
금융 규칙을 얼마나 이어갈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쉽게 말해 국민 입장에서 가장 큰 부담은 정책이 바뀐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언제, 어떤 기준으로 바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증시는 대통령 임기보다 ‘불확실성’을 먼저 계산합니다
증시도 비슷합니다.
시장에서는 대통령이 몇 년 집권할 수 있는지보다 세금과 규제, 정부지출,
산업지원 정책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를 더 민감하게 봅니다.
이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경제정책 불확실성(Economic Policy Uncertainty·EPU)입니다.
말 그대로 기업과 투자자가 앞으로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얼마나
예측하기 어려**를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베이커·블룸·데이비스(Baker, Bloom & Davis)는
미국에서 접전 대선이나 대규모 재정정책 논쟁이 벌어질 때 정책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모습을 분석했습니다.
줄리오와 유크(Julio & Yook)는 국가 선거를 앞두고 기업 투자가 지연되는 현상을 살펴봤고,
젠스(Jens)는 미국 주지사 선거 이전 기업 투자가 평균 약 5% 감소했다고 추정했습니다.
정치 일정 자체가 기업 입장에서는 하나의 투자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런 연구가 한국의 4년 연임제를 직접 분석한 것은 아닙니다.
제도와 정치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시장과 기업은 정치적 불확실성에도 가격을 매깁니다.
연임제가 같은 정부의 정책 지속 가능성을 높여 불확실성을 낮출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4년마다 재선 경쟁이 벌어진다면 선거 직전 정책 변화와 기대감이 반복적으로
시장에 반영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국 증시에서는 ‘대통령이 최대 8년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보다 세금과 규제,
산업지원 정책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특히 법률로 정해진 정책과 행정부 판단만으로 바꿀 수 있는 정책은 위험 수준 자체가 다릅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보면 답이 조금 보입니다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바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입니다.
정부는 2026년 8월 4일 용인 국가산업단지 완성 목표를 2047년에서
2039년으로 8년 단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반산업단지 역시 2045년에서 2033년으로 12년 앞당기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2039년까지는 대통령 선거가 여러 번 치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초장기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산업단지 지정부터 전력과 용수, 민간기업 투자, 정부 예산, 행정 절차까지 사업 자체가
여러 제도로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장기 산업정책이 이어지는 힘은 대통령 한 사람의 임기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결정된 민간 투자와 인프라 계획, 행정 절차, 사업을 중단했을 때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도 정책을 계속 움직이게 만듭니다.
실제로 5년 단임제 아래에서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같은 초장기
사업은 정권을 넘어 계속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 사례는 “5년 단임제라서 장기 산업정책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듭니다.
반대로 세제나 보조금, 규제처럼 제도적으로 단단하게 고정돼 있지 않은 정책은
같은 대통령 아래에서도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습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역시 2038년까지의 전력 수요와 설비 계획을 다룹니다.
산업정책의 시간표는 이미 대통령 임기보다 훨씬 길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결국 핵심은 대통령이 몇 년 집권하느냐보다 그 긴 계획을 다음 정부에서도
계속 책임지게 만드는 장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입니다.
미국도 4년제라고 정책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입니다.
수정헌법 제22조에 따라 대통령으로 두 번을 초과해 선출될 수도 없습니다.
겉으로 보면 국내에서 논의되는 4년 연임제와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미국 경제정책 역시 대통령 임기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연방의회가 법률과 예산을 결정하고 법원은 행정조치를 심사합니다.
여기에 각 주정부도 상당한 정책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즉, 대통령이 재선됐다고 해서 모든 정책이 8년 동안 그대로 유지되는 구조는 아닙니다.
의회 다수당이 바뀌거나 법원이 제동을 걸면 같은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어도 정책은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대통령이 교체되더라도 의회가 만든 법률이나 장기 계약, 주정부 정책 때문에
이전 정부의 정책이 계속 유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누가 대통령인가와 어떤 정책이 오래 살아남는가는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따라서 미국이 4년제를 운영한다고 해서 “우리도 4년제로 바꾸면 경제정책이 안정된다”고
단순하게 결론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미국 사례에서 주목할 부분은 대통령 임기 외에도 의회와 법원,
지방정부 등 정책을 견제하고 유지하는 여러 장치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대통령이 바뀌어도 남는 제도가 중요합니다
4년 연임제가 도입되면 경제정책의 인센티브는 분명 달라질 수 있습니다.
첫 임기 뒤 다시 평가받아야 하기 때문에 책임정치의 유인이 커질 수 있고,
재선에 성공할 경우 동일한 정책 방향을 더 오래 유지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장기적인 경제정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다년도 예산, 법률에 근거한 기본계획,
국회의 합의, 독립적인 집행기관, 정책 변경 시 경과조치와 비용 공개 같은 장치가 함께 필요합니다.
이런 장치가 약하다면 대통령이 최대 8년까지 일할 수 있어도 정책은 계속 바뀔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제도적 장치가 충분히 갖춰져 있다면 지금처럼 5년 단임제에서도
장기 프로젝트는 정권을 넘어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4년 연임제의 경제적 의미는 단순히 대통령이 더 오래 집권할 수 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첫 4년의 성과를 다시 평가받는 구조를 만들고, 동시에 대통령이 바뀌어도 법률과 예산,
계약과 장기계획이 쉽게 뒤집히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부동산과 증시, 산업정책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시장과 가계가 원하는 것은 특정 대통령이 오래 집권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적용될 규칙을
미리 계산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대통령 임기가 바뀌더라도 국민과 기업이 이미 세운 계획을 함부로 뒤집지 않는 제도가 함께
만들어질 때 비로소 개헌이 경제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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