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등에 실패한 반등
지난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한때 30% 가까이 미끄러졌다. 그리고 최근 며칠, 다시 오를 것처럼 꿈틀거리다가 이내 주춤했다. 10일에도 두 회사는 장 초반 2%대 반등에 성공했지만 결국 소폭 하락 마감했다.
이상한 건 같은 날 나온 리포트들이다. JP모간과 모건스탠리 같은 대형 투자은행들은 “가장 가파른 조정 구간은 끝났다”는 취지의 전망을 잇달아 내놨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는 여전히 폭발적이고, 메모리 공급 부족은 오히려 내년에 더 심해질 것이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업황 펀더멘털에는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작 그날 가장 크게 오른 종목은 삼성전자도 SK하이닉스도 아니었다. 반도체 장비주, 기판주, 전력기기 관련 소형주들이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하며 시장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업황은 메모리가 좋다는데, 돈은 메모리 밖으로 흐르고 있는 셈이다.
“업황 = 주가”라는 공식이 깨진 이유
JP모간은 이번에 2026~2028년 글로벌 메모리 시장 규모 전망치를 4~8% 상향 조정했다. 이 기간 메모리 영업이익률도 76~78%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숫자만 보면 나무랄 데 없는 호황이다.
문제는 밸류에이션이 아니라 ‘이 좋은 업황을 고객사가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갔다는 점이다. 하이퍼스케일러(대형 클라우드 업체)들의 전체 투자비 가운데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까지 10%가 채 되지 않았지만, JP모간 추산으로는 올해 31%, 2028년에는 60%까지 치솟는다. 메모리값이 오르는 만큼 전력망과 네트워크, GPU에도 동시에 돈을 써야 하는 고객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
결국 시장이 다시 메모리주에 확신을 갖기 위해 요구하는 건 두 가지다. 하이퍼스케일러의 설비투자 규모가 실제로 더 늘어나는 걸 숫자로 확인하는 것, 그리고 시장 눈높이를 뛰어넘는 자사주 매입이나 주주환원 정책이 나오는 것. 이 두 조건이 채워지기 전까지는, 업황이 아무리 좋다는 리포트가 쏟아져도 주가는 쉽게 전고점을 넘어서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다음 병목은 메모리 바깥에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나온다. AI 사이클 자체가 꺾인 게 아니라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이클이 길어질수록 투자자들의 관심은 메모리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AI 인프라 전체에서 병목이 옮겨가는 지점을 따라 이동한다.
JP모간이 향후 12개월 최선호 업종으로 꼽은 건 다름 아닌 반도체 장비다. 그다음으로는 고성능 반도체 기판과 초고속 연결(인터커넥트)이 지목됐다. AI 가속기는 연산 자체보다 GPU와 CPU, 메모리 사이에서 데이터를 실어 나르는 데 상당한 시간을 쓰는데, 클러스터 규모가 커질수록 이 병목이 더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 뒤를 이어 데이터센터와 송전망을 잇는 전력기기, 에너지 확보 문제가 다음 병목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코스피 12개월 목표치를 12,000으로 제시한 골드만삭스 역시 비슷한 시각이다. 이익 증가의 무대가 메모리를 넘어 전력 인프라, 방위산업, 조선 등으로 넓어질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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