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만의 유상증자, 그 상대는 엔비디아였다

네이버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해외 빅테크로부터 대규모 직접 투자를 받는다. 상대는 다름 아닌 세계 최대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다.
7월 27일 네이버는 엔비디아로부터 10억 달러(약 1조 4,700억 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더해 글로벌 대체투자사 브룩필드로부터 최대 90억 달러(약 13조 2,300억 원) 규모의 인프라 자금 조달까지 동시에 추진한다. 두 건을 합치면 총 1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4조 7,00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이다.
이 돈이 향하는 곳은 단 하나, 세종시에 짓는 1GW급 AI 데이터센터다.

어떤 계약이었나

지난 24일,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의 엔비디아 사옥에서 이해진 이사회 의장과 최수연 대표, 그리고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체결된 전략적 투자 계약의 내용은 이렇다.

  • 네이버가 새로 발행하는 주식 약 724만 주를 엔비디아가 주당 20만 4,500원에 인수
  • 이 거래로 엔비디아는 지분 4.5%를 확보하며, 창업자 이해진 의장보다 많은 지분을 보유
  • 국민연금, 블랙록에 이어 네이버의 3대 주주로 등극
  • 발표 당일 네이버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8.4% 상승한 22만 5,000원에 마감


주주가치 희석 우려를 의식한 듯, 네이버는 다음 달 약 1조 170억 원 규모의 자사주 490만 주를 소각하기로 했다. 유상증자를 단행한 것은 무려 22년 만이다.

왜 지금, 왜 이 조합인가

이번 투자는 지난 6월 젠슨 황 CEO 방한 당시 양사가 발표했던 ‘기가와트급 AI 팩토리 구축 협약’의 후속편이다. 네이버는 이미 세종시에서 초대형 데이터센터 ‘각 세종’을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인프라 플랫폼 ‘DSX’를 도입해 명실상부한 ‘AI 팩토리’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AI 팩토리란 서버를 모아 연산 자원을 파는 전통적 데이터센터 개념과는 결이 다르다. 데이터와 전력을 투입해 토큰, 즉 AI가 문장과 정보를 처리·생성하는 기본 단위를 대량 생산하는 공장에 가깝다. 네이버는 이 시설을 2027년 상반기 55MW, 같은 해 말 100MW, 2028년 200MW로 단계적으로 키운 뒤 장기적으로는 1GW급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여기서 브룩필드의 역할이 흥미롭다. 브룩필드는 1조 달러 이상을 굴리는 글로벌 대체투자사로, 단순히 돈만 굴리는 게 아니라 데이터센터와 전력, 신재생에너지 같은 실물 인프라 자산을 직접 보유하고 운영하는 곳이다. 사실 엔비디아는 이번 지분 투자의 선결 조건으로 90억 달러 규모의 별도 자금 확보를 요구했는데, 브룩필드의 참여가 정확히 그 조건을 채워주는 그림이다. 엔비디아 투자금 납입 기한은 10월 30일로, 네이버는 그 전에 브룩필드와의 계약도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플랫폼 회사에서 AI 인프라 기업으로

네이버는 그동안 검색 광고와 커머스를 두 축으로 하는, 철저히 내수 중심의 B2C 인터넷 플랫폼 회사였다. 성장의 한계가 국내 시장 크기에 갇혀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따라다녔다.
이번 승부수는 그 체질을 바꾸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AI 모델과 인프라를 아우르는 사업은 자본 집약적인 B2B 영역이고, 네이버는 여기서 ‘소버린 AI’ 수요를 정조준하고 있다. 자국의 데이터와 언어를 미국 빅테크에 맡기고 싶어 하지 않는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그 대상이다. 네이버 측은 2027년부터 AI 팩토리 사업에서 매출을 내기 시작해 아시아태평양과 유럽·중동 지역의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교보증권은 이 사업이 2028년 2조 5,000억 원의 매출을 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네이버와 엔비디아의 관계는 이번 투자로 끝나지 않는다. 자회사 네이버클라우드는 엔비디아와 글로벌 AI 팩토리 사업을 함께 추진하는 ‘AI 컴퓨트 파트너십’ 체결도 논의 중이다. 동시에 엔비디아의 오픈소스 AI 모델 ‘네모트론3 울트라’에 자체 데이터와 학습 기술을 결합해 자사 거대언어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고도화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이해진 의장은 이번 계약을 두고 “네이버가 굉장히 큰 변화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계기”라며, 자본뿐 아니라 두 회사의 글로벌 브랜드와 네트워크를 통해 노하우를 스케일업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