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팰런티어 테크놀로지 주가를 짓눌러 온 단어가 있다.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 AI가 소프트웨어 산업 자체를 집어삼킬 것이라는 공포다. 그런데 지난 3일(현지시간) 발표된 2분기 실적은 이 공포를 정면으로 뒤집었다. 비결은 숫자만이 아니었다. 팰런티어가 밀어붙인 ‘AI 주권론’이라는 서사가 시장을 설득했다.
엔비디아를 넘어선 성장·수익성
2분기 매출은 19억35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3% 증가하며 시장 전망치(18억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특히 미국 민간 부문 매출이 149% 급증한 7억6400만달러를 기록했고, 미국 정부 매출도 90% 늘어난 8억900만달러였다. 앨릭스 카프 CEO는 민간 사업에 대해 “이제 막 불이 붙은 초기 단계”라고 평가했다.
더 눈에 띄는 건 수익성이다. 영업이익은 9억1200만달러로 238.6% 폭증했고, 조정영업이익률은 46%에서 62%로 뛰어올랐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매출 증가율과 영업이익률을 더한 값이 40%를 넘으면 우량 기업으로 평가하는데, 팰런티어는 이 지표에서 155%를 기록하며 153%의 엔비디아마저 앞질렀다. 카프 CEO가 이번 실적을 “다른 세상 수준”이라고 표현한 이유다. 시간외거래에서 주가는 14% 넘게 뛰었다.
이는 작년 11월 고점(207.18달러) 이후 39% 하락하며 고전하던 주가 흐름의 반전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려움을 무기로 바꾼 역마케팅
팰런티어의 반격 전략은 역설적이다. 정부·기업 데이터를 정리해 AI가 활용하도록 돕는 자사 플랫폼 ‘고담’(정부용)·‘파운드리’(기업용)가 저비용 AI 추론과 LLM 발전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사스포칼립스 공포의 핵심이었다. 모닝스타는 지난달 이런 흐름이 팰런티어가 장악한 AI 의사결정 소프트웨어 시장의 진입 장벽을 낮출 것이라 진단하기도 했다.
팰런티어는 이 위협을 오히려 고객사를 향한 경고로 되돌렸다. “AI 모델 기업에 데이터를 넘기지 말라”는 메시지다. 카프 CEO는 주주 서한에서 인류 문명의 거의 모든 문헌을 흡수하며 성장한 LLM과 그 개발사들이 이제 전 세계 산업을 겨냥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번 분기 깜짝 실적의 배경에도 기업들이 자사 데이터를 지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핵심은 팰런티어가 스스로를 ‘데이터 수집기업’이 아닌 ‘데이터 처리기업’으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고객사 데이터를 AI 모델 학습용으로 수집하거나 보유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운다. 고객사가 데이터브릭스나 스노플레이크 같은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을 쓴다면 데이터는 그 안에서 처리되고, 자체 데이터센터를 보유한 고객이라면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폐쇄 환경에도 고담·파운드리를 설치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발목 잡는 같은 논리
그런데 이 주권론이 항상 유리하게만 작동하는 건 아니다. 자국 데이터를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팰런티어 자신을 겨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 국내보안국(DGSI)은 지난달 팰런티어 대신 자국 기업 챕스비전과 데이터 처리 계약을 맺었다. 유럽연합을 비롯한 각국 정부 입장에서 보면, 팰런티어가 강조해온 ‘주권’의 화살이 언제든 자신들을 향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치적 변수도 남아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 중 한 곳이라도 장악할 경우, 팰런티어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연관성 때문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관전 포인트
이번 실적은 팰런티어가 ‘AI에 잠식될 기업’에서 ‘AI 시대 데이터 주권을 지켜주는 기업’으로 포지셔닝을 성공적으로 전환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 전략이 만든 성장 스토리가 유럽 시장 확장과 미국 정치 지형 변화라는 두 변수 앞에서도 지속될 수 있을지가 다음 분기 이후의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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