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한미 관세 협상 테이블 위에 조선업이 카드로 올라왔다. 이름하여 ‘마스가(MASGA) 프로젝트’. 상호 관세를 낮추기 위해 한국이 미국에 내민 승부수였다. 그로부터 1년, 이 프로젝트는 더 이상 협상용 카드가 아니다. 2026년 7월 23일, 워싱턴 DC에 실무를 총괄할 거점 ’한미 조선협력센터(KUSPC)’가 문을 열면서 진짜 실행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날 개소식에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을 비롯해 양국 정부·기업 관계자 약 130명이 자리했다. 겉으로는 평범한 오픈 행사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조선업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협력의 신호탄이었다.

하루 만에 쏟아진 15건의 MOU

숫자로 먼저 이 프로젝트의 규모를 가늠해보자. 한미 양국의 조선·방산 기업과 대학 등 30여 곳이 참여해 단 하루 만에 15건의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조선소 현대화, 기자재 공급망 재구축, 미래 조선 R&D, 인력 양성까지 4개 분야를 아우른다.
이름만 들어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참여 기업들도 눈에 띈다. 한국 측에서는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조선 빅3’가 총출동했고, 미국 측에서는 군함 건조의 양대 축인 제너럴다이내믹스와 헌팅턴잉걸스, 여기에 산업 소프트웨어 기업 지멘스, 방산 기술 스타트업 안두릴과 사로닉까지 가세했다. 서울대와 미시간대 등 학계도 힘을 보탰다.

90%에서 1%로, 무너진 미국 조선업

왜 미국은 한국의 손을 필요로 할까. 답은 숫자에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국내 70곳이 넘는 조선소에서 연간 1000척 안팎의 배를 찍어냈고, 세계 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고 정부 지원이 줄어들면서 상황은 급격히 바뀌었다. 인력은 고령화되고 인건비는 치솟았으며, 현지 선박 기자재 공급망도 상당 부분 붕괴됐다. 그 결과 지난해 미국의 글로벌 조선 시장 점유율은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빈자리를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으로 메우는 작업이 시작됐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멘스와 손잡고 선박 설계·제조용 디지털 솔루션을 공동 구축하기로 했고, 한화오션은 필리조선소가 위치한 필라델피아 광역 상공회의소와 협력해 현지 기업들의 조선업 진출을 지원한다. 국내 기자재 업체 제이제이컴퍼니도 니콜라스브로스 등 현지 기업에 선박 유지·보수 노하우를 전수하기로 했다.

AI 군함부터 자율주행 운반차까지

이번 협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미래 R&D 분야다. 한미 양국 기업·기관 16곳이 참여해 향후 5년간 8000만달러, 우리 돈으로 약 1200억 원이 투입된다.
구체적인 내용이 흥미롭다. HD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안두릴, 사로닉과 함께 미래형 군함으로 꼽히는 무인 수상정 기술을 개발한다. 중견 조선사 HJ중공업은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와 손잡고 피지컬 AI를 활용해 선박 무게를 줄이는 알루미늄 함정용 패널 제조·용접 기술을 개발하고, 현대무벡스는 미국 사우스웨스트연구소와 선체 블록 운반용 자율주행 트랜스포터를 공동 개발해 미국 현지에서 실증에 나선다. 학계에서도 서울대와 미시간대가 학생들을 중심으로 AI 기반 선박 설계 최적화 기술을 연구한다.

인력 양성도 빼놓을 수 없는 축이다. 한화오션은 필리조선소 인근 델라웨어 카운티 커뮤니티 칼리지와 손잡고 조선 기술 교육부터 현장실습, 채용까지 이어지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삼성중공업은 미국 MRO 전문 조선사 비거마린그룹과 함께 VR·AR 용접 교육 인프라를 갖춘 인력 양성 센터를 세운다.

‘팀 코리아’가 등판한 이유

한국의 조선 빅3와 조선협회,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 KUSPC 등 6개 기관은 이번 기회에 ‘팀 코리아’를 결성하기로 했다. 개별 기업이 각자 뛰는 대신, 미국 조선소 현대화와 생태계 구축, 미래 기술 실증에 공동으로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런 결집이 나온 시점도 의미심장하다. 최근 쿠팡 등을 둘러싸고 한미 간 미묘한 긴장 기류가 감지되고, 미국이 무역법 301조를 앞세워 한국에 대한 관세 재조정을 검토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조선 협력이 한미 관계를 떠받치는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