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미국의 프론티어 AI 기업 앤트로픽에 투자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공식 발표도, 보도자료도 없었던 조용한 투자였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네이버가 해외 프론티어 AI 기업에 자본을 투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나

투자를 집행한 곳은 네이버의 미국 투자법인 ‘네이버벤처스’다. 지난해 말, 앤트로픽에 직접 지분을 취득하는 대신 미국 벤처캐피털(VC) 펀드를 경유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진행했다. 시장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다.
지난해 6월 샌프란시스코에 설립된 네이버벤처스는 1년 만에 트웰브랩스, 일레븐랩스, 바스트데이터 등 7개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하고, 별도로 3개 VC펀드에 출자했다. 앤트로픽 투자는 이 펀드 중 한 곳을 통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며, 규모는 100억원 안팎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앤트로픽이 상장하기 전까지 추가 투자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본다.

왜 지금 앤트로픽인가

숫자보다 눈여겨볼 대목은 두 회사가 이미 실무적으로 얽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앤트로픽의 플랫폼 엔지니어링·제품 담당 임원들이 경기 성남의 네이버 사옥 1784를 방문해 AI 에이전트 기술을 공유했고, 같은 달 네이버는 엔지니어링 조직에 앤트로픽의 AI 코딩 에이전트 ‘클로드 코드’를 도입했다.
이는 네이버가 오래전부터 추진해 온 ‘실행형 AI’ 전략과 맞닿아 있다. 검색으로 정보를 찾아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상품 추천부터 예약, 구매·결제까지 AI가 전 과정을 대신 처리하도록 만드는 것이 네이버의 목표다. 앤트로픽은 클로드 코드를 앞세워 AI가 코드를 수정하고 외부 소프트웨어를 직접 조작하는 기업용 에이전트 시장을 빠르게 선점하고 있는 회사다. 온·오프라인 거래 생태계를 이미 갖춘 네이버가 이 기술을 흡수하면, 단순 정보 제공형 서비스에서 이용자의 목적을 끝까지 완수해주는 ‘행동형 서비스’로 넘어갈 발판이 마련되는 셈이다.

엔비디아까지 이어지는 큰 그림

이번 투자는 네이버 AI 전략의 방향 전환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조각이기도 하다. 네이버는 엔비디아의 오픈 LLM ‘네모트론’을 활용해 자체 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고도화하는 한편, 엔비디아·브룩필드와 함께 초기 200메가와트(MW) 규모의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기가와트(GW)급 AI팩토리로 키우기로 하고 지난 3일 관련 법인 설립을 공시했다.
즉, 모델과 소프트웨어 같은 범용 기술은 앤트로픽·엔비디아 등 세계 최고 수준의 파트너 기술을 그대로 활용하고, 20년 넘게 쌓아온 검색·쇼핑·콘텐츠 데이터와 이를 실제 거래로 연결하는 서비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컴퓨팅 인프라는 네이버가 직접 확보하는 ‘선택과 집중’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지난해 6월 샌프란시스코 네이버벤처스 행사에서 “LLM 성능과 알고리즘이 결국 비슷한 수준으로 수렴하면 데이터가 다시 핵심 차별화 요소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AI를 직접 개발하는 경쟁보다, 이를 활용한 서비스 경쟁력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